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다가 다쳤다. 무엇이 중요할까? 신속하게 치료받는 일이다. 이럴 때 노동자가 적절한 치료를 받아 일터에 복귀하도록 돕는 것이 산재보험이다. 산업재해보상보험법 1조에는 “근로자의 업무상 재해를 ‘신속’하고 ‘공정’하게 보상”하는 것이 산재보험의 목적이라 적혀 있다. 그러나 2019년 아름다운재단의 ‘산재보험 사각지대 해소 및 형평성 강화를 위한 연구’ 결과 지금의 산재보험은 신속하지도 공정하지도 않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2020년 아름다운재단은 한발 더 나아가 산재보험에 가입조차 어려운 노동자 집단을 추적하고 있다. 이동노동자. 돌봄노동자. 농어업 노동자 세 집단이다. 이들은 통계에도 잡히지 않는 말 그대로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연구를 진행 중인 연구위원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산재 가입이라는 높은 문턱에 걸린 사람들

김명희 연구위원장(시민건강연구소 상임연구원)은 “산재 적용을 못 받는 분들 중에서도 가장 취약한 집단을 선정했다. 그간 주목받지 못해 연구된 바가 적은 집단을 중점으로 사각지대 문제를 드러낼 것이다”라고 말했다. 예를 들어 이동 노동자 중에서도 소속이 불분명해 산재 가입율이 확연히 낮은 배달 노동자를 연구 초점 집단을 선정했다. 안현경 연구원(공인노무사, 이동 노동자 연구 담당)은 “최근 배달 노동자가 늘어나면서 사고도 함께 증가했는데 산재 보장을 받는 노동자는 극히 드물다”고 말했다.

김명희 연구위원장(시민건강연구소 상임연구원)

11년 전, 배달 노동자들이 가입할 수 있는 특수형태근로종사자(이하 특고) 산재보험 당연가입 제도가 시행됐어요. 지난 11년간 산재보험에 가입한 특고노동자는 얼마나 될까요? 3%입니다. 이건 곧 한국에서 특고노동자는 대단히 운이 좋아야 일하다 다쳤을 때 보상을 받을 수가 있다는 의미에요.”
– 안현경 연구원 (이동 노동자 담당 연구원)

그중에서도 배달 노동자의 산재 가입율은 1%로 가장 낮다. 그 이유는 고용노동부가 제시하는 ‘전속성’(한 업체에 고정적으로 소속되어 일해야 함)을 인정받기 어렵기 때문이다. 퀵 서비스나 배달 노동자는 대부분 여러 곳에서 콜을 받아 일하기 때문에 ‘전속성’이란 문턱을 넘기 어렵다. 지극히 예외적으로 ‘전속성’을 인정받는다고 해도 보험금을 내기를 꺼리는 사업주들이 적용 제외 신청서 작성을 강제하는 사례가 많다.

안현경 연구원(이동 노동자 연구 담당)

운 좋게 산재보험에 가입한다 해도 12대 중과실에 해당하는 교통사고가 나면 보장을 받지 못해요. 이동노동자는 대부분 사고가 교통사고잖아요. 개인 과실과는 상관없이 보장해야 하는 사회보험인데도 이런 제외 상황을 두어 사각지대를 양산하고 있어요.”
– 안현경 연구원 (이동 노동자  담당 연구원)

안현경 연구원이 인터뷰한 이동 노동자는 모두 “산재보험은 좋은 제도이고, 국민 모두 가입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정작 자신들은 특수고용노동자란 이유로 적용 제외 신청을 요구받거나 개인사업자의 경우 보험비 부담이 커서 가입을 못 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안 연구원은 “사각지대가 굉장히 넓어 이게 과연 사각지대가 맞나 싶을 정도다”라고 말했다.

농어업 역시 사고가 많은 위험한 직군이다. 고용노동부가 발표하는 산업재해현황 분석 자료를 살펴보면 광업, 어업, 임업, 건설업, 농업의 순서로 산업재해 발생률이 높다. 그런데도 농림어업 산업의 산재보험 가입율은 약 9%(2017년 기준)에 불과하다.

정해명 연구원(공인노무사, 농어업 노동자 담당 연구원)은 “농민과 어민의 경우 애초에 산재보험 대상이 아닌 경우가 많다”라고 말했다. 산재보험 자체가 “고용된 근로자”를 기준으로 삼다 보니 자영업에 해당하는 농민, 어민의 경우 가입 자체가 어렵다.

정해명 연구원(농어업 노동자 연구 담당)

자영업이 아니더라도 농어업 산업은 5인 이하의 사업장이 산재보험 가입 대상에서 제외돼요. 임의 가입도 안 됩니다. 여타 직군은 직원 수가 1인 미만이어도 산재보험 가입 대상인데 말이죠. 이런 상황에서 이들이 의지하는 건 농협의 민영보험이지만, 그 역시 35%는 가입조차 못 한 상태에요.”
– 정해명 연구연 (농어업 노동자 담당 연구원)

이주노동자의 경우 상황은 더 심각하다. 농촌에서 일하는 이주 노동자는 늘어나는데 이에 대한 사회적 보장은 한참 멀었다. 산재보험 가입은커녕 몇 년 동안 병원에 가지 못하는 사례가 수두룩하다. 김명희 위원장은 “우리의 먹거리를 책임져주는 이주 노동자의 인권을 아무도 지켜주지 않고 있다”며 이들에게도 산재보험의 문이 열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산재보험이 특권이 아닌 사회를 위해

간병 노동자의 경우 업무 특성상 환자를 안거나 부축하는 일이 많다. 대다수 간병 노동자들이 근골격계 통증을 호소하지만 업무상 재해로 인정받는 사례는 드물다. 간병 노동자 대부분 중고령 여성이 많아 퇴행성 질환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업무상 재해 여부를 다투려면 산재보험부터 가입해야 하는데 그조차 어려운 경우가 많다. 간병 노동자를 포함한 돌봄 노동자 역시 소속이 없거나 불분명해 산재보험 가입 대상이 아닌 경우가 다수다.

변수지 연구원(공인노무사, 돌봄 노동자 담당 연구원)은 무엇보다 “산재보험 가입 근거를 ‘근로자성’이 아닌 ‘일하는 사람’으로 확대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현재의 기준은 사각지대만 양산하는 비현실적인 기준이기 때문이다.

변수지 연구원(돌봄 노동자 연구 담당)

사회보험 제도는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을 위해 만들어진 거예요. 그런데 한국은 대기업부터 산재보험 적용을 시작했죠. 더 어려운 사람들을 지원하는 방식이 아니라 관리하기 쉬운 방식을 택하기 때문에 자꾸 사각지대가 생기는 거예요.”
– 변수지 연구원 (돌봄 노동자 담당 연구원)

김명희 위원장은 “산재 보험은 특권이 아니다. 건강보험이 특권이 아니듯 산재보험 역시 일하는 사람 누구나 보장받아야 한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지금은 취약한 노동자일수록 더 보장을 받기 힘든 게 현실이다.

사회적으로 몰아주기가 있는 거 같아요. 힘든 일을 누군가에게 몰아주고 눈에 보이지 않으니까 사람들은 무감각해지잖아요. 그러면서 노동 환경은 더 열악하고 위험해지고 있어요. 산재보험의 문제는 숱한 차별이 모인 결과라고 생각해요. 코로나 시대에 나의 안전을 위해 배달 음식을 시킨다면, 누군가 그 위험 부담을 지고 음식을 배달한다는 사실을 기억하면 좋겠어요.”
– 안현경 연구원 (이주 노동자 담당 연구원)

산재보험 사각지대 연구위원

<산재보험의 문 밖에 있는 사람들> 연구보고서 발간

연구팀은 그간의 연구 결과를 기반으로 ‘산재보험의 문 밖에 있는 사람들’ 연구보고서를 발간했다.  이동돌봄, 농어업 노동자에 대한 사례연구와 현재의 산재보험제도가 가진 사각지대의 문제점을 구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다. 포용적 산재보험을 위해 필요한 대안도 함께 볼 수 있다. 보고서 발간뿐 아니라 연구 내용을 카드 뉴스나 만화 등 다양한 콘텐츠로 가공해 알릴 생각이다. 사람들의 인식이 바뀌어야 제도가 움직일 수 있기 때문이다. 

[다운로드] 2020_산재보험의_문_밖에_있는_사람들_노동건강연대_아름다운재단.pdf


글ㅣ우민정, 사진ㅣ임다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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