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재보상 사각지대 해소를 위한 지원사업 활동가 인터뷰

박혜영 노무사(노동건강연대)는 최근 출장을 갔다 발을 다쳤다. 그리고 산재보상을 신청했다. 수년간 산업재해 피해자를 지원한 그녀에게도 산재보험의 벽은 높았다. 우선 병원에 갈 때마다 자리를 비우는 병원 산재 담당자를 만나기까지 2주가 걸렸다. 신청서를 작성해 냈지만 병원에서 서로 관할이 아니라는 통에 2주가 더 걸렸다. 결국 신청까지만 한 달이 걸렸다.

노동건강연대 박혜영 노무사가 인터뷰하는 모습

노동건강연대 박혜영 노무사

“제가 당사자가 되니까 산재 신청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겠더라고요. 몸도 아픈데 직접 서류를 챙겨서 신청도 해야 하고, 의심받고 추궁 당하기도 하고, 보상까지도 오래 걸리니까 포기하게 되는 거죠. 산재보험이 정말 사회보험이긴 할까, 그 위상이 엉망이란 생각이 들었어요.”

송파 세 모녀도 산재보상 사각지대 피해자

박혜영 노무사는 송파 세 모녀가 빈곤에 빠진 원인도 잘 들여다봐야 한다고 말했다. 누구든 일하다 다쳤을 때 사회안전망이 작동하지 않으면 극단적인 빈곤에 빠질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사례이기 때문이다.

“송파 세 모녀 사건도 시작은 산업재해에요.”

사연은 이랬다. 생계를 책임지던 어머니가 식당에서 퇴근하다가 넘어져 팔을 다쳤다. 평생 다시 일할 수 없는 만큼 심각한 부상은 아니었지만 당장 일할 수 없게 됐다. 결국 가족은 몇 달 만에 극단적인 빈곤 상태에 빠졌다. 이럴 때 이들이 산재보상을 받을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하지만 이 사건에서 산재보상의 사각지대 문제는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했다.

사실 이론상 산재보험에는 사각지대가 있을 수가 없다. 노동자라면 모두 의무 가입해야 하는 사회보험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세 모녀의 어머니처럼 일하다 다쳐도 산재보상을 받지 못하는 노동자가 존재한다. 대체 왜 그럴까? <산재보상 사각지대 해소를 위한 지원사업>은 그 질문에서 출발했다.

노동건강연대 정우준 활동가 인터뷰하는 모습

노동건강연대 정우준 활동가

“산재보험은 선택이 아니에요. 사회보험이고, 의무가입이니까요. 그런데도 산재보험을 이용하지 못하는 노동자들의 현실이 버젓이 존재하죠.”

정우준 활동가(노동건강연대)는 아름다운재단과 함께하는 이번 사업을 통해 세 모녀처럼 산재보험을 이용하지 못한 사람들을 인터뷰할 계획이다. 그들인지 누구인지, 왜 산재보험에 접근하지 못했는지, 아픈 뒤 삶은 어떻게 변화했는지, 연구를 통해 산재보상의 사각지대를 추적할 것이다.

산재보상을 받았더라도 불충분한 보상으로 재활과 복귀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도 만나려고 한다. 그로써 메워야 할 산재보험의 공백이 무엇인지 밝혀낼 생각이다. 연구뿐 아니라 당장 생계가 급한 산재 피해자를 위해 생계비와 법률 비용도 지원한다.

“생계비 지원 신청자 중에 일하다 나무에서 떨어져 다리를 다치신 분이 있어요. 결국 다리를 절게 됐는데, 일상생활은 가능하지만 일은 할 수 없게 됐어요. 다행히 산재보상을 받았지만 중대재해가 아니라 치료비만 나왔고요. 당장 일을 할 수 없어 생계가 막막한 상황에 처한 거죠. 드러나진 않았지만 산업재해가 곧 실직으로 이어져 어려움을 겪는 분들이 주변에 얼마나 많을까요?”

노동건강연대 정우준, 박혜영 활동가

노동건강연대 정우준, 박혜영 활동가

산재보험 충분히 바뀔 수 있다

사실 근로복지공단은 매년 무재해 기업에게 수백억씩 보험료를 환급한다. 남는 자원을 아픈 노동자가 아니라 기업에게 쓰는 것이다. 박혜영 노무사는 이는 결국 ‘공적 자금을 누구에게 어떻게 쓸 것인가’ 관점의 문제라고 말했다. 그 예로 핀란드 사례를 들었다.

“핀란드에서는 노키아란 기업 망했을 때 정부는 어떤 지원도 하지 않았어요. 대신 노동자들이 다시 직장을 구할 수 있도록 2년 동안 재활교육과 실업급여를 지원했죠. 기업은 알아서 해라, 우리는 노동자들을 지원하겠다. 이런 태도죠. 한국은 늘 기업 중심이잖아요. 제도가 노동자를 대하는 철학의 차이라고 봐요.”

박혜영 노무사는 여전히 부족하지만 재작년부터 산재보상을 받는 사람이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 정책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이 사실이 시사하는 바는 하나다. 정책적 의지만 있다면 보장 범위를 충분히 넓힐 수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번 연구는 누구를 대상으로 어떻게 더 보장을 넓히면 좋을지 그 길을 찾는 단서가 될 것이다.

박혜영 노무사가 노동과 건강이라는 발행물을 들고 정면을 응시하고 있다

1988년도에 발행된 제1호 ‘노동과건강’

“저는 이번에 출장 중 산업재해로 전치 8주가 나왔어요. 산재보상으로 치료비와 휴업급여를 받지 못한다면 2달이나 쉴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현실에서 충분히 치료받는다는 건 존재하지 않는구나 절실히 느꼈어요.”

철학과 인식, 제도까지 개선해야 할 과제는 많다. 앞으로 사각지대에 있는 산재 피해자의 심층 인터뷰를 통해 문제들을 살펴보고, 해결방안을 도출할 계획이다. 아름다운재단과 노동건강연대가 이번 사업으로 이루고자 하는 바는 명확하다. 일하다 다치거나 아픈 사람이 마음 놓고 치료받는 사회, 그래서 다시 일터로 돌아갈 수 있는 사회, 그런 사회를 만드는 것이다.

글 우민정 ㅣ 사진 김권일

[함께 읽으면 좋은 글]

댓글 정책보기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