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11 누구나 투표할 수 있는 세상으로 가요.

2022-02-11

누구나 투표할 수 있는 세상으로 가요.

무릎 수술을 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친구와 외출한 날이었어요. 카페로 들어가려고 출입문을 잡고 친구를 먼저 들여보내려 했는데 계단 폭이 좁아서 다친 발과 다치지 않은 발, 그리고 목발 스텝이 모두 꼬였어요. 하마터면 넘어질 뻔한 아찔한 순간이었죠. 평소엔 아무렇지 않게 드나들던 카페였는데 새삼 턱의 높이를 실감하게 됐어요.

만약 카페가 아니라 투표소라면 어떨까요. 엘리베이터가 없는 건물 3층에 기표소가 있다면, 활동보조인이 함께 들어갈 수 없다면… 내내 진땀을 흘릴 거예요. 2000년대 장애인들이 경험해야 했던 현실이기도 했죠. 2006년부터 3년간 아름다운재단이 ‘장애인 선거참여 활성화 지원사업’을 진행했던 주요한 이유였고요.

2022년, 오늘은 어떨까요? 공보물을 읽고, TV토론을 시청하고, 기표하고, 개표방송까지 이어지는 전 과정에 누구도 소외되어서는 안 된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어요. 장애인 당사자들과 장애인 인권단체들의 노력 끝에 어렵게 성취해낸 변화이기도 합니다. 오늘은 지난 5년간 달라진 투표 환경을 돌아보고, 누구나 투표할 수 있는 세상을 그려보는 시간을 가져보려 합니다. 함께 후후💨 할 준비 되셨나요?

2015년, 점자형·음성 선거공보가 의무화되었어요.

정당이나 후보자들이 선택적으로 발행해왔던 점자형 공보물을 의무적으로 발행하게 되었어요. 점자를 읽지 못하는 시각장애인을 위해 음성형 선거 공보도 추가해야 합니다. 다만 점자 배치가 틀리는 등의 경우도 있고, 음성형 선거 공보가 담긴 바코드 스캐너가 별도로 필요해 보완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어요.

2016년, 손목과 마우스피스형 기표 용구가 비치되었어요.

손목을 감는 밴드에 볼펜 크기의 기표 도장이 붙어있는 손목 기표 용구, 입에 물고 기표할 수 있는 마우스피스형 기표 용구가 개발되어 전국 기표소에 비치되었어요.

2016년, 발달장애인도 투표 보조 인력과 함께 투표 가능해요.

선거매뉴얼이 개정되면서 신체장애 외 발달장애인도 투표 보조를 받을 수 있게 되었어요. 참정권 보장을 외쳐온 발달장애인들에게는 큰 변화였습니다. 그런데 2020년 개정된 내용이 매뉴얼에서 삭제되었고, 최근 장애인 인권단체들은 발달장애인 투표 보조를 받을 수 있도록 매뉴얼을 변경해달라는 임시조치를 신청하는 등 논의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2018년, 기표소는 투표하기 편한 곳으로!

‘투표소는 고령자ㆍ장애인ㆍ임산부 등 이동 약자의 투표소 접근 편의를 위하여 1층 또는 승강기 등의 편의시설이 있는 곳에 설치하여야 한다.’고 규칙이 개정됐어요. 다만 원활한 투표관리를 위하여 적절한 장소가 없는 경우에는 예외를 둘 수 있어서 개정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죠.

2020년, 후보자 대담 및 토론시 수어방송 혹은 자막이 삽입돼요.

후보자들끼리 TV에 나와서 토론하거나 대담을 할 때에는 자막방송이나 수어통역을 해야해요. 그전까지는 ‘자막방송이나 수어통역을 할 수 있다’로 명시되어 있었는데 ‘해야한다’로 바뀌었습니다.

장애인 당사자들과 장애인 인권단체들의 노력 덕분에 이동 약자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투표를 쉽게 할 수 있게 되었어요. 물론 지금의 변화에 안주할 순 없어요. 아직 보완해야 할 것들이 많으니까요. 선거를 앞두고 장애인 인권단체들과 당사자들이 촉구하고 있는 변화를 2027년 가상뉴스로 정리해봤어요. 조금 더 빨리 만날 수 있는 변화이길 바라며✨

그림 투표 용지가 도입되는 어느 날

투표용지를 읽고 이해하기 어려운 선거권자를 위해 그림(사진)투표 용지를 도입해달라는 의견이 있어요. 후보자 이름이나 번호를 활자로만 표기하면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에요. 그림투표의 필요성을 강조해온 한국피플퍼스트 서울센터 박경인 활동가는 “후보자의 사진 또는 정당 그림이 있는 쉬운 투표용지는 장애인뿐만 아니라 노인이나 글을 잘 모르는 사람에게도 필요하다. 쉬운 투표용지가 빨리 도입되어서 장애인 참정권이 보장되기를 바란다.”고 이야기했어요.

수어통역사도, 수어통역 화면 비율도 늘어나는 어느 날

선거방송에 여러 후보자가 나오는 경우에도 수어통역사는 1명만 배치되곤 해요. 어떤 후보자가 무슨 발언을 하는지 정확히 이해하기 어렵고, 화면도 작다보니 의미를 파악하는데도 어려움이 있었어요. 멀지 않은 미래에는 선거방송에서 사회자, 후보별로 수어통역사가 통역하는 모습을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지난 2월 3일, 한국수어의 날을 맞아 뉴스 화면에 앵커와 수어통역사가 5:5 비율로 등장한 변화도 있었으니까요. 장애인권법센터 김예원 변호사는 “2016년 한국 수화언어법이 제정된 것은 수어를 언어로 인정하고자 하는 사회적 합의를 의미한다. 선거라는 중요한 일에 들어있는 수많은 정보가 비장애인 중심의 언어만으로 제공되지 않아야 하는 이유다. 언어의 다양성을 존중하는 선거정보 제공은 사회가 합의하고, 법으로 정한 원칙이니 지켜지면 좋겠다.”고 당부했어요.

투표소 안에서도, 밖에서도 쉬운 정보를 사용하는 어느 날

지방분권, 고령화… 한자어 위주로 사용되는 공약집은 쉽게 이해하기가 어려워요. 방송 토론회도 마찬가지고요. 그래서 쉬운 공약집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많아요. 쉬운 단어와 설명, 직관적인 이해를 돕는 일러스트나 사진 등을 배치해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공약집을 만드는 거예요. 2022년 대통령 선거를 준비하는 발달장애인을 위해 쉬운 정책선거를 위한 자료를 만든 소소한소통 백정연 대표는 “성인이 되면 누구나 동등한 1표를 행사할 유권자가 된다. 그 1표를 제대로 행사하기 위해서는 후보자의 공약이 모두가 동등하게 접근 가능한 정보여야하나 발달장애인 등 일부 유권자에게는 그렇지 않다. 정보 약자에게 참정권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정보 선택의 기회, 즉 쉬운 공보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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