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열여덟 어른’ 손자영 캠페이너입니다. 시즌3 손자영 프로젝트는 저의 작고 사소한 일상 이야기에서 출발합니다. 열여덟 어른으로서 일상에서 겪은 경험을 솔직하게 전합니다. 자립준비청년(보호종료아동)을 바라보는 편견은 미디어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미디어 세상 밖에서도, 수많은 당사자 친구들은 부정적인 경험을 마주하곤 합니다. 제가 처음으로 가슴이 철렁했던 순간은 언제였을까요? 손자영 이야기, 지금 시작합니다.

가슴이 쿵 내려앉은 순간

살면서 가슴이 쿵-내려 앉은 순간이 얼마나 많을지 이때는 미처 몰랐다 (출처 : 손자영 캠페이너)

“근본도 없는 고아새끼라더니”

드라마를 보다가 불쑥 튀어 나온 대사에 가슴이 쿵-하고 내려 앉았다. 그 문장은 오랫동안 귓가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그 이유는 단 하나. 그렇다. 나는 고아이기 때문이다.

2022년 6월 벌써 보육원을 나온 지 7년 하고 4개월이 지났다. 7년이라는 시간동안 취업을 했고, 회사를 다녔으며 퇴사를 했다. 그리고 대학을 입학했고, 졸업을 앞두고 있다. 그 시간동안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경험했다. 그리고 그 안에서 나는 자주 상처 받았고, 외로웠다.

입사 첫날, 보육원에서 자란 것을 바로 이야기 하게 될 줄을 꿈에도 몰랐다. 회사 과장님이 내민 종이에는 보호자의 성함과 나이, 직업을 적는 칸이 있었다.

보육원을 나오자마자 내가 보육원 출신인 것을 말해야 한다고? 어쩐지 분한 마음이 들었다. 보육원에서 나를 돌봐 주었던 양육자의 이름을 적었다. 직업은 지어냈다. 근데 나이를 적을 수 없었다. 딸과 엄마의 적정한 나이 차이를 알 수 없었다. 내 눈동자는 빠르게 흔들렸다.

‘왜 안 적어? 빨리 적고 (생산) 라인 들어가야지.’
‘네….’ 대답을 함과 동시에 글자가 뿌옇게 흐려지면서 눈물이 앞을 가로 막았다.
‘왜….? 갑자기 왜 우는 거야..?’

그 말에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나중에는 눈물 콧물이 범벅이 되었다. 그때의 눈물은 내가 보육원에서 자란 아이라는 부끄러움. 그리고 보육원에서 나온 지 얼마 안되어 보육원에서 자란 것을 이야기 할 수 밖에 없는 억울함이었다. 그제서야 내가 보육원을 나와 오롯이 살아내야 한다는 것이 실감났다. 보육원 안에서는 모두가 비슷한 처지라 그런 감정을 느끼지 못했는데, 보육원을 나오니 철저한 이방인이 된 것 같았다.

나도 기억 못하는 수많은 거짓말

웃음으로 애써 감춰보려했던 나의 수많은 거짓말 (출처 : 손자영 캠페이너)

회사를 다니면서 수없이 들었던 ‘부모님은 뭐하시니’ 라는 질문에 자주 거짓말을 했다. 가끔은 내가 한 거짓말을 까먹어서 부모님의 직업이 바뀌거나 나이가 바뀌는 일도 종종 있었다. 그때는 내가 보육원에서 자랐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이 버젓이 있어도, 또 다른 누군가에게 보육원에서 자랐다는 것을 이야기 하고 싶지 않았다. 거짓말을 하는 것보다 나의 부모 없음을 또 다른 누군가에게 들키는 것이 더 무서웠다.

그럼에도, 나의 환경은 쉽게 이야기 되었다. 회사를 다니면서 실수를 하면 언제나 나의 부모 없음이 질책의 이유가 되었다. 그리고 인간관계에 서툴러 겉돌고 있는 내게 직장 상사는 다른 동료들에게 내 환경을 꺼내며 잘 챙겨주라고 이야기를 했다. 간절히 지키려고 했던 나의 출신의 비밀은 결국 모두에게 공유되고 말았다. 그 이후로 회사를 다니는 것이 편하지가 않았다. 회사에서는 아무렇지 않은 척 다녔지만, 퇴근을 하고 기숙사에 들어와 샤워를 하면서 울었다. 그때 처음으로 부모를 찾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검은머리 짐승이 되지 말아야지

언제까지 내 환경을 감추고 살아야 할까 (출처 : 손자영 캠페이너)

회사를 그만두고 아르바이트를 구하는 동안에도 등본을 요구하거나, 누구와 같이 사냐는 질문을 자주 받았다. 그런 질문을 받으면 가슴이 쿵쿵 뛰었다. 같이 일 하던 사장님은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은 등본을 보고, 같이 일을 하지 못하겠다고 했다. 분명 일을 잘한다고 좋아하셨는데, 하루 아침에 내가 일을 못하게 된 것일까? 갑작스럽게 바뀐 태도가 당황스러웠다. 내 환경은 그렇게 자주 나를 가로막았다. 그 뒤로는 새로운 아르바이트를 구하는 것이 너무 어렵게 느껴졌다. 어떤 사장님은 혼자 사는 애들은 믿을 수 없다고 내 얼굴 앞에서 이야기를 했다. 그 말을 들으면서도 나는 아무런 말을 할 수 없었다. 나를 거쳐간 어른들이 바라보는 나는, 그런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대신 나는 더 잘할 수 있다고, 열심히 하겠다고 이야기 했다.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에게 고밍아웃을 하게 되면, 그것이 되려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는 경우가 많았다. 부모 없이 자라서 그렇지 뭐. 검은 머리 짐승은 거두는 것이 아니야. 저 깊은 무의식 속에는 태어나서는 안될 존재가 이 세상에 태어난 것만 같은 느낌, 스스로를 부정하고 싶은 부끄러운 마음이 뿌리 내리게 되었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나는 검은 머리 말고 꼭 갈색으로 염색을 하겠다고 말이다. 그래서 한동안 검은색과 갈색의 중간인 고동색 머리를 즐겨했다. 그럴수록 나의 환경을 더 숨겼고, 행복한 가정, 완벽한 가정에서 자란 나로 비추어 지길 간절히 바랐다. 그렇게 만들어진 거짓말은 스스로를 갉아먹었다.

* 미디어에서 보여지는 고아 캐릭터가 당사자의 삶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손자영 프로젝트를 통해 전달합니다. 손자영 캠페이너가 직접 쓴 ‘연재 시리즈’는 앞으로도 계속 됩니다.

시즌3 손자영 프로젝트 바로보기 👉 https://beautifulfund.org/eighteen-advocac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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