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재단 청소년 진로탐색 지원사업 <내일상상프로젝트>는 직업체험 위주의 단발적 진로교육에서 탈피해, 청소년이 자신의 생활 반경 안에서 직접 창의적인 일을 기획하고 실행해보는 프로젝트입니다. 올해로 3년차에 접어든 2021 내일상상프로젝트는 학교 및 마을과 청소년 진로의 연결고리를 만들기 위한 다양한 활동을 진행합니다.
[진로탐색 N년차의 내:일] 시리즈에서는 총 3회에 걸쳐 교내 진로 수업시간, 자유학년제 프로젝트, 마을학교와 연계한 진로자원 발굴 활동 속 내일상상프로젝트의 활약을 소개합니다. 

① 진로 사람책, 교실로 들어가다
② 자유학년제X내일상상
③ 진로 자원, 우린 직접 찾기로 했다

초여름으로 접어드는 6월, 푸르른 녹음이 감싸고 있는 남원의 운봉중학교를 찾았습니다. 운봉중학교 영어선생님이자, 자유학년제 활동을 담당하고 계신 최정호 선생님을 만나기 위해서였는데요. 선생님께서는 마을과 아이들, 학교와 진로라는 연결고리 사이에서 그동안 다듬어 온 귀한 고민들을 들려주셨습니다.

운봉중학교 1학년 담임이자, 자유학년제 활동을 맡고 계신 최정호 선생님


남원 지리산권은 운봉면을 비롯해 산내·아영·인월 각 면마다 중학교가 하나씩 자리잡고 있습니다. 이 4개 학교는 올해부터 자유학년제 수업시간을 이용해 ‘마을연합 진로탐색 활동’을 진행하고 있는데요. 이들이 서로 의기투합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지리산권에서 내일상상프로젝트를 통해 꿈꾸는 ‘조금 다른 변화’란 어떤 것일까요? 지금 바로 소개합니다!


Q: 일단 학교가 너무 아름다워요. 인터뷰하기 좋은 장소가 있다고 해서 따라왔는데, 뒷산 같기도 하고 놀이터 같기도 한데요?

A: 말 그대로 놀이터이기도 하고, 쉼터이기도 하고, 항상 자랑하고 싶은 곳이에요. 애들이 점심시간에도 오고, 방과 후에도 오고, 주말에 와서 놀아요. 지금 여기 보이는 밧줄놀이터는 작년 내일상상프로젝트 활동으로 함께 만든 거고요. 저 옆에 트리하우스도 얼마 뒤에 청소년과 마을구성원들과 함께 만들었죠.

Q: 밧줄놀이터팀! 기억이 나네요. 놀이도 하고, 놀이터도 만들고, 영상 촬영도 하면서 여러 가지 활동을 했던 것 같은데요.

A: 여러 활동을 할 뿐만 아니라 여러 사람들을 만났어요. 프로젝트 결과물보다 사람들을 만난 게 더 값지다고 할 만큼이었으니. 마을 안에서 그런 활동들이 자꾸 확장되어오다, 어느덧 학교에도 들어가볼까 노크하는 단계까지 온 것 같아요.

Q: 이번 마을연합활동도 그렇게 자연스럽게 연결되었던 거네요.

A: 맞아요. 사실 제가 정말 경험론자예요. 직접 이것저것 해보고 돌아와서 적용해보는 추진력은 있지만, 새로운 것을 시도해보는 상상력은 많이 없거든요.(웃음) 그런데 지리산마을교육공동체 길잡이 선생님, 운봉중학교 선생님이 하는 시도들이 정말 신선하게 다가오더라고요. 그걸 보고 받으면서 학교 안에서 제 역할이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2020 내일상상프로젝트 참여팀이 중심이 되어 만든 밧줄 놀이터. 운봉중학교 한쪽에 위치한 놀이터는 학생들에게 다양한 놀이와 쉼을 제공하는 멋진 공간이 되었다.


지리산이라는 작은 마을, 마을 속 학교와 진로

Q: 자유학년제와 결합했다는 것, 그리고 4개 학교의 1학년 친구들이 모두 한자리에 모이는 연합활동을 계획하신 게 인상적인데요. 기획하신 배경이 궁금해요.

A: 우리는 수도권이나 도시 지역 청소년들과는 접하는 진로탐색 방식과는 조금 다르고, 달라야 한다고 생각해요. 교육의 질 문제라기보다는 이 지역에 알맞은 자원들, 공간들을 연결하는 게 여기서 나고 자라는 아이들에게 걸맞은 미래를 생각할 수 있게 해 주는 것 같아요.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걸 해보자 생각했고, 자유학년제를 의미 있게 활용해보고 싶어요.

Q: 자유학년제와 연계한 진로탐색 활동, 정확히 어떤 단계로 진행이 되나요?

A: 자유학년제에는 기본적으로 4개 영역이 있어요. 주제 선택, 예술체육, 동아리, 그리고 진로 탐색. 이 영역들을 수업 시수에 맞게 구성을 하는 건데요. 영역별 개수 배정은 학교마다 조금씩 달라요. 우리는 그중에서 ‘진로탐색’ 분야에 집중을 해보기로 계획을 구성한 거죠. 올해 1학기에는 총 세 번 4개 중학교 친구들이 서로 안면을 트고 관계를 만드는 오프닝 활동들을 진행했고요. 이를 바탕으로 2학기에는 격주로 4시간씩, 총 10회차의 본격적인 진로탐색 프로젝트를 계획하고 있어요.

지난 6월 23일 지리산권 4개교 연합 자유학년제 활동으로 진행한 마을연합소풍


Q: 오늘 진행한 마을연합소풍도 오프닝 활동 중 하나였군요?

A: 그렇죠. 이번 활동은 산내중학교 1학년 친구들이 자기 동네와 공간을 소개하는 활동을 직접 기획해 진행했는데요. 사실 그렇게 대단한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닌데도, 1시간 남짓 활동을 준비하려고 10시간 가까이를 준비했다고 하더라고요. 잘했다고 했죠.(웃음) 내가 어떤 경험을 하고, 어떤 결과를 만들 것인지 스스로 고민해볼 수 있으니까. 2학기에 본격적으로 진행할 진로 프로젝트의 전초전이기도 하고요.

Q: 학교 하나, 수업 하나가 아니라 이렇게 여러 학교가 연합하는 컨셉도 앞서 말씀하신 방향과 같은 맥락이 아닐까 싶은데, 맞나요?

A: 연합활동을 고민한 건 두 가지 이유가 있었어요. 하나는 좀 더 많은 사람들과 공유해보는 기회라는 점. 학교 다니면서 가장 영향을 받고 많이 배우는 대상은 친구들이에요. 진로 고민에서도 또래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죠. 그런데 저희 학교 같은 경우는 올해 1학년 전체 인원이 13명밖에 안 돼요. 한번 생각해보세요. 유치원부터 시작해서, 초등학교 중학교 10년 가까이를 한 학년에 스무 명 남짓인 친구들하고만 만나고 있는 거예요. 뭔가 생각이 확장될 여지나 경험의 기회가 부족하다는 건 항상 약간의 아쉬움이 있었어요.

Q: 13명의 친구들과 십 년 가까이 함께 지낸다고 생각하면, 돈독하기는 한데 조금 심심할 것도 같네요.(웃음)

A: 친구들 수만이 아니고, 경험할 수 있는 세상 자체가 조금 단조로워질 수 있겠단 생각이 들었어요. 바로 그 부분이 또 한 가지 이유인, 진로탐색 활동 무대를 마을로 확장해보자는 목표로 연결됐고요. 운봉에 사는 애들도 운봉에 뭐가 있고 누가 사는지 잘 모르거든요. 그런데 그걸 다른 학교 애들에게 직접 소개해 줘야 한다? 그럼 막 공부를 하는 거죠. 이렇게 학교뿐만 아니라 자꾸 마을을 배워가보자, 동네에 사는 사람들을 만나보자는 자극을 계속 크고 작게 주고 싶어요.


자유학년제와 진로의 연결, 학교에도 색깔을 입혀주었으면

내일상상 프로젝트에 참여한 청소년들

Q: 시험 대신 진행하는 자유학년제와 내일상상의 결합이 참 절묘해요. 정규 수업시간에 이런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건 꽤 과감한 시도인데, 준비하면서 어려운 점은 없었나요?

A: 가장 어려운 부분은 역시 ‘공교육에서 이런 혁신적인 시도를 어디까지 허용해줄 수 있을까’ 하는 부분이죠. 자유학년제라고는 해도 외부 프로그램 제약도 많고, 기본 교육과정 이수를 해야 하기는 하고요. 물론, 그럼에도 그 이상의 의미가 있어요. 이번 자유학년제는 작년 겨울부터 기획했어요. 4개 학교가 함께 교과를 맞춰야 하고, 또 그러려면 미리 시간표를 짜고 하는 작업들을 해 놔야 하거든요. 내일상상프로젝트 파트너 선생님들, 청년 선생님들, 그리고 학교에서 함께 결합하신 선생님들이 함께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고, 활동내용을 고민하고, 학생들만이 아니라 선생님들도 이렇게 점점 연결되고 있어요.

Q: 말씀을 듣다 보니, 마을에서 배우는 진로탐색 활동의 가치를 학교와 선생님들도 배우는 과정 안에 있는 것 같네요.

A: 저도 똑같이 생각해요. 직업 분야나 전공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 대한 이해’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거. 이건 학생들에게도 중요한 포인트지만, 진로교육을 함께 만들어갈 학교와 선생님들에게도 너무너무 중요한 메시지예요.

Q: 기존 교육이 진로를 바라보는 관점에도 변화가 필요하다는 말씀일까요?

A: 중학교 애들한테 고등학교 진학 상담을 할 때는 아직도 무조건 대학이 기준이에요. 뭐 선택지가 많은 수도권 일부 지역 중에는 대학 진학률이 내려간다는 말이 있기는 한데, 여전히 저희 같은 지역에서는 내신 따기 쉬운 곳이 우선이죠. 학교에서도 너는 공부 잘 하니까 인문계 가서 의사 판사 하고, 너는 성적이 안 좋으니까 특성화고 가서 기술 배워라. 이런 말만 해주는 게 더 이상 맞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요. 내 진로에 맞게 학교를 선택하는 기준도 다양해졌으면 좋겠어요. 자유학년제도 그런 의미로 활용하고 싶고, 특히나 이렇게 작은 학교끼리의 연합활동으로 학교에 색깔을 입혔으면 좋겠다, 이런 그림을 그리고 있어요.

Q. 작은 마을, 작은 학교이기에 이런 진솔한 연결이 가능한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비슷한 고민을 하며 이 글을 읽을 분들을 생각하면서, 마지막으로 한 말씀 부탁드려요.

A: 저희도 이제 시작이라 너무 거창한 얘기는 부담스러운데(웃음),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보면 정말 무궁무진한 것 같아요. 아까 프로그램을 하다가 동네 할머니 한 분을 만났는데, 저희가 운봉중학교에서 왔다는 걸 아셨나봐요. 당신 집도 운봉이라고 하시는데, “운봉 살기 좋죠?” 그랬더니, “아니, 산내가 더 좋아. 물도 있고 깨끗하고 얼마나 좋은지 몰라” 하시더라고요. 그런 게 행복에 대한 또 한 가지 답이 아닐까요? 내가 지금 가질 수 있는 행복은 무엇이고 얼마나 누릴 수 있는지, 그걸 알고 난 상태에서 나는 어떤 진로를 고민할 것인지 경험해보는 것이죠. 지금 우리는 여기 있으니까, 여기서 할 수 있는 것들이 있다는 데서 출발하면 좋겠습니다.


인터뷰를 마치고 나오는 길, 재작년 내일상상이 첫발을 디디며 우리가 했던 고민들을 다시 떠올렸습니다. ‘아이들이 지역에 남아서 일도 하고 살아가면 좋겠다는’ 욕심 같던 바람이 ‘일도 하고 살아가기 위한 뿌리’에 대한 고민으로 넓어졌고, 이제는 학교 선생님들도 비슷한 고민을 하고 계신 모습을 봅니다.

‘일단 서울로 가야할 것 같은 불안함’. 진로를 고민하면 항상 부딪혔던 고민을 ‘지역이기에 할 수 있는 일들’로 만들어가는 모습에 힘을 얻은 시간이었습니다. 올해 이곳 지리산에서 함께 변화를 꿈꾸는 사람들에게는 자그만 확신이 엿보입니다. 본격적인 프로젝트가 시작될 하반기 활동을 더욱 기대합니다!


[진로탐색 N년차의 내:일] 시리즈는 계속됩니다.


글 ㅣ 희망제작소 이시원 연구원, 사진 ㅣ 희망제작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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