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재단 ‘변화의시나리오 프로젝트 지원사업’은 공익활동을 하고자 하는 시민모임, 풀뿌리단체, 시민사회단체를 지원합니다. 특히 성패를 넘어 시범적이고 도전적인 프로젝트를 지원함으로써 공익활동의 다양성 확대를 꾀합니다. ‘2019 변화의시나리오 프로젝트 지원사업’에서 어떤 활동들이 진행되는지 그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사장님이 키우는 강아지 사료를 내가 챙기라는데 이건 갑질이 맞나요?”,
“니 머리로 어떻게 이 회사에 왔는지 모르겠다며 저를 면박주는데 어떻게 해야 하나요?”

2019년 7월 16일,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시행되었지만, 직장갑질119 제보는 줄지 않습니다. 직장인들이 익명으로 들어와 상담을 받는 오픈채팅방은 여전히 직장인들의 아우성으로 가득합니다. 내가 당한 것이 갑질인지도 몰랐던 사람들, 사회생활은 원래 그런거라며 마음 속 화를 꾹꾹 눌러야만 했던 이들이 참아왔던 분노를 쏟아내고, 서로를 위로합니다. 직장인들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지금까지 어떻게 이런 일들을 참아왔을까?” 라는 생각까지 듭니다.

동양에서 직장 갑질을 금지하는 법을 최초로 만든 나라가 한국이라네요. 한국에서 유독 직장갑질이 심각한 이유는 ‘갑’들이 우리 사회에 많기 때문만은 아닐겁니다. 유교문화・군대문화・가부장문화・성과주의 등 독특한 문화적 요소들도 갑질을 양산하는 주범이지요.

직장갑질119는 접수된 제보・상담사례를 바탕으로 두 가지 지표를 만들었습니다. 하나는 우리 회사를 측정할 수 있는 ‘직장갑질 지표’이고요. 다른 하나는 나의 감수성을 측정할 수 있는 ‘직장 갑질 감수성 지표’입니다. 갑질 지표는 직장인들이 주관적으로만 느끼던 ‘갑질’의 정도를 측정하는 기준이라고 보시면 되고요. 감수성 지수는 나와 우리 조직의 상황을 점검하는 지표라고 보시면 돼요.

직장갑질 ‘감수성’ 지표

포스터 [사진출처 : 직장갑질119]

포스터 [사진출처 : 직장갑질119]


직장갑질119가 개발한 직장갑질 ‘감수성’ 지표를 바탕으로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실시해보았습니다. 대한민국 갑질 감수성은 68.4점, D등급이 나왔습니다. 간신히 낙제점을 면한거지요. 대한민국 평균 점수 못지 않게 재미있는 것은 성별・직급별 차이였습니다.

여론조사 결과를 직급별로 나눠서 보니, 상위 관리자급과 일반 사원급의 평균차이가 5.9점이나 났습니다. 특히 “원하는 때에 연차 등 법정휴가를 사용하지 못할 수 있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봤더니 일반사원은 D등급이었는데 상위관리자는 F등급이 나왔습니다. 점수로 봐도 12.1점이나 차이가 났어요. 상위 직급의 집단주의, 능력주의 조직문화와 하위 직급의 개인주의 문화의 차이를 보여주는 결과입니다.

성별로 봤을 때 남성 D등급(66.4점), 여성 C등급(70.1점)으로 여성의 감수성이 더 높게 나왔습니다. “직장생활을 원만하게 하려면 술이 싫어도 한 두잔 정도는 마셔줘야 한다.”에 대한 생각을 물어보는 질문에서는 남성은 F(58.8점), 여성은 C(71.6점)등급이 나오기도 했고요.

직장에서 자주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 성별・세대별 감수성 차이가 크다는 것은 직장 갑질이 생길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뜻하기도 합니다.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있는 직장이라는 공간에서 특정 상황에 대해 성별・세대별 감수성 차이가 갈등으로 발전할 수 있고, 여기에서 괴롭힘과 갑질이 생길 수도 있는 것이지요.

직장갑질 지표

직장갑질이 가장 심한 항목 [사진출처 : 직장갑질119]

직장갑질이 가장 심한 항목 [사진출처 : 직장갑질119]

이번에는 직장갑질 지표를 알아보겠습니다. 직장갑질 지표는 입사에서 퇴사까지 직장에서 겪을 수 있는 불합리한 처우에 대해 41개 문항의 지표로 만든 것인데요. 이 지표를 바탕으로 직장인 1,000명 대상 여론조사를 진행했습니다. 이를 통해 회사의 갑질 지수를 발표할 수 있었는데요. 0점에 가까울수록 갑질이 없고, 점수가 높을수록 갑질이 심하다는 의미입니다. 직장갑질119는 2018년에도 직장갑질 지수 조사를 했었는데요. 2018년 조사 결과와 2019년 조사 결과를 들여다보니 재미있는 결과가 나왔어요.

2018 vs 2019 [사진출처 : 직장갑질119]

2018 vs 2019 [사진출처 : 직장갑질119]

2018년에 비해 공공부문은 갑질이 9.6점이나 줄었는데, 민간중소영세기업은 갑질이 오히려 3.0점이나 늘었습니다. 왜 이런 결과가 나타난걸까요.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시행 이후 교육 경험을 물어보니 “교육을 받은적이 있다.”고 응답한 직장인들이 공공기관에서 높더라고요. 공공기관의 59.7%가 교육을 받아본 적이 있는데, 영세 개인 사업자들은 교육을 받아봤다는 경험이 10.1%밖에 안됐습니다. “교육을 하고, 사내규정을 정비하면 갑질이 줄어든다.”는 것을 보여주는 결과가 아닐까요?

2020년의 소망

2019년 대한민국 평균 감수성은 D등급이고, 갑질지수는 여전히 높습니다. 특히 중소영세사업장에서 점점 심해지는 갑질은 지금까지 우리가 온 길보다 가야할 길이 더 많다는 걸 보여주는 것 같아 마음이 무겁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변화를 촉진하기 위한 노력입니다. 변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악덕 사업주를 혼내주는 것도 필요하지만, 시작점을 정해주는 것도 필요합니다. 우리 회사(조직)의 변화를 어디서부터 만들어 나갈지 고민하려면 우리 회사(조직)이 어디쯤 와있는지부터 알아야 하니까요. 직장갑질 감수성 지표와 직장갑질 지수는 어떻게 보면 추상적으로 보일 수 있는 ‘갑질’을 구체적으로 측정할 수 있는 도구입니다. 변화의 방향과 정도를 잴 수 있는 나침반이지요.

직장갑질119는 아름다운 재단과 함께 만든 이 두 가지 지표를 매년 발전시켜 나갈 계획입니다. 문항을 현실에 맞게 업데이트 하면서 한국 사회가 얼마나 변화하고 있는지, 어디가 더 변해야 하는지 방향을 제시할 예정입니다. 이러한 노력들이 2020년에 꽃을 피워 조금 더 다닐만한 직장,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존엄성이 지켜지는 직장이 많아지기를 바랍니다.

글, 사진 | 직장갑질 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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