‘장애아동청소년 맞춤형 보조기구 지원사업’ 종료보고회 스케치
내 다리가 되어준 전동휠체어, 보물처럼 소중한 전동휠체어
자동차처럼 달려가는 전동휠체어, 전동휠체어가 있어서 나는 좋네
<전동 휠체어>, 박세철 자작시 (2009년 보조기구 지원 대상자)
수많은 ‘민우’를 만난 13년
“‘보조기구는 주는 게 아니라 쓰는 거다.’ 이 사업을 시작하며 했던 생각입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받았냐가 아니라 한 명, 한 명의 인생이 정말 달라졌느냐로 관점을 바꾼 겁니다. 덕분에 다른 보조기구 사업도 일괄 지원에서 맞춤형 지원으로 전환하고 있어요. 13년 전, 아름다운재단이 도전한 덕분에 새 흐름이 만들어진 겁니다.”
지난 12월 14일, <장애 아동·청소년 맞춤형 보조기구 지원사업의 평가회>가 열렸다. 남세현 교수(한신대학교 재활학과)가 13년 전을 회고하며 입을 열었다. 그가 처음 이 사업을 제안했던 2005년만 해도 보조기구 지원은 주는 사람의 입장에서 진행됐다. 받는 이의 고유성과 상황을 고려하지 않으니 지원된 보조기구가 방치되는 경우가 빈번했다.
2006년 아름다운재단과 경기도재활공학서비스연구지원센터가 손을 잡고 보조기구가 일상에서 유용하게 잘 쓰이도록 지원하자는데 마음을 모았다. 지원 대상을 학령기 장애 아동과 청소년으로 정하고, 개개인 장애 유형과 신체적 · 기능적 특성, 욕구에 부합하는 맞춤형 보조기구를 지원했다. 변화는 놀라웠다.
10년 전, 11살이었던 오민우(가명)라는 친구가 있었어요. 뇌성마비 중증이라 병원에서 평생 못 걷는다는 진단을 받았어요. 저희 사업을 통해 기립형 이동 보조기구를 지원받았는데 어느 날 어머니한테 ‘민우가 가출했다’라는 전화가 왔어요. 저희는 놀랐죠. 보조기구 덕분에 자신감이 생기면서 민우가 뭔가 짚고 발걸음을 떼는 연습을 계속한 거예요.
몇 년 후에 다시 민우한테 전화가 왔어요. ‘선생님, 저 보조기구 다시 기증할래요. 저는 이제 목발 짚고 걸을 수 있어서 다른 아이들에게 나눴으면 해요.’ 지금 현우는 걸어서 대학에 다닙니다. 만약 자기에게 맞는 보조기구를 지원받지 못했다면 걸을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살았겠죠. 지난 13년의 역사는 그렇게 수많은 민우를 만나온 시간입니다.
아름다운재단은 그동안 전국의 1,253명의 민우에게 맞춤형 보조기구를 지원했다. 학령기의 이런 지원은 소중하다. 쉽게 포기할 수 있는 재활의 의지를 북돋고 그로써 공부와 자립 생활의 기회를 열어주기 때문이다.
파트너가 있어 가능했던 사업
아름다운재단이 1,253명의 현우에게 잘 맞는 보조기구를 지원하고, 이후 사례관리까지 할 수 있었던 건 <경기도재활공학서비스연구지원센터>와 전국에 있는 <7개의 보조기구센터>가 함께 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 자리에서는 그동안 사업을 함께한 사람들의 회고도 함께 나눴다.
경기도재활공학서비스연구지원센터 – 강인학 센터장
“이 사업이 시작하던 해에 저도 센터에 합류했으니 인연이 깊은 사업입니다. 저와 센터의 성장과 함께 해왔다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이 사업을 계기로 우리 사회의 보조기구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고, 지원 방식도 성장했습니다. 큰 파급효과를 가져온 사업인 만큼 이후에도 또 다른 발전을 다 같이 만들어 가면 좋겠습니다.”
경기도재활공학서비스연구지원센터 – 황민영 팀장
“2006년 시작해 13년 동안 한결같이 보조기구를 지원해 많은 장애 아동과 청소년, 가족들에게 도움이 되어왔습니다. 단순 지원이 아니라 욕구와 평가 통해 지원한 최초의 모델이었고, 최장수 보조기구 지원사업이기도 합니다. 이 사업의 처음과 끝을 함께 할 수 있어 기뻤습니다. 함께 해주신 모든 분께 감사합니다.”
경상남도 보조기기센터 – 조재덕 실장
“네 살 아이가 맞춤형 보조기구를 ‘산타할아버지’라고 말한 게 기억에 남아요. 그만큼 아이들에게 선물이 됐던 사업입니다. 우리 센터로서도 이 사업을 통해 지역에 이름을 알릴 수 있었고요. 지원 종결은 아쉽지만 더 나은 한 걸음을 내딛기 위한 맺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광주광역시 보조기기센터 – 조금란 실장
“이 사업을 하고부터 ‘아, 그 보조기구 지원해주는 곳’이라고 우리 센터를 기억해주시는 분들이 많았어요. 그만큼 절실한 필요를 보듬었던 사업이라고 생각해요. 한 어머니께서는 보조기구를 지원받으신 후 식탁에 앉아 아이와 눈 마주치며 이야기할 수 있어 행복하다고 했어요. 이 사업이 아이와 가족들의 삶의 질을 높여준 것만은 분명한 거 같아요.”
대전광역시 보조기기센터 – 이길주 실장
“이 사업은 만족도가 굉장히 높은 사업이었어요. 보조기구는 내 ‘신체의 일부’라고 말할 만큼 꼭 필요한 것이니까요. 절실히 기다리는 사람들을 위해 앞으로 더 좋은 사업이 진행되길 기대합니다.”
대구광역시 보조기기센터 – 최미나 보조공학사
“제가 하는 수많은 사업 중 제일 좋아하는 사업이에요. 아이들도 엄마들도 좋아하셔서 만족도가 높은 사업이고요. 한 어머니께서는 아이가 한 번도 웃는 걸 본 적 없는데 보조기구를 타고 밖에 나가서 노니까 깔깔깔 소리를 내며 웃었다고 전화를 주시기도 했어요. 저 역시 이 사업 통해 현장에서 어떻게 소통하고, 사업은 어떻게 평가해야 하는지 배웠고요. 사업이 끝나는 건 아쉽지만 다른 출발을 위한 기회라 생각합니다.”
부산광역시 보조기기센터 – 장승훈 실장
“이제 보조기구를 받을 수 있는 다른 지원도 많이 생겨서 다른 곳에서 받기 어려운 품목을 지원해달라는 의견이 있었어요. 그만큼 보조기구 지원이 다양해지고, 많아지는 데 기여를 했던 사업이라고 생각해요. 사업이 끝나 안타까워하실 분들을 위해 더 필요한 새로운 사업이 생기길 바랍니다.”
인천광역시 보조기기센터 – 한승호 실장
“이 사업이 씨앗이 되어 여기저기서 보조기구 사업을 많이 볼 수 있게 됐어요. 어느새 자리 잡아 유사한 형태의 사업들이 생겨나는 걸 보며 감사한 마음이 드네요. 한 친구가 말했듯이 보조기구 지원은 ‘삶의 품격을 높여주는 일’었어요.”
충청북도 보조기기센터 – 김보배 실장
“이 사업을 함께 하며 아름다운재단이 얼마나 아이들의 변화를 지원하고 응원하는지 느꼈어요. 질적으로도 높은 서비스를 제공한 사업이라 담당자로서도 보람이 있었고요. 보조기구 지원 이후 한 아이뿐 아니라 가족 모두에게 꿈과 희망이 생겼다는 말이 저에게는 계속 기억에 남네요.”
새로운 걸음을 위한 마무리
각 지역 센터의 담당자들은 보조기구 지급 후에도 끊임없이 당사자의 목소리를 경청해왔다. 그 내용이 사업에 반영되어 지원 기준에서 장애등급을 폐지하기도 했고, 제품 개선에 기여하기도 했다. 불편한 점을 고쳐달라고 판매 업체에 계속 피드백을 한 덕분이다.
무엇보다 큰 의의는 보조기구의 필요성을 널리 알리고, 지원 방식의 방향을 바꿨다는 데 있다. 덕분에 2006년에는 5개밖에 없던 민간지원사업이 2016년에는 약 73개 사업으로 확대되었고, 이중 다수가 ‘아동, 청소년’과 ‘맞춤형’이라는 본 사업 특성을 도입했다.
이제 <장애 아동·청소년 맞춤형 보조기구 지원사업>은 제 역할을 다하고 13년의 여정을 마무리했다. 한태윤 아름다운재단 변화사업국장은 “이 맺음은 변화된 시대적 요구에 따라 새로운 도전을 하기 위한 마무리”라고 말했다.
“이 사업은 종료되지만, 아름다운재단이 처음 가졌던 마음은 종료되지 않습니다. 더 많은 아이에게 자신에게 맞는 보조기구를 사용하는 환경을 마련하기 위해 필요한 일들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이 사업을 위해 애써주신 모든 분께 감사드립니다.”
글 우민정 ㅣ 사진 경기도재활공학서비스연구지원센터, 김권일, 임다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