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러리교육으로는 학교폭력 못 막는다

디지털 시민교육을 통한 학교폭력 예방 연구

“학교폭력은 충분히 예방할 수 있다.”
“학교폭력이 발생하면 노력할 의향이 있다.”
“학교폭력 해결을 위해 노력해 본 적이 있다.”

아주 옳고 당연한 말 같지만, 막상 이런 문장에 “나도 그렇다”고 자신 있게 말하기는 사실 쉽지 않다. 폭력을 멈추기 위한 행동에는 언제나 많은 용기가 필요한 법이다. 학교폭력을 보다 가까이서 접하는 청소년에게는 더욱 어려운 문제일 것이다.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괜히 나까지 피해를 입는 것을 아닐까’ 하는 현실적인 고민이 없을 수 없다.

그런데 이 문장에 당당히 “그렇다”고 답하는 청소년들이 부쩍 늘었다. 위의 항목에 대한 긍정적 답변이 모두 유의미하게 높아졌다. 상승폭도 작지 않다. 5점 척도를 기준으로 작게는 0.17점에서 많게는 0.56점이나 된다. 아름다운재단이 지난 2018년 진행한 ‘디지털 시민(digital citizenship)교육 지원사업’의 결과다.

학교폭력 해결 노력” 3.393.95비결은 주체성

아름다운재단 ‘디지털 시민교육 지원사업’의 주된 내용은 청소년에게 디지털을 활용한 시민교육을 진행해 학교폭력 예방 의지를 높이는 것이다. 이를 위해 부산의 9개 중학교에서 학생 700 여명을 대상으로 디지털 시민교육을 실시했다. 참가자들은 총 16회의 수업을 통해 디지털을 활용한 창작활동을 벌였고, 마지막에는 학교폭력 예방을 주제로 캠페인 영상을 만들었다. 그러면서 교육 참가자들의 사전-사후 조사를 통해 사업의 효과성을 연구했다.

그 결과 “학교 폭력은 충분히 예방하고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는 응답이 4.06점에서 4.29점으로 높아졌다. “주변에 학교 폭력이 발생하면 해결을 위해 노력할 의향이 있다”는 응답 역시 4.07점에서 4.24점으로 높아졌다. “학교폭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 본 적이 있다”는 응답은 3.39점이었는데 무려 3.95점으로 껑충 뛰었다. 몇 달의 교육 성과라고 보기에 놀라운 변화이다.

이화여자대학교 학교폭력예방연구소 정제영 교수


그렇다면 왜 디지털 시민교육이 이 같은 학교폭력 예방 효과를 나타낸 것일까? 효과성 검증 연구를 진행한 정제영 교수(이화여대 학교폭력예방연구소)는 “디지털 시민교육은 청소년 당사자들이 쉽게 몰입할 수 있는 방식”이라고 강조했다. 스스로 주체가 되어 재미있게 참여할 수 있기에 학습 효과도 그만큼 뛰어나다는 것이다.

정제영 교수는 특히 “학교 폭력을 위한 노력” 항목의 긍정적 답변이 크게 증가한 것에 주목했다. 그는 “결국 학교폭력 예방 프로그램의 핵심은 실천”이라고 강조했다. 교육을 통해 아무리 인식이 달라졌어도 청소년들이 행동에 나서지 않는다면 현실은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학교폭력 예방교육에서는 행동의 변화가 너무나도 중요하다.

주변인에 익숙해진 청소년들 나는 피해자가 되지 말아야지

정 교수는 “학교폭력은 가해자와 피해자의 힘이 불균형한 상황에서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힘이 센 개인이나 집단이 약한 사람을 지속적으로 괴롭히는 것이 학교폭력의 본질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보통은 교사, 부모 등 청소년보다 힘이 센 어른들이 상황에 개입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지만, 이 같은 방식은 한계가 뚜렷하다.

우선 어른들의 개입 자체가 쉽지 않다. 아무리 학교폭력 예방에 관심이 많은 어른들도 늘 청소년들을 지켜볼 수는 없다. 가해자는 어른이 없는 상황을 이용해 폭력을 행사한다. 그러면서 피해자가 어른들에게 도움을 요청하지 못하도록 위협한다.

다행히 어른들의 도움으로 학교폭력 상황을 해결한다고 해도 문제는 남는다. 당장 급한 피해는 막을 수 있지만, 청소년들이 스스로 문제 해결 방법을 배우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에 학교폭력 상황을 지켜보는 청소년들은 가해자의 편에 서거나 피해자의 고통을 방관하면서 주변인으로 남는다. 참여하지 않는 어른으로 자라나는 셈이다.

정제영 교수는 “청소년들은 주변인으로 행동하는 데 너무 익숙해져 있다”고 말했다. 학교에서 극히 소수의 주인공들만 주목을 받고 나머지는 모두 들러리가 되는 방식으로 생활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학교폭력이 일어날 때도 청소년들은 그저 ‘나는 약해지지 말아야지. 피해자가 안 되어야겠네’ 라고만 생각한다. 이런 환경에서는 도저히 학교폭력이 사라질 수 없다.

디지털 시민교육이 학교폭력 예방에 효과를 보인 비결 역시 ‘주체성’이다. 정 교수는 “지금까지의 학교폭력 예방교육은 강당에 전교생을 모아놓고 학교폭력의 문제점에 대해 강의를 하는 방식이었다”고 지적했다. 청소년들이 자리에 앉아있긴 하지만 그 뿐이다. 때로 충격적인 사진과 사례를 보여주기도 하지만, 그것도 효과는 오래 가지 않는다.

반면 디지털 시민교육은 재미와 학습의 균형을 절묘하게 맞추는 새로운 방식의 교육이다. ‘디지털’이라는 방식 자체가 청소년들에게 흥미를 준다. 또한 디지털을 활용하면 여러 가지 정보와 기술에 보다 손쉽게 접근할 수 있기에, 청소년들은 각자 원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성취감을 느낄 수 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주체가 되는 교육인 셈이다.

디지털은 남의 얘기? 교사들도 달라지고 있다

(좌측부터) 학교폭력예방연구소 정제영 교수, 디지털리터러시교육협회 박일준 대표


이번에 디지털 시민교육 사업의 효과가 검증됐으니, 앞으로는 더욱 관련 사업들이 늘어나고 연구도 늘어날 것이다. 정제영 교수는 디지털 시민교육이 학교폭력 예방뿐만 아니라 학교 부적응, 학업 중단, 청소년 비행 등 다양한 교육 문제에 적용될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이미 교육 현장에서는 온도 변화가 감지된다. 해마다 교사의 관심이 높아지는 게 몸으로 느껴진다는 것이다. 디지털은 남의 얘기라고 여기던 교사들이 이제 “어떻게 하면 교실에서 디지털 시민교육을 할 수 있냐”면서 연수 문의를 하기도 한다. 청소년들과 더 많이 소통하기 위해서 디지털 시민교육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정제영 교수는 이러한 흐름을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학교 교육이 통제와 처벌의 틀에서 벗어나 보다 동등한 소통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정 교수는 “그 동안 교사가 학교에서 청소년들을 통제하는 가장 중요한 수단이 체벌이었다. 이는 민주적 관계가 아닌 폭력에 따른 권위”라고 강조했다. 이런 교실은 겉보기에는 조용해도 한 꺼풀만 벗겨놓아도 여러 가지 문제들이 산적해있다. 학교폭력도 그 중 하나이다.

청소년 모두가 주인공으로 자라는 학교는 분명 더 시끄럽고 혼란스럽겠지만, 결국 청소년들은 이 과정을 통해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나갈 것이다. 그리고 이런 학교에서는 분명 폭력도 줄어들 것이다. 청소년들은 폭력 상황에서 들러리로 남지 않을 테니까. 각각이 주인공인 청소년들이 기꺼이 피해자의 곁을 지켜줄 것이다. 또래간의 갈등이 생겨도 최선을 다해 서로 소통할 것이다. 

디지털 시민교육이 꿈꾸는 학교의 미래이다.

 

글 박효원ㅣ사진 이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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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시민교육 지원사업]‘디지털 시민교육 지원사업’은 디지털에 익숙한 청소년들에게 디지털 도구를 활용하여 학교폭력 문제의 심각성과 공동체의 중요성을 스스로 깨닫게 하는 시민교육을 진행합니다. ‘디지털 시민교육 지원사업’은 디지털리터러시교육협회(https://www.cdledu.org/)와의 협력사업으로, 부산 지역 학교 교사 대상의 연수교육과 교대 졸업생 대상의 전문 코치 양성교육을 진행하고 약 30개 중학교의 청소년을 대상으로 디지털 시민교육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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