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을 띄우는 이유 – “무슨 일하세요?”

이 질문에 ‘재단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라고 짧게 답하기에 뭔가 부족하다. 내가 일하고 있는 일이 흔히 ‘재단’이란 조직을 떠올렸을 때 생각하는 일과는 결이 조금 다르기 때문이다. 아름다운재단 지역사업팀은 재단 바깥에서도, 심지어 내부에서도 아직 잘 알려지지 않은 사업을 하고 있다. 그래서 내 일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꽤나 긴 부연설명이 필요하다.

공식적으로 지역사업팀의 목적은 지역시민사회단체와 공익활동가의 역량강화 및 활동 기반 지원인데, 쉽게 풀자면 지역 시민사회가 지역 문제를 스스로 발굴하고 해결할 수 있는 힘을 기르는 것을 목적으로 하며, 그 방법으로는 지역 시민사회 활동을 지원한다.

2016년 지역 시민사회 자원을 조사하는 ‘지역조사 사업’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으며 현재는 지리산 작은변화지원센터 지원, 활동가역량강화지원사업(활동가이야기주간), 공익활동가해외연수&쉼지원사업 등을 활발히 진행하고 있다. 이외에도 아직 외부로 알려지지 않은 사업도 여럿 준비 중이다.

지역사업팀으로 꾸려져 본격적으로 업무를 시작한 지는 올해가 첫 해다. 그러다 보니 재단 내부에서도 이런 평가를 종종 듣게 된다.

“지역사업팀이 무슨 일 하는지 모르겠어요.”

'아'라는 글자와 좌절하는 사람 표정‘무슨 일하세요?’라는 질문만큼이나 난감한 질문이지만, 당연한 반응이다. 구체적인 업무를 떠나 ‘지역’에 대한 감각이 수도권에서 일과 삶을 일구는 이들에게 낯설 수 있으니 말이다. 글이나 영상을 통해 지역 사회를 간접적으로 익히는 것에도 한계가 있다. 그러니 같은 재단에서 일하는 동료라 할지라도 지역사업팀이 도대체 누구를 만나 무엇을 하는지 알 수 없는 기분이 드는 건, 서울과 지역이 물리적으로 떨어져 있는 것 만큼이나 당연하다.

그래서 오늘은 그 거리를 조금이나마 좁혀 보고자 지역사업팀이 지역에서 만나는 활동, 그중에서도 ‘활동가의 고민’을 들려 드리고자 한다. 현장에서 뛰는 지역 활동가의 고민 속에서 지역사업팀이 만나는 현장과 활동가들이 누구인지 , 그래서 지역에서 활동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지 눈여겨 살펴봐 주길 바란다.

지역에서 활동한다는 것 – “이래서 안 돼, 저래서 안 돼!”

지역 활동이 만나는 숱한 장애물 중, 단연 으뜸은 바로 ‘여자라서 안돼, 어려서 안돼’일 것이다. 모든 지역이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보수적 분위기가 압도적인 몇몇 곳에서는 여전히 어리고 여성인 활동가가 자리 잡기 힘들다.

시민사회로 바라보면 규모의 차이가 만드는 장애물도 있다. 단체나 조직의 활동 연차에 따라 인원, 자원 규모에서 차이가 크다. 그렇게 되면 새롭게 등장하는 작은 활동 조직은 큰 조직에 밀려 시민사회에 뿌리 내리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얼마 안되는 사람으로 지역 내에서 활동하게 되면 자연히 크고 활동이 활발한 곳으로 대부분의 사람이 빨려 들어가게 되고, 작지만 새롭게 시작 해보려는 활동 주체는 큰 활동의 기세에 눌려 제대로 시도도 못해 본 채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이러면 시민사회의 ‘전반적인 성장’은 어려워질 수 밖에 없다.


“지역에서 활동하다 보면 ‘젊은 사람, 잘하는 사람이 해야지’ 라는 말로 무턱대고 일이 올 때가 있어요. 기존 활동 세대들이 배경이 돼줘야 하는데, 그런 역할은 아쉬운데 일은 또 일대로 주니까. 그렇다고 그 좁은 지역 사회에서 척을 질 수도 없잖아요. 새롭게 시작하려는 활동 단체들과 이런 기존 활동 단체들 사이에서 제가 중간자 역할을 해야하는데 참 어려워요”

지난 달 지역 현장에서 만난 활동가 A씨는 이런 현실에 꽤 지친 모습이었다. 새롭게 시작하려는 활동에는 활기와 기회를 불러 일으키고, 기존 활동과는 네트워크를 만들어 지역 시민사회 성장을 만들어 보겠다는 큰 포부가 있었지만, 반복되는 좌절이 그를 지치게 만든 것이다. 그 자리에서 나와 함께 이야기를 듣던 타 지역 활동가 B,C,D도 A의 고민에 시원한 해답을 주지는 못했다. 아무리 열심히 노력한다고 해서 한 번에 타개할 수는 없는 현실의 장벽을 그들도 모르지 않기 때문이다. 각자의 경험에서 시도했던 나름의 노력 방법을 건네며 ‘할 수 있다’는 위로를 전했지만, 지역 활동가 A씨가 만난 크고 묵직한 현실이 언제 바뀔지는 기다려 봐야 알 것이다.

바빠도 너무 바빠서 문제

지역활동가 B씨는 동네 공간을 구심점 삼아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지역 곳곳에 있는 사람과 활동들이 지역 공간을 중심으로 이어지면서, 소셜다이닝이나 마을포럼, 생활밀착형 강좌 중심 소모임 등이 날로 늘어간다. 하지만 지역에 활기가 넘쳐나면 넘쳐날 수록, 활동가 B씨의 일상은 넘쳐나는 스케줄로 쉴 새가 없다. 지역 활동간 연결체가 되기 위해서는 사람도 만나고, 활동 단체들이 여는 행사에도 빠짐없이 얼굴을 내비쳐야 한다.  그는 이렇게 바빠진 자신의 일상 때문에 고민이 크다. 혹시나 연결될 수 있었던 활동과 사람들이 바쁜 자신 탓에 연결의 기회를 놓치는 건 아닌지 마음이 쓰인다.

“지역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이 ‘같이 하자, 도와줄 수 있겠느냐?’ 말하고 싶어도 늘 제가 바빠 보여서 눈치 보여 말을 못하고 있는 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널널해 보여야 사람들도 편하게 다가올텐데 그리 보이지 않는 것 같아 고민이에요.”

몸은 한 개인데 자신의 역할을 필요로 하는 지역 단체와 사람들은 늘어나는 현실에서 같이 할 수 있는 사람들을 조직화하는 방법을 자연스레 고민하게 된다. 하지만 그런 사람을 만들기 위해서조차 품과 시간을 들여야 하니,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 모를 일이다.

이 이야기를 듣던 타 지역활동가 C씨도 비슷한 고민을 토로한다.

“지역 활동들이 이미 꾸려진 지역과는 달리 저희 지역은 제가 일일이 나서서 기획하고 판을 펼쳐야 해요. 활동들이 주도적으로 나서기는 아직 어려운 현실이죠. 그래서 제가 애를 써야만 활동들이 생기고, 그러다보니 얼마 안 가 에너지가 곧 바닥 나더라구요. 낮에는 최대한 활동하고 밤에는 먹고 사는 일을 하고, 주말에는 여러 모임 행사 참여하고. 밤낮 없이 돌아다니며 활동하는 게 재밌다고는 하지만 벅차다는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이에요. 다행히 올해 지역 청년 한 명을 만나 힘을 좀 나눴지만, 적어도 3-5명은 있어야 지역 활동을 지속적으로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런데 그런 인연을 만나려고 해도 여유가 있어야 하는데, 그런 여유가 좀처럼 나지를 않네요”

동료를 찾는 게 수도권이라고 쉬운 것은 아니다. 하지만 지역은 인구가 적고 수도권에 비해 다양한 세대가 섞여 있지 않아 동료찾기가 훨씬 더 어려운 게 사실이다. 마음 맞는 동료를 찾아 활동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지만, 한정된 인적 자원 속에서, 그리고 바쁘게 돌아가는 활동가의 일상 속에서 동료를 찾는 것조차 버거운 게 현실이다.

또 다른 ‘세력’으로 보는 불편한 시선

활동이 만들어 낸 변화의 파장을 지역에서 확인하는 건 어렵지 않다. 시의회 모니터링과 지역 활동가들의 느슨한 모임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는 활동가 D씨는 지역에서 일어나고 있는 변화를 톡톡히 체감하고 있다. ‘변화를 만들어 보자’는 그의 말에 공감한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등장했고, 지금은 꽤 큰 규모의 네트워킹이 지속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시민 모니터링 활동의 영향으로 시의회의 시정도 조금씩 변화를 보이고 있다. 또 흩어져 있던 활동 단체들은 모임을 구심점 삼아 각자의 성장 동력을 스스로 키워가고 있다. 하지만 날로 규모가 커지고 활동도 확장되는 만큼 그들의 활동을 바라보는 외부 시선도 점점 많아진다.

“시의정 모니터링을 하고 있지만 밖으로 활동을 알리는 일은 소홀해 지는 것 같아요. ‘쟤네가 또 다른 세력이 되려는 건 아니야?’ 라는 사람들의 시선을 무시하기가 힘들더라고요. 그래서 활동 자체에는 집중하고 있지만, 더 많은 사람들에게 활동을 소개하는 일은 잘 하지 못하고 있어요. 비슷하게는 함께 하는 사람들을 모을 때도 조심스럽게 되더라고요. 이전에 활동했던 단체 출신 사람들이 저와 함께 활동하고 있는데, 밖에서 보면 다 ‘그 단체 사람들이 다 한다’는 느낌을 갖게 되는 것 같아요. 이런 점에서는 고민이 들긴 하지만, 신경 안쓰고 재밌게 하려고 노력은 하고 있어요.”

아무리 다수가 만든 네트워크 활동이라도 그 안에서 주도적으로 움직이는 몇 명이 생기기 마련이다. 역동적 활동이 손 놓고 지켜본다고 뚝딱 생기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네트워크 안에서 주도적으로 움직이는 소수는, 나머지 다수가 자신의 활동을 어떻게 생각할지, 혹시 활동에서 배제된다고 느끼는 것은 아닌지 종종 고민하게 된다. 그런 고민과 외부의 시선이 쌓이고 쌓이다 보면 활동은 경직되고 부자연스러워진다. 활동가 D씨가 말한 ‘대표로서 활동을 밖에 소개하지 못하겠다’는 부담감이 바로 그런 점이다.

사회생활에서 남의 시선 아랑곳 없이 산다는 건 어느 누구에게나 쉽지 않다. 그건 도시든 지역이든 크게 다를 게 없다. 하지만 활동이 일어나는 ‘공간’으로서 지역 자체가 갖는 의미가 더욱 무겁기 때문에 지역 활동가들은 활동 반경 내에서 척을 지거나 불편한 관계를 만드는 일에 더욱 예민하다. 좁은 관계망 안에서 서로의 이해와 시선을 살피지 않으면, 활동 자체가 어려운 상황에 놓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도시와 지역을 떠나 동료로 만나기 – “사람 사는 게 어디나 똑같듯이”

이외에도 현장에서 만난 지역 활동의 어려움은 꽤 많이 있다. 지도에서 쓱 보고는 ‘옆동네니까 가깝잖아, 한 번 같이 활동해 보면 어때?’ 라고 가볍게 제안하지만, 지역에 따라 옆 동네가 그 ‘옆’동네가 아니기도 하다. 아무리 같은 권역에 있다 하더라도 지역의 특색, 물리적 거리 등을 고려하면 지역 간 연대는 결코 쉽지 않다.

청년이나 청소년을 중심으로 활동을 꾸려 볼라치면 없는 인구를 쥐어 짜내야만 가능하다. 아름다운재단이 첫 지역사업 근거지로 삼은 지리산 5개시군만 하더라도 청년(평균 41.3세)인구가 전체의 28%를 차지한다지만, 실제 지역 시민사회에서 활동하는 청년의 수는 소수에 불과하다. 때문에 청년, 청소년 의제는 지역 사회를 구성하는 중요 논의이긴 하지만 이를 주도적으로 이끌 당사자의 목소리가 산발적으로 흩어져 있고, 그 수도 적어 힘을 갖기가 충분치 않다.

이처럼 지역 활동 현장에서 겪는 고민은 가지각색이다. 그러나 한 가지 중요한 것은 그 고민이 도시의 고민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이다. 시민사회 활동이 당면한 여러가지 고민들이 지역이라고 크게 다르게 전개되지는 않는다. 활동가 정체성이 활동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점, 동료를 만들기 쉽지 않다는 점, 활동가 몇몇에게 일이 몰린다는 점, 조직화 되는 활동에 대해 외부 시선이 곱지 않다는 점 등 도시와 지역을 가르지 않아도 시민사회 활동 어디서든 목격할 수 있는 고민들이다.

그러니 도시와 지역을 일부러 구분 지을 필요는 없다. 오히려 시민사회 안에서 함께 하는 동료로서 지역의 활동을 바라본다면, 어렵지 않게 지역을 이해할 수 있다. 서로가 서로를 향해 다가와야만 물리적, 심리적 거리를 좁힐 수 있다. 단숨에 몇 백 km의 거리를 뛰어 넘을 순 없겠지만 작은 걸음으로 서서히 서로에게 다가가 보자. 그 걸음이 모여 더 나은 사회를 위한 작은 변화로 가는 길을 만들어 낼 지도 모르니.

그림 ㅣ 아름다운재단 지역사업팀 최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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