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회와 인연의 끈으로 직조한 오늘
의도하지 않은 ‘빅피처’
“저 일하고 있어요!”
쌀쌀한 가을 날씨를 쩡하는 상쾌한 인사가 날아왔다. 대학 졸업 후 2018년 1월 취업해 벌써 직장생활 1년을 지나고 있는 김예지 씨(가명). 그녀에게 ‘직장인’이라는 인생의 새로운 장이 펼쳐진 것이다. 한 번도 걸어본 적 없는 새로운 길에 들어선 그녀는 여전히 씩씩하고 명랑한 모습 그대로다. 주변 분위기와 사람까지 기분 좋게 만드는 특유의 에너지도 여전했다.
“대학 때 실습하는 곳에서 아동보호전문기관 업무를 알게 된 후 다른 일은 생각도 안 했어요. 다행히 처음부터 제가 원했던 곳에서 일하게 돼 지금 신나게 일하고 있어요. 대학에서 사회복지와 법학을 복수 전공했는데 지금 하는 일에 정말 많은 도움이 돼요.”
첫 눈에 반하듯 아동보호전문기관을 알게 된 후 아동보호 일을 하겠다 목표를 정했고, 자연스러운 흐름처럼 그녀의 뜻은 이뤄졌다. 물론 대학 입학 전부터 큰 뜻을 갖고 그녀가 사회복지를 전공한 것은 아니었다. 경영학과 사회복지 중 자신이 더 잘 할 수 있는 분야로 전공을 선택했던 것뿐이었다. 공부하면서 전공이 자신과 잘 맞는 것을 확신했고, 더 잘하고 싶은 욕심도 생겼다. 공부와 아르바이트를 병행하기 바빴지만 법학을 복수 전공하기로 한 것도 그래서다.
사회복지와 법은 서로 멀리 있지 않았다. 수업도 많고, 공부할 것도 많아 대학 생활 내내 학비와 생활비, 아르바이트로 동동거리며 지내야 했다. 하지만 아동보호 일을 시작한 뒤로 그녀는 새삼 법학을 공부하길 잘했다고 깨닫는 중이란다. 아동보호전문기관 업무에 법률적 지식이 크게 도움을 받는 까닭이다. 처음부터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로 사회복지와 법학의 복수 전공은 아동보호 관련된 일을 하기 위한 큰 그림으로 느껴질 정도로 말이다.
치열했던 나의 대학생활
“정말 절실한 순간에 교육비 지원을 받았어요. 국가장학금 지원이 되지 않아 학비를 벌기위해 휴학하고 아르바이트하며 돈을 모았죠. 그런데도 부족하더라고요. 다음 학기도 휴학할지, 징검다리로 학교를 다녀야 할지 고민할 때 교육비 지원이 결정된 거예요. 그때는 하늘이 천사를 보내준 거 같았어요.”
PC방과 과외를 두 개씩 하고, 주말에는 레고 블록 조립 아르바이트를 해도 생활비와 학비를 충당하기엔 빠듯했다. 학교를 다니기 위해 돈을 버는 것인데, 어느 순간 돈 버느라 공부할 시간이 없는 아이러니가 계속되고 있었던 것이다. 부정적인 생각을 해본 적 없었지만 그 순간에는 원망이 쏟아졌다는 그녀. 때마침 결정된 교육비 지원은 휘청이는 그녀의 마음까지 다잡아줬다. 본래의 명랑한 모습으로 돌아온 그녀는 또 다시 바지런히 움직였다. 아르바이트를 줄이는 대신 수업을 하나 더 들을 수 있었고, 교육비는 학비뿐 아니라 자기계발비, 학비생활보조비 등으로 다양하게 활용됐다.
“제 이력서의 두세 줄은 교육비 덕분에 쓸 수 있었어요. 학업생활보조비를 통해 면접 때 필요한 정장도 구입할 수 있어서 취업 준비를 할 때 한결 마음이 편했어요. 취업이 된다는 보장도 없는데 정장을 마련하는 게 쉽지 않잖아요. 대여도 가능하지만 면접이 여러 번이면 부담되긴 마찬가지고요.”
누구보다 치열했던 대학생활과 목표로 삼았던 기관의 취업 활동, 어려서부터 조급하게 꿈꾸고 바랐던 대학 졸업도 어느새 추억이 됐다. 빨리 어엿한 사회인으로서 일하고 싶었던 어릴 적 소망이 마침내 그녀의 일상이 된 것이다.
대학생 교육비 지원사업이 데려온 소중한 인연
민원 많고, 돌발적인 위기 상황도 많아 업계에선 일이 고되기로 정평이 나 있는 아동보호전문기관에서 9개월 째 일하고 있는 그녀는 요즘 업무와 일상을 구분 짓는 ‘스위치’를 자주 생각한다. 선의는 곡해되고, 평범한 말 한 마디가 소통 단절의 단초가 되는 등 마음고생도 적지 않았던 것이다. 아직 업무 스위치가 잘 작동되지 않지만 담당한 가정이 회복되고, 개선되는 모습은 그녀를 다시 움직이게 한다.
“위기 가정에서 필요로 하는 것들을 웬만하면 들어주려고 해요. 물론 제가 할 수 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잘 구분해야 하죠. 다만 한 사람의 인생에서 좋은 사람과 기회를 만나는 게 어떤 의미인지 더 잘 아니깐 일하면서 만나는 가정에 최선을 다하게 되더라고요.”
처음엔 학비 부담을 덜어준 것에 안도했고, 꿈도 못 꿨던 단기어학 연수 기회를 갖게 된 것이 기뻤다. 자기계발비와 학업생활보조비로 운동과 문화생활을 할 때는 마음 어딘가가 부드러워지는 것 같았다. 동아리 친구들과 각출하고 지원금을 더해 떠난 여행은 모든 걱정을 날려버릴 만큼 유쾌하고 즐거웠다. 교육비 지원은 숨이 차오를 때까지 달리다 넘어졌을 때 그녀를 잡아준 손이었고, 조금 천천히 달려도 괜찮다며 다독여준 여유였던 것이다.
그리고 친구들…. 교육비를 계기로 만난 이들은 어느새 그녀와 가장 가까운 존재가 됐다. 무거운 마음도 쉽게 나눌 수 있는 친구이자 삶의 런닝메이트가 된 것이다.
자신이 담당하는 아동과 가정을 한 번 더 생각하며 최선을 다하는 것은 그들에게도 인생의 기회와 인연을 만나길 바라기 때문이다. 그녀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2016년부터 2년 간 아름다운재단 대학생 교육비 지원사업 장학생이었던 그녀가 졸업생으로서 후배들에게도 전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아름다운재단 대학생 교육비 지원사업과 함께 온 기회와 인연의 끈을 꼭 잡으라고. 부지런히 계획하고, 움직이고, 만나고, 즐기는 동안 그 끈들은 우리의 삶과 내일을 직조해낼 것이라고 말한다. 그녀가 그랬던 것처럼.
글 이명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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