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재단 ‘변화의시나리오 프로젝트 지원사업’은 공익활동을 하고자 하는 시민모임, 풀뿌리단체, 시민사회단체를 지원합니다. 특히 성패를 넘어 시범적이고 도전적인 프로젝트를 지원함으로써 공익활동의 다양성 확대를 꾀합니다. ‘2021 변화의시나리오 프로젝트 지원사업’에서 어떤 활동들이 진행되었는지 그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쉴 땐 유튜브로 레시피를 연구하죠. 요즘 책에선 별로 배울 게 없어요.”

손님이 없는 한가한 오전. 반찬가게 사장님과 이야기를 하다 쉴 땐 무얼 하냐고 물으니 주로 유투브로 레시피를 연구한다 하여 그림책을 추천해 드렸더니 유튜브로 충분하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끊임없이 반찬을 연구하는 모습이 책과 친해지면 금방 좋아하게 될 것 같아 두 권의 그림책을 배달하고 “시간 나실 때 천천히 읽어보세요.”라고 했다.

“그림책은 열어보셨나요?” “여기에 우리 엄마와 내 모습이 함께 있어요.”

며칠 후 반찬가게에 들렀다. 내가 문에 들어서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이야기를 시작했다. “여기에 우리 엄마와 내 모습이 함께 있어요. 그림책은 애들이나 보는 줄 알았는데 읽다 보니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어요.” 시장에서 생선을 파는 ‘막두’와 밥춤을 읽고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는 사장님을 보고 나도 모르게 눈가가 젖었다. 몇 번 더 그림책을 바꿔 드린 어느 날 “내가 뭐라고 이렇게 그림책을 가져다주며 읽으라고 하세요? 제가 도서관으로 빌리러 가도 되는데 5분이라도 자리를 비우면 손님 떨어질까 안 가게 되요.” 멋쩍게 웃으며 얘기하는 사장님이 말에 다른 시장 상인들도 이런 마음이겠지? 라는 마음에 그림책을 배달하고 싶다는 꿈을 꾸게 되었다. “1분, 1시간, 10시간 모두 손님을 기다리는 사장님 마음은 똑같다.”

그림책 꾸러미 시작!! “그림책 모임 해보시겠어요?”

아름다운재단의 변화의시나리오 지원 사업으로 그림책 꾸러미 배달은 시작되었다. 어떤 책을 좋아할지 고민하다 가게에 맞는 주제로 시작했다. 계절이 바뀌면 계절에 맞는 책도 함께 넣었다. 그렇게 시작한 책 꾸러미는 우리 예상과는 다르게 활성화되지 않았다. 역시 책을 읽을 시간도 없고 관심도 그다지 없다는 이유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꾸러미를 나르던 어느 날 ‘그냥 나라서 좋다’고 인정하는 내용을 보고 어렸을 때를 떠올렸다고 이야기해주는 상인, 현재 아이를 키우며 드는 생각을 얘기하며 울컥하는 상인들을 만나면서 상인들이 서로 만나 함께 책 이야기 나누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권했다. “그림책 모임 해보시겠어요?”

책 모임을 하는 동안 우리는 이웃이고 동료

드디어 첫 번째 그림책 모임을 했다. 디아더스 사장님, 코코 사장님. 오른공방 사장님을 비롯해 4명이 줌으로 만났다. 나이도 파는 물건도 다른 가게 사장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그림책 이야기를 하려고. 어떤 이야기로 시작할 지 고민하는 도서관 활동가들과 다르게 다양한 고민과 얘기가 자연스레 나오기 시작했다. 내 경험과 고민을 이야기하고 동료가 살아낸 삶을 재밌어했다. 책모임을 하는 동안 경쟁 관계였던 사장님들은 동료가 되고 이웃이 되었다.

 

그림책 소풍 가지 않으실래요?

그림책을 읽으면 자연스레 그림책에 관심이 간다. 지역에 그림책을 파는 책방이나 서점이 없어 아쉬워하던 찰나에 그림책이 많이 있고 멋지게 전시되어있는 전국에 작은 책방들을 구경 다니자는 제안을 했고 모두 좋아했다. 두 번의 책방탐방을 다니고 난 뒤 시간을 내 다양한 작은 책방이 있는 제주도에 다녀왔다. 가족이나 상인회 사람들이 아닌 두세 명씩 다니는 여행은 처음이라고 좋아라 했다. 상인들이 가보면 좋을 책방 리스트는 점점 쌓여갔다. 책방탐방을 다녀온 한 상인의 이야기는 우리 모두를 웃게 했다. “여긴 회 먹으로만 다녔지 이런 곳이 다 있네요.”

 

그림책 작가가 되는 꿈이 현실이 되는 곳

그림책을 읽고 나서 가장 많이 달라진 것은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부모의 삶을 보여주기도, 나의 삶을 보여주기도, 자녀의 삶을 보여주기도 하는 그림책은 상인분을 토닥토닥 위로하기도,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기도 했다. 시장 상권이 죽어간다고 한숨 짓는다. 작고 소중한 것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고 돈을 많이 버는 것보다 따듯한 동네에서 이웃과 나누는 삶이 더 중요하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그림책을 읽고 이야기가 쌓이니 그림책을 만들 수도 있겠다는 이야기가 하나둘 나왔다. 우리는 바로 작업에 들어갔다. 곧 5권의 그림책이 나온다.

 

“난 발레리나가 꿈이었어”

‘춤을 출 거예요’라는 그림책을 읽고 난 뒤 상상나무 사장님은 자신의 예전 꿈이 발레리나였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발레리나가 되려고 무용 학원도 다니고 공연도 다니고 대회도 나갔단다. 그런데 고등학교 3학년 때 발등을 다쳐 발레를 포기하셨단다. 대부분 속상하시고 마음이 아프셨겠다고 생각했지만 상상나무 사장님의 대답은 의외였다. 발레를 못 한다고 생각하니 슬픈 마음보다 시원섭섭했다고 한다. 

 

“발레를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에 얽매였는데 발레를 안 해도 되니 홀가분하지.” 그 뒤로 좋아하는 옷 관련된 일을 하며 지금까지 왔고 지금은 가게에 찾아오는 손님들의 고민도 들어주고 동영상도 찍고 놀며 소통하는 본인의 모습이 좋다고 하셨다.

“손님은 무슨.., 눈에 불을 켜고 지켜봤지. 그런 나에게도 책을 가져다주고 이야기를 들어주니 고맙고 미안했지…” 어떤 상인은 이런 이야기를 했다. 내 가게에 들어오는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내 물건을 훔쳐 갈까 봐 CCTV를 설치해 감시하고 아이들이 물건을 오래 만지면 물건이 훼손될까 만지지 못하게 했단다. 그렇게 대했던 아이들이 나를 위해 책 배달을 하다니..,

내 이야기로 글과 그림을 그려주는 아이들을 보고 예뻐하기 시작했단다.

 

“우리 딸래미 어렸을 적을 보는 것 같아. 쫑알쫑알 어찌나 말을 잘하던지”

토닥토닥 그림책 도서관에선 누구나 그림책을 읽고 리뷰를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있다. 도서관을 한 번도 이용해본 적이 없는 한 상인은 우연히 밴드에서 그림책을 리뷰하는 어린이 친구를 보고 딸래미가 어렸을 때 이야기 하는 것 같아 그 그림책을 읽어보고 싶어져 그 그림책을 도서관에 가서 빌려본 적이 있다고 했다. 이야기가 이야기를 만나 또 다른 이야기로 전해지는 경험. 한 분 한 분의 이야기를 드로잉 노트에 조금씩 그리기 시작했고 나아가 스케치북에 내 이야기를 내가 그리고 글도 써 그림책을 만들어가고 있다. 그림책 꾸러미가 가게를 왔다 갔다 하며 시작된 책 모임은 어느새 내 경험을, 내 추억을, 내 이웃과 공유하고 그림책을 만들어 보자는 꿈을 꾸게 되었다. 그림책을 만들겠다는 꿈은 실제 그림책을 제작하게 되었고 10권의 그림책이 곧 태어난다. 

 

그림책이 변화시킨 한글시장

나 밖에 모르던 우리들이 그림책을 만나 이웃을 알게 되었다. 분리수거가 안 되고 버려졌던 쓰레기들이 종량제 봉투에 담기기 시작했다. 시장에 오는 아이들도 함부로 쓰레기를 버리지 않는다. 거리에 널브러져 있던 담배꽁초는 어느새 사라졌다. 또 한 가지 변화는 상인들은 남성 중심의 구조 속에서 결정권이 없었다. 하지만 가게에서 일하시는 분들은 주로 여성들이 많다. 그들의 의사결정권이 크게 반영되지 않는 구조 속에 2022년 시장 상인회 회장은 여성이다. 갑자기 커다란 변화가 일어나진 않겠지만 목소리를 내어 조금씩 바뀌길 조심스럽게 기대해본다. 아름다운재단 변화의 시나리오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딱딱하게 굳어 있던 관계가 균열이 생기며 모두에게 열려 부드러운 관계가 되는 경험을 했다. 굳게 닫혀 있던 마음의 문이 이웃과 동료를 만나며 스르르 열리게 되는 힘을 통해 더 나은 미래를 기대한다.

 

돌아보며…

아름다운재단 ‘변화의시나리오를 마치며 진행의 중심에서 많은 고민을 했다. ’상인들이 그림책을 잘 읽을까?‘ , ’상인들에게 배달된 그림책은 잘 돌아다닐까?‘, ’상인들과 책모임을 할 수 있을까?‘ 처음엔 관심도 없고 책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말을 들었을 땐 어쩌면 어려울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뭐라고 이렇게 그림책을 무료로 가져다 주냐는 감사의 말, 그림책을 읽고 자신의 이야기를 스스럼없이 나누던 모습들, 내가 그린 그림책을 우리 아이들이 읽게 될 걸 기대하는 모습들, 살면서 어려웠던 이야기와 아이를 키우며 고민하는 이야기들, 방문할 때마다 해주는 응원들이 포기하지 않고 이어나갈 수 있게 한 동력이다. 어떤 특별한 한 사람이 이야기의 중심이 되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를 모두 함께 듣고 모두 함께 나누는 그런 시간이 참 좋았다. 

 

이런 세상에 되길 바라며

사람도 북적거리지 않는다고. 소소하게 재미를 나누며 시장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서로 관심을 가지며 지내는 모습을 보며 어쩌면 사라졌던 전통시장의 풍경이 아니었을까? 상상해본다. 시장이 하나 둘씩 사라져 기억조차 나지 않는 세상에서 여주는 아직도 골목길, 담벼락, 낮은 담장, 나물 파는 할머니가 있어서 좋다. 작은 시장들이 없어지지 않고 계속 남아서 다양한 사람, 다양한 세상을 있는 그대로 품고 살면 좋겠다. 돈이 제일인 그런 세상과는 조금 다른 모습을 남기고 싶다.
 
글 : 여주사람들-토닥토닥그림책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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