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재단 ‘변화의시나리오 프로젝트 지원사업’은 공익활동을 하고자 하는 시민모임, 풀뿌리단체, 시민사회단체를 지원합니다. 특히 성패를 넘어 시범적이고 도전적인 프로젝트를 지원함으로써 공익활동의 다양성 확대를 꾀합니다.  ‘2021 변화의시나리오 프로젝트 지원사업’ 너머에는 어떤 분들이 일하고 계실까요?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은 2021 변화의시나리오 프로젝트 지원사업으로 ‘장애인노동, 노동의 패러다임을 바꾸다!’ 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사업 너머의 사람. 고태은 활동가를 만나보았습니다.

서울과 강릉을 오가며 일을 하고, 농사를 지어요. 연구자이기도, 활동가이기도 합니다. 유동적이고.. 음, 불안정하다고 표현할 수도 있겠네요(웃음) 제 목표 중 하나가 균형을 잘 맞추는 사람이 되는 것이거든요. 일에만 너무 몰입하거나 반대로 일상을 살기 위해서 좋아하는 일을 포기하지 않는 균형이요. 예전에는 성취해야 하는 것에 푹 빠져서 일상을 온전히 유지하지 못한다거나, 일상에서 함께하는 삶이 좋아서 마음을 쏟다가 공허함을 느끼기도 하고 했었는데, 조금씩 제 속도를 찾고, 균형을 맞춰가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사진] 왼쪽 : 안나 / 오른쪽  : 유진선

강릉과 서울을 오가고 다양한 일을 겸하는 것도 균형을 찾는 것의 한 축인가요?

균형이라는 것을 생각하고 보니, 우선 제가 어떤 사람인 지 알아야겠더라고요. 어딘가에 속해서 안정감을 갖는 것보다, 지금 저에게는 여러 가지를 경험해 보는 것이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서울에서 원룸 생활을 하면서 대학원에 다니다가 코로나19 상황이 되면서 부모님이 계시는 강릉으로 내려가 농사일을 도와드리면서 지냈어요. 최근에는 친구들도 강릉에 함께 살고 있습니다. 예전부터 친구들과 ‘나중에 결혼 안하면 같이 살자’는 얘기를 했었는데, 어느 순간 ‘나이들면 함께 무언가 도전해 볼 여력도 적어지지 않나, 여건이 된다면 그냥 지금 살자’라는 데 의견이 모아졌거든요. 같이 농사도 짓고, 각자 하고 싶은,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지내고 있어요. 강릉에 내려온 것은 서울에 올라올 일이 많지 않을거라고 생각해서이기도 했는데, 올 여름 석사과정을 마치고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하게 되니 생각과 다르게 절반은 서울에서 보내고 있네요.

여러 선택지를 두고 다양한 경험을 하는 것 정말 멋있어요. 여러 역할을 동시에 감당하는 게 힘들지는 않으세요?

좌충우돌이에요. 계획대로 흘러가지는 않아서 고생스럽기도 하고요(웃음). 그렇지만 그런 마음은 있어요. 내가 선택한 길이니까 힘들어도 내가 책임진다. 제가 좀 청개구리 같은 면이 있어서 주변에서 이야기 하는 방식을 따라 살다가 맞지 않는다고 생각되면 그 때 느껴지는 감정들이 힘들더라고요. 선택하고 책임지는 삶이 더 재밌고 저에게 잘 맞는 것 같아요.

선생님께서는 활동가를 어떻게 정의하고 계세요? 어떻게 보면 선생님의 연구는 활동의 일환으로 보이는데, 연구자이자 활동가로 구분해서 얘기 해 주신 게 궁금해서요.

처음부터 연구를 하면서 활동한 게 아니어서 인 것 같아요. 저는 노동운동을 하면서 활동을 시작했어요. 20대 초반의 어린 여성 활동가는 역할이 한정되어 있고 핵심적인 일에서는 배제되는 경험들이 많았어요. 제한 된 범위 안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가며 활동하는 게 재밌기도 했지만 고민이 많았습니다.

한 축으로 대학생활을 하면서 사회복지를 전공했는데 공부가 너무 재밌는 거에요. 그때까지만 해도 활동과 공부가 완전히 다른 투 트랙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러다가 대학원 진학을 앞두고, 제가 당시 활동을 하면서 관심을 갖고 있던 이슈와 그 안에서 제가 느낀 문제의식을 연구와 결합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게 되었거든요. 다행히 좋은 지도교수님을 만났고, 좋은 주제이고 관점이라고 격려 해 주셨어요

혹시 어떤 연구주제였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해고 노동자 가족이었어요. 당시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 노조에서 일을 하고 있었고, 그 때 보고 느낀 것들을 연구하고 싶었어요. 왜 구조조정이 됐을 때 사람들이 죽는지, 왜 가족들이 그렇게 힘들어 하는지. 관련한 이슈가 다뤄지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 정책적인 부분에서의 논의이고, 복직이 되면 모두 해결 될 것처럼 이야기 되잖아요. 제가 현장에서 본 건, 복직이 되어도 해결되지 않는 가족문제는 여전하고, 해고노동자 신분으로 살던 10여년동안 노동자 개인도 이전과는 다른 사람이 되어 있고, 가족의 성격도 바뀌게 되고요. 그런 것들을 담아내는 연구를 하고 싶었어요.

막상 연구를 시작하니까, 이게 활동이 맞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어요. 왜냐하면 연구자들은 학문적으로 접근해서 이게 얼마나 이론적으로 중요한 것인지에 중점을 두지, 당사자라든가, 현장을 중심으로 하는 사회적 의미에 대한 고민이 많지 않아요. 연구 주제를 갖고 현장에 갈 때마다 내 연구의 업적을 위한 건 아닌가 하는 자괴감도 들고, 반면에 진짜를 담겠다는, 정말 당사자분들께 필요한 뭔가를 만들어내겠다는 도전의식이 생기기도 하고요.

선생님께서 생각하는 활동의 핵심은 현장에 머무는 것인가봐요.

그것만이 활동은 아니지만 그게 빠지면 안된다고 생각해요. 제 경험 안에서도 당사자로서 참여한 연구라 하더라도, 스스로를 단순히 연구 대상으로만 여기는 것과 정말로 스스로를 연구 참여자라고 여기는 건 정말 다른 경험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결과물도 다르고요. 그 감을 잃지 않으려고, 관계를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그런데 활동 현장은 너무 바쁘고 정신없이 새로운 이슈와 해야 할 일들이 생겨나는데, 연구라는 것은 음.. 어떤 시간과 공간의 방 같은 곳에서의 작업이 필요한 일이기도 해서 저의 위치나 미래에 대한 계속 고민이 있습니다.

비교적 어린 나이에 활동을 시작하시게 된 계기가 있었나요? 활동은 선생님께 어떤 의미인가요.

저는 고등학교 2학년까지 마치고 학교를 그만뒀어요. 착한아이 증후군 같은 게 있어서 되게 오래 주변 사람들에게 좋은 친구, 좋은 제자, 좋은 딸이고 싶었어요. 그러다가 어느 시점에 보니 제가 없는 것 같은 느낌인거에요. 지금 생각하면 너무 급진적인 선택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도 드는데 누군가의 기대를 벗어나 스스로 원하는 삶을 살려면 학교를 그만두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개인적으로는 굉장한 포부가 있었거든요. 그런데 막상 떠나고 보니, 학교라는 틀에서 벗어나면 존재가 아예 지워진다는 걸 체감했어요. 보통의 19살은 모두 학교에 있는 그 시간에, 밖에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는 거에요. 더 나은 삶을 살고 싶었던건데, 학교를 다닐 때보다 더 큰 압박이 느껴졌어요. 누구도 제가 왜 학교를 그만뒀는 지 궁금해하기보다, 그냥 자퇴생, 실패한 애로 치부하는거죠. 그런 경험들을 통해서 사회적인 배제라는 것이 제가 이제껏 생각했던 것과 다르구나를 많이 느꼈어요.

선생님께서 생각하는 인권은 무엇인가요?

각각이 다 너무 다른 사람들이, 그냥 그 존재답게 살 수 있는 게 인권이 보장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일례로 여자이기 전에 고태은, 박혜윤이라는 사람이 있잖아요. 각자가 좋아하고 하고 싶은 일을 꿈꾸고 도전하는 데 제약이 없는 상태? 올해 재단 지원으로 진행되는 프로젝트는 중증장애인 노동자분들의 노동과 관련된 것인데, 장애인이 노동을 하려고 하면 ‘너네 왜 노동해?’라는 이야기를 왕왕 듣고, 실제 노동 현장에서도 수많은 제약을 경험해요. 장애인이 노동을 한다고 해서 인류의 엄청난 뭔가가 낭비된다거나 하는 것도 아니고 장애인 노동이 만들어내는 사회적 가치가 어마어마한데, ‘안해도 되는거 아니야?’ ‘힘들게 왜 일해?’ 이런 입장이 다수이거든요. 좀 더 단순할 수 있지 않나요? 일하고 싶은 욕구가 있다면 그냥 일하게 해 주면 되는 거 아닌가?

개개인이 그 자체로 존중받는 사회가 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건 뭐라고 생각하세요?

이전에는 정책이나 시스템을 중요하다고 여겼었는데 아무리 좋은 제도를 만들어도 사람들이 마음을 먹으면 나쁘게 쓰이더라고요. 없을 때는 이렇게 저렇게 하자고 제안할 수 있는데 이미 있는 제도가 잘못 굴러가면 바꾸기가 더 어렵더라고요, 설득하기도 어렵고요. ‘이미 제도가 있는데 뭘 더해’ 라고 하거나 ‘그 제도 경험해봤는데 별로더라’ 하면서요.

요즘은 서로에 대해 더 이해 할 시간과 경험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큰 고민이나 불편함 없이 표준적인 삶을 사는 사람들이 아니라, 다른 몸으로 다르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에 대해 궁금해 하고, 그들의 필요를 고민하고 이해하려고 하는 과정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선생님의 인권에 대해서도 자주 생각하시나요? 말씀하신 것처럼 선생님 존재 자체로 살아가고 있다고 느끼시는 지, 그럴 수 있도록 어떤 부분을 살피시는 지도 궁금합니다.

우선 지금의 제 존재부터 정의내려보자면, 사회복지라는 학문은 받는 사람과 주는 사람이 명확하게 나뉘어 있다보니 나는 ‘주는 사람’이라고 인식하고 받는 사람의 입장을 잘 생각하지 못하던 때도 있었어요. 그것에 대한 반성도 있었고.. 한편으로 여러 활동의 과정을 거쳐오면서, 연대자의 입장일 때도 있지만 피해 당사자로서 활동을 했던 시기도 있었거든요. 제 모습과 역할은 고정되어있다기보다, 상호의존적으로 만들어지고 있는 존재라는 생각을 했어요. 저는 자주 제가 ‘경계선이 없는 경계에 서 있는 사람’이라고 느껴요.

일을 하는 데 있어서는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에 감사한 마음이 있어요. 연구원에 들어가자니 현장의 이야기를 담는 데 한계가 있고, 연구를 하면서 상근으로 활동하기에는 시간이 나지 않아 고민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바람’의 구성원들이 제 상황을 이해해 주시고 적절한 역할을 제안 해 주셨어요. 연구도 하면서 활동의 흐름을 읽을 공간이 있는 것도 좋고요.
1년 뒤에는 또 어떻게 될지 불확실하지만, 지금 가는 길 위에서 좋은 사람들과 함께하는 좋은 배를 탔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누가 이미 걸어온, 정형화 된 길을 가는 게 아니다 보니 불안감이 높아질 때가 있어요. 그런데 예전에 아는 활동가 분이 이런 조언을 해 주신 적이 있어요. 목표를 보고 걸으면 성취할 때도 있지만 실패할 때도 많은데, 방향을 정하고 그 길로 걸으면 언제 돌아봐도 꾸준히 그 길을 가고 있을 거라고요. 그게 저한테 되게 힘이 되더라고요. 헤메고, 계획이 틀어지고, 잘하고 있는걸까, 이 길이 맞나 무력감이 들 때마다 그 이야기를 떠올려요. 돌아봤을 때 내가 걸어온, 걷는 길이 내가 가고자 하는 길 위에 있다면 괜찮은거라고 마음을 다독이면서요.

[사진] 박소리

 

글|박혜윤
전(前) 변화의시나리오 담당자 / 귀 기울여 듣고 애정을 담아 질문하고 싶은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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