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재단 <아동‧청소년문화지원사업 – 문화와 룰루랄라>는 문화 소외지역의 저소득가정 아동‧청소년들이 문화를 향유하고, 창작과 공유를 통해 문화감수성과 공동체성을 함양할 수 있도록 지원합니다. 2019년에는 아동복지시설 35개소를 선정, 문화프로젝트를 추진하는데 필요한 활동비를 제공했습니다. 어린이악단 활동과 거리 공연을 통해 자신감을 키우는 부산 보금자리지역아동센터 친구들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
토요일 아침, 부산 동래역 1번 출구에 바이올린과 플롯, 오카리나를 든 아이들이 나타났다. 능숙하게 바이올린 활에 송진을 바르고, 악보를 확인하며 제각기 바쁘던 이들이 어느새 모여 합주를 시작한다. 첫 곡은 <내 나이가 어때서>이다. 오카리나 연주 소리에 지나가는 사람들의 시선이 모였다. 이어지는 곡은 구슬픈 바이올린 연주로 시작하는 <아리랑 변주곡>. 이들이 이날 총 다섯 곡을 연주했다. 연주가 끝나자 단원들은 익숙한 듯 악보를 다시 보며 틀린 부분을 꼼꼼히 확인한다.
이것으로 김미숙 센터장(보금자리지역아동센터)의 소원이 반쯤 이뤄진 셈이다. 그가 처음 보금자리 아동센터에 부임한 3년 전만 해도 악보를 읽을 줄 아는 아이들이 없었다. 그 사실이 안타까웠던 그는 아이들에게 음악이 주는 즐거움을 알려주고 싶었다. 그 마음을 담아 3년 전 <보금자리악단>을 시작했다.
제가 악기를 다룰 줄 모르다 보니까 낙이 없어요. 우리 아이들은 악기도 연주하고, 노래도 하고, 악보 하나쯤은 볼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악단을 만들었어요.
처음 시작한 건 오카리나였다. 진입 장벽이 낮다는 장점이 있지만, 그는 단원들에게 더 다채로운 경험을 주고 싶었다. 그때 만난 게 아름다운재단 <아동청소년 문화지원사업 – 문화와 룰루라라>이다. 덕분에 올해부터는 바이올린 수업도 열고, 선생님이 돌아가며 한 명씩 봐주는 일대일 교육도 처음으로 시도했다. 악기는 한 명씩 봐주지 않으면 좀처럼 늘지 않는다는 걸 경험했기 때문이다. 실력이 늘어야 재미가 붙고 흥미가 생겨 더 집중하게 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변수 많은 버스킹만의 배움
예상대로 일대일 교육은 효과가 있었다. 처음에는 어렵고 힘들다며 울상이던 아이들의 표정이 실력이 늘자 확 밝아졌다. 단원인 박제연(13) 아동은 위기가 많았지만, “연습만이 살길”이었다며 힘주어 말했다. 덕분에 버스킹(busking, 거리 공연)도 자신 있게 나올 수 있었다.
거리에서 사람들 앞에 서는 게 부담스럽긴 하죠. 그런데 누군가 우리 연주를 들어주면 열심히 한 보람을 느껴요.
그는 지난번 버스킹에서는 한 시민이 연주를 듣고 후원금을 내고 갔다며 밝은 표정으로 말했다. 관객이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하는 거리 공연은 사실 모험에 가깝다. 막상 나가보면 멈춰 서 듣는 사람보다 바삐 지나쳐 가는 사람이 많다. 그래서인지 틈을 내 음악을 들어주는 관객을 만나면 어느 때보다 반갑다. 그것이 버스킹의 묘미이기도 하다. 연주자에게 기쁨은 다른 사람들과 자신의 음악을 나누는 일이라는 것을 이들은 자연스럽게 배우고 있다.
김미숙 센터장은 거리 공연을 선택한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누가 있든 없든 최선을 다해 연주했을 때의 기쁨을 아이들이 느낄 수 있길 바랐어요. 실제 나와서 버스킹을 해보니 어떤 일이 주어지든 서로 도우며 일을 해내는 법을 배우는 거 같아요.
버스킹에는 생각보다 변수가 많았다. 가져온 장비가 고장이 나기도 했고, 생각했던 장소에 공사장이 생겨 급히 공연할 곳을 찾기도 했다. 박지선(13) 아동은 합주가 아니었다면 이날 공연을 끝까지 해내기 어려웠을 거라고 말했다. 그는 3년 전 학원에서 바이올린을 배운 적이 있는데, 요즘은 혼자 연주할 때와는 다른 합주만의 재미를 알아가는 중이다.
혼자 연주하면 제 소리밖에 안 들리잖아요. 혼자서는 실수하면 다시 해야 하는데, 합주할 때는 실수해도 애들이 다 하고 있으니까 다시 따라갈 수 있어요.
하지만 누군가 틀리기 시작하면 전체가 흔들리기도 하는 게 합주였다. 그럴 때마다 서로 지적하기 시작하면 끝도 없다며 박지선(13) 아동은 웃었다. 오랜 합주 연습 속에서 그는 그만의 노하우를 깨우쳤다.
하다 보면 누군가 틀릴 수도 있잖아요. 그럴 때 티를 내면서 뭐라고 하지 않는 게 좋은 거 같아요. 그 애도 잘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는 것을 아니까요. 긴장하면 실수할 수도 있고, 자기 마음대로 안 되잖아요.
공연을 거듭하며 자라나는 자신감
보이지는 않지만, 곳곳에 스민 이런 배려와 이해 속에서 공연은 무사히 막을 내렸다. 이날 이들은 직접 만든 공예품을 팔아 모금도 했다. 이렇게 모은 기부금으로 작년에는 홀몸 어르신을 지원하는 단체에 기부했다. 올해도 자치 회의를 통해 기부금을 어떻게 쓸지 결정할 예정이다. 12월에 열릴 발표회도 앞두고 있다.
김미숙 센터장이 이런 나눔의 장을 계속 여는 이유는 아이들이 다양한 경험을 하길 바라서이다. 사실 아이들이 경험하는 세계는 집, 학교, 지역아동센터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맞벌이 가정이 많다 보니 수업이 끝나도 집에 가지 않고 센터에 남는 아이들도 많다. 집에 가도 돌봐줄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어떨 때는 선생님이 출근하기도 전에 먼저 오는 아이도 있다.
그럴 때마다 멀뚱히 있어야 하는 아이들을 보면 마음이 무거웠다. 이제는 악기만 있으면 언제든 즐겁게 놀 수 있고, 이곳저곳을 다니며 공연도 할 수 있으니 한결 마음이 놓인다. 그의 남은 바람은 하나다. 지원이 이어져 아이들이 공연을 계속할 수 있는 것, 그 풍부한 경험을 밑거름 삼아 사회에 나갔을 때 아이들이 자신감 있게 살아가는 것이다.
글 ㅣ우민정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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