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재단 ‘변화의시나리오 프로젝트 지원사업’은 공익활동을 하고자 하는 시민모임, 풀뿌리단체, 시민사회단체를 지원합니다. 특히 성패를 넘어 시범적이고 도전적인 프로젝트를 지원함으로써 공익활동의 다양성 확대를 꾀합니다. ‘2021 변화의시나리오 프로젝트 지원사업’ 너머에는 어떤 분들이 일하고 계실까요? ‘평화바람’은 2021 변화의시나리오 프로젝트 지원사업으로 ‘군산, 평화로 걷다!’ 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사업 너머의 사람. 임재은 활동가를 만나보았습니다.

평화바람에서 활동하고 있는 오이입니다. 오이는 이름보다 많이 불리우는데, 처음 만나는 사람들, 특히 어린이들을 만날 때 어색함이나 권위를 허물어주어서 좋아요. 어쩌다가 얻게 된 별칭인데, 당시 무슨 의미로 지었는지 가물가물해요. 오이를 너무 좋아해서 오이, 5명의 남매들 중에 둘째라 52, ‘비가 온다’는 문장을 좋아해서 오시비(비가 오신다), 52가 되어서 52.. 매번 다른 의미들을 갖다 붙이거나 새롭게 찾는데 그게 재미있기도 합니다.

평화바람 임재은 활동가 : 사진출처 평화바람

Q. 오랫동안 평화운동을 해오셨죠. 힘들지는 않으셨어요? 평화운동에서 말하는 평화는 무엇인지, 평화로운 상태를 만들기 위해 중요한 것은 무엇인지 궁금해요.

군산평화박물관 상설전 <평화가 무엇이냐>에는 서각 작품이 걸려있어요. 2004년 평택529평화축제 당시 문정현 신부님의 연설을 나무에 새겨놓은 것인데요. ‘공장에서 쫓겨난 노동자가 원직복직 하는 것이 평화, 두꺼비 맹꽁이 도롱뇽이 서식처 잃지 않는 것이 평화, 가고 싶은 곳을 장애인도 갈 수 있게 하는 것이 평화, 이 땅을 일궈온 농민들이 빼앗기지 않는 것이 평화, 성매매 성폭력 성차별도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세상’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평화바람이 전국유랑을 할 때 수많은 사람들과 만나고 함께 투쟁하면서 얻은 평화에 대한 대답이에요.

다양한 영역에서 차별과 억압, 착취가 사라지는 것은 당연히 평화이지만, 개인적으로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싸움의 과정, 싸우는 사람들 자체가 이미 평화라고 생각해요. 실제 평화로운 상태가 되기 위해서는 사회의 수많은 문제를 문제로 인식할 수 있는 감수성과 그것을 해결하기 위한 행동, 그리고 그것을 같이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Q. 공감이 가요. 예전에 김규항씨의 책에서 비슷한 의미의 글귀를 보고 적어둔 기억이 있어요. 억압과 착취와 불평등이 존재하는 사회에서 유지되는 조용하고 온순한 상태는 평화가 아니라 오히려 가장 악랄한 형태의 폭력이어서, 평화를 위한 노력이야말로 가장 소란스러울 수 있다고요.

치열한 투쟁도 경험했지만 다양한 평화활동들이 펼쳐지기도 했어요. 기억에 남는 것은 “대추리를 평화촌으로!” 라는 활동이었는데, 주민들이 떠난 대추리에 전국에서 사람들이 이주해 평화촌을 만들었어요. 새롭게 대추리 주민이 되어서 평화촌에 평화지킴이네 집, 유치원, 변호사 상담실, 카페, 사진관, 민박집, 찜질방, 헌옷가게, 방송국도 세워지고요. 거대한 힘에 맞서서 평화를 지키기 위해 선뜻 싸움터로 이주하고 다시 삶터를 짓는 방식의 투쟁이 정말 너무나 감동적이고, 아름다웠어요. 내내 가슴에 남아 평화는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을 추동하는 질문이 되었습니다.

Q. 앞서 말씀하신 ‘과정과 사람 자체가 이미 평화’의 실제 장면이 그려져요.

<안녕하제>라는 전시가 있어요. 평화바람이 평화바람부는여인숙-군산평화박물관을 만들어야겠다고 마음을 먹은 계기가 된 전시에요. 군산 미군기지 감시팀과 기지 확장으로 없어진 하제마을을 기록한 ‘사이의 기록’ 팀이 함께 준비했고, 기지와 마을을 기록한 사진, 하제마을에서 주워온 물건들을 볼 수 있게 구성되어 있었거든요. 메인 작품이 이재각 사진작가의 팽나무 사진이었는데, 저는 이 작품이 좋아요.

사진출처 : 평화바람

하제마을 팽나무는 수령이 600년인데요. 주민들이 쫓겨나고 마을이 사라진 자리, 미군기지 철조망 바로 옆에 서 있습니다. 시민들이 이 나무에 기대서 ‘600년 팽나무를 보호하자, 군산미군기지 확장을 막아내자’는 활동을 하고 있기도 하거든요. 저는 이 장면도 평화가 담긴 장면이라고 생각합니다.

Q. 늘 평화를 이야기하지만 개인의 평화에 대해서도 자주 생각하는 편인가요? 선생님 개인께 평화로운 때는 어느 순간들인지 궁금해요.

개인적으로는 멀리 여행을 가서 바람을 느낄 때, 함께 활동하고 있는 동료들을 확인하며 내가 안전하다(또는 든든하다)는 느낌을 받을 때, 평화바람에서 함께 지내는, 개 글라라와 봉봉이와 산책하는 길에 들판으로 시간을 흘러가는 것을 볼 때 평화롭다고 느껴요. 시간적, 공간적으로 여유가 있고 동료들과의 풍성한 대화가 확보되는 게 제 평화에 필요한 조건입니다.

사진출처 : 평화바람

Q. 이야기를 듣다 보면 선생님께서는 많은 것에 사람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분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구체적이고요. 개인적인 평화의 조건에조차 동료들, 나아가 풍성한 대화가 필수여야 하다니요!

제가 하는 일, 꿈꾸는 세상은 혼자서 이룰 수 없는 일이라 늘 누군가와 같이 해야 한다고 생각해서인가 봐요. 일을 하다보면 사람에 치이거나 또는 관계를 맺는 게 귀찮고, 힘들 때가 있어서 짜증과 화를 내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부정적인 감정과 마음을 한 꺼풀 걷어내면 내가 만나고 있는 사람들을 귀하게 여기는 마음을 갖고 있다고 느껴요. 이 마음을 조금 더 드러내고, 지키고, 키우고 싶습니다.

시민운동이라는 게 으레 그런 지점이 있지만, 평화 운동은 유독 이상적이어서 이룰 수 없는 꿈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평화를 위해 더 가까이에서 마주했을 수많은 평화롭지 못한 장면들과, 견뎌내고 있을 평화로운 이들의 마음을 생각하면 막막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래서 “과정과 함께 하는 사람이 이미 평화”라는 임재은 활동가의 이야기는, 더욱 위안이 되는 마음이다. 견뎌내기 이전에, 함께 해서 이미 오늘 평화를 사는 이들이기에.

👆 평화바람 https://www.facebook.com/peacewindinn 

2003년 평화의 바람을 일으키고자 꽃마차를 타고 평화유랑을 시작했어요. 지금은 군산 옥봉과 제주 강정에 살며 평화가 난무하는 이 시대에 우리의 삶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글, 사진|박혜윤 
전(前) 변화의시나리오 담당자 / 귀 기울여 듣고 애정을 담아 질문하고 싶은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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