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재단 ‘변화의 시나리오 프로젝트 지원사업’은 공익활동을 하고자 하는 시민모임, 풀뿌리단체, 시민사회단체를 지원합니다. 특히 성패를 넘어 시범적이고 도전적인 프로젝트를 지원함으로써 공익활동의 다양성 확대를 꾀합니다. ‘변화의 시나리오 프로젝트 지원사업’에서 어떤 활동들이 이루어졌는지 그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2018년 최저임금 16.5%인상이 가져온 변화

2018년 최저임금이 16.4%가 인상되면서 언론에서는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역효과를 걱정하는 기사들이 넘쳐났다. 기업들은 발 빠르게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대비책 마련을 위해 머리를 쥐어짰고, 각종 세미나와 포럼 등을 통해 편법들을 공유하고 개발해냈다. 정부와 정치권은 최저임금법을 개정하면서 최저임금인상의 효과를 되돌려 버렸다.

반월시화공단도 술렁거렸다. 2017년 가을부터 반월시화공단노동자권리찾기모임 월담은 최저임금 꼼수 제보 전화를 받기 시작했고, 모두들 비슷한 이야기들을 했다. 기본급은 올랐으나 상여금이 반 토막이 났고, 복리후생 적 수당이 사라졌다. 취업규칙을 불이익하게 바꾸면서 기존의 조건들은 후퇴했고, 노동자들에게는 일방적 통보나 형식적 동의만을 구한 채 변경이 되었다. 그나마 그런 형식적 절차조차도 지키지 않는 곳이 태반이었다.

월담은 2018년 한 해 동안 ‘최저임금감시단’ 활동을 진행했다. 최저임금 적용여부, 편법사례, 위반 실태들을 상담과 선전전, 실태조사를 통해 모아내고 대응했고, 노동자들과 함께 대응방안을 모색했다. 나아가 고용노동부의 자기 역할을 추동해내는 것까지를 진행했다. 이러한 활동들을 통해 2018년 최저임금 16.5%인상이 가져온 현장의 변화를 되짚어 봤다.

공단에서 만난 사람들

최저임금꼼수가 한바탕 쓸고 간 공단에서 안 그래도 최악이었던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은 어떻게 변했을까. 그 변화에 노동자들은 어떻게 대응했고, 그들의 목소리는 반영이 되었을까. 월담은 공단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2018년 3월부터 5월 둘 째 주까지 ‘최저임금 위반/적용 실태조사’를 총 30회에 걸쳐 진행했다. 노동자들을 가장 많이 만날 수 있는 공장 근처 식당 앞과 출퇴근길 전철역이 주요 거점이었다.

“이거 하면 뭐가 달라지는 게 있어요?”
“이미 다 바뀌고 난 뒤라서, 지금 해봤자 의미 없잖아요?”
“계산을 안 해봐서 얼마인지 모르겠는데?”
“우리 회사가 워낙 어려워요. 서로 양보 하는 거지”
“관리자들 다 보는데, 회사 옆에서 받고 있으면 어떻게 해”
“난 최저임금 아니에요”
“돈은 회사가 알아서 주는 거잖아요”

“이거 하면 뭐가 바뀌는 게 있냐?”는 질문을 던진 한 노동자는 돈 주는 놈들이 바뀌지 않는 이상은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고 열변을 토하셨다. 대통령만 바뀌고 나머지는 다 그대로 인데 뭐가 제대로 되겠냐며, 하루아침에 사장님 머릿속이 뒤집어지지 않는 이상은 절대 바뀌지 않는다고 했다. 임금이 오르고 노동자들에게 유리하게 정책이 바뀐다고 해도 그것을 적용시킬 힘이 없으면 현장은 변하지 않을 거라는 경험적 확신이 오히려 현실에 몸을 맞추게 했고 변화를 위한 시도를 멈추게 했다.

50대 여성노동자가 다니는 회사는 이미 작년 하반기에 다 바뀌었다고 했다. 상여금이 12개월로 분할되고 수당은 줄었지만 임금총액이 줄어든 건 아니어서 사람들도 큰 불만은 없고, 개별로 뭔가에 사인을 해라고 해서 했는데 그게 취업규칙인가 근로계약서인가 모르겠다고 했다. 꼭 확인해 보시라고 말했지만 그렇게 할 것 같지는 않았다.

관리자들이 밥 먹으로 왔다 갔다 하는데 여기서 설문조사를 받고 있으면 누가 하겠냐고 핀잔을 주던 노동자도 회사에 불만은 있지만 뭘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라고 했다. 요즘 회사 사정도 안 좋아서 내 입장만 주장할 수도 없고, 그저 일 잘하는 성실한 노동자로 인정받아서 안 잘리고 계속 다닐 수 있으면 좋은 거라고 했다. ‘성실’함의 기준은 ‘불만을 말하지 않는 것’이었다.

예상보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임금이 얼마인지 모르고 있었다. 안산역에서 만난 노동자는 ‘임금은 회사가 알아서 주는 거’라고 생각하고 지금까지 살아왔다고 했다. 명세서를 받긴 했는데 한 번도 꼼꼼히 계산해 보지 않았다. 그러다 어느 날 유해수당, 고열수당 등 무슨 명목으로 주는지 모르고 받았던 수당들이 말없이 사라진 것을 보고 궁금증이 생기기 시작했다. 임금은 주는 대로 받는 것이 아니라 생활이 가능할 만큼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받아야 되는 것이고, 액수를 정하는데도 내 의견이 반영되어야 하는 것이라는 우리의 말에 쉽게 동의하지는 않았지만, 이제부턴 주기로 한 금액이 제대로 지급되고 있는지는 잘 살펴볼 것이라고 했다.

최저임금실태조사는 어렵게 마무리 되었다. 저임금의 노동자들은 자신의 임금수준을 드러내는 것이 부담됐고, 설문을 응해준다고 해서 당장 상황이 바뀔 것 같지도 않았다. 바뀔 수 있다는 희망이 필요해 보였다. 상담을 통해 알게 된 M사는 최저임금 위반 사업장이었다. 최저임금이 인상되자 상여금을 12개월로 분할 지급하겠다고 했다. 근로계약서는 교부되지 않았고, 취업규칙은 없었다.

해당 노동자들은 월담과 함께 문제제기를 했고, 결과는 긍정적이었다. 노동조건도 상승했고, 취업규칙도 만들어 졌다. 그러나 이처럼 현장에 긍정적 변화를 끌어낸 사례는 많지가 않다. 이렇게 할 수 있기 까지는 끈질기게 대응한 노동자들이 있었고, 이를 함께 실시간으로 대응책을 논의했던 월담 활동가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최저임금을 올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키게 하는 것도 중요하다. 법제도나 공공기관의 감시감독을 넘어, 노동자들의 직접적인 대응이 필요하지만 실제는 퇴사를 각오해야 한다. 최저임금 인상 이후 임금체계 등 노동조건의 불이익한 변경이 빈번하게 발생했지만, 당사자인 노동자의 의사는 반영되지 않거나 형식적이었다.

이들 노동자들은 의사결정단위에 어떻게 참여하고 대응할 수 있을까. 노조의 영향력이 거의 없는 대부분의 작은 사업장 노동자들은 주체적인 문제해결방식을 상상하기가 어렵다. 노동자 스스로 문제를 해결을 위해서 무엇이 필요하고, 어떻게 싸워야 할까. 현실적 조건을 기준으로 필요한 역할이 무엇인지를 찾아내야 한다. 2018년 최저임금 감시단 활동은 많은 과제를 남겼다. 이 과제들이 유실되지 않도록 2019년의 사업 속에 잘 풀어내 볼 참이다.

글 ㅣ 반월시화공단노동자권리찾기모임 월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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