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생긴 얼굴에 한창 여드름이 물오른 과학 ‘쌤’들의 나이는 열일곱, 열여덟. 5분에 한번 씩 집중을 요해야 하는 제자들은 초등학교 1, 2학년생이 대부분이다. 무리 중 가장 성숙한 중학교 2학년 남학생과는 불과 두세 살 차. 학생과 선생님이라기보다는 그냥 형, 동생으로 보이는 그림이다. 하지만 혁진·대승·동현·상현·준하 쌤은 어디까지나 ‘쌤’으로 불리길 원한다. 보다 구체적인 소망을 싣자면, ‘재미있는 과학 쌤’이고 싶다.  

과학? 어렵지 않아요!

금요일 오후 5시, 지역아동센터 ‘세움’에 모인 아이들은 열 명 남짓하다. 여기에 늠름한 고등학생 다섯 명이 더해졌으니, 청소년만 모두 열다섯 명이다. 한창 자라고 있다는 점에서 학생과 선생님의 구분은 유명무실하지만, 다섯 명의 소년들은 오늘의 ‘롤러코스터 만들기’ 수업을 이끌어갈 주체다. 

원심력과 구심력, 위치에너지와 운동에너지를 이야기할 수 있는 롤러코스터는 난이도가 제법 높은 과학 키트다. 그럼에도 여덟, 아홉 살 아이들 수업에 이 키트를 가져온 것은 그들 나름의 교육 철학 때문이다. 

“원심력이 뭔지, 운동에너지가 뭔지 직접적으로 가르치진 않아요. 그건 어차피 차차 학교에서 배울 내용들이니까요. 하지만 이러한 원리가 적용된 과학 키트를 직접 만들다보면, 자연스럽게 궁금증이 생기겠죠. ‘왜 구슬이 빨라지지? 튀어나오지?’ 하는 호기심과 흥미를 유발하는 게 오픈소스의 목표입니다. 물론 이 키트가 아이들에게 조금 어려울 수도 있어요. 어려운 만큼 두 개 조로 나눠 모둠 활동으로 진행할 겁니다. 혼자 힘으로는 해결하기 힘든 과제를 여럿이 함께 풀어나감으로써 협동심도 배울 수 있는 소중한 기회가 될 거라고 봅니다.”

오늘의 재미있는 과학 수업은 ‘롤러코스터 만들기’

오늘의 재미있는 과학 수업은 ‘롤러코스터 만들기’

 

오픈소스의 대표 임혁진 학생이 밝힌 학습 목표는 그처럼 야무졌지만, 모든 일이 계획대로, 꿈꾸는 대로 흘러가진 않았다. 좀처럼 완성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롤러코스터에 흥미를 잃고 수업을 이탈하는 아이들이 속출하는 위기 상황. 하지만 형 같고 오빠 같은 어린 ‘쌤’들은 침착했으니. 살살 어르고 달래기는 기본이요, 때로는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발휘하며 어린 제자들을 책상 앞으로 복귀시켰다. 

과학하며 놀기, 과학으로 소통하기

전북기계공업고등학교 재학생들로 결성된 오픈소스는 초등학교 아이들을 위한 재미있는 과학교실을 진행하는 동아리다. 특성화 고등학교를 다니며 현장 교육의 중요성을 절감한 이들은 스스로 시행착오를 겪으며 배우고 익힌 바를 어린 학생들과 나누고자 한다. 

현장 중심의 수업을 통해 아이들과 재미있게 공부하는 방법을 찾아가는 오픈소스

현장 중심의 수업을 통해 아이들과 재미있게 공부하는 방법을 찾아가는 오픈소스

 

무엇보다 과학 공부의 어려움은 오픈소스의 학생들 역시 한 번쯤은 품었던 고민이었다. 어려서부터 기계제품을 뜯고 조립하길 즐겨, 고친다는 명목 하에 가전제품 여러 개를 고장 내봤다는 임혁진 학생. 기계공업고등학교 로봇제어과를 선택한 것도 과학에 대한 오랜 꿈 때문이었다. 한데 막상 꿈꾸던 실험실에 던져지니, 머리로만 달달 외우고 있던 과학 공식이 별 소용이 없었다.

보다 실질적인 공부의 중요성을 절감하던 그는 초등학생인 사촌동생이 공부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자신이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다닐 때 그러했듯 책으로만 공부하는 동생을 보며, 현장 중심의 수업을 통해 터득한 바를 가르쳐주고 싶었다. “처음엔 동생을 대상으로 생각하다가, 차츰 동생 또래 아이들로 시야가 확장됐어요. 기왕이면 이런 기회가 꼭 필요한 아이들이었으면 좋겠다 싶었고요,” 

다양한 체험학습을 통해 과학을 재미있게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모든 아이들이 누리길 바란다는 임혁진 학생

다양한 체험학습을 통해 과학을 재미있게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모든 아이들이 누리길 바란다는 임혁진 학생

 

고등학교에 와서야 터득한 ‘재미있게 과학 공부하는 법’을 어린 동생들과 나누고 싶었던 임혁진 학생의 꿈은, 그 꿈의 가치를 공유하는 또래 친구들과의 모의로 뼈대를 갖추고 아름다운재단 <2015 청소년자발적사회문화활동 지원사업>에 선정됨으로서 현실화됐다. 

나눔은 그것이 꼭 필요한 대상을 향할 때 빛을 발하는 법. 관내 지역아동센터와 연계해 과학 교실을 진행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저희가 추구하는 건 기회가 필요한 사람에게 기회를 주고, 나눠야 할 사람과 나누는 것 입니다. 특히나 교육의 기회는 균등하게 주어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배우고 싶은 의지를 가진 사람이라면 얼마든지 배울 수 있어야 옳은 거잖아요. 다양한 체험학습을 통해 과학을 재미있게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모든 아이들이 누릴 수 있도록, 작은 힘이나마 보태 교육의 공평을 실천하고자 합니다.”

배우고 나누며 성장하는 시간

매주 금요일 지역아동센터 세움에서 진행하는 과학교실에 앞서 오픈소스 멤버들은 머리를 맞대고 수업 방안에 대한 회의를 거듭한다. 전 학생이 기숙사 생활을 하는 터라, 수업이 끝난 후 언제든 모이기 쉽다는 것도 오픈소스의 결속력을 다질 수 있었던 주요한 요인이다. 수업 계획을 짜고 교수법을 고민하며, 누군가를 가르치려면 배우는 입장에 있을 때보다 더 치열하게 공부해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끊임없이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는 시간이기도 했다.

“저희 학교 선생님을 모시고 교육철학 및 교육방법에 대한 슈퍼비전을 진행 중입니다. 선생님의 지도 속에, 교육이란 무엇인지 큰 틀에서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갖고 있습니다. 아이들의 집중력을 끌어올릴 수 있는 재미있는 수업 진행의 기술도 중요하기에, 인터넷으로 유명 강사들의 강의를 찾아보기도 하고요.” 

자격증 시험이며 과제며 제 공부도 산더미 같은 고등학생들이거늘, 새로이 부여된 ‘과학 쌤’의 포지션을 위해 오픈소스 멤버들은 공부에 공부를 더하는 중이다. 그럼에도 금요일 오후 5시가 기다려지는 이유는, 매주 조금씩 달라지는 아이들의 눈빛과 웃음 때문이다. 지난 주보다 이번 주에 더 반겨주고, 호기심의 눈망울을 빛내는 아이들 덕분에 끝없는 공부의 길을 기꺼이 감수하는 것. 어느덧 가르치는 아이들의 성장이 삶의 가장 큰 보람이 되어버린 오픈소스 멤버들은, 그렇게 배우고 나누며 서로의 성장을 견인하고 있었다.

글. 고우정 | 사진. 김흥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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