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혁명 이후 시민들의 정치와 민주주의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고, ‘일상의 민주주의’ 담론이 확대되었습니다. 시민들은 정치에 관심을 가지고, 자신의 삶을 정치와 연결 지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시민들은 더 이상 일종의 전문가집단인 시민단체를 경유하지 않고, 직접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움직이고 있습니다. 이런 배경에서 한국 시민사회와 아름다운재단의 역할은 무엇일까요? 아름다운재단은 시민들과 함께 우리 사회의 변화를 만들기 위해 새로운 역할과 방식을 모색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협력사업팀은 그 힌트를 얻기 위해 지난 7월 영국 런던으로 출장을 다녀왔습니다. 영국의 비영리기관들을 방문하여 시민교육, 시민참여의 전략과 사례, 재단의 역할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아름다운재단이 시민들의 참여와 권한을 강화하기 위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생각해볼 수 있는 귀한 시간이었습니다. 영국 8개 기관의 사례를 소개합니다. |
풀뿌리 연대의 시작
시티즌즈 유케이(Citizens UK)는 전국 450여개 풀뿌리단체의 연합조직이다.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으로 소외되고 배제된 사람들이 정치적 의사결정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도록 지역사회 조직화를 지원하기 위해 1989년 설립되었다. 회원단체들과 지역이나 전국의 사회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캠페인을 진행하고, 지역사회 리더를 양성하기 위한 교육과 훈련 과정을 제공한다.
시티즌즈 유케이의 대표적인 캠페인은 생활임금 캠페인(Living Wage)이다. 2001년 카나리 워프(Canary Wharf) 지역을 기반으로 노동자들이 기본적인 생활양식을 영위할 수 있도록 더 높은 임금을 요구하는 캠페인을 시작했고, 일련의 성과를 거두며 전국으로 확대되었다. 단체는 2011년 생활임금재단(Living Wage Foundation)을 설립하고 매년 런던 생활임금과 런던 외 생활임금을 매년 고지하고 있다. 이외에도 정신건강, 난민재정착, 주거와 홈리스, 증오범죄, 이주민과 포용 등을 주제로 전국 단위의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생활임금 캠페인이 성공하자 풀뿌리단체의 회원가입 문의가 쇄도했다. 이를 계기로 조직이 확대되었다. 시티즌즈 유케이는 런던 4개 지부를 포함하여 전국 15개 지부를 운영하고 있다. 활동가는 ‘커뮤니티 오거나이저(community organizer)’로 불리며 런던 17명, 전국 30명이 근무하고 있다. 한 명의 활동가가 25개 내외 회원단체를 담당한다(파트타임 활동가는 10개 담당).
재원의 마련은 전국 캠페인을 진행하는 경우에는 외부 펀딩을 받지만, 기본적으로 회비수입으로 충당한다. 한 단체 당 연회비는 2,000파운드(약 300만원)인데, 단체 재정에 따라 700파운드(약 100만원)를 내는 곳도 있고 수만 파운드를 내는 곳도 있다. 그러나 450개 회원단체 중에서 회비를 내지 않는 한 곳도 없다. 회비를 내는 것은 동등한 자격으로 협상테이블에 참석할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평범한 사람들이 만드는 변화
시티즌즈 유케이는 평범한 사람들이 변화를 만들 수 있도록 지원한다. 활동가들은 학교, 종교단체(교회, 모스크 등), 시민단체 등 회원단체를 방문하여 사람들을 만나고, 대화를 나누고, 이들의 욕구나 필요를 파악한다. 사람들의 욕구나 필요를 모아 ‘우리의 문제’로 전환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회의를 조직하기도 한다. 활동가는 촉진자(facilitators)로서 사람들이 문제의 핵심이 무엇인지, 활동의 성과와 한계가 무엇인지 생각해볼 수 있도록 돕는다.
북부 런던에서 진행한 캠페인은 평범한 사람들이 지역사회의 변화를 이끌어낸 성공사례 중 하나이다. 이 지역의 학생들은 등하교시 시내버스 때문에 자주 학교에 지각하는 것에 불만이었다. 활동가는 교내 공청회를 열고, 이 문제에 관심을 보이는 학생들을 모았다. 학생들이 조사해보니 등하교 시간에 많은 승객을 태우지 못하는 미니버스 2대를 배차한 것이 원인이었다. 학생들은 버스회사를 상대로 서명운동을 벌이고 시정을 요구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최종적인 의사결정권은 정부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학생들은 관련 부처에 영상편지를 보내고 직접 찾아가기도 했다. 잠옷을 입고 테디베어 인형을 들고 비폭력시위를 벌였다. 이에 정부는 학생들의 요구를 수용했다.
시티즌즈 유케이는 사람들이 경험과 학습을 통해 활동가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다. 사람들은 활동 과정 속에서 스스로 임파워먼트(empowerment)하고, 시티즌즈 유케이가 제공하는 교육에 참여하기도 한다. 참여자들은 시티즌즈 유케이의 비전과 가치, 협력과 연대의 중요성, 커뮤니티 오거나이징 기술 등을 학습한다. 현재 37명의 활동가 중에서 20명이 회원단체 출신이다. 이들은 커뮤니티 오거나이저로 성장하여 전국 방방곡곡에서 사람들을 돕고 있다.
협력과 연대의 구조
자체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단체들은 우리의 회원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여럿이 함께 힘을 모으면 더 큰 힘이 만들 수 있다고 믿는 단체들이 우리의 회원이 된다. – 폴(시티즌즈 유케이 커뮤니티 오거나이저)
시티즌즈 유케이가 사람들과 일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원칙은 ‘협력과 연대’이다. 한 명, 한 명은 힘이 없지만 집단을 이루면 힘이 생긴다. 평범한 사람들이 정부나 지자체 등과의 협상력을 가지려면 협력하고 연대해야 한다. 이것이 풀뿌리단체들이 연회비를 내면서까지 시티즌즈 유케이의 회원이 되려는 이유이다.
시티즌즈 유케이는 지역마다(자치구보다 범위가 크다) 리더십팀을 운영한다. 지역마다 7-8개 회원단체가 있는데, 이들을 모아 하나의 팀을 구성한다. 같은 지역에 기반을 두고 있는 단체들은 욕구나 필요가 비슷한 경우가 많은데, 리더십팀의 정기적인 회의를 통해 이를 파악하고, 공동으로 대응하기도 한다. 리더십팀은 시, 도 전국 단위별로 피라미드처럼 구조화되어 있다.
이런 협력과 연대의 구조를 활용하여 전국 단위의 캠페인을 런칭하기도 한다. 정치적으로 중요한 시기에는 아래에서부터 사람들의 의견을 수렴한다(bottom-up). 시, 도, 전국 단위별로 사람들의 의견을 모으고, 투표를 통해 우선순위를 정하는 과정을 반복한다. 이를 통해 전국 수준에서 다루어야 하는 의제들을 정한다.
중요한 점은 연대체의 다양성을 유지하는 것이다. 시티즌즈 유케이는 구성원들의 다양성이 연대체에 강력한 힘을 만든다고 믿는다. 예를 들면 활동가는 학교, 교회, 모스크가 공동으로 캠페인을 진행할 수 있도록 돕는다. 정부나 지자체와 협상할 때는 학교 교장, 교회 목사, 모스크 이맘 등 지역 리더들과 함께 간다. 정책결정자는 이들의 뒤에 있는 수많은 유권자들을 떠올리기 때문에 사람들의 요구를 들을 수밖에 없다.
<참고자료>
- Citizens UK 홈페이지 https://www.citizensuk.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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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아름다운재단 허그림 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