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재단 ‘변화의시나리오 스폰서 지원사업’은 사업명에 드러나듯이 공익단체의 활동에 ‘스폰서’가 되기위한 지원사업입니다. 시민사회의 시의성 있는 단기 프로젝트 지원을 위해 다양한 사업들이 펼쳐졌는데요. 2020년 6월 ‘변화의시나리오 스폰서 지원사업’의 선정단체인 ‘생활교육공동체 공룡(난리법석)’에서 보낸 사업후기를 전해드립니다.

👉 아래 글은 본 사업의 제작물인 <군산에서 부는 바람>에 기고된 생활교육공동체 공룡의 설해님이 작성한 “전쟁을 끝내고 평화를 심자”임을 알려드립니다.

난리법석 프로젝트는?

2020년 3월, 평화바람과 생활교육공동체 공룡이라는 두 단체의 제안으로 군산 인근의 지역 활동가들과 다른 여러 지역에서 미디어활동가, 다큐멘터리 감독, 사진가, 음악가, 디자이너, 작가, 연구자 등 다양한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우리는 3년동안 미군기지 탄약고 안전거리 확보 사업으로 주민들이 삶터를 잃고 흩어져야 했던 하제 마을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미군기지와 새만금 사업이 오랜 시간에 걸쳐 군산 지역에서 어떤 문제를 일으켜 왔는지, 또 이를 해결하기 위한 시민운동은 어떻게 이어지고 있는지 알려보고 싶었습니다. 군산의 이야기를 잡지와 음악, 영상, 라디오 등의 매체로 기록하고 알리는 프로젝트 <난리법석>을 시작한 이유죠!

군산시 하제 마을 : 폐허가 아니라 여전히 삶의 터전이 될 수 있는 장소

군산시 옥서면 선연리의 하제 마을은 미군기지 중에서도 탄약고에 바로 인접한 마을입니다. 갯벌이 발달해 조개잡이로 큰 부락을 이룬 곳이었지만 새만금 사업 이후 마을은 생기를 잃어갔고, 미군기지 탄약고 안전거리 확보 명목으로 이주가 시작된 이후로는 하제 마을을 비롯해 5개 마을의 약 644세대의 가구가 거의 다 이주하게 되었습니다.
매일 같이 전투 훈련으로 인한 소음과 불안감에 시달리면서도 농사를 짓고 어업을 하며 공동체를 이루어 살아온 마을 주민들은 제대로 된 거주지나 생계를 확보하지 못한 채 뿔뿔이 흩어져 살아가게 되었고, 이들의 경험과 기억은 말과 글로 기록되지 못하고 점점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가는 듯 했습니다.

하지만 하제 마을에는 아직도 두 가구의 주민들이 남아서 살아가고 있었고 빈 땅에 농사를 지으며 고향을 찾아오는 사람들과 오래된 팽나무와 소나무를 보러오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봄이 오자 마을에는 복사꽃과 목련이 화사하게 피었고 돼지감자를 캐러 온 할머니들이 오랜만에 만나 서로의 안부를 묻기도 했습니다. 산딸기와 두릅은 어디에서 따는지, 마을 곳곳에 무엇이 있었고 마을을 떠난 사람들은 어디에서 무얼 하는지, 아직도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고 있는 이야기들을 들으면서 우리는 실제로 본 적은 없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살아가던 시끌벅적한 마을을 상상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팽나무 아래 고구마와 목화를 심고, 오디와 죽순을 따며 하제 마을의 일부가 되어 보았습니다. 조금씩 발걸음을 더할수록 하제 마을은 언제든지 군사기지와 무기가 들어와도 되는 폐허가 아니라 여전히 삶의 터전이 될 수 있는 장소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 와중에도 남아있는 집들의 철거는 계속됐고, 펜스와 경작 금지 푯말이 늘어갔습니다. 이주하지 않은 두 가구의 주민들은 계속해서 국방부가 제기하는 토지 인도소송에 대응해야 했습니다. 시민사회단체들은 국방부가 매입한 땅을 미군에 공여하려고 하는 게 아닌지 촉각을 곤두세우며 하제 마을의 생태 문화적 가치를 지켜낼 것을 군산시와 시민들에게 호소했습니다.

우리는 계절마다 미군기지 둘레를 따라 걸으며 안내해 주시는 활동가들로부터 기지가 어떻게 확장되고 새로운 무기들이 들어왔는지, 환경오염과 소음 등 어떤 피해를 만들어왔는지 들을 수 있었습니다. 인터뷰를 하는 중에도 몇 번씩이나 귀를 먹먹하게 하는 전투기의 굉음이 들려왔습니다.
이미 군산시 옥서면의 60% 이상이 미군기지로 사용되고 있는데, 주민들이 이주한 땅에 또 다시 미군기지가 확장되고 새로운 탄약고가 지어진다면 미군기지 인근의 피해 지역 또한 확대되고 계속해서 누군가는 삶터를 잃어갈 것이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인터뷰에 참여한 한 활동가는 자신이 기지감시 활동을 시작했던 20여 년 전과 비교해 기지는 점점 건물이 늘고 번듯해져 가는데 마을은 그대로이거나 쇠락해 가는 게 눈에 보여서 안타깝다고 했습니다. 생각해보니 우리가 이 곳에 찾아오기 시작한 1년도 채 되지 않는 시간 동안에도 벌써 풍경이 깜짝 놀랄만큼 많이 바뀌어 있었습니다. 처음 왔을 때는 있었던 건물과 집터들이 어느새 대부분 자취를 감췄습니다.

미군기지 정문 앞에서 인터뷰를 할 떄는 헌병들과 경찰들이 와서 촬영을 제지하기도 했습니다. 예전에는 헌병들이 문 밖으로까지 나와서 활동을 막는 일은 없었다고 했습니다. 문득 20여 년 째 이어지는 미군기지 정문 앞 수요집회를 준비하면서 가끔 한 두 명이 앉아있다가 올 떄도 있었다고, 그럴 때마다 부끄러웠다고 말하던 활동가의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하제 마을에서 주민들을 마주쳤을 때 “사람들이 좀 있어야 할 건데..”하며 돌아서시던 뒷모습도 떠오릅니다.

한국전쟁이 시작된 지 70년이 지난 지금도 잘 보이지 않지만, 전국 각지에 주둔해 있는 미군기지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문제들이 광범위하게 존재하고 전쟁의 위협을 피부로 느끼며 살아가는 이들이 있음을 기억하며, 이 이야기가 더 많은 사람들의 몫으로 나누어지기를 바랍니다.

철조망이 있는 제방 아래 들풀에서 모여있는 사람들, 왼편에서는 걷고 있는 모습을 촬영하고 있고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걸어가고 있다.

카페 <이매진>의 찰스와 인터뷰하고 있는 활동가들, 중앙에 테이블 뒤에 찰스가 있고, 그 뒤로 촬영을 하는 카메라와 활동가가 중앙과 오른쪽에, 마이크와 음향을 담당하는 활동가는 왼쪽에 있다.

카페 <이매진>의 찰스와 인터뷰하고 있는 활동가들

글 /사진 | 생활교육공동체 공룡

📚[제작물] 군산에서 부는 평화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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