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서 간사와 계획기부 알아보기>에서는 나에게 적합한 최선의 유언 방법은 무엇일지, 법적 효력을 갖추기 위해 놓치지 않아야 할 것들을 어떤 것들인지를 함께 알아보았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법적으로 문제가 없도록 사전에 유언장을 마련해 두었음에도 불구하고, 막상 고인의 유언을 사후에 집행하려다 보면 생각지 못한 일들로 고인의 뜻대로 따르기가 어려워지는 경우가 종종 발생합니다. 그 배경에는 ‘유가족의 뜻’이라는 중요한 변수가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현업에서 상속 사건을 다루는 변호사로 활동하고 계신 <기부컨설팅위원회> 법률 분과 이지선 위원님과 함께 사후 유산기부에서 유가족의 합의/지지가 중요한 이유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내 뜻만으로는 되지 않는 유산기부

“자식들에게 한 푼도 줄 이유가 없다.”  할머님은 당시 끝내 고집을 꺾지 않으셨습니다.

5년 전, 모든 재산을 학교에 기부한다고 유언하셨던 그 할머니가 돌아가셨습니다. 자식들 모두 장성하여 먹고사는 데 지장 없다 하시며, 돈 없어 못 배우는 학생들 장학금으로 써 달라고 전 재산을 기부하셨습니다. 어쩌면, 자녀들에게는 날벼락이었을 것입니다. 기대하고 있던 재산을 못 받게 되니까요. 자녀들은 당연한 수순처럼 소송을 합니다. 학교도 난처한 입장이 되었습니다. 할머니가 남긴 건물을 팔지 못하도록 자녀들이 가처분을 해버렸습니다. 심지어 건물주도 아닌 자녀들이 건물 임차인들에게 직접 임대료를 받고 있는 중이라, 학교는 임대료도 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소송으로 해결이 나려면 1~3년은 걸릴 것이고, 그때까지 유언은 제대로 집행되지 못할 것입니다. 

이런 경우는 생각보다 꽤 많습니다. 내 재산 내가 처분하는 것과 유산 기부는 좀 다릅니다. 결정은 유언자가 하지만, 실제 유언 실행은 유언집행자와 상속인들 소관이 됩니다. 그래서 유산 기부가 잘 실행되려면 상속인들과의 협력이 아주 중요합니다.

단 이틀 만에 이루어진 꿈 vs 십 여 년의 꿈이 무색해진 아쉬움 

사례 1. 황복란 할머니는 2011년, 86세로 췌장암 말기로 투병하시다가 돌아가셨습니다. 돌아가시기 얼마 전 조카를 통해 아름다운재단에 1억 원 기부 의사를 밝히신 할머니는 건강 상태가 좋지 않아 기금을 만들기까지 시간이 많지 않은 상황이었습니다. 다행히 가족들의 헌신적인 지지와 협조로 단 이틀 만에 할머니의 평생 소원을 이룰 기금 조성이 가능했습니다. 할머니가 기부하신 1억 원은 10년 전 사망한 남편의 유산으로, 할머니는 가족 등 주변의 도움으로 어렵게 생활하면서도 이 돈만은 쓰지 않고 내내 간직해 왔다고 합니다. 아름다운재단은 기부금을 ‘황복란평생의꿈장학기금’으로 조성, 보육시설 출신이거나 실직자 가정에 속한 대학생 학비 지원에 사용하였습니다.
사례 2. 평생 결혼하지 않고 자녀 없이 홀로 사시던 B할머니는 2007년 아름다운재단에 유산 기부 약정을 하시고, 유언 공증도 하셨습니다. 13년간 아름다운재단은 할머니와 관계를 잘 유지하였고, 2020년 할머니가 돌아가실 때 약 4억 원의 유산기부액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할머니가 돌아가시자 조카와 이복자매들이 유류분을 달라는 소송을 제기하여 현재 할머니의 유언대로 순조롭게 그 뜻이 진행되지 못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두 사례에서, 유산을 기부하기 원하는 기부자들의 좋은 뜻은 한결같았지만, 기부자의 좋은 뜻을 실현시킬 유언 집행 결과는 달랐습니다. 후자의 사례에서는 유언의 법적 효력을 갖추기 위해 유언 공증이라는 준비까지 해 두었음에도 할머니의 오랜 꿈은 유가족의 합의라는 변수 앞에서 멈춰 설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황복란 할머니처럼 좋은 뜻을 잘 실현시킬 수 있을까요? 아름다운재단도 늘 고민하고 이런저런 대책을 세워 보지만, 뭐니 뭐니 해도 가장 좋은 대책은 기부자의 뜻을 생전에 충분히 알리시고 가족들로부터 지지를 받는 것입니다. 그리고, 분쟁이나 어긋남이 없도록 전문가의 도움을 미리 받는 것이 좋습니다. 법적으로 유효한 유언을 작성하고, 유류분의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기부재산이나 방법을 조율하고, 예상치 못한 세금이나 비용이 생기지 않도록 하는 등 여러 분야에서 전문가의 조언이 필요합니다.

기부컨설팅위원회 법률 분과 이지선 위원

생과 사도 가를 수 없는 ‘가족’, 유언에도 서로 충분한 준비가 필요합니다

유언자의 유산기부를 지지하는 유가족들이 있습니다. 유언자가 유산기부의 뜻을 직접 남기지 않았어도 생전 고인을 추모하며 유가족들이 상속받은 재산으로 자발적인 기부를 하기도 합니다. 동기를 여쭤보면, ‘효도, 기부의 습관, 가치관, 사회에 대한 책임’과 같은 여러 말씀을 해 주십니다.

 

“좋은 일을 하고 싶다는 어머니 유언을 실천에 옮기려고 한다.”
“베풀고 살라는 말씀이 어머니 평생의 가르침이었다. 어머니께 못다 한 효도를 대신해서 어머니 이름으로 기부한다.”
“아버지가 남기신 사회 환원의 유언을 그저 받들 뿐이었다. 하지만 유산을 기부하며 덕분에 경험한 나눔의 기쁨과 행복으로 이제는 스스로 나눔을 계속 이어가게 되었다.”
“어린 시절 어려웠던 집안 형편에도 이웃과 사회를 위해 부모님은 크고 작은 기부를 했다. 그런 경험이 내 가치와 철학의 바탕이 되었다.”

 

행동으로 보여주는 평소의 나눔과 자주 나누었던 이야기가 생의 마지막 유언보다 강할 수도 있구나, 유언의 또 다른 방식을 생각하게 됩니다.

유언자의 유언을 실현하는 주체는 남은 유가족입니다. 그렇기에 가족들이 고인의 뜻을 존중하여 온전히 받들 수 있기 위해서는 재산 분배 외 평소 남기고 싶은 가치, 나눔의 의지 등을 시간을 갖고 공유해 두는 것이 필요합니다. 가족들도 그 뜻을 받아들이는데 시간이 필요할 테니까요. 언론과 현업에서 접하는 유산상속을 둘러싼 가족간의 분쟁을 볼 때면 유언의 한계에 답답함을 느끼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인의 뜻을 존중하여 의미 있는 유산 기금이 조성되는 귀한 사례들도 상당히 있습니다. 바로 유산기부에서 가족과의 유대, 충분한 대화와 합의가 필요한 이유입니다. 그 과정에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다면 언제든 아름다운재단 기부컨설팅위원회에 문을 두드려주세요.

기부컨설팅위원회 법률 분과 이지선 위원

# 유산기부를 준비하며 자주하는 질문

Q. 관계가 소원한 형제자매, 특정 상속인(자녀, 배우자 등)에게 유산을 물려주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이지선 위원) 현행법상 상속인은 상속재산 일부에 대한 권리를 보장받습니다. 유류분입니다. 생전에 충분한 대화를 하는 것으로 해결되지 않는다면, 사후에 유류분을 주장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준비할 수밖에 없습니다. 유산기부 상담 시 재단(기관)에 가족관계, 재산관계 등 우려되는 부분을 솔직하게 공유하여 주세요. 유류분 정도의 유산을 남겨두거나 신탁 등의 방법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 유류분 소송을 예방할 수 있는 Tip >

1. 처음부터 상속인들의 유류분을 제외하고 유증하기
2. 생전에 상속인들에게 유류분 정도 재산을 증여하기 : 생전 증여받은 것은 유류분에 포함되기 때문에 사후에 더 달라고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3. 생전에 기부하기 : 사망 1년 이전, 유류분을 해할 것을 알지 못한 기부는 유류분 계산에서 제외됩니다. 즉, 유류분 반환 청구의 대상이 아닙니다.
4. 신탁 활용하기 : 최근 “유언대용신탁으로 맡긴 재산의 소유권은 신탁을 받은 금융회사가 가진다”라며 신탁재산은 유류분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하급심 판결(수원지방법원 성남지원 2020. 1. 10. 선고 2017가합408489)이 나왔습니다. 만약 이런 판례가 계속된다면 신탁은 유류분 분쟁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이 됩니다.

글 | 기부컨설팅위원회 이지선 위원

# 서 간사 Talk

서 간사가 그동안 만난 유산 약정 기부자는 80대 할머니, 50대 부부, 60대 미혼 여성, 30대 미혼 남성 등… 성별도 나이도 상황도 다른 만큼 준비 과정도 각양각색입니다. 그러나 모두 ‘유가족’의 도움이나 협력없이 진행되는 유산기부는 하나도 없을 거예요.

유가족들의 동의와 지지로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고인의 뜻을 실현할 수 있는 경우와 그렇지 못했던 경우를 함께 보고 있노라면 새삼 생각하게 됩니다. 누구의 잘못이라기보다는 ‘유언자의 뜻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서로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겠구나.’라고 말이죠. 유언의 온전하고 원만한 집행을 위해 정말 중요한 가족과의 대화, 이 부분이 어렵다면 사전에 가족과 재단(기관)에 방문하셔서 나중에 어떤 일을 하시고 싶은지 함께 이야기해보는 기회를 갖는 것은 어떨까요? 생전 고인이 어떤 곳에 관심을 두셨고, 어떤 일에 애정을 가지셨는지 평소 알고 있다면 유언자의 뜻을 보다 존중할 수 있을 테니까요. 그 외에도 유언의 과정에 또 어떤 도움과 준비가 필요할지 서 간사도 계속 고민해보며, 다음 주제로 또 찾아올게요~ 😀

법률/세무·회계/부동산 각 분야 전문가 5인으로 구성된 <아름다운재단 기부컨설팅위원회>는 나눔으로 우리 사회에 작은변화를 만들고자 하는 뜻을 가진 분들이 어렵지 않게 그 뜻을 실현하실 수 있도록 전문 자문을 바탕으로 그 과정을 돕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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