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년의 정든 집, 주거지원사업을 마치며
우리는 다시 ‘집’에서 만날 거에요

“…누구나 최저 기준에 달하는 주거의 권리를 가져야 하나, 아직 우리사회는 주거 빈곤 특히 주거빈곤아동에 대한 관심이 미비하기만 합니다…한때의 임대료만 대납해주는 사업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정책적으로 주거빈곤 아동의 문제가 제기되고 반영될 수 있도록 사업 진행 과정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14년 전 아름다운재단이 처음으로 ‘소년소녀가장 주거지원사업’을 시작할 때의 사업 제안서 내용이다. 이 야심 찬 포부를 실천에 옮기느라 아름다운재단은 열네 번의 봄여름가을겨울을 바쁘게 보냈고, 1,500명이 넘는 가구를 지원했다. 초기에 지원을 받았던 청소년들은 어느새 30대 청년이 되었다.

(좌측부터) 박정순, 서정화, 신용규 심사위원

(좌측부터) 박정순, 서정화, 신용규 심사위원


그러나 아름다운재단은 2018년을 끝으로 길었던 소년소녀가정 주거지원사업을 마무리하고, 새로운 사업을 모색하기로 했다. 주거권을 둘러싼 사회환경이 변화하고 정부의 주거급여가 확대되면서, 보다 현장 수요에 딱 맞는 사업을 찾기 위해 아쉬운 이별을 택한 것이다.

14년의 인연을 뒤로 한 채 이대로 헤어지기는 너무 아쉽다. 그래서 아름다운재단 소년소녀가정 주거지원사업과 함께 했던 심사위원들을 만났다. 박정순 굿네이버스 경기2본부장, 서정화 ‘열린여성센터’ 소장, 신용규 한국사회복지사협회 사무총장이 한 자리에 모였다. 주거지원사업 과정에서 그 누구보다 꼼꼼히 사각지대의 사례를 들여다본 전문가들이기 때문이다.

심사기준에 사람을 맞추지 말고, 실제 삶에 맞추자

아름다운재단의 지원신청 서류는 꽤 심플한 편이다. 복잡한 서류는 자칫 당사자에게 장벽이 될 수 있고 사회복지사에게도 행정 부담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렇게 꼭 필요한 내용만으로 서류를 만들어도, 수많은 사람들의 사례를 한꺼번에 검토하는 심사위원들에게는 꽤 고역이다.

소년소녀가정 주거지원사업 심사서류

소년소녀가정 주거지원사업 심사서류


심사위원들은 매년 심사 때마다 100건은 기본이고 경우에 따라서 200건에 가까운 사례를 검토한다. 근무 시간 안에는 도저히 마칠 수 없는 분량이라서, 보통은 아예 집으로 서류를 가져간다. 박정순 심사위원은 “밤에도 읽고 새벽에도 읽고 주말에도 읽는다”고 했다. 어느 한 사례도 허투루 볼 수는 없다. 혹시라도 정말 지원이 필요한 가정이 탈락되는 것 아닐까 하는 걱정 때문이다.

그래도 꼭 누군가를 탈락시켜야 할 때 아름다운재단 심사위원들은 ‘지원의 시급성’을 먼저 본다. 이 과정에서는 제도적 문제로 사각지대가 발생하지 않도록 특히 신경을 쓴다. 행정서류상 보호자가 있지만 실제로는 가족이 따로 사는 경우라면 행정적 문제로 사례를 배제하지 않는다. 당사자의 상황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서정화 심사위원

서정화 심사위원


다행히 최근에는 지원자를 탈락시키는 경우가 많지 않았다. 심사위원들의 마음고생이 조금 줄어든 셈이다. 그래도 심사위원들은 사례를 읽다가 울컥 한다. 희망이 보이지 않는 숨막히는 사례에 마음이 짓눌리는 것이다. 서정화 심사위원은 서류를 검토하면서 ‘이렇게 막막한 사람들에게 우리의 지원은 과연 햇볕 한 줌이 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늘 고민스러웠다고 한다.

아름다운재단의 사업 담당자들 역시 지난 14년간 같은 고민을 해왔다. 지금까지 이 사업을 거쳐간 간사들은 무려 10명. 그 사이에 사업의 모양은 꽤 많이 바뀌었다. 지원연령의 기준을 ‘만 18세’에서 ‘만 24세’로 확대하고, 소득 기준도 ‘최저생계비 150%’에서 ‘중위소득 80%’로 늘렸다.

보다 안정적 사례 관리를 위해 한국사회복지관협회와 파트너십도 맺었다. 박정순 심사위원은 “이번에 돌아보니 아름다운재단은 주거 사각지대에 있는 아동청소년들에게 필요한 지원을 고민하면서 계속 변화해왔다“고 말했다. ‘기준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사람들을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 사람들의 상황에 아름다운재단의 기준을 맞추려 노력했다는 것이다.

주거 지원은 권리입니다. 당당하게 받으세요.

햇볕 한 줌으로는 꽁꽁 언 몸을 다 녹일 수 없다. 지난 14년 동안 아름다운재단 뿐만 아니라 참 많은 단체와 기관, 지자체와 정부가 주거 지원에 나섰다. 임대주택이 대폭적으로 늘어났다. 주거급여가 확대되고 다양해졌다. 긴급 지원의 속도도 빨라졌다. 그런데도 냉기는 가시지 않았다. 주거 문제가 복잡하게 얽혀있기 때문이다.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 지 막막하지만, 아름다운재단은 앞으로도 주거 지원사업의 끈을 놓지 않을 것이다. 사람들의 삶에서 ‘주거’가 갖는 중요성을 너무 잘 알기 때문이다. 더 강력하고 더 혁신적인 주거사업을 위해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시즌2에서 아름다운재단은 무엇을 해야 할까?

신용규 심사위원

신용규 심사위원


신용규 심사위원은 ‘청년 주거’를 강조했다. 최소한의 안전도 보장되지 않는 고시원에서 생활하는 청년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신 총장은 “누구도 이 문제에 손을 못 대고 있는데, 아름다운재단이 꼭 나섰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고시원의 열악한 시설을 보강하면서 청년들이 자연스럽게 교류할 수 있는 푸드트럭이나 이동식 세탁시설을 제안하기도 했다.

서정화 심사위원 역시 청년 주거 문제의 중요성에 대해 깊은 공감을 나타내면서 “고시원 건물을 사서 사회주택을 만들면 어떻겠냐”는 아이디어를 냈다. 서 소장은 또한 주거지원을 담당하는 사회복지사의 역량 강화 및 휴식 지원도 함께 주문했다. 주거 지원사업을 빈틈없이 운영하려면, 현장의 주거복지 수요를 파악해 자원을 연결하는 사회복지사들도 함께 지원해야 하기 때문이다.

박정순 심사위원

박정순 심사위원

박정순 심사위원은 현 사업의 종결을 누구보다 아쉬워했다. 박 본부장은 “주거 사각지대를 발굴하는 것이 쉽지는 않겠지만, 되도록 지금과 같은 취지의 사업이 이어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주거환경이 열악한 청소년들을 위한 공부방 리모델링을 제안하기도 했다.

후속 사업에 대한 아이디어는 조금씩 달라도 주거 지원을 받는 청소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모두 비슷했다. 심사위원들은 “지금의 상황은 청소년 각자의 잘못이 아니고, 사회의 지원을 받는 것은 당연한 권리”라고 입을 모았다. 사회의 지원을 받아서 위기를 넘기고, 지금의 상황이 지나가서 좀더 여유가 생기면 또다시 누군가를 도우면 된다는 것이다.

청소년에게 ‘지원 받을 권리’가 있다면, 우리 사회에는 ‘지원할 의무’가 있다. 아름다운재단은 새로운 사업에서도 우리에게 주어진 의무를 다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시즌 2에서는 더 따뜻한 집, 더 행복한 집을 만들 것이다. 누구나 당연히 권리를 누리면서 서로 돕고 연대하는 것이 아름다운재단이 꿈꾸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글 박효원 ㅣ 사진 임다윤

댓글 정책보기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