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재단은 여성장애인들이 사회활동과 일상을 이어갈 수 있도록 인생 주기에 맞춘 보조기기를 지원합니다. 일률적으로 동일한 보조기기가 아닌, 지원자 개개인의 특성과 상황에 맞춘 보조기기를 지원함으로써 보조기기 사용 활용도를 높였습니다. 여성장애인들이 보다 나은 일상을 경험하며 삶의 선택지를 넓혀갈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2021 여성장애인 보조기기 지원사업에 참여한 전윤주 씨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새로운 보조기기와의 만남, 일상의 활력을 불어넣어주길

전윤주 씨의 집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새로 온 틸트체어(자세보조의자) 테스트가 한창이었다. 지지물 없이 앉을 수 없는 전윤주 씨에게 틸트체어는 없어서는 안 되는 작업 공간이자 생활 공간이다.

전윤주 씨 : “좀 더 뒤로 해 주세요.”
담당자 : “어때요?”
전윤주 씨 : “지금 좋아요.”

앉아서 노트북을 하거나 책을 볼 때, 또 누군가와 대화를 할 때, 밥을 먹을 때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만큼 보조기기를 윤주 씨의 몸에 잘 맞게 설치하는 것이 중요했다. 보조기기 설치 담당자는 꼼꼼하게 윤주 씨와 소통한 뒤, 쿠션 크기를 윤주 씨의 몸에 맞춰 조절하고 책상의 크기와 높이를 조정하기로 했다.

거실 한쪽에는 그가 이전에 쓰던 연두색 틸트체어가 놓여 있었다. 이 역시 지원받은 것이다. 오랜 세월 그 의자에서 책도 읽고, 시도 쓰고, 가족들과 이야기도 나눴다. 하지만 10년의 세월이 지나는 동안 틸트체어의 크기는 그대로였지만, 스물세 살이 된 윤주 씨의 몸은 성장했고, 변했다. 몇 년 전부터는 앞바퀴 브레이크가 고장 났고, 구조물 사이에 유격이 생겨 흔들리기 시작했다.

흔들리지 않는 안정적인 의자에서 노트북을 할 수 있다는 기대로 윤주 씨 그의 얼굴이 환해졌다. 그의 뒤로는 벽 가득 붙은 남자 아이돌의 사진이 보였다. 그를 위로하는 것 중에 하나다. 그러나 그에게 가장 큰 힘이 되는 건 시 쓰기이다. 전윤주 씨는 2년 전 ‘평범해지고 싶은 아이’라는 시집을 출간한 시인이다.

“시를 쓰기 시작한 건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였어요. 그런 느낌 있잖아요. 내 앞에 사람은 있는데 내 편은 없는 거 같은 느낌? 그런 마음을 시에 쏟아부은 거예요. 처음에는 내가 힘들어서 힘든 마음을 적었는데 쓰다 보니까 남을 위로하는 시가 쓰고 싶어졌어요. 제 시가 남의 고통을 안아줄 수 있으면 좋겠어요.”

지원기기 '시저 비파괴 북스캐너 ET18PRO'와 전윤주님 시집 '평범해지고 싶은 아이'

지원기기 ‘시저 비파괴 북스캐너 ET18PRO’와 전윤주님 시집 ‘평범해지고 싶은 아이’

 

인터뷰를 하는 현장에는 북스캐너 설치가 한창이었다. 앞으로 그가 혼자서도 원하는 책을 마음껏 편하게 읽을 수 있도록 도와줄 보조기기이다.

“제가 시도 쓰고, 글도 쓰니까 책 읽는 걸 좋아해요. 그런데 다른 사람이 책을 넘겨줘야 읽을 수 있으니까 못 읽는 때가 많았어요. 북스캐너로 스캔만 하면 제가 책을 보고 싶을 때마다 꺼내서 볼 수 있으니까 기대가 돼요.”

필요한 보조기기를 고르며 그가 고려한 건 자신만이 아니었다. 늘 옆에서 책을 넘겨주고, 목욕을 돕는 어머니의 부담을 더는 일 역시 보조기기 선정의 중요한 기준이었다. 그래서일까, 그는 그날 받은 목욕의자가 가장 기대된다고 말했다.

“사실 목욕의자가 가장 기대돼요. 전에는 목욕의자에 바퀴가 없어서 엄마가 의자 밑에 담요를 깔고 화장실까지 끌고 가고는 했어요. 지금 받은 의자는 바퀴도 있고, 높이 조절도 돼서 엄마가 더 편하지 않을까 싶어요.”

다른 사람의 마음에 잘 공감하고, 고통을 헤아릴 줄 아는 윤주 씨의 꿈은 상담가가 되는 것이다. 대학도 문예창작과가 아닌 심리학과에 갔다. 자기가 힘들고 아팠던 만큼 남의 고통을 안아주는 상담가가 되고 싶기 때문이다. 학과 졸업 후 지금은 상담 멘토링을 받고 있다. 하지만 일년 전, 갑자기 찾아온 우울증으로 모든 것이 정체된 상황이다. 윤주 씨도, 그의 어머니도 새로운 보조기기와의 만남이 일상의 활력을 다시 불어넣어주길 간절히 바라고 있다.

“성장한 장애인들에게 맞는 프로그램과 지원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전윤주 씨에게 <여성장애인 맞춤형 보조기기 지원사업>을 처음 알려준 건 그의 어머니이다. 그의 어머니는 이 지원사업을 보고 놀랐다고 한다. 성인이 된 여성장애인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윤주 씨가 나이가 들수록 필요한 것들은 더 늘어나고, 몸도 성장했는데 지원은 더 줄어들었다.

전윤주씨께서 지원받은 틸트체어

전윤주씨께서 지원받은 틸트체어

“우리나라는 장애인 지원이 아동 위주로만 진행되는 거 같아요. 아이가 성장하면서 몸도 변하고 필요로 하는 건 더 많아지는데 성인이 되는 순간 지원이 딱 끊기더라고요. 학습 프로그램들도 가보면 대부분 아동. 청소년들 위주로 구성되어 있어요. 성장한 장애인들에게 맞는 프로그램과 지원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인터뷰를 마치며 전윤주 씨는 잔뜩 미소 띤 얼굴로 “대화가 제일 좋다”라고 말했다. 코로나19로 외출이 어려워지며 더욱 고립감을 느끼는 요즘이다. 그는 비슷한 상황에 있는 장애 여성들에게 우울하고 힘들어도 “살아 있어 달라”는 메시지를 전했다.

“어쩌면 누군가는 내가 겪었던 것처럼 삶을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들 수도 있는데, 그런 생각이 들어도 괜찮다고, 이겨내지 않아도 되니까 그냥 나처럼 그렇게 숨만 쉬면서 살아 있어 달라고 말하고 싶어요. 그 모습을 보고 또 어떤 사람은 위로받을지도 모른다고요.”

전윤주님과 어머니

전윤주님과 어머니

그의 말이 마치 자신에게 하는 다짐과 같이 들렸다. 오늘 받은 의자에서 전윤주 씨가 써 내려갈 시들이 앞으로 누군가에게는 하루를 살아갈 힘이 될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며 인터뷰를 마쳤다.

글. 우민정
사진. 조재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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