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재단은 지역과 사회분야에서 자생적으로 발생하는 이슈와 이에 따른 자발적 움직임이 공익단체 생성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시민참여/소통에 기반한 공정한 국제연대, 지역/시민 자치, 사회를 위한 소수자 운동, 사회를 위한 문화/환경/대안 콘텐츠를 내용으로 하는 단체의 설립 및 초기 활동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공익단체 인큐베이팅 지원사업으로 2012년 AMC 팩토리(3년 지원), 2013년 지리산이음(3년 지원), 2014년 청소년 성소수자 위기지원센터 띵동(3년지원), 2016년 노동예술지원센터 흥(3년차 지원중)를 지원했으며, 2017년 제주다크투어(2년차 지원중), 2018년 발달장애청년허브 사부작 (1년차 지원중)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
서핑족들이 많아 부산에서도 핫하기로 소문났다는 송정해변. 인큐베이팅 네트워크 워크숍 장소가 그 송정해변이라니, 뜨거운 태양 아래 바다를 가로지르며 서핑하는 이들의 멋진 모습을 상상하며 한껏 기대에 부풀었다. 하지만 정작 우리 앞에 펼쳐진 송정해변의 현실은 우산살 뒤집어지는 폭풍우뿐이었다.
지난 5월 27일 아름다운재단 공익단체 인큐베이팅 지원사업을 받은 단체들의 네트워크 워크숍이 열렸다. 이날을 위해 지리산이음, 청소년 성소수자 위기지원센터 띵동(이하 띵동), 노동예술지원센터 흥(이하 흥), 제주다크투어(이하 다크투어), 발달장애청년허브 사부작(이하 사부작)이 억수같이 쏟아지는 빗속을 뚫고 1년여 만에 한자리에 모였다. 올해로 인큐베이팅 지원사업 마지막 3년차를 맞이하는 흥의 초대로 열린 이번 워크숍은 그동안 못 만났던 반가운 얼굴도 만나고, 지난 한 해 단체들이 겪은 고군분투기도 나누는 자리였다. 오랜만에 만나는 만큼 함께하는 야외활동도 한껏 기대했지만, 현실은 펜션 안 방콕이었다. 그래도 흥 이광혁 대표의 “경치 보러 왔나요, 사람 보러 왔죠”라는 말 한마디가 서운한 마음을 달래주었다.
지난해 제주에서 다크투어가 워크숍을 주최한 이후, 꼬박 1년 만에 다시 열린 자리. 그동안 각 단체들은 각자의 지역에서 활동하며 많은 변화를 겪었다. 특히 지원사업이 현재 진행 중인 제주다크투어와 사부작은 단체 설립과 활동의 내실을 다져가며 바쁘게 성장하고 있었고, 올해로 인큐베이팅 지원사업 3년차인 흥은 자립 기반을 만들기 위해 쉴 새 없이 바쁘게 활동하고 있었다. 지난 한 해를 서로 공유하며, 워크숍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제주다크투어 “신입 활동가가 들어왔어요!”
4·3을 비롯한 제주의 역사를 알리고 기억을 공유하는 제주다크투어는 제주를 찾는 국내외 사람들과 함께 4·3 유적지를 방문, 기록하며 알려나가는 작업을 지속하고 있다. 1년 차에 목표로 한 활동들이 빠짐없이 완료되었고, 앞으로도 변함없이 4.3. 강좌, 월간 일일기행 등을 지속적으로 해 나갈 예정이다. 또한 정기후원 회원 확대, 사무국 인원 충원 등 단체로서의 규모도 점점 확대해 나가고 있다. 실제로 올해 다크투어에는 신입활동가가 합류하게 되었는데, 함께 하는 사람이 늘어난 만큼 이를 대하는 백가윤 대표의 각오도 남달랐다.
“신입 활동가 교육을 2주 동안 꼼꼼히 진행했어요. 아직 신생 단체이고 제주 지역이 시민단체를 위한 교육이 활성화되지 않아 쉽지는 않았어요. 그럼에도 타 단체와 연합해서 신입 활동가 교육을 끝까지 잘 마쳤습니다. 들어보니 저희 신입 활동가 교육이 제주 단체들 중에 유일했다고 하더라고요. 아무리 지역에 있다고 하지만, 활동가 역량 강화를 위한 노력도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직원들 건강보험도 철저히 챙기고, 교육기회도 아낌없이 제공하고 있어요. 제주다크투어 활동가가 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한국사회에서 좋은 활동가가 되게 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활동가의 역량을 키울 수 있는 기회를 꾸준히 마련할 거예요.”
활동가 수가 늘어난 데 대한 재정적 부담은 없냐는 질문에 백가윤 대표는 “지난해 워크숍에서 선배 단체 흥이 ‘뽑으면 어떻게든 된다’고 말해줬어요. (웃음) 저는 그 말만 믿고 뽑았는데 어떻게든 잘 되는 것 같아요.” 라며 쿨하게 답했다. 백 대표의 한마디에 모두가 한바탕 웃고 말았지만, 한편으로는 그 조언을 하기까지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었을 선배 단체 흥의 고민과 그 조언을 따른 다크투어의 용기가 새삼 대단하게 느껴진다.
발달장애청년허브 사부작 “성미산에서 끝나지 않을 거예요”
작년 10월부터 인큐베이팅 지원을 받게 된 사부작은 성인이 된 발달장애청년들이 고립되지 않고, 마을에서 같이 살아갈 수 있도록 다양한 활동을 해나가고 있다. 작년 준비기간을 거쳐 올해는 공간 꾸미기, 조직 구성, 자조모임, 코디네이터 시범활동, 장애인식 개선 등을 활발히 진행 중이다. 활동발표에 앞서 사부작의 최경화 대표는 공간 마련 과정에서 겪은 놀라운(!) 경험을 공유해 주었다. 성미산마을을 거점으로 활동하는 사부작의 공간 마련을 위해 마을 사람, 지인들이 십시일반 돈을 모아 보증금 1억을 마련해 준 것. 사부작 구성원이 써준 차용증 하나로 1억을 기꺼이 마련해 준 마을 사람들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사부작에게 무한 지지와 신뢰를 보내는 수많은 이들의 응원이 눈 앞에 선명히 그려졌다.
그렇게 마련된 공간을 터전 삼아 발달장애청년들의 자기결정권 향상을 지원하기 위한 자조모임 활동(댄스파티, 나홀로집에 등), 더 많은 마을 사람들과 청년들을 연결하는 코디네이팅 시범사업(사부작 합창, 사부작 요가, 사부작 공부 회오리 – 발달장애청년들과 함께 마을에서 살아가는 법을 공부하는 모임), 옹호가게(발달장애청년들을 마음 열고 환대하는 가게들을 인증하는 활동)등을 진행하고 있는 사부작.
사부작이 활동하고 있는 성미산마을은 공동체 문화가 튼튼한 지역으로 오래전부터 잘 알려져 있다. 때문에 사부작의 활동이 다른 지역에 비해 비교적 수월하게 진행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사부작은 성미산마을이라는 안정된 울타리 안에 그치지 않고, 성미산을 넘어 1동 1사부작을 만들겠다는 비전을 꿈꾸고 있다. 아직 활동 초기라 큰 목표를 향한 세세한 계획들을 그리기는 어렵지만, 발달장애청년의 삶, 발달장애인가족의 쉼, 마을 사람들을 비롯 우리 사회 구성원들의 성장을 바라며, 지금의 활동을 꾸준히 해 나갈 계획이다.
워크숍에 모인 선배 단체들도 언젠가 1동 1사부작을 만날 날을 고대하며, 앞으로의 자립 모델과 후원회원 확대 등 구체적 고민들에 함께 머리를 모아 주었다. 특히 아직 단체 형태를 결정짓지 못한 사부작을 위해 선배 단체들은 그간의 경험을 스스럼없이 나누어 주었다. 발표 이후 이어진 식사자리에서도 사부작의 고민을 들어주고 생각을 나누는 선배 단체들을 보며, 이날 워크숍 자리의 의미를 한번 더 생각할 수 있었다.
사부작에서 성미산마을 주민들과 함께 만든 ‘운동’ 뮤직비디오
노동예술지원센터 흥 “흥이 정말 많이 바꿨습니다”
흥 구성원들 모두 워크숍이 진행되는 1박2일 동안 무척이나 피곤한 모습이었다. 워크숍 당일까지도 밀려드는 업무를 처리하느라 눈 코 뜰 새 없이 바빴기 때문이다. 올해 이후 인큐베이팅 지원사업이 종료되는 흥은 스스로 자립하기 위해 한창 준비중이었다. 그들은 그런 요즘의 일상을 ‘갈아 넣다’라는 무시무시한 단어로 설명했다.
흥은 ‘딱딱하고 시끄럽게만 여겨지는 집회 문화에 문화예술이 가진 역할을 덧대면 사람들의 이목을 끌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에서 출발했다. ‘흥체크 – 흥발굴 – 흥단련 – 흥폭발 ‘이라는 재미난 이름의 사업 구조 아래, 노동조합 현장에서 함께 할 수 있는 노동자 발굴, 예술가 만나기, 노동요프로젝트(노동자의 일터 기록, 일터 드로잉, 부당알바 알리는 특성화고 학생들의 공연기획 등), 워커스 페스티벌 등을 진행해 왔다. 그러나 2년 동안 쉼 없이 활동해 오던 중, 문득 ‘지금까지의 활동들이 너무 요식적이지는 않았나?’는 성찰이 있었고 처음 세웠던 목적과 비전을 다시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 결과 ‘문화예술로 노동을 브랜딩 한다’는 흥의 미션을 되새기며, ‘나는 노동자야!’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고자 활동을 보다 정교하게 만들어 가고 있다.
‘외주화’로 인해 죽음으로 내몰리는 청년들의 현실을 끝내고자 하는 그들의 이야기로 만든 컴필레이션 앨범 ‘사주화’. 외에 더해진 획 하나가 사를 만드는 점이 아이러니하다.
이러한 뚝심 있는 미션 비전과 창의적이고 기발한 예술이 더해져 부산 지역 노동문화현장에서 흥의 영향력은 점점 더 커져가고 있다. 그런데 이런 흥의 승승장구 활동기를 듣다 보니 궁금증이 생겼다. : 역사가 있는 선배 세대와 노동운동을 매개로 공존하는 현실이 힘들지는 않았을까?
“선배 세대와 갈등이 없었다고 할 수는 없어요. 그러나 흥은 선배 세대가 저희의 활동에 대해 의견을 주시면, 열린 마음으로 토론하며 점차 바꿔 나가고 있습니다. 처음 흥이 ‘신나고 경쾌한 것을 추구하는’ 노동문화를 들고 나왔을 때, 선배 세대가 노동은 ‘비장하고 진지 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어요. 흥은 그런 의견을 가진 선배 세대와 열린 마음을 가지고 기꺼이 토론하고자 했어요. 그런 태도를 보고 선배들도 변화하고 있어요. 그러면서 저희 스스로 배운 것은 ‘우리가 그동안 해왔던 말이 누군가가 오랜 시간 해 왔던 것을 부정하는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구나’였죠. 그래서 지금은 ‘기존의 노동문화를 존중하며, 흥이 하고자 하는 것은 노동 문화 안에 다양함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로 말하고 있어요. 이러한 노력들이 쌓여 이제는 선배 세대들이 먼저 함께 하자고 제안해주세요. ‘나 때는 말이야’라고 굳이 말씀하시는 분들이 없어지게 된 거죠.”
선배 세대가 오랜 시간 쌓아온 노동운동의 진중함과 흥이 가진 예술가적 기질이 결합되어 부산 내 노동문화에는 점차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그리고 이 변화는 점점 지역을 넘어 확대될 것 같다. 흥의 소문을 듣고 찾아오는 타 지역 단체들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아름다운재단의 인큐베이팅 지원은 올해로 종료가 되지만, 흥이 만들어 가고 있는 크고 작은 변화는 앞으로도 멈추지 않을 것이다. 아름다운재단도 흥이 어느 현장에 있든 처음 만났던 그때의 마음으로 계속해서 응원해 나갈 것을 약속했다.
지리산이음, 청소년 성소수자 위기지원센터 띵동 : 늘 변함없이 함께 해요!
인큐베이팅 지원사업이 끝났지만, 의리(!) 있는 선배의 마음으로 워크숍에 참석해 준 지리산이음과 띵동. 지리산이음은 지원사업 이후에도 아름다운재단과 지속적으로 관계를 이어가 현재 지리산 5개시군의 공익활동을 지원하는 ‘지리산작은변화지원센터’를 운영 중이다. 위기 상황에 놓인 청소년 성소수자를 상담하고 지원하는 ‘청소년 성소수자 위기지원센터 띵동’은 청소년 성소수자에게 단 하루라도 편안하게 쉼을 제공할 수 있는 공간만들기 등 현재 활발히 단체의 활동을 지속해 나가면서, 아름다운재단과는 인큐베이팅 지원사업을 정리하는 총서를 만드는 중이다. 지리산이음에 이어 두번째로 발간되는 이 총서에는 띵동의 시작과 성장, 지금과 미래가 담길 예정이다. 이 총서는 올해 하반기에 만나볼 수 있다.
1년간 못다 한 이야기를 나누기에도 턱없이 짧았던 1박2일의 시간. 짧은 시간이지만 다섯 단체 모두 각자의 성장과 발전, 실패와 고민을 솔직하게 나누는 모습을 보며, 이 자리의 소중함을 다시금 깨달았다. 피상적 만남을 위한 워크숍이 아니라, 존재로서 서로에게 힘이 되고 또 힘을 받는 인큐베이팅 네트워크 워크숍. 만남 그 자체만으로 큰 힘이 되는 존재들이 있어 감사하고 풍족한 1박 2일이었다. 앞으로 더 늘어날 인큐베이팅 지원단체들과 함께 만들어 나갈 만남의 시간들이 지금과 같이 이어져 가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