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후레터 vol.8 농업의 지속가능성 편에서는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농업의 맥과 가치를 이어오는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농부, 과학자, 대표의 정체성으로 농촌을 살리고 있는 이동현 님의 이야기입니다. 

농부? 박사? 대표? 세 가지 정체성으로 농촌 살립니다.

쌀은 오랜기간 한국 밥상의 기본값이었어요. 쌀 한 톨도 허투루 버리면 안된다는 말을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어왔고요. 그런데 어느새, 상에서 쌀이 차지하는 비율이 많이 줄었어요. 쌀 농가도 수익보전이 어려운 상황이고요. 쌀이 자취를 감추지 않으려면 수많은 식품 대열에서 밀리지 않을 경쟁력이 있어야 할 거예요. 또 그 가치를 알아주는 소비자들도 있어야 하고요.

미실란 이동현 대표는 쌀을 바라보는 시각을 전환했어요. 쌀이 씨앗으로써 딱 한 번 싹을 틔우는 시기, 그래서 에너지가 가득한 때에 주목해 ‘발아현미’를 개발한 거예요. 섬진강가에 위치한 곡성에 가족들과 정착한 후, 공동체를 만드는 공익활동도 함께하고 있죠. UN식량농업기구의 모범 농민상을 수상한 농부, 품종별로 발아현미를 연구한 과학자, 건강한 식품을 만드는 대표. 세 가지 정체성으로로 농촌을 살리고 있는 이동현 대표를 만났습니다.

밭에서 벼를 들고 있는 미실란의 이동현 대표

미실란 이동현 대표


미생물로 농촌 살리려던 박사, 먹거리에 진심을 담는 농부가 되었습니다.

Q. 대학에서도 농업을 전공하셨고, 미생물 연구로 박사 학위도 받으셨는데요. 학자가 아닌 농부의 길을 걷게 된 이유는 무엇이었나요?

A. 처음부터 농부가 되려던건 아니었어요. 대학 때는 농생물학과에서 식물 병리를 공부했고, 석사 때는 작물에서 발생하는 독소 물질에 대해서 연구했어요. 국비 유학으로 일본으로 가서 해충을 미생물로 죽일 수 있는 방법 등에 대해서 연구했죠. 학위를 따고 한국으로 귀국해서는 병해충을 동시에 방제할 수 있는 미생물 특허를 3개 냈는데 당시 큰 가치를 인정받지 못했어요. 그렇게 고향에서 지내던 중에 어머니 지인 분을 도와주다가 발아현미 기술에 대해 알게 됐죠. 수입 곡물이 마구 들어오면서 쌀값이 폭락하던 시기였어요. 우리 쌀에 좀 더 집중해서 연구 하고 가치를 높이는 일을 해보면 좋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때부터 16년 동안 무농약·친환경·유기농 쌀을 생산하고 있죠.

Q. 농약 없이 친환경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비결이 뭔가요?

A. 땅의 면역력을 높이면 가능합니다. 사람들도 조금만 아프면 불안한 심리 때문에 병원에 의지하고 약을 먹잖아요. 그걸 반복적으로 하다 보면 면역력이 약해지고 약물 효능도 떨어지죠. 땅이나 식물도 마찬가지입니다. 화학 비료를 주면 성장이 빨라지고 좋겠지만, 질소 성분이 쌓이다보면 토양 환경이 나빠져요. 제초제 역시 미생물까지 다 죽이기 때문에 땅의 면역력을 약화시키죠. 친환경 농업을 하게 되면 생물들이 살아있는 건강한 토양을 갖게 되고, 농약이나 제초제를 쓰지 않아도 병충해가 없습니다. 강과 바다에도 이롭고요. 저는 기후 환경을 지킬 수 있는 방법 중 하나가 친환경 농업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Q. 친환경 농업 외에도 로컬푸드 등 농업의 미래를 위한 대안들이 이야기되고 있습니다. 관련해 우리가 좀 더 집중해야 할 부분이 있다면 무엇이 있을까요?

A. 우리 땅에서 나고 자랄 수 있는 것들을 재배하고 소비하는데 집중하는게 더 중요하지 않을까 싶어요. 우리 밀이나 보리 같은 것들은 잘 자랄 수 있는데도 저렴한 수입산에 밀려서 농민들이 농사를 포기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정부 정책이나 소비자들의 판단으로 유통구조를 개선하면 식량 자급률을 높이고, 또 경쟁력도 키울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사람의 몸에 약이 되는 곡물, 마음 담아 키우고 있습니다

Q. 직접 농사를 지으면서 발아현미 연구도 하고 계시는데요. 발아현미가 낯선 분들을 위해 간략히 소개해주신다면요?

A. 벼에서 왕겨만 벗겨낸게 현미라면, 발아현미는 쌀눈에서 싹을 틔운 거예요. 연구를 하면서 발아현미의 주요 성분들이 항암작용도 있고, 체내 콜레스테롤을 낮춘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주식인 쌀을 발아시켰을 때 엄청난 부가가치가 있는 거죠. 직접 300여 개의 쌀 품종을 구해서 발아를 시켜봤고, 그 중 278개 품종이 발아가 되어서 직접 손모내기를 하고 수확해 현장 중심의 연구를 진행했어요. 덕분에 어디에서 생산한 쌀을, 어떻게 발아시키느냐에 따라 발아현미의 품질이 달라진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과학자의 정체성으로, 농부가 되었죠. 

발아현미를 연구하는 이동현 대표

발아현미를 연구하는 이동현 대표

Q. 가본 적 없는 길이었기에 더욱 우여곡절이 많으셨을 것 같아요.

A. 처음에는 매출을 많이 내지 못해서 힘들었죠. 사업가라면 제품을 많이 팔아서 돈을 벌어야 하는데, 좋은 발아현미를 만들겠다는 의지가 더 강했어요. 연구하는데 더 시간과 비용을 들였는데, 한편에서는 저품질의 발아현미가 유통이 되고 있고, 또 잘 팔리는 걸 보니까 화도 나고 의기소침해지더라고요. 또 아내가 많이 아프기도 했어요. 그간 해온 노력들에 대해 초라한 성적표를 받은 것처럼 느껴지더라고요. 그때 미실란에서 운영하는 건강 식당인 ‘밥카페 반(飯)하다’에 방문한 김탁환 작가와 인연을 맺게 되었어요. 제 삶을 담은 인터뷰를 하게 되고, 책 ‘아름다움은 지키는 것이다’를 냈죠. 제가 했던 여정을 쭉 돌아보는 과정에서 많이 회복되었어요. 나아갈 방향을 찾았다고나 할까요.

Q. 미실란 홈페이지에 보면 먹거리가 약이 된다는 신념을 가지고 계신 것 같더라고요.

A. 저희 어머니가 위암 말기셨어요. 유학에서 돌아오자마자 소식을 듣고 큰 충격을 받았죠. 또 작은 아들이 아토피였는데 한국에 와서 더 심해졌거든요. 나중에는 혈변까지 보더라고요. 약이 안 들어가지고 진물이 생길 정도였고요. 가족들에게 좀 더 이로운 먹거리가 없을지 생각하다가 발아현미가 들어간 식품들을 더 개발하기 시작했어요. 저에게는 발아현미가 단순히 돈벌이 수단이 아니라, 사람을 낫게 하는 약입니다. 이걸 먹고 백 명 중 한 명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감사할 일이잖아요. 실제로 발아현미로 당뇨, 비만 임상 실험을 해서 유의미한 효과가 있다는 것을 입증받기도 했고, 고객들로부터 긍정적인 피드백을 받기도 합니다. 음식은 보약처럼 건강을 지킬 수 있어야 하고, 또 먹을때 행복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동현, 남근숙 부부

이동현, 남근숙 부부


“사랑한다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하니까요.”

Q. 대표님처럼 새로운 가능성에 주목하고, 또 부가가치를 만들면서 농업을 이어가면 좋겠지만, 사실 쉽지 않잖아요. 농업의 미래를 걱정하는 목소리도 많고요.

A. 농업의 마지막 보루가 농지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농지도 어느새 투기 대상이 되었죠. 비옥했던 김해평야도 사라지고 있고요. 한참 지나고 나면 어디에서 곡식을 키우고 먹을까 싶어요. 농촌의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제가 살고 있는 곡성도 초등학교 5학년만 되면 광주로 전학을 가는 부모들이 많거든요. 도시로 가면 좋은 교육을 받을 수 있다는 선입견들이 팽배하고요. 그렇게 떠나는 인구들이 늘어나는거죠.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사랑한다고 말하면서도 한 번도 행복을 준 적이 없는 사회 구조를 만들어 버린 것 같습니다. 아이들을 위해 열심히 돈 벌고, 투기하고, 뭔가를 얻어내려 하잖아요. 공동체라는 없고, 오직 나와 내 가족만 생각하게 되는거죠. 이런 상황에서 농촌마저도 공동체가 파괴되고 있거든요.

미실란 작은 들판 음악회

미실란 작은 들판 음악회

Q. 그런 문제인식 속에서 공동체를 위한 다양한 활동을 하고 계신것 같아요.

A. 뭔가 나서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조금씩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마을 아이들을 잘 길러내야 한다는 마음, 또 마을이 학교가 될 수 있다는 신념으로 짝꿍이 뜻있는 지역의 젊은 학부모들과 함께 곡성교육희망연대를 창립했고요. 각자 다른 삶을 지닌 학부모들이 아이들과 만나 대화하는 ‘사람책 콘서트’를 열었고요. 유치원 아이들과는 생태 농업 관련 교육과 체험을 동시에 하고 있어요. 지자체와 함께 노력한 결과 아이들의 전학 비율도 줄어들었죠. 지역 공동체도 활성화되었고요. 2006년부터는연 1~2회 ‘미실란 작은 들판 음악회’를 열고 다양한 뮤지션들과 함께 24번의 공연을 진행했습니다.

Q. 앞으로 계획하고 계신 활동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A. 김탁환 작가와 함께 건강한 농촌과 농업 그리고 문화가 어우러지는 섬진강 생태공간을 만들기로 했어요. 그 전에 시범적으로 생태문화학교와 함께 생태책방인 ‘들녘의 마음’을 시작했습니다. 우리가 어린이와 청년들에게 창작의 꿈을 주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획일적으로 국영수 잘하는 애들로 키워놨잖아요. 그래서 생태를 주제로 창작 판소리 한마당 등을 진행했고요. 기회가 닿아 곡성미래교육재단을 통해서 중학생들을 위한 미생물 학교를 열었는데 반응이 좋았거든요. 내년에는 생태학교를 통해 농사 경험도 하고, 글도 쓰고, 미생물과 브랜드 디자인도 공부할 수 있도록 기획해보고 있습니다. 

이동현 대표의 정체성은 앞으로도 더 다양해질 예정입니다. 공동체를 기반으로 더 많은 사람과 닿으며, 함께 살아가는 삶을 꿈꾸고 있으니까요. 땅을 일구며 살아가는 농부이자, 기다림의 무게를 아는 과학자, 진정성으로 승부하는 대표, 여기에 더 추가될 그의 새로운 정체성을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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