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조건 가야겠다고 생각했어요. 확실히 실력이 늘잖아요. 한국어를 잘하는 외국인 친구가 있는데 아무리 학원을 다녀도 한국에 와서 배우는 거랑 다르다고 하더라구요.”
“저도요. 고등학교 때부터 해외에 대한 로망이 있었어요. 현지에서 사람들과 많이 이야기도 해보고 싶고. 꼭 가겠다는 생각밖에 안 들었어요. 지금도 다시 가고 싶어요.”
어학연수 지원 동기를 설명하면서 두 사람의 눈이 반짝거렸다. 긴 여행을 다녀온 사람답게 두 사람의 표정에는 아쉬움과 흥분이 잔뜩 묻어나온다. 또 가고 싶고 더 길게 가고 싶을 정도로 그렇게 어학연수가 좋았던 것이다.
권지효(가명) 씨와 김현우(가명) 씨는 아름다운재단 대학생 교육비 지원사업의 단기 어학연수 지원 프로그램을 통해 올 여름 두 달간 캐나다 단기 어학연수를 다녀왔다. 현우 씨는 밴쿠버에서 지효 씨는 토론토에서 생활하면서, 낮에는 어학원에서 열심히 수업을 듣고 틈틈이 친구들과 주요 명소도 다녀왔다.
학원을 다니고 인강도 들었지만, 뭔가 부족했던 어학 공부
두 사람은 모두 영어를 “좋아하지만 잘 하지는 못하는” 상황이었다. 어학을 좋아해서 중국어를 전공하는 지효 씨는 “애매하게 배우는 건 싫다”고 했다. 다른 건 몰라도 어학 공부는 욕심이 나는 것이다. 고등학교 때부터 레슬링 선수로 국제대회에 나갔던 현우 씨는 외국인과 말이 안 통할 때마다 답답했단다. 영어를 배워서 더 많은 친구를 만들고 싶었다.
영어는 현실적인 이유에서도 매우 절실했다. 물론 대부분의 취업에서 영어 성적이 매우 중요하지만, 특히 이들에게는 영어가 그냥 흔한 ‘스펙’이 아니다.
두 사람은 모두 항공사와 관련된 직업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현우 씨는 앞으로 항공기 조종사가 되고 싶다. 지효 씨는 비행기 승무원이 꿈이다. 이런 두 사람에게 영어는 직무상으로도 꼭 갖춰야 할 능력이다. 특히 현우 씨는 조종사가 되기 위해 편입을 해서 다시 공부를 하려고 준비 중인데, 이 과정에서도 영어 성적은 필수이다.
그래서 평소에도 영어 학원을 다니면서 열심히 공부를 했다. 그러나 한계가 컸다.
“저는 지금 체대를 다니고 레슬링 실기를 해야 하니까. 그것과 (편입 준비를) 조율하기 어려워요. 실기를 안 하면 학교 성적이 잘 안 나오고요. 영어도 기초부터 해야하거든요. 그 동안은 운동하느라 수업도 잘 안 들어가고 공부를 많이 못했어요.”
그래서 현우 씨는 편입 시험을 앞두고 있어서 토익 학원을 열심히 다녔다. 새벽부터 학교에 가서 공부를 하고 학원도 나갔다. 영어 성적이 좋아지긴 했지만 시험 위주의 공부만으론 부족했다. 현지인들에게는 어색하게 들리는 단어를 많이 썼다. ‘진짜 영어’를 배우고 싶었다.
“지금 제가 있는 충주에는 영어학원이 진짜 아무것도 없어요. 영어를 배우려면 서울까지 왔다 갔다 해야 하는 거죠. 방학 때마다 서울에 있는 친구집에 있으면서 학원들 가서 영어도 배우고 자격증 준비도 하고 그랬어요.”
이렇게 힘들게 영어를 배웠지만 효과는 기대에 못 미쳤다. 그는 “워낙 방학 동안만 한두 달 짧게 배우다 보니 실력이 잘 안 늘더라”고 전했다. 인터넷으로 배우는 영어는 실제 사람들과 부딪히며 배우는 것보다는 아무래도 효과가 적었다. 그래도 문법은 괜찮다 싶은데 회화는 영 늘지 않았다.
문제는 역시 돈이었다. 이들은 만 18세까지 사회의 돌봄을 받았던 ‘보호종료아동’이다. 제도적 지원은 딱 거기까지였고, ‘보호’가 종료되자마다 두 사람은 서둘러 자립을 해야 했다. 두 사람에게 어학연수는 먼 이야기였다. 그래서 단기 어학연수 지원 프로그램을 알았을 때 두 사람은 “무조건 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앗, 내가 어떻게 이런 말을 영어로 했지?
언어 환경이 달라지니 학습 효과도 그만큼 달라졌다. 캐나다에서는 하루 종일 영어로 듣고 말하고 읽어야 했다. 현우 씨는 “영어를 못 하면 밥 한 끼도 먹을 수 없다”고 말했다.
영어에 익숙해질수록 긴장감이나 부담감은 조금씩 줄어들었다. 머릿속으로 한국어 문장을 떠올리지 않고서도 바로바로 영어가 입에서 튀어나오는 경우가 조금씩 늘어났다. 현우 씨는 “가끔씩 말을 하다가 스스로 ‘내가 어떻게 이런 말을 영어로 했지?’ 싶었다”고 전했다.
현지 영어도 입에 붙었다. 지효 씨는 옆 사람이 기침을 할 때 “블레스 유(Bless you, 영어권에서 기침을 하는 사람에게 ”몸조심하세요“라는 뜻으로 건네는 말)”라는 표현이 자연스러워졌다. 현우 씨는 “최선을 다한다”는 뜻으로 ‘롤업 유어 슬리브즈(roll up your sleeves, 직역하면 ’소매를 걷어붙인다)’이라는 재미있는 표현을 썼다.
항공사 취업을 꿈꾸는 두 사람에게는 캐나다를 오가는 장거리 비행도 특별한 경험이다. 미래의 진로를 조금 더 탐색하고 고민하는 소중한 기회인 것이다. 현우 씨는 이착륙 과정의 비행기 진동을 무심코 넘기지 못하고 자신이 조종사로 비행기를 모는 상상을 했다 지효 씨는 긴 비행 동안 승무원들이 어떻게 일하는지 유심히 관찰했다.
“이착륙을 부드럽게 하는 게 조종사의 기량이거든요. 갈 때 되게 부드러워서 ‘나도 과연 이렇게 할 수 있을까? 죽어도 못할 것 같은데’ 싶더라구요. 그리고 조종석에서 보면 정말 하늘이 예쁠 것 같았어요. 이 자리에서만 바다를 봐도 이렇게 예쁜데 구름 위를 다니는 기분은 엄청 좋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우리나라와 외국의 항공사는 승무원의 느낌이 너무 다른 거예요. 외항사 승무원들은 과도하지 않게 편하고 자연스럽게 미소를 짓고 서비스도 하고. 우리나라는 왜 굳이 (과도하게) 하나 싶고, 제 취향이나 스타일은 외항사에 맞는 것 같아요. 한번 외국 항공사에 도전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한국에 돌아온 지 3달째… 공부는 계속된다
어학연수를 다녀온 지 이제 3개월 째. 단시간에 실력이 확 늘어났으니 이제는 그 실력을 유지하고 더 발전시키는 것이 과제이다. 계속 사용하지 않으면 실력은 쉽게 녹이 슬 것이고, 소중한 어학연수의 성과도 사라질지도 모른다. 그래서 두 사람은 영어 공부를 놓지 않는다.
지효 씨는 최근에 서울로 이사를 했다. 본격적으로 취업 준비를 위해서 영어 학원도 다니고 중국어 학원도 다니고 면접도 준비하려 한다. 이제는 학원을 길게 다닐 수 있으니 꾸준히 영어 공부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캐나다에 있으면서 확신이 생겼어요. 내년에 중국에 교환학생으로 가야겠다고요. 현지에서 공부하고 싶어요. 일단 교환학생 장학금은 신청해놨고요. 그게 안 될 수도 있으니까, 그러면 서울에서 중국어학원이랑 토익학원을 다니려고요. 면접도 준비하고요.”
현우 씨는 생각이 복잡하다. 청소년기에 레슬링 선수로 활약했고 지금도 대학에서 체육 전공으로 레슬링 수업을 받지만, 부상으로 인해 선수의 꿈은 접은 상태다. 새로운 꿈인 조종사가 되기 위해서는 항공 관련 학과로 편입해야 한다. 경쟁률도 높고 학비도 비싸다. 걱정거리가 한 가득이지만 일단은 편입부터 성공해야 한다.
“계속 학교를 알아보고 있어요. 이것저것 많이 해보려고 하는데… 지금 당장은 편입 서류 전형부터 준비해야 해요. 12월까지는 토익을 더 보고요. 그 점수를 받아서 12월을 끝내고 그 뒤는 영어 회화를 공부하려고 해요.”
더 넓은 세계로 뻗어나가려 하는 현우 씨와 지효 씨에게 영어는 든든한 날개가 되어줄 것이다. 캐나다 어학연수는 짧은 두 달간의 여행이었지만, 이 힘찬 날갯짓의 시작이다. 이제 두 사람은 멈추지 않고 나는 법을 배울 테니, 기어코 훨훨 하늘을 날 테니 말이다.
글 박효원ㅣ사진 이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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