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열여덟 어른 캠페이너 ‘허진이’입니다. 보육원 퇴소 이후, 저는 많은 분들의 관심과 사랑 속에서 잘 자랄 수 있었습니다. 이제 제가 받았던 진심이 담긴 말과 따뜻한 관심을 저와 같은 친구들에게 돌려주기 위해 <허진이 프로젝트>를 시작합니다.

보호종료 당사자인 청년들과 함께 아동양육시설 아동들을 대상으로 자립 강연을 진행하는 프로젝트인데요. 본 프로젝트를 통해 강연 당사자들도 보육원에서의 삶과 현재의 나를 생각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더불어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제 삶과 관점을 담은 에세이를 전해드리려 해요. 평범한, 보통의 청춘들의 삶이 전해질 수 있기를 바라며, 지금 시작합니다.

숫자 ‘3’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숫자다. 1과 5의 숫자 중 가운데 위치한 느낌이 안정감을 주는 듯해서다. 허진이 프로젝트 팀원들과 세 번째로 만났다. 허진이 프로젝트 팀원들과 세 번째로 만났다. 가까워진 듯해도 깊지는 않은 정도. 그 온도의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모임 장소인 아름다운재단으로 향했다.

이날 모임에서는 강연 준비를 구체적으로 하기 위한 역할분배를 하기로 했다. 역할을 나누기 위해 내가 제안한 방법은 간단했다. 사소하더라도 멤버들이 자신의 기량을 최대한으로 표현할 수 있도록 할 것. 충분히 기여할 수 있는 자기 재능을 자유롭게 얘기하기. 그게 전부였다.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팀원들에게 질문했는데 반응이 없었다. 다들 쭈뼛 거리는 분위기였다. 누구라도 먼저 말하기를 기다리며 머뭇거리는 눈치다. 머리칼을 바쁘게 쓸어내리며 생각할 틈이 없는 듯해 보이는 멤버, 턱을 괴고 미간이 찌그러진 줄도 모른 채 진지하게 고민하는 멤버, 어떤 대답도 준비하지 않고 있는 듯해 보이는 멤버, 평소에도 좀처럼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한 멤버는 어떤 미동도 없이 허공만 바라보고 있었다. 질문이 간단치 않았던 것일까? 다르게 질문을 던져봤다.

“규환씨, 모임에 자신이 충분히 기여할 수 있는 역할은 무엇인가요?”

“음… 자료정리요…! 그리고 저의 유머감각과 낯가림 없는 성격이 아이들과 빨리 친밀감을 형성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이어서 다른 팀원인 상미가 얘기했다.

“저는 사진 찍는 거랑 분위기에 맞춰 플레이리스트 만드는 거 진짜 좋아해요! 평소에 집에 혼자 있을 때 공허해서 음악 틀어놓다보니 아는 음악들이 많아졌어요.”

질문을 이어받은 또 다른 멤버는 자신은 공구를 다루고 장비를 손볼 수 있다고 얘기하고, 옆의 친구는 어릴 때부터 운동을 배워 기본체력이 좋아 아이들과 오랜 시간 몸으로 놀아줄 수 있다고 했다. 조금 시간이 걸렸지만 각자가 지닌 고유한 장점을 듣다보니 불행한 삶이라고만 생각했던 우리 삶에서 특별함이 보이는 듯 했다. 보육원 퇴소 후, 텅 빈 방과 마음을 채우기 위해 흘려 넣은 음악들, 그 덕에 적재적소에 알맞은 음악을 틀어낼 수 있는 능력이 생기고, 어릴 때 보육원에서 배운 갖은 운동 덕에 몸으로 하는 활동은 무엇이든 자신이 있고, 어릴 적 ‘고아’라는 이유로 괴롭힘을 경험한 친구는 그럼에도 의연할 수 있는 힘과 지혜를 배워 강인한 사람이 될 수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나 역시 그러한 경험이 있었다. 언젠간 우연히 참여한 한 워크숍에서 감사일기라는 것을 쓸 기회가 있었다. 부지런히 써내려가는 남들과 다르게, 펜만 굴리고 있는 내게 선생님이 다가왔다. “자신만이 가진 특별함을 감사함으로 여겨봐요. 그에 대한 생각들을 쭉 적어보는 거지요.” 잠시 고민 후 써보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과는 사뭇 다른, 내 삶에서 누릴 수 있는 장점 혹은 감사함은 뭐가 있을까? 일단 가족이 없는 상황에서 찾을 수 있는 감사함이라면.

결혼할 때 양가어른들의 간섭을 피해 우리만의 축제가 될 수 있다.
벌어들이는 수입을 온전히 나를 위해서만 쓸 수 있다.
내 삶에 엄마, 아빠가(그런 마땅한 존재) 4명이 된다. 그 분들 모두 경제적, 정서적 지원을 아끼지 않으신다.

내 삶에서 가족이 없다는 건 결핍이다. 하지만 그 결핍이 지닌 특수함은 내 삶에서 누군가의 간섭에서 자유로울 수 있음을 의미하기도, 온전히 나 자신에게 집중하는 삶이 가능하다는 의미도 된다. 무엇보다 내 삶 안에는 분명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에게 많은 마음을 받았다. 종이에 떠오르는 걸 하나씩 적어내려가니 나만이 가진 삶의 특별함이 보였다. 누군가에게 버려진 사람으로서가 아닌, 나 자신에게 집중하며 내 삶을 온전히 내 것으로 정할 수 있고, 어떤 삶을 살아왔던 상관 없이 누군가에게 사랑받고 있다는 분명한 사실을.

과거의 나는 이미 누군가 나를 포기했다는 사실만으로 흘러가는 대로 가는 삶의 태도를 지닌 채 살아왔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내게 주어진 삶에 특별함을 발견해내는 일은 삶을 사랑하기 위해 필요한 기본 행위라는 것을 말이다. 내 삶의 주인으로 산다는 것은 주도권을 갖는 것, 즉 일어나는 일에 나만의 의미와 생각들로 풀이를 해야 하는 것이었다.

누군가가 포기했다고만 생각했던 ‘고아’로서의 삶. 마음만 달리 먹고 바라보면 낙심할 일은 전혀 없는 것이었다. 비슷한 환경을 가진 채 살아가는 멤버들과의 시간을 통해 나는 오늘도 또 성장할 수 있다. 삶을 객관화해서 볼 수 있는 시선을 나눠준 그들이 있기에 나의 특별함은 늘어난다. 참으로 복되었다.

글. 허진이 캠페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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