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재단 ‘변화의시나리오 프로젝트 지원사업’은 공익활동을 하고자 하는 시민모임, 풀뿌리단체, 시민사회단체를 지원합니다. 특히 성패를 넘어 시범적이고 도전적인 프로젝트를 지원함으로써 공익활동의 다양성 확대를 꾀합니다. ‘2019 변화의시나리오 프로젝트 지원사업’에서 어떤 활동들이 진행되는지 그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촛불집회가 한창이던 2016년~2017년 무렵 갑의 횡포를 고발하는 갑질 논란이 사회문제로 대두되었다. 촛불혁명으로 대통령마저 자리에서 끌어내리며 민주주의 역사를 새로 쓰기도 했지만 동시에 일상에서는 여전히 수직적이고 권위적인 모습이 팽배하다. 세대 간의 갈등, 교사와 학생간이 갈등, 은둔하는 외톨이와 따돌림 등 직간접적인 폭력과 폭로로 서로가 서로에게 상처와 모욕, 수치심을 주는 일들이 비일비재하다. 거시적인 민주주의는 혁명적이었지만 과연 일상의 미시적인 민주주의는 어느 정도 완성되어가고 있는 지 의구심이 들었다. 우리는 과연 우리 자신에게 민주주의를 적용하는 법을 언제 배웠던가? 배운 적이 있기는 한 걸까? 나는 나답게 살고 있는 걸까?

어쩌면 이제는 일상에서 민주주의를 완성해나가는 노력이 필요할 때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고 청소년들과 함께 프로젝트를 시작해보기로 했다. 마침 아름다운재단에서 지원하는 변화의 시나리오에 선정이 되었다.

시작은 이런 것이었다. 우리의 몸과 정신에 민주주의가 체화되어 있지 않다는 가정 하에 어떻게 하면 민주주의를 우리의 몸과 정신에 민주주의를 체화하여 일상에서 실행하게 할 수 있을까? 책으로, 이론적으로는 민주주의에 대해 충분히 배웠다. 하지만 머리에서 가슴으로, 가슴에서 손과 발로 움직이는 것이 필요했다. 그래서 모두의 목소리를 듣고, 의견에 대해 지적과 반론 대신 공감하고 지지하는 방식을 사용해보기로 했다. 둥그렇게 둘러앉아 대화하는 형식은 대한민국에서는 여전히 낯선 방식임에도 막상 청소년들과 함께 해보았을 때 생각보다 잘 작동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둥그렇게 둘러앉아 대화하는 형식을 시도해봤다 [사진출처 : 장수YMCA]

둥그렇게 둘러앉아 대화하는 형식을 시도해봤다 [사진출처 : 장수YMCA]

활동 중에는 ‘동심원 대화’라는 것이 있는데 5명~6명씩 모둠을 이루고 대답할 1명을 정하고 나머지 사람이 질문을 하면 자기 생각을 말하면 된다. 이때 중요한 것은 질문하기 전에 질문자는 반드시 ‘질문해도 될까요?’라고 물어야 한다. 이 활동을 하고나서 청소년들의 반응은 이러했다.

 ‘목소리가 작은 친구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더 가까이 다가가야 했는데 그게 좋았다.’
 ‘질문할 때 “질문해도 될까요?” 로 시작하는 게 인상 깊었다. 평소에는 그냥 일방적으로 말했는데, 상대방에게 양해 구하고 동의를 얻는 것이 뭔가 색달랐다.’
 ‘내가 “질문해도 될까요?”라는 말을 들었을 때 왠지 존중받는 느낌이 들었다.’

상대방에게 동의를 구하는 것은 사소하고 간단하지만 일상에서 놓쳐서 애를 먹는 경우가 많다. 동의를 구하는 것이 왜 중요하고 왜 그렇게 해야 하는 지에 대해 체험으로 깨닫게 된다.

2명씩 짝을 지어 한 사람의 눈을 안대로 가리고 다른 한 사람이 안전하게 나무와 잎, 풀과 꽃을 촉감으로 안내해봤다. [사진출처 : 장수YMCA]

2명씩 짝을 지어 한 사람의 눈을 안대로 가리고 다른 한 사람이 안전하게 나무와 잎, 풀과 꽃을 촉감으로 안내해봤다. [사진출처 : 장수YMCA]

몸으로 배우는 평화와 민주주의는 자연물을 통해서도 가능하다. 2명씩 짝을 지어 한 사람의 눈을 안대로 가리고 다른 한 사람이 안전하게 나무와 잎, 풀과 꽃을 촉감으로 안내한다. 눈을 가리면 불안한 마음이 들기 때문에 안내자에 의지하여 상호 신뢰감이 높아지는 것은 덤이다. 이 활동은 자연교감이라고 부른다. 눈을 가린 채 안내자에 이끌려 촉감으로 만났던 것을 눈을 뜨고 보았을 때 새롭게 느껴지고 구체적으로 느껴진다. 평소에 관심도 두지 않았던 것이 새롭게 열린다. 마치 내가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된 것처럼 자연물은 더 이상 내가 알던 예전의 그것이 아니다. 소통과 관계에서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이미 알고 있고 익숙하다고 여기면서 놓치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가!

 ‘누군가의 도움이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알게 되었다.’ 
 ‘안대 쓰고 앞사람 어깨에 손 올리고 걸으면서 시야가 가려진 채 수많은 장애물을 피해 가야 했는데 사람은 서로 의존하는 관계임을 경험했다.’ ‘길잡이 역할을 했는데 뒤에 있는 친구가 믿어줘서 기분이 좋았다.’

민주주의의 기본이 잘 듣는 것이라고 할 때 내 몸이 보내는 신호는 어떻게 들을 수 있을까? 심장의  파동은 뇌의 파동보다도 영향을 미치는 범위가 넓다고 한다. 우리는 경험적으로 이미 잘 알고 있다. 화가 머리끝까지 난 사람 곁에는 그 누구도 가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가 내보내는 심장파동에너지가 위험하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평화롭고 안정된 심장파동에너지를 내보내는 사람의 곁엔 늘 사람들이 머문다. 그 에너지를 함께 느끼고 싶기 때문이다. 민주적이고 평화로운 의사소통이 잘 되지 않는 이유 중엔 자신의 감정(심장에너지)과 상황을 구분하지 못하는 것도 있다. 그래서 나의 감정이 어디에서 기인하고 지금 내 기분상태가 어떤 지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심박과 리듬을 통해 마음의 상태와 심장에너지를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심장바이오피드백 기기를 활용했다. 아무리 말로 떠들어도 잘 받아들이지 않다보니 과학적인 도구의 힘을 빌려야 한다.

심박과 리듬을 통해 마음의 상태와 심장에너지를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심장바이오피드백 기기 [사진출처 : 장수YMCA]


위 그림은 심장바이오피드백을 통해 본 청소년의 마음을 그래프로 표현한 것으로 동일한 청소년의 변화를 비교했다. 왼쪽은 평소 상태를 반영한다. 언뜻 봐도 불규칙적이고 불안해 보인다. 바로 이 상태가 청소년들이 현재 상태를 보여주고 있다. 스트레스와 불안으로 인해 심장에너지 또한 불안정하다. 이런 상태에서는 말도 곱게 나가지 않을 것이고 누군가의 조언 역시 꼰대 질처럼 들리는 건 당연하겠다. 오른쪽은 집중 몰입, 명상의 상태에서 보이는 그래프이다. 왼쪽에 비해 안정적이고 긍정적인 심장에너지 수치도 높은 편이다. 
 
어쩌면 민주주의란 내 몸으로부터 출발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내 몸이 보내는 신호를 잘 듣고 마음의 근력을 기르다보면 상대방과 관계에서 소통이 더 원활해지지 않을까? 이런 작은 변화들이 쌓이고 쌓이다보면 세상도 조금은 더 아름다워지지 않을까?

글, 사진 | 장수YM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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