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재단 <아동‧청소년문화지원사업 – 문화와 룰루랄라>는 문화 소외지역의 저소득가정 아동‧청소년들이 문화를 향유하고, 창작과 공유를 통해 문화감수성과 공동체성을 함양할 수 있도록 지원합니다. 2019년에는 아동복지시설 35개소를 선정, 문화프로젝트를 추진하는데 필요한 활동비를 제공했습니다. 텃밭 가꾸기를 통해 더불어 사는 법을 배우는 대전 소망지역아동센터 친구들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씨앗이 토끼 똥 같아요!

시금치 씨앗을 두 손 가득 받은 박세은 양이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세은 양은 토끼 똥보다도 작은 씨앗에서 어떻게 큰 시금치가 나오는지 신기하다며 웃었다. 열세 명의 아이들은 씨앗을 손에 쥔 채 김은주 강사(대전농업기술센터)만 바라봤다. “흩어 뿌리세요”라는 말이 나오기 무섭게 신나게 흙 위에 씨앗을 뿌린다. 흙을 만진 아이들 손이 하나같이 새까맣다. 아이들이 배추와 갓, 시금치, 쪽파를 심은 화분은 시원하게 비를 맞았다. 이날 대전 소망지역아동센터의 가을 농사는 김은주 강사의 멘토링으로 성공적으로 마무리됐다.

텃밭 상자를 앞에 놓고 둘러 선 아이들과 설명하는 선생님

소망지역아동센터 친구들의 텃밭 가꾸기 활동

김판겸 시설장(소망지역아동센터)은 올봄에도 아이들과 옥상 텃밭을 했지만, 어려움이 많았다고 한다. 선생님들도 농사하는 법을 잘 몰랐기 때문이다. 가을에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아름다운재단 <아동청소년 문화지원사업 – 문화와 룰루라라>에 전문가 멘토링을 신청했다.

농사도 기술이 많이 필요하더라고요. 선생님들이 전문가가 아니니까 아이들하고 같이 시행착오를 겪을 수밖에 없었어요. 올봄에도 배추를 심었는데 도통 자라질 않더라고요. 알고 보니까 모종을 너무 많이 심었대요. 멘토링을 통해 우리가 모르던 걸 배울 수 있어 큰 도움이 됐어요.

"건강텃밭"이란 푯말이 꽂힌 텃밭 상자

“쑥쑥 자라서 죽지 말고 살아야 돼, 죽으면 슬퍼 ㅠㅠ”

아이들의 새로운 모습을 끌어낸 멘토링

멘토링을 통해 얻은 의외의 소득은 아이들의 적극성을 발견한 것이다. 김영미 선생님(소망지역아동센터)은 흙을 거부감 없이 만지는 아이들의 모습이 새로웠다고 말했다. 교실 안에서는 무얼 만지든 더럽다고 싫어했기 때문이다. 이런 변화를 끌어 낸 배경에는 전문 멘토 김은주 강사의 숨은 노력이 있었다. 그녀는 2시간 전부터 미리 와서 아이들과 소통하는 시간을 가졌다.

또, 아이들에게 각자의 텃밭을 배당해주고, 이름표를 정성스럽게 만들도록 해 애정과 책임감이 생기도록 했다. 아이들은 텃밭 이름을 스스로 짓고, 강아지나 로봇 등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을 이름표에 그려 넣었다. 덕분에 “로봇텃밭, 귀여워배추텃밭, 초코사랑텃밭, 룰루랄라농장, 기니피그집사네텃밭” 등 각양각색의 텃밭 이름이 탄생했다.

노련한 전문 멘토의 손길 덕분에 텃밭을 대하는 아이들의 태도가 지난봄과는 달라졌다. 장하늬 양은 “팻말 만들 때 제가 키우는 동물과 친구를 그릴 수 있어 좋았어요”라며 “자주 올라가서 예쁘다고 해줄 거예요”라고 말했다. 박세은 양 역시 기대감이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어떻게 자랄지 궁금해요. 매일매일 보고 싶어요. 시금치가 어떻게 자라는지 한 번도 못 봤거든요.

텃밭에 자주 올라가서 예쁘다고 해줄 거라고 약속한 하늬. 흙을 두 손에 들고 있다.

텃밭에 자주 올라가서 예쁘다고 해줄 거라고 약속한 하늬

토끼 똥보다 작은 씨앗에서 어떻게 큰 시금치가 나올까 너무너무 궁금한 세희. 팻말을 들고 웃고 있다

토끼 똥보다 작은 씨앗에서 어떻게 큰 시금치가 나올까 너무너무 궁금한 세희

더불어 사는 법을 배우는 텃밭 활동

김영미 선생님은 이런 변화가 기쁘다. 그녀가 처음 텃밭 수업을 추진한 데는 각별한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어느 날 한 아이가 감정이 폭발했는데, 교사로서 아무것도 해줄 수가 없는 거예요. 그때 다육이가 보여서 그걸 보면서 이야기를 거니까 아이가 관심을 보이면서 평온해지더라고요.

그 이후 그녀는 식물을 통해 아이들 마음에 평화를 선물하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그때 기회를 열어준 것이 <문화와 룰루라라> 지원사업이었다. 기대했던 대로 텃밭은 아이들에게 기다림을 가르쳐줬다. 봄 내내 “언제 열려요?”라고 묻던 아이들의 모습을 떠올리면 그녀는 아직도 웃음이 나온다.

텃밭 이름을 적은 팻말을 들고 있는 두 아이

텃밭 이름을 스스로 짓고 애정과 책임감이 생긴 아이들

김판겸 원장은 옥상의 이런 변화가 기쁘다. 몇 년 전부터 아이들을 위한 공간으로 꾸며놨지만, 쉽사리 발길이 닿던 공간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자기 텃밭이 생긴 아이들이 옥상을 오가며 애정을 쏟을 모습을 생각하니 흐뭇하다. 소망지역아동센터를 이십 년 가까이 지켜온 그로서는 이런 변화를 겪을 때마다 감회가 새롭다.

제가 교회를 처음 개척했을 때 학원에 못 다니던 아이들이 있어서 교회에서 공부를 가르쳤어요. 그랬더니 그 애들이 친구를 데려오면 안 되냐고 그러더라고요. 그럼 데려오라고 했더니 열대 명이 온 거예요. 그 애들하고 몇 년 동안 공부도 하고 오뎅도 먹고 그랬죠. 그렇게 시작한 게 소망지역아동센터예요.

단체 사진

텃밭 가꾸기를 통해 더불어 사는 법을 배우는 소망지역아동센터 친구들

해가 갈수록 어려움도 많았다. 학교에서 내내 공부하고 왔는데 센터에 와서도 학습지를 풀어야 하니 아이들 표정이 점점 어두워졌다. 텃밭 활동은 그런 아이들의 숨통을 틔워주는 일이기도 하다. 김판겸 원장은 옥상 정원이 아이들이 맘껏 즐길 수 있는 아지트가 되길 바란다. 농사를 지으며 시행착오는 계속 겪겠지만 그 또한 배움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 게다가 이제는 가까이에 자문을 구할 수 있는 든든한 전문 멘토도 생겼다.

전문 멘토 김은주 강사는 텃밭은 함께 가꿔야 하므로 서로 배려하는 법을 배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안 그래도 아이들은 멘토링 전날부터 텃밭 관리를 어떻게 할지 의논했다. 누구보다 텃밭을 기대한 건 아이들이었다. 멘토링 수업이 끝난 후 강라원 양은 옥상에서 절대 뛰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자칫 실수로 화분이 다치면 안 되기 때문이다. 박세은 양도 매일 올라가 물을 주겠다고 말한다. 왜 그렇게 텃밭이 좋으냐고 물으니 아이들이 입을 모아 답한다. “다 자라면 센터에서 친구들이랑 같이 먹을 수 있잖아요.” 아이들은 어느새 텃밭을 통해 더불어 사는 법을 배우고 있었다.

글 우민정 작가 | 사진 김권일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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