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수 씨(가명 22세)는 보통의 삶을 꿈꾼다. 남들처럼 평범한 일상을 누리는 것. 하지만 시설퇴소 후 그의 삶은 그리 녹록치 않았다. 다양한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계를 이어가야 했고, 주거지가 안정되지 않아 수시로 짐을 쌌다. 보통의 일상과 멀어지는 불안함에 고민이 깊어질 때 쯤 주거안정 지원사업을 만났다. 현수 씨의 꿈은 다시 생기를 얻게 되었다.

고시원에서 여인숙으로, 자립 이후 혹독했던 일상

시설 퇴소 후 행복했던 순간이 없었어요. 자립하기 위해 많이 노력했지만 생각보다 세상이 혹독하더라고요. 음식점 서빙, 막노동 보조, 에어컨 설치 등 다양한 아르바이트를 했죠. 하지만 성격이 내성적이라며 사흘 만에 해고당하기도 했고, 부당한 계산법으로 급여가 깎이기도 했어요. 답답하고 막막한 시간들이었어요.” 

무엇보다 현수 씨를 힘들게 한 건 주거지 문제였다. 그는 시설퇴소 후 고시원에 머물렀다. 그러나 고시원이 불법 구조물로 폐쇄 명령이 떨어지면서 쫓겨나듯 나와야 했다. 가진 돈으로는 마땅한 곳을 찾기 어려운 상황. 현수씨는 노숙인이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급한 데로 가장 저렴한 여인숙에 들어갔어요. 공동화장실에 샤워를 하려면 3천원을 내야 하는 곳이었죠. 아르바이트를 해서 돈을 벌고 싶었지만 자신감이 떨어져서 인지 잘 풀리지 않았어요. 매일 통장잔고를 확인하면서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가늠하는 게 매일의 일과였지요. 몸과 마음이 지쳐있었지만 친형과 통화하면서 희망을 잃지 말자고 서로를 다독였어요. 포기하지 않으면 언젠가는 좋은 날이 올 거라며 말이죠.”

무엇보다 현수 씨를 힘들게 한 건 주거지 문제였다

무엇보다 현수 씨를 힘들게 한 건 주거지 문제였다

형제를 다시 이어준 주거안정 지원사업

1년 6개월의 혹독한 계절에 지쳐갈 무렵 좋은 소식이 찾아왔다. 주거안정 지원사업 지원대상자로 선정된 것이다. 최종 면접 때 너무 긴장해 떨기만 했는데 보이지 않는 간절함이 통한 것 같아 너무 기뻤다. 혹시 꿈은 아닐까. 현수 씨는 아동자립지원단의 도움으로 보금자리를 구하면서도 몰래 볼을 꼬집어 봤단다. 

다세대 건물의 지하에 보금자리를 구했어요. 당시 여인숙 방세가 조금 밀려있어서 지원금의 일부를 사용한 상태였거든요. 해가 드는 1층이면 더 좋겠지만 방이 2개고 쾌적해서 마음에 들어요. 부엌과 화장실도 깨끗해요. 더 바랄게 없어요.”

현수 씨가 방 2개짜리 집을 고집한데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 형편이 어려워 떠돌이 생활을 하던 형과 함께 살기 위해서다. 형제는 따뜻한 집에서 밥도 지어먹고 이야기도 나누며 더 돈독해졌다. 진로를 상의하며 일자리도 함께 구했다. 의지할 가족과 함께 지내며 생활할 수 있다는 건 현수 씨에게 가장 큰 위로다.

 

지원사업을 통해 지원대상자가 얻은 쾌적한 주거지 사례

지원사업을 통해 지원대상자가 얻은 쾌적한 주거지 사례

주거안정 지원사업으로 바래졌던 꿈이 선명해 지다

형과 함께 택배회사에 출근해서 야간에 물류를 분류하는 아르바이트를 시작했어요. 일주일에 세 번 정도 했는데 요령이 없어서인지 어깨를 다치고 말았어요. 다행스럽게 아동자립지원단에서 도와주셔서 작년에 굴삭기 기사 자격증을 땄어요. 경쟁이 치열한 분야라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하진 못했지만 차차 좋아지리라 생각해요.”

현수씨는 새로운 목표를 정하고 노력하고 있다. 그림을 다시 그리기로 한 것. 그는 청소년기 사생대회에서 큰 상을 받은 경험이 있다. 막연하긴 하지만 포기하지 않으면 재능을 선보일 날이 있다고 믿는다. 훗날 캐릭터를 만드는 회사에 디자이너로 입사하겠다는 포부도 생겼다. 모두 그를 응원해준 사람들 덕분이다.

주거안정 지원사업을 통해 만난 분들이 아니었다면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도, 그림을 다시 시작할 용기도 내지 못했을 거예요. 큰 위로와 응원을 보내주신 아동자립지원단과 아름다운 재단에 감사드려요. 평범한 삶을 살게 된 기회가 주어졌다고 생각해요. 앞으로는 제가 하기 나름이겠죠. 지켜봐 주세요.”

글 l 김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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