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열여덟 어른 캠페이너 ‘허진이’입니다. 보육원 퇴소 이후, 저는 많은 분들의 관심과 사랑 속에서 잘 자랄 수 있었습니다. 이제 제가 받았던 진심이 담긴 말과 따뜻한 관심을 저와 같은 친구들에게 돌려주기 위해 <허진이 프로젝트>를 시작합니다. 보호종료 당사자인 청년들과 함께 아동양육시설 아동들을 대상으로 자립 강연을 진행하는 프로젝트인데요. 본 프로젝트를 통해 강연 당사자들도 보육원에서의 삶과 현재의 나를 생각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더불어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제 삶과 관점을 담은 에세이를 전해드리려 해요. 평범한, 보통의 청춘들의 삶이 전해질 수 있기를 바라며, 지금 시작합니다. |
이례적인 위기들이 연속되었던 지난 한해는 아마 많은 이에게 힘든 해로 자리할 듯싶다. 나 또한 진행되던 일들에 대한 중단과 취소가 잇따르면서 좌절을 경험했다. 자의가 아닌 타의로 인해, 아니 그보다 더한 영역으로 인해 ‘할 수 없음’의 상태가 된다는 것이 자연 앞에 인간이 얼마나 연약하고, 무력한지를 느끼게 해주었다.
그럼에도 내겐 지난 한해는 가장 많은 에너지를 쓰고, 열정을 다한 시간이었다. 마음과 행동이 일치하도록 매 순간 부단히 노력했고, 덕분에 소진과 회복을 반복하며 더 단단한 사람이 된 것 같기도 하다.
<허진이 프로젝트> 보육원 자립 강연은 자기소개를 하는 ‘인스타 라이프’와 자립선배들의 경험을 나누는 사례발표, 주어진 사례를 통해 자립 정보를 직접 찾아보고 발표하는 정보교육이라는 3가지 프로그램으로 구성되었다. 각각의 프로그램에는 멤버들과 함께 모은 ‘마음’이 담겼고, 강연에서 후배들을 만날 때마다 마음은 커져가고 살아 움직여 전해지는 것 같았다.
마음. 지난 한해 가장 많이 쓴 단어가 아닐까 싶다. 멤버들을 만난 순간부터, 보육원 자립 강연 기획과 진행을 하고, 마무리되기까지 전하고자 하는 마음들이 잘 담겨졌는지가 가장 중요했기 때문이다. 마음을 모으고, 담아내는 일이 왜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일이 되었을까, 그 시작을 향해 거슬러 올라가면 또 멤버들의 마음이 있다.
기억에 남는 강연이었으면 좋겠어요.
자립 강연 준비 모임 중 한 멤버가 들려준 바람이었다. 그것은 곧 우리 모두의 바람이 되었고, 우리는 기억에 남는 강연이 무엇일지 열심히 고민했다. 먼저 멤버들은 본인들이 시설(보육원)에서 지낼 때 들은 강연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강연이 무엇이었는지 함께 나눴다.
“보호종료 당사자 선배님이 오셔서 나눠줬던 이야기들이 아직 기억에 남아요.”
“진심을 다해주던 사람이 기억에 남습니다.”
“강연에서 알려줬던 자립 정보들을 활용하기 위해 직접 찾아봤던 기억이 있습니다.”
기억을 애써 헤집지 않아도 당시 강연자의 진심과 실효성 있는 자립 정보, 그리고 자립 선배의 고백들이 아직 멤버들의 기억에 남아 자리하고 있었다.
“그럼 우리 강연이 기억에 남게 하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기억에 남게 한다는 문장에서 오는 모호함 때문인지 도저히 감을 못 잡은 내가 멤버들한테 되물었다. 그러자 한 멤버가 자신에 찬 목소리로 얘기했다.
“우리가 갖고 있는 여러 가지 마음을 솔직하게 전하면 되지 않을까요? 우리가 교육자가 아닌 그저 먼저 자립을 경험한 선배로서 후배들이 걱정되고, 응원해주고 싶은 마음을 전해주는거죠.”
자신에 차있던 목소리만큼 뚜렷한 해답같은 대답에 다른 멤버들은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오케이, 그럼 우리 마음을 한 번 모아보죠!”
이렇게 해서 우리는 마음을 모으고, 담아내는 일에 열중하게 되었다. 후배들에게 지나쳐가는 순간이 아닌 자립생활에 좋은 양분이 될 기억에 남는 강연이 되기 위해서 말이다. 그렇게 모아진 마음들은 각각의 프로그램에 후배들이 좀 더 당당하게 세상과 소통하길 바라는 마음, 시행착오를 겪지 않길 바라는 마음, 자신의 권리를 찾으며 살길 바라는 마음으로 전할 수 있었다.
여전히 추상적이고 모호한 ‘마음’이라는 것이 얼마만큼 후배들에게 잘 전해졌는가를 설명하는 것은 참 어렵다. 하지만 그것을 알아차리는 것보다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우리는 찾아낸 듯 하다. 바로 전해지는 것만큼 가치가 있고, 기억에 남을 것은 전해지길 바랐던 멤버들의 간절함이라는 것을 말이다.
글 : 허진이 캠페이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