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10만 명의 아픈 노동자가 산재보험을 통해 치료를 받고 생계비를 받습니다. 하지만 일을 하다 다친 더 많은 사람들이 여러 가지 이유로 산재보험을 이용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하거나 재활치료 기간이 줄어듭니다. 생계까지 곤란해지기도 합니다. 2020년 아름다운재단과 노동건강연대는 이러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산재보상 사각지대 노동자들을 지원하고자 <2020 산재보상 사각지대 해소를 위한 지원사업(생계비 지원)>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일을 하다 다친 영세 제조업 노동자 및 소규모 요식업 노동자 및 사업주를 대상으로 긴급 생계비를 지원합니다. 산재보상 사각지대 해소를 위한 제도 개선 연구 및 시민참여 캠페인도 진행됩니다. 🔎 자세히보기 |
2019 산재노동자 지원사업 이야기 & 2020년에도 계속되는 산재노동자 지원사업
워낙 많은 노동자가 끔직하게 죽기 때문에 웬만한 비극은 평범해 보입니다. 산재 기사를 쓸 때마다 ‘불행을 전시하지 말자’고 다짐하지만, 늘 유혹이 찾아옵니다. 하지만 그리 쓰면 산재가 ‘누군가의 특별한 이야기’가 되고 말 것 같았습니다. 저는 산재의 평범함과 보편성을 드러내고 싶었습니다. 누구든 겪을 수 있고, 수많은 사람이 겪고, 이 구조가 바뀌지 않으면 당신도 겪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_ 변지민 기자 (한겨레21,1298호 10P)
2019년 산재보험통계에 의하면 109,242명의 노동자가 일을 하다 다쳤습니다. 노동자 100명 중 네 명이 일을 하다 다친 꼴입니다. 하지만 일을 하다 다친 사람은 이렇게 집계된 약 11만 명보다 훨씬 많습니다. 흔히 이거 ‘산업재해 아냐?’라고 이야기는 하지만 일을 하다 다쳐도 산재보험 청구를 하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회사에 밉보일까봐, 산재보험 처리하기가 까다로우니까 본인이 치료를 하거나 꾹 참고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실제로 ‘산재은폐로 인한 건강보험 재정누수 방지 방안연구’(김진현, 국민건강보험연구용역, 2018.)에 따르면 산재 은폐율이 최대 42.4%에 이른다고 합니다. 일을 하다 다친 두 명 중 한 명은 그 책임을 온전히 본인이 감당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입니다.
2016년 4월 구의역 김 군, 2018년 12월 태안화력의 김용균. 이들의 사연은 각각 너무나 특별했지만, 대한민국에서 매일 세 명씩의 노동자가 사망하는 것은 ‘일상’입니다. 우리는 11만 명이라는 산재 노동자의 뒤편에 있는, 일을 하다 다친 노동자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습니다. ‘회사가 어차피 납부한 산재보험인데, 왜 이걸 통해 치료비와 생계비를 도움 받지 않을까?’, ‘실제로 어떤 사람들이 더 많이 다칠까?’ 산재은폐라는 말 뒤에 있는 노동자의 사연을 듣고 싶었습니다.
2019년, 노동건강연대는 일을 하다 다친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들의 삶과 이를 둘러싼 제도의 문제점들을 파악해보기 위해 아름다운재단과 함께 <산재보상 사각지대 해소를 위한 지원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이 중 산재 노동자 생계비 지원사업은 국민기초생할보장제도에서 1인 가구에게 최소한으로 지급하는 생계급여 금액인 50만 원을 최대 3개월간 산재 노동자에게 직접 지원하는 것이었습니다.
시행착오도 많았습니다. 산재보험을 담당하는 근로복지공단의 복잡하고 경직된 절차를 따르지 않으려 했습니다. 노동자가 직접 방문 신청하지 않고, 비대면으로 제출한 최소한의 서류를 가지고 지원 대상 노동자를 선택하는 일은 쉽지 않았습니다. 직업환경의학과 의사, 보건학 전공자, 변호사, 노무사, 기자, 노동조합 활동가 등 전문가 7명이 한 달에 한 번 서너 시간씩 머리를 맞댔지만, 다양한 직업과 노동형태, 재해 전후의 이야기들을 정리하고 판단하는 일이 쉽지 않았습니다. 각자의 사연을 들여다보면 모두에게, 더 많은 금액을 지원해드리고 싶었지만 그렇게 할 수 없었기에 고민이 깊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2019년 4월 25일부터 8월 20일까지, 신청해주신 89명의 노동자 중 64명에게 생계비를 지원해 드렸습니다.
일을 하다 다치는 상황은 다양했습니다. 다양한 부위를 다치기도 하고, 절단되고, 넘어지고, 추락하고, 직장 내 괴롭힘에 의해 정신질환을 얻기도 합니다. 한 시간, 두 시간, 한 번, 두 번, 세 번을 통화해도 이 상황을 모두 담기는 어려웠습니다. 생계비 지원사업에서 요약할 수 있는건 그들이 무슨 일을 하다가, 어디를 어떻게 다쳤는지, 산재보험의 신청 여부 등이었습니다.
한 해 최소 11만 명이 경험하는 평범한 이야기이지만 제도의 불충분함과 사회적 무관심 속에 비극이 되어버리는 산재 이야기를 사회에 꺼내놓는 것. 64명이라는 작은 숫자지만 모든 비극의 형태를 겪어야했던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일하다 다친 노동자의 삶을 바꾸고 더 안전하고 건강하게 일할 수 있는 사회의 밑거름이 되는 것. 아마도 89명의 이야기를 듣고, 64명에게 작은 힘이나마 보태드렸던 이유가 아닐까 싶습니다.
우리는 여전히 일을 하다 다친 노동자의 ‘부주의함’이나 ‘본인이 신청하지 않은 것을 누구 탓을 하냐’고 개인을 책망하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하지만 그 전에 우리 사회가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최소 11만 명의 노동자들은 다쳤을 때 믿고 의지하고 도움을 구할 수 있는 누군가가 없기에 꾹 참고 일하며 견뎌낸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만큼 커져가는 고통 또한 크다는 것을 말입니다. 일을 하다 다쳤다는 이유로 회사, 동료, 국가로부터 책망을 당하고 내쳐진 사정이 더 많이 공유된다면 많은 사람들이 그 아픔과 고통에 공감하고, 사회는 그 책임을 함께 나누고, 견뎌낼 수 있을 것입니다.
2019년 노동건강연대가 아름다운재단과 함께 한 여정은 2020년과 2021년에도 이어질 예정입니다. 올해는 특별히 가장 산업재해에 취약하고, 사회적 자본의 부족을 겪지만 산재보험을 이용하기 어려운 노동자들과 함께합니다. 바로 10인 미만의 작은 공장 노동자들, 5인 미만의 식당에서 일하는 노동자입니다. 2020 산재노동자 생계비 지원 사업을 통해 일하다 다친 노동자가 사회안전망으로부터 보호받고, 더 많은 산재노동자의 이야기가 알려지고, 정부에 보고되어 더 안전하고 건강한 일터가 될 수 있는 밑거름을 만들겠습니다.
글 ㅣ 노동건강연대 정우준 사무국장
👉 산재노동자의 생생한 이야기는 본 사업의 연구보고서인 『산재보험 사각지대 해소 및 형평성 강화를 위한연구』(2019)에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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