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밖 청소년, 거리청소년, 사각지대 청소년……. 

학교와 가정의 손길에서 벗어나 거리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며 방황하는 청소년을 가리키는 단어들이다. 무조건 ‘비행청소년’, ‘불량청소년’이라 칭하던 예전에 비하면 많이 순화되었지만, 아이들이 처해 있는 불안정하고 혼란스러운 상황만큼이나 여전히 낯설게 들린다. 그만큼 이 아이들을 향한 우리의 관심이 아직은 부족하단 얘기다. 

아름다운재단이 올해부터 이런 사각지대 청소년들을 지원하는 단체들에게 힘을 보탠다. 연간 3천만원의 사업비를 최대 3년까지 지원하는 ‘사각지대 청소년 단체지원사업’을 시작한 것. 그 첫삽으로 올해 거리청소년을 대상으로 사업을 진행하는 두 개 단체를 선정했다. 

‘캠핑카 이동상담소 사업’으로 그 주인공이 된 한빛청소년대안센터(이하 센터) 최연수 센터장을 만났다.

한빛청소년대안센터 최연수 센터장

 

송파구에서 거리 청소년들을 돕는 사업만 20여년, 송파구 터줏대감인 최 센터장은 청소년 지원 사업계의 베테랑이자 유명인사다. 언론 인터뷰와 각종 자문도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이 했다. 그런데 스스로 ‘학교 밖 선생님’을 자처하며 아이들에게 다가가는 최 센터장의 신념은 이십 여 년 전 첫마음 그대로인 듯 했다.

인터뷰 당일 아침 여덟시 반에도 최 센터장은 전화 한 통을 받았다고 한다. 캠핑카 상담소를 통해 센터와 인연을 맺은 고교생이 부모와의 불화로 갈 곳도 없고 속상해하며 울면서 전화를 한 것이다. 아이를 불러 밥을 먹이고 얘기를 들어주는 것은 당연한 수순. 집에서 쫓겨나 갈 곳이 없을 때 생각나는 전화번호, 최 센터장은 송파구 거리 청소년에게 그런 사람이다.

오랜 세월 거리청소년과 함께 해 온 최 센터장이 캠핑카 이동상담소를 시작하게 된 계기를 물었다. “오 년 전, 검정고시 시험을 마친 아이들의 소원풀이를 위해 캠핑카 대여를 후원받아 여행을 떠난 게 발단”이었단다. “행복해하는 아이들을 보며 뿌듯했고, 여행을 마친 후 캠핑카 한 대의 반납을 하루 미루고 당시 매주 토요일 진행하던 야간 거리 상담에 활용했더니 거리상담소를 찾는 아이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더라고요.” 캠핑카 효과였다.

그때부터 ‘캠핑카 이동상담소 사업’ 계획을 세우고 여러 군데 문을 두드렸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았다. 오랜 노력을 거쳐 드디어 지난해 모 대기업의 특장차 지원에 선정되고 모금도 받았다. 자원봉사 모집 광고를 보고 많은 지역주민들이 찾아왔다. 그 중 60명을 교육시켜 하반기부터 ‘찾아가는 캠핑카’가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할 수 있었다.

찾아가는 캠핑카, 찾아오는 아이들 

‘캠핑카 이동상담소’는 말그대로 캠핑카 내부를 상담소로 꾸며, 송파구 거리 청소년들이 많이 모이는 거여, 마천, 문정, 오금 등의 거점을 매주 일정 시간 찾아가 청소년들을 상담하고 필요한 것들도 나누는 사업이다.

캠핑카 이동상담소는 매주 요일별로 문정공원, 마천역, 목련공원, 오금공원, 거여공원, 성내천 등에서 거리청소년을 만난다.

 

‘상담소’에 거부감과 거리감을 느끼는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저녁때면 아이들이 모일만한 지역 내 공원 등지에 캠핑카가 거리청소년에게 직접 찾아가는 것이다. TV, 영화에서나 보던 캠핑카를 아이들은 신기해한다. 그리고 빵, 떡, 우유 등의 먹을거리와 행동심리분석, 꿈설계 등의 심리상담 프로그램은 아이들과의 거리를 좁힌다.

그렇지만 ‘강요’는 없다. 캠핑카를 통해 지속적으로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꾸준히 아이들을 만나면서 결국 아이들이 스스로 달라져야겠다는 마음을 갖고 찾아오도록 한다.

아이들은 경계심이 많다. 특히 학교나 가정에서 불화를 겪고 튕겨져 나온 아이들은 더욱 그렇다. 최연수 센터장은 “우리가 아이들을 관찰하는 시간보다 아이들이 우리를 지켜보는 시간이 더 길다”고 했다. “어떤 사람들일까, 혹시 우리를 이용하려는 건 아닐까, 의심을 품은 채 오히려 어떻게 하는지 오랫동안 지켜보고 나서야 마음을 엽니다, 그렇게 와야 자립의지가 오래 갑니다.”라는 것이다.

“청소년 사업은 버티는 게 일”이라는 그의 설명처럼, 거리청소년을 돌보는 것은 오랜 시간에 걸쳐 아주 조금씩 성과가 나타나는 지루한 싸움이다. 그래도 성과는 있다. “캠핑카 이동상담소를 본격적으로 운영한 것은 작년 하반기부터인데도, 벌써 네 명의 아이들이 이를 통해 ‘사랑의 학교’에 입교했어요. ”최 센터장은 다소 뿌듯해하며 전한다. 센터가 운영하는 사랑의 학교는 아이들이 스스로 인생설계도 하고 학습계획도 세워서 검정고시를 준비하는 미인가 학교다. 스스로 거리를 벗어나 꿈을 찾으려는 의지를 가진 아이들이 자립을 준비하는 코스다. 캠핑카가 꾸준히 아이들을 찾아가는 일이 자발적인 학습의지까지 이끌어낸 소중한 결과다.

아름다운재단의 지원이 이런 캠핑카 사업에 구체적으로 어떤 보탬이 될까.

최 센터장은, “정부지원 사업은 인건비를 산정해주지 않고 아이들에게 나눠주는 물품 등에만 지원을 한정하는 한계가 있었는데, 아름다운재단은 이번에 인건비 지원을 허용해 준 덕분에 캠핑카 이동상담소를 운영할 전담자를 선정할 수 있었다”며 이번 재단 지원사업은 단순한 금액을 넘어서 큰 의미가 있다고 했다. 자원봉사자들만으로 꾸려가는 것은 지속성과 안정성 면에서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그는 “이런 파격적인 지원 덕분에 더욱 안정적이고 통합적인 서비스가 가능해졌다”며 “재단 지원으로 합류하게 된 한희규 상담사가 캠핑카 운영을 도맡아줘서 얼마나 든든한지 모른다.”고 덧붙였다. 

캠핑카 이동상담소 최연수 센터장(좌)과 한희규 사업담당자(우)

 

마을학교는 캠핑카를 타고

캠핑카 이동상담소가 향하는 최종 목적지가 어디인지 물었다.  

“궁극적인 목표는 사각지대 청소년이었던 지역 아이들이 지역 내에서, 지역의 자원을 통해서 자립하는 것입니다. 아이들이 성인이 되어 훌륭한 지역주민으로 자리매김하고 좋은 부모가 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거리 밖에서 헤매는 청소년에게 단기적 쉼터를 제공하거나 아이들 고민을 들어주는데 그칠 것이 아니라, 지속적인 관심과 손길을 통해 아이들이 자립할 수 있는 힘을 길러주어 지역 사회에서 밀려나지 않고 지역주민으로서 당당히 살아가도록 해야 한다는 게 최 센터장의 얘기다.

그러기 위해서는 학교 선생님과 부모의 역할 외에도 학교 밖 지역공동체의 ‘마을 선생님’이 필요하다. 마을학교와 마을 선생님은 거리청소년들을 위한 마을 내 지지망을 만드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고 최 센터장은 설명했다. ‘한 아이를 키우는 데는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얘기가 생각난다.

올해는 그에게 더욱 바쁜 한 해가 될 것 같다. 캠핑카 이동상담소의 사업이 확장되고 역할도 더욱 커질 전망이다.  

캠핑카 이동상담소는 송파구 내에서는 물론이고, 전국 언론에도 많이 다뤄져 이젠 청소년 지원 사업계의 명물이 됐다. 지난해 송파구 단오제에서도 단연 인기를 끌었고, 이를 계기로 올해부터 독립부서가 된 구청 청소년과의 지원도 확대됐다. 최 센터장은 “올해 6월부터 송파구의 지원으로 캠핑카는 송파구 공원 내의 부지로 진입이 가능해졌고, 그에 따라 보드게임, 영화관람 등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아이들은 물론 지역 주민들과도 만날 수 있게 됐다”며 “캠핑카가 일종의 마을학교로 확대할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기는 것”이라고 했다.

아름다운재단의 사각지대 청소년 단체지원사업의 첫 지원단체일 뿐만 아니라 지방자치단체, 민간기업, 지역주민들과 자원봉사자들의 후원과 지지를 한몸에 받고 있는 한빛청소년대안센터의 캠핑카 이동상담소. 앞으로 더 많은 거리청소년들을 감싸 안고 마을학교로 거듭 날 캠핑카 이동상담소의 활약이 기대된다. 

한빛청소년대안센터 캠핑카 이동상담소 활동 보러가기

글. 김민경 | 사진. 김윤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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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재단 [꿈꾸는 다음세대] 영역의 단체지원사업의 일환으로, 거리청소년 아웃리치 및 지원이 가능하고 지역 네트워크를 활용하는 단체를 지원함으로써 거리청소년들이 지역 안에서 생활하고 보호받을수 있는 안전망을 제공합니다. 한편 기존의 사후적이고 단편적인 지원에서 벗어나 청소년의 특성과 욕구를 고려한 예방적, 통합적 서비스를 제공하여 다양한 거리청소년 지원모델을 개발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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