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재단 ‘변화의시나리오 프로젝트 지원사업’은 공익활동을 하고자 하는 시민모임, 풀뿌리단체, 시민사회단체를 지원합니다. 특히 성패를 넘어 시범적이고 도전적인 프로젝트를 지원함으로써 공익활동의 다양성 확대를 꾀합니다. ‘2021 변화의시나리오 프로젝트 지원사업’에서 어떤 활동들이 진행되었는지 그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한국전쟁 다크투어 가이드북을 만든 계기

국가를 위한 헌신, 전쟁영웅, 힘에 의한 평화… 국방부가 만들었고 한국전쟁의 공식 기억처럼 여겨지고 있는 용산 전쟁기념관의 전시내용이 던지는 메시지들이다. 2020년 한국전쟁 기억사진전 <허락되지 않은 기억 RESTRICTED>과 2021년 연속사업으로 진행한 <허락되지 않은 기억을 찾아서 – 파주 적군묘지에서 통영 용초도 포로수용소까지, 한국전쟁 다크투어 가이드북>을 시작하게 된 계기였다. 

전쟁은 전쟁이 진행되는 모든 시공간에 영향을 미친다. 전쟁을 수행하는 군인들은 물론이고 비전투원인 민간인에게까지도. 그럼에도 용산 전쟁기념관의 한국전쟁에 관한 기억은 주로 군인과 전투 뿐이다. 민간인 피해와 관련해서도 북한군에 의한 학살만을 이야기할 뿐 한국군과 미군에 의한 피해는 말하지 않는다. 의도된 목적을 위해 동원된 전쟁자료의 나열은 거짓과 왜곡을 수반한다. 한국전쟁을 다르게 기억할 순 없을까. 군인은 물론 민간인을 포함해 전쟁피해자를 화자로 하는 이야기를 꺼내보고 싶었다. 

2020년의 한국전쟁 기억사진전이 전쟁피해자의 관점에서 전쟁을 기억하기 위한 시도였다면 2021년 한국전쟁 다크투어 가이드북은 그 피해자들이 있는 곳을 소개하고 그 곳에 사람들이 찾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만들었다. 

<청주 분터골. 한국전쟁 당시 이곳에서 1천여 명의 민간인이 한국군과 경찰에 의해 학살되었다>

 

“덩그러니 서 있는 안내판, 봉분조차 없는 무덤, 그리고 흔적조차 남지 않은 항쟁의 거리. 그 모든 곳의 공통점은 쓸쓸함이었다. 허락되지 않은 기억을 듣기 위해 찾아간 곳마다 방문객은 찾아볼 수 없었다. 언제나 우리뿐이었다.” -가이드북 에필로그 「사라지지 않아야 할 곳」 중에서 

경산 코발트 광산, 청주 분터골, 산청 외공리. 이름만 들어서는 어떤 곳인지 잘 짐작이 되지 않는 이 장소들은 한국전쟁 당시 한국 정부에 의한 민간인의 참혹한 죽음이 있었던 곳이다. 철원의 백마고지 전적기념관, 칠곡의 다부동 전적기념관, 인천의 인천상륙작전기념관 등 한국전쟁의 주요한 전투가 있었던 전적지마다 기념시설이 들어서 있다. 하지만 전적지만큼이나 전국 방방곡곡에 흩어져 있는 수많은 아픔의 장소들은 그 이름도 위치도 알려지지 않은 채 쓸쓸히 머물러 있다.

우리를 데리고 그곳들을 함께 답사해주셨던 몇몇 분은 답답함을 토로하기도 했다. 자신 말고는 이 장소들을 안내해 줄 사람이 없는데, 자신마저 사라지면 누가 이 황량한 장소를 애써서 찾아오겠냐는 것이었다. 그 말에 우리도 덩달아 답답해졌다.

파주에서 통영까지 1만 5천 킬로미터, 서울에서 부산을 15번 이상 왕복할 만큼을 달려 전국의 민간인 학살지 등 한국전쟁의 고통과 슬픔이 있는 장소를 찾고 또 찾았다. 작년 4월부터 시작된 여정은 11월에 끝났다. 책을 보는 사람들에게 실제 사건이 있었던 현장에 가서 잊혔던 기억을 보고 듣고 느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사실 그곳들은 굉장히 초라하다. 안내판 하나만 덩그러니 서 있거나, 상황이 조금 낫다면 위령비가 서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물론 그것조차 없는 곳도 많다. 아예 현장에 도로가 깔리고 다른 건물이 들어선 곳도 있다. 또 그곳들은 찾아가기 어려운 곳에 있다. 지도 어플리케이션에도 나오지 않는 곳이 대부분이고, 어쩌다 그곳을 지나가더라도 그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기가 너무 어렵다.  

<허락되지 않은 기억을 찾아서>는 독자들이 혼자서도 그곳에 찾아갈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도록 만들려 했다. 그 장소들의 주소는 물론이고, 산속에 있어 찾아가기 어려운 곳은 더 자세한 길찾기 지도를 마련했다. 또 아는 만큼 보인다고, 각 장소들이 품고 있는 이야기를 조금 더 넓은 관점에서부터 차근차근 들을 수 있도록 풍부한 배경 텍스트도 준비했다. 마지막으로 해당 장소에 대한 해설 영상을 담았다. 저희의 답사를 맡아주신, 오랫동안 지역에서 활동과 연구를 하셨던 분들의 해설 영상이다.

 
 

이 책을 통해서 부디 더 많은 분들이 그곳을 찾고, 그곳을 생각하고, 그곳의 안부를 궁금해 하게 되었으면 좋겠다.

표지 디자인에 관한 이야기로 글을 맺으려 한다. 가이드북 제작 마지막 과정에 책의 표지를 결정하며 고민이 많이 들었다. 학살 피해자의 유해를 표지 이미지로 쓰는 것에 대한 고민이었다. 무력한 ‘양민’ 피해자의 이미지를 부각시키지 않을까 라는 조심스러움도 있었고, 또 자칫 너무 무거운 주제로만 받아들여져서 사람들이 쉽게 접근하지 못하게 되지 않을까 라는 우려도 있었다. 

지금의 표지 디자인은 여러 디자인 시안 중 디자이너 분이 가장 공을 들인 디자인이다. 그렇게 만든 디자인에 우리가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자 디자이너 분께서 이 디자인의 제작 의도를 전해주었다. 

단지 무섭고 슬픈 메시지를 강조하려던 것이 아니라, 학살 피해자들의 해원을 상징적으로 그려보고 싶어서, 학살 피해자들이 묻힌 좁은 곳에서 벗어나 광활한 곳으로 날아가는 모습을 생각하며 표지를 디자인했다는 것이다. 우리의 우려를 접고 그의 생각을 따르기로 했다. 우리 바람도 그러했으니까. 

 

<허락되지 않은 기억 표지>

글, 사진 :  열린군대를위한시민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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