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재단 ‘변화의시나리오 프로젝트 지원사업’은 공익활동을 하고자 하는 시민모임, 풀뿌리단체, 시민사회단체를 지원합니다. 특히 성패를 넘어 시범적이고 도전적인 프로젝트를 지원함으로써 공익활동의 다양성 확대를 꾀합니다. ‘2021 변화의시나리오 프로젝트 지원사업’에서 어떤 활동들이 진행되었는지 그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제주에는 육지부와 달리 소위 ‘강’이 없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강은 물이 상류에서부터 하류까지 사시사철 유유히 흐르는 곳입니다. 그런데 제주에 그러한 강은 없습니다. 도내 일부의 소수 하천에서만 하류나 중류에서 용천수가 솟아올라 짧은 구간에 흐를 뿐입니다. 그래서 제주도의 하천은 모두 건천입니다.

그래서 혹자는 제주의 하천을 무미건조할거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도외 지역과는 달리 용암이 흐르면서 만들어진 기암괴석과 거대한 소(沼), 하천변의 울창한 숲이 자리 잡고 있는 곳이 제주의 하천입니다. 143개의 하천이 한라산을 기점으로 하여 북쪽 바다를 향하여, 남쪽 바다를 향하여 달려 나가는 형태를 한 제주의 하천은 수많은 혈관 역할을 하고 있기도 합니다. 제주도의 자연생태계 중 유일하게 단절되지 않고 고도 별로 식물의 변화를 알 수 있는 유일한 곳이 제주의 하천입니다. 

 

▲ 광령천. 평소에는 물이 흐르지 않는 건천이다.

뿐만 아니라 이 하천을 중심으로 수많은 생물이 삶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건천이 대부분이지만 제주도의 하천에는 약 40여종의 민물고기가 서식하고 있습니다. 어류뿐만 아니라 양서파충류, 수서곤충이 사는 공간이며 이들을 먹으러 다양한 종류의 새들과 노루, 오소리 등 포유류가 물을 마시러 오는 오아시스 같은 공간입니다.

그리고 제주인에게 하천은 식수를 구하는 곳이기도 했고 신앙의 장소였으며 어릴 적 수영하던 추억의 장소였습니다. 그래서 하천의 소마다, 기암괴석마다 이름이 있고 전설이 내려오고 있습니다. 서중천, 창고천, 외도천 등 하천 안이나 주변에서 선사 유적지가 발견되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듯이 제주인에게 하천은 기댈 수 있는 자연자원이었습니다.

 

▲ 천미천의 화산성 암반으로 이뤄진 소(沼). 제주도 하천만의 특징이다.

그러나 그동안 제주의 하천은 복개, 하천정비, 도로 및 주차장 건설, 하수유입, 골재채취 등으로 수난을 당해왔습니다. 최근에는 하천 복개, 하수유입, 골재채취는 거의 사라지고 있는 추세이지만 현재까지 제주 하천 파괴의 가장 큰 주범은 바로 하천 정비입니다.

 

▲ 강정천 하류의 냇길이소. 용천수가 흘러나와 깊은 습지를 만들었다.

▲ 광령천의 청개구리. 뜨거운 여름, 화산성 암반을 붙잡고 올라가고 있다. 제주하천은 건천이지만 수많은 생명들이 살아가는 오아시스이다.

 

하천정비 과정에서 제주도 하천의 원형이 상당 부분 사라졌습니다. 제주의 하천 중에 하천 정비를 하지 않은 하천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143개의 하천 중 지방하천, 소하천 가리지 않고 하천정비 공사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 최근에 의귀천 하천 정비 사업. 양안의 상록활엽수림을 없애고 바닥의 화산성 암반까지도 파괴되고 있다.

 

정비 과정에서 수많은 생물이 살고 있던 웅장한 소(沼)들은 포클레인에 파괴되었고 기암괴석도 사라졌습니다. 하천 양변으로 울창했던 숲도 공사 과정에서 사라졌습니다. 이것은 독특한 지역적 특성을 갖고 있는 제주도 건천에 대한 고려 없이 도외 지역에서 하는 강 정비 사업을 그대로 이어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행정당국에서 합법적으로 하고 있는 것이란 점에서 문제가 더 큽니다. 현재 제주도 관급공사 중 가장 큰 사업이 하천정비 사업이라 할 정도로 토건산업을 유지하기 위한 도구로 쓰이고 있기도 합니다. 물론 하천 정비의 명분은 홍수 예방 등 안전을 위한 시설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명분일 뿐 사업내용을 주의 깊게 들여다보면 필요를 넘어선 과도한 정비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제주환경운동연합은 이것의 근거를 정확히 파악하려고 올해 하천정비 조사를 진행하였습니다.

 

▲ 최근 서중천 하천 정비 현장 가운데 소(沼)을 남겨두고 모두 훼손되어 버렸다.

 

조사 결과, 명확한 피해 근거도 없이 하천 정비를 하고 있는 곳을 여럿 확인했습니다. 정비를 했는데도 불구하고 또다시 중복적으로 공사를 하고 있는 곳도 확인했습니다. 특히 천미천이 그러하였습니다. 이 조사결과를 바탕으로 천미천 정비사업에 대해 제주도 감사위원회에 성과감사를 청구한 상태입니다.

제주도 당국은 10년 전부터 하상 정비를 안 한다고 밝혔지만 아직도 여러 개의 소하천은 하상정비를 하고 있음도 확인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하천 안의 용천수가 없어진 것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하천정비 조사 결과를 토대로 하천관리 예산을 심의하는 제주특별자치도의회 보건복지안전위원회와 공동으로 하천정비 토론회를 열었습니다. 이 토론회를 계기로 제주도의회와 제주도당국의 변화가 감지되고 있습니다.

 

▲ 제주환경운동연합, 제주도의회 보건복지안전위원회 공동으로 개최한 제주형 하천정비 모색을 위한 토론회(8.11.)

또한 제주 하천의 아름다움과 하천정비의 문제점을 인식 시키기 위하여 시민 대상으로 하천 생태기행을 진행하였습니다. 참가자들은 제주도 하천의 아름다움에 새삼 놀랐고 하천정비의 문제점에 대해서도 제대로 인식할 수 있었습니다. 더불어, 언론사에 하천정비 기획연재를 6회 진행하면서 많은 반향을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여러 방송사들이 취재와 대담 요청이 오기도 했습니다.

▲ 제주환경운동연합이 발간한 제주도 하천정비 정책 보고서

 

그리고 제주도 하천의 가치와 하천정비의 문제점을 집중적으로 분석한 하천정비 정책 보고서를 만들어 제주도의회 의원 44명에게 모두 배포하여 정책자료로 삼을 것을 제안했습니다. 이러한 1년 동안의 조그만 움직임이 제주도 하천관리 패러다임을 변화 시키는 큰 변화를 몰고 올 것을 믿고 또한 바랍니다.

 
 

▲ 제주환경운동연합이 주최한 하천 생태기행.(한천에서)

글, 사진 : 제주환경운동연합

댓글 정책보기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