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혁(가명) 씨는 매우 반듯한 젊은이였다. 인터뷰에 앞서 다시 한 번 질문지를 꼼꼼히 읽었고, 질문에는 번번이 “맞습니다”라고 예의바른 맞장구를 쳤다. 자신의 ‘기술경영’ 전공을 설명할 때는 마치 공식 발표를 하듯 “전통적인 경영학과 더불어 4차 산업혁명에 따라서”라고 문어체 문장을 사용했다. 답변 도중 “다시 할게요”라고 멈춘 뒤 신중히 말을 가다듬기도 했다.
그는 딱 ‘범생이’로 보인다. 치열하게 살아온 성장사를 봐도 그렇다 수능 성적이 높았지만 장학금 지원을 받기 위해 하향 지원을 했고, 대학 시절에도 아름다운재단 대학생 교육비 지원사업의 장학금을 받았다.
남들보다 팍팍한 삶이었지만, 그래서 남들보다 더 열심히 살았다. 교수의 꿈을 안고 카이스트 대학원에 진학했다. 누군가는 “네 상황에서 대학원은 힘들다”고 말렸지만, 마음을 정한 뒤에는 물러서지 않았다. 지난 2018년에는 대학생 교육비 지원사업을 마무리하는 ‘홈커밍데이’에 참여해 후배 장학생들 앞에서 자신의 경험을 들려주는 강연도 했다.
그는 혹시 이제는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상상 속의 동물, ‘개천에서 난 용’인 걸까?
“회사에는 심장이 뛰지 않아서” 선택한 대학원
김재혁 씨는 고등학교 때 이과를 선택했지만 문과적인 성향도 강했다. 전공인 ‘기술경영’은 그런 면에서 그와 참 잘 맞았다. 연구가 좋았고 계속 하고 싶었다. 교수가 되고 싶었다. 연구를 하고 제자들을 양성하면 그 동안 사회에 받은 것을 되돌려주는 일이 되리라 생각했다. 남부럽지 않게 사회적 지위나 삶의 안정성도 얻을 수 있을 듯했다.
언제나 그렇듯이 문제는 돈이었다. 장학생들에게 망설임의 시간이나 준비의 기간은 좀처럼 주어지지 않는다. 뭐든 바로 해야 한다. 바로 취업을 해야 하고 바로 대학원에 가야 한다. 그래야 삶을 유지할 수 있다. 게다가 대학원은 장학 기회가 드물어 생계 걱정까지 더해진다. 김재혁 씨도 이 벽 앞에서 많이 망설였다.
“고민했던 것 중에 가장 큰 거는 ‘과연 내가 잘 할 수 있을까’ 하는 거였어요. 확신이 없더라구요. 영어를 잘 하는 것도 아니고. 혹시 ‘취업 도피’하는 식으로 되는 게 아닐까 생각했어요. 외부의 시선도 신경쓰였고요. 도피라고 볼까 봐요.”
새내기 시절부터 고민이 시작됐지만 오랜 시간을 생각해도 답을 찾기 어려웠다. 취업을 염두에 두고 대기업 인턴 생활을 하기도 했다. 역설적으로 그가 대학원 진학을 결심한 것도 바로 이 인턴 경험 덕분이었다.
“결정적인 게 인턴십이었죠. 세 번이나 인턴을 했는데, 기업에 있으면서 제 위에 있는 사람들을 보니까 그 미래가 저에게는 멋있지 않은 거예요. 심장이 뛰지 않고, 저걸 해야겠다는 생각이 안 드는 거죠. 쉽지 않았고 지금도 쉽지 않지만 그래도 연구를 하고 싶었어요.”
이 때가 3학년 1학기였다. 그 뒤로 김재혁 씨는 대학원을 목표로 더 바짝 뛰었다. 특히 이 때 아름다운재단과 아동자립지원단의 교육비 지원사업이 그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 성적이 오르면서 자신감이 붙고 진로에 대한 확신도 강해졌다.
“대학원 면접을 영어로 하거든요. 그래서 지원받은 교육비는 주로 영어에 투자했어요. 아무래도 쓰기와 말하기는 독학으로 안 되더라구요. 지원을 받고 나서 이전까지는 광고로만 보던 인터넷 영어회화 프로그램을 신청했죠.”
그는 “아름다운재단 사업은 장학생들끼리 함께 만날 기회가 많아서 좋았다”면서 “노트북 같은 학습 디바이스도 지원해주셨으면 더 좋겠다”고 건의사항을 말하기도 했다.
“그렇게까지 치열하게 안 살았으면 좋았을 걸”
그렇다고 김재혁 씨가 대학 시절 내내 공부만 한 것은 아니다. 운동을 좋아해서 동아리 활동으로 농구와 축구를 했다. 대기업의 대학생 대상 프로그램에 참 많이 참여했다. 대회 입상도 하고 해외에도 여러 번 다녀왔다. 그 와중에 분식집 알바, 과외 알바, 근로 장학생까지 다양한 방법으로 돈도 벌었다. 친구들과도 자주 어울려 놀았고 연애까지 했다.
그런데도 그는 “지금 돌아보면 그렇게까지 치열하게 안 살았으면 좋았을 걸, 뭘 하지 않고 놀았으면 좋았을 걸 싶다”고 말했다. 공부 외의 다양한 활동들이 그에게는 놀이가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는 스스로를 “완벽주의자”라고 했다. 모든 것을 잘 하고 싶었고, 그렇게 해서 인정을 받고 싶었다. 그게 그의 생존 방식인 듯 했다.
“남들이 보면 저는 ‘핵인싸’였을 거예요. 걱정도 없어 보이고. 힘들어도 항상 웃고. 실패하면 안 됐죠. 이렇게 까지 온 원동력이기도 하지만. 지기 싫었던 것 같아요. 정말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을 때에도 내색하지 않고 싶었어요. 친구들에게 밥도 많이 사주고요.”
김재혁 씨는 그렇게 실패해선 안 되고 흔들려서도 안 되는 삶을 살았다. 그의 대학 생활은 치열하다 못해 팍팍해 보였다. 방학에도 아침 9시부터 저녁 7시까지 계절학기 수업을 들었고, 그 뒤에는 자정까지 근로 장학생으로 일했다. 그 와중에 토익 공부도 멈추지 않았다. 그래야 장학금을 탈 수 있었다. 그렇게 대학원을 준비했고 결국 카이스트에 합격했다.
그러나 대학원 입학은 새로운 시작이었다. 카이스트는 1년에 한명씩 극단적 선택을 할 정도로 극심한 경쟁사회였다. 동기들은 대부분 특목고 출신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남다른 정보력과 실력을 갖춘 채 자랐다. 출발선이 아예 달랐다. ‘기울어진 운동장’을 그는 대학원에서 더 크게 실감했다.
“대학원에 들어오니까 뛰어난 사람이 너무 많은 거예요. 1학기 때는 하루에 3~4시간만 자면서 살았어요. 왜냐면 사람들한테 ‘명문대 출신도 아닌데 쟤는 어떻게 들어왔냐’는 얘기도 듣고. 텃세가 심했어요. 느긋하게 생각하면 될 텐데 그걸 받아들이는 게 싫었어요. 그러다 보니 병이 나더라구요. 잠도 못 자고 계속 우울하고.”
결국 김재혁 씨는 더 자신을 몰아붙이기보다 조금 놓아주는 길을 택했다. ‘지기 싫어하고 완벽해지려는’ 자신을 내려놓기로 한 것이다.
“지금은 굉장히 많이 바뀌었어요. 제가 스스로 내면과 많이 싸웠던 것 같아요. 지기 싫어하고 완벽주의자인 저와 싸운 거죠.”
완벽주의자 모범생의 조언 “넘어져도 괜찮아”
그는 이제 조금 더 여유로운 사람이 되었다. 요즘은 잠시 학업을 중단하고 대기업의 인턴 생활을 하고 있다. 신사업을 발굴하고 방향을 제언하는 연구직이다. 예전 같았으면 이렇게 휴학을 하는 것은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그는 “생각을 환기할 곳이 필요했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연구의 끈을 놓은 것은 아니다. 언젠가는 교수가 되고 싶다. 다만 그 목표에 도달하는 길은 조금 느긋하게 생각하고 있다. 바로 박사 과정을 밟는 것도 좋지만, 취업을 해서 현장에서 경험을 쌓고 다시 공부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밤을 새서라도 빨리 결론을 내리고 그 길로 달려가야 하던 과거와는 다른 모습이다. 그는 “요즘엔 행복하다”고 말했다.
김재혁 씨는 개천에서 난 용이 아니라 남들처럼 행복해지고 싶은 아주 평범한 사람이다. 아직은 꿈을 다 이루지 못했기에 지금 그의 이야기는 해피엔딩이라기보다는 열린 결말에 가깝다. 당장의 현실적인 걸림돌도 여전히 남아있다. 그러나 그는 천천히 자신의 길을 선택할 테고, 그 선택에 최선을 다할 것이다.
대학원과 취업 사이에서 고민하는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도 바로 그런 것이다. 그는 “‘실패해도 괜찮다’고는 하기는 어렵다”고 했다. 실패를 용납하지 않는 현실을 너무나 잘 알기에 차마 말이 떨어지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스스로 선택한 길이라면 이후에 다른 길로 방향을 바꾸더라도 결국 행복해질 거라고 했다. 그 길에서는 좀 “넘어져도 괜찮다”고 했다.
“대학원에 꼭 가란 말은 못하겠어요. 어떤 대학원이든 분명히 힘들 거예요. 지금보다 더 힘들 수도 있어요. 하지만 정말 하고 싶은 연구가 있다면, 다른 것을 포기하더라도 하고 싶다면 주저 말고 선택하면 좋겠어요. 그런 선택을 한다면 결국엔 꼭 성공하실 거예요. 제가 이건 감히 확신해요.”
넘어지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면서 길을 걸어온 사람, 이제 조금은 자신을 내려놓고 그만큼 더 행복해진 사람이 길을 되돌아보며 내린 결론이다.
글 박효원ㅣ사진 이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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