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재단 사무총장 일을 시작한 지 아직 1년이 채 안됐다. ‘풋내기 사무총장’으로서 나보다 훨씬 오랫동안 재단 일을 해 온 간사들과 간혹 의견 충돌이 있곤 한다. 첫 번째 충돌은 기부금을 받는 사람들의 노출 여부를 둘러싸고였다. 말하자면 아름다운재단은 기부자들의 소중한 기부금을 모아 도움이 꼭 필요한 사람들, 즉 수혜자들에게 나눠주는 일을 하는데, 그 수혜자들을 외부에 노출할지 말지를 둘러싸고였다. 

“아름다운재단은 수혜자를 노출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습니다.”

“수혜자를 노출하지 않는다고? 왜?”

“수혜자들의 인격을 지켜주기 위해서입니다. 저희는 그걸 중요한 운영 원칙으로 삼고 있습니다.”

“도움을 받는 사람들이 원하지 않는 노출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는 데는 찬성일세. 하지만 수혜자를 절대 노출시키지 않고 어떻게 모금을 할 수 있지? 기부자들에게 더 많은 기부를 하도록 설득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어떻게 지원해서 어떤 구체적인 변화를 가져왔는지를 자세히 알리는 게 더 필요하지 않을까? 사람의 변화를 보여주는 게 가장 설득력이 있고 말이야.”

“기금 보고는 충실하게 합니다. 어떤 식으로 기부금을 썼는지 10원,1원까지도 투명하게 모두 공개합니다. 하지만 사람은 가능한 공개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합니다.”

“좋아좋아. 우리가 이렇게 도와주니까 감사합니다~하고 꾸뻑꾸뻑 절하라고 강요하는 것에는 나도 절대절대 반대야. 하지만 인생의 어떤 시기에 사회로부터 물질적인 도움을 받는다는 것이 과연 부끄러운 일일까? 그걸 노출하는 것이 인권을 침해하는 일일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데?”

“도움을 받는 본인들이 그렇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실제 피해사례가 많이 있었습니다.”

“알겠어. 수혜자들에게 피해가 가는 상황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것은 중요하다고 생각해. 하지만 그 때문에 수혜자를 아예 노출시키지 않는다는 원칙을 고집하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생각해.”

“본인이 거부하거나 인권 피해의 여지가 있을 때는 절대 할 수 없습니다.”

“그럽시다. 그런 일은 무슨 일이 있어도 피하도록 합시다. 하지만 수혜자 노출은 절대 안 한다는 원칙은 없앱시다!”

우리는 어렵사리 합의점을 찾았다. 수혜자의 비참한 모습을 클로즈업해 동정심을 유발하면서 기부를 끌어내는 식의 행위는 절대 하지 않는 원칙은 계속 지켜 나가기로. 하지만 인권을 침해하지 않는 선에서 수혜자들의 건강하고 당당한 이야기를 더 많이, 더 적극적으로 끌어내 더 많은 사람들이 기부하고 싶은 맘이 들도록 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로 말이다. 

내가 재단이 수년간 지켜온 소중한 원칙과 뜻에 깊이 감동받으면서도 수혜자를 더 노출시켜 나가자고 계속 주장했던 데는‘작은’확신이 있어서였던 것 같다. 나 자신을 포함한 우리 모두는 언제라도 장애인이 되거나 인생의 낭떠러지로 곤두박질치게 될 가능성에 노출되어 있는 약하디 약한 존재가 아닌가? 따라서 인생의 어느 순간 참을 수 없는 안타까운 지경에 놓여 사회의 도움을 받는다는 것은 부끄러워 할 일이 전혀 아니라는 생각이다. 오히려 그 사람을 그런 어려운 상황에 놓이게 한 사회 공동체가 함께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 아닐까? 또한 받은 도움은 인생의 또 다른 시기에, 또 다른 모습으로 사회에 몇 갑절로 되돌려 줄 수도 있다는 데 대한 확신이다.  

아름다운재단이 한부모여성가장의 창업을 지원해 온 ‘희망가게’ 사업이 올해로 10주년째를 맞는다. 그동안 사별·이혼·사채이자·파산 등으로 어려움에 처했던 1백50여명의 한부모여성가장들이 아름다운재단의 지원으로 자립했다.‘희망가게’수혜자 중 한 사람인‘해든 D&P’ 김영신 대표. 2007년 아름다운재단 지원으로 인쇄업을 시작한 김 대표에게는‘희망가게’와 관련한 아픈 기억이 하나 있다. 2008년 언론에 김 대표의 이야기가 보도되면서 사생활 침해 차원의 피해를 입었던 것. 

 

“개인사가 노출되면서 평상시에는 자연스럽게 대하던 업체 사람들이 안타까운 눈초리로 쳐다보는 듯해 참 싫었어요. 저는 오히려 당당한데 말입니다. 기자가 싣지 않겠다고 약속한 내용까지 기사화하고, 팩트도 틀리게 보도하면서 너무 고통스러웠지요.” 

하지만 김 대표는 “그래도 제 이야기를 통해 용기를 얻었다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힘이 되었어요. 제 개인 이야기가 노출되어서 또 다른 한부모여성가장들을 새 출발의 선에 설 수 있게 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다면 얼마든지 또 이야기하고 또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하고 힘주어 말했다. 지난해 7월 아름다운재단 지원금 상환을 완료한 김 대표는 수혜자에서 기부자로 변신했다. 매달 꼬박꼬박 일정 금액을 아름다운재단에 기부하고 있다. 

‘도와준다’는 이유로 내놓고 싶지 않은 수혜자들의 어려운 순간들을 이야기하라고 강요할 수는 없다. 수혜자들은 모두 ‘불쌍하고 비참하다’는 고정관념식 언론의 보도 양태도 사라져야 한다. 

우리는 혹시 모금액수를 높이기 위해 수혜자들의 이야기를 팔아먹으려는 게 아닌지 스스로 혹독하게 점검하고 또 점검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믿는다. 인생의 어느 한 시기 수혜자가 된다는 것은 절대 부끄러운 일이 아니란 것을. 그리고 무엇보다 세상엔 영원한 수혜자도, 영원한 기부자도 없다는 것을. 인생은 길다. 

김미경/아름다운재단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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