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기부단체들의 활동이 아프리카나 최빈민국 어린이들을 돕는 데 집중적으로 쏠려 있는 것 같다. 미국에서 돌아와 아름다운재단 일을 맡으면서 가장 놀라웠던 점이다. 짧은 기간에 이뤄진 전지구적인 빈곤 문제에 대한 우리 사회의 관심과 기부문화의 성장은 놀랍고 신선했다. 7년 만에 전국민이 자판기 커피에서 원두커피로 싹 바꿔 마시고 있듯, 기부문화도 획일적으로 가고 있는 듯해 낯설게 느껴지기도 했다. 아프리카 아이들의 빈곤에 대한 고민 속에서 우리 사회 속 불평등에 옭매인 아이들의 모습은 잊혀지고 있는 건 아닌지 자문해 본다.

미국에서 이민자의 설움(?) 비슷한 걸 겪었기 때문일까? 지난 10여년 동안 크게 늘어난 한국 사회 다문화가정 아이들이 겪을 정체성의 혼란, 경제·사회·문화적인 결핍에 자꾸 눈길이 간다. 아프리카에 버려진 아이들의 헐벗음을 걱정하면서, 정작 방글라데시인 엄마를 둔 대한민국 아이들의 열패감엔 무심했던 게 아닐까? 아프리카 아이들의 끼니를 위해 매달 통장으로 꼬박꼬박 돈을 보내면서, 엄마·아빠 없이 보육원에서 자라고 있는 대한민국 1만6000여명 아이들은 아침식사로 뭘 먹고 있는지 한 번도 고민해 보지 않았던 건 아닐까?

아름다운재단이 ‘나는 아이들의 불평등한 식판에 반대합니다’ 캠페인을 시작했다. 대한민국 속 아이들의 불평등 현실을 보육원 아이들의 식판을 통해 들여다보고 해결책을 찾자는 취지다. 캠페인은 엄마·아빠 없이 사는 보육원 아이들의 식비가 한 끼당 1420원으로 책정되어 있다는 사실에서 출발했다. 저소득층 아이들을 돌보는 지역아동센터의 보건복지부 권고 급식 단가도 한 끼당 3500원. 보육원 아이들의 한 끼 식비를 3500원대로 올리려면 매년 300억원 정도의 재원이 더 필요하다. 일단 2개 보육원 130명 아이들의 1년치 식비 부족분 3억300만원을 모금하는 캠페인을 시작했다. 모금액이 많아지면 지원 대상 보육원을 더 늘려가겠지만, 목표는 식비 부족분을 무작정 채워주자는 게 아니다. ‘보육원 아이들의 평등한 식판’을 위한 정부의 적정예산 확보가 그 목표다. 캠페인과 모금, 지원 결과를 토대로 정부 대상 청원 작업을 펼칠 계획이다.

퍼주기 식의 일시적 지원 형태를 띠고 있는 경우가 많아 보인다. 근본적인 해결책인 제도나 정책 개선을 염두에 두지 않은 채 말이다. 아름다운재단이 전기료를 3개월 이상 못 내 단전 위기에 놓였던 저소득 가구의 전기료 지원사업을 통해 혹서기·혹한기 단전유예 시행령, 전류제한장치 설치 등의 정책 변화를 이끌어내고, 미숙아(한글이름 이른둥이) 지원사업을 통해 보건복지부 이른둥이 치료비 지원예산을 2배 이상 증액시킨 성과는 좋은 사례다. 기부자의 뜻을 제대로 살리는 길은 끊임없이 지원하는 것이 아니라, 지원할 필요가 없어지게 하는 정책 개선으로 연결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요즘 휴대전화로 그림을 그리는 데 재미를 붙였다. 기부자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그림으로 그려 보내기도 한다. 오늘은 사무실에서 결재하는 틈틈이 식판을 열심히 그렸다. 이번 캠페인에 동참해 줄 기부자들께 보내기 위해 그리는 그림이다. 식판 구석구석에 큼직한 고등어 한 토막, 예쁜 달걀 프라이 하나, 흰 우유 한 컵, 신선한 오이도 그려넣어 본다. 1420원짜리로는 아무래도 힘들다. 아이들에게 주고 싶은 풍성한 식판을 상상하며 다시, 또다시 고쳐 그려본다.(한겨레 기고.2012.11.15)

김미경 아름다운재단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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