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열여덟 어른’ 손자영 캠페이너입니다. 시즌3 손자영 프로젝트는 저의 작고 사소한 일상 이야기에서 출발합니다. 열여덟 어른으로서 일상에서 겪은 경험을 솔직하게 전합니다. 자립준비청년(보호종료아동)을 바라보는 편견은 미디어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미디어 세상 밖에서도, 수많은 당사자 친구들은 부정적인 경험을 마주하곤 합니다. 때문에 지금까지 많은 거짓말을 해야 했는데요. 왜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었을까요..? 손자영 이야기, 지금 시작합니다. |
세상에 뿌려진 나의 거짓말
보육원을 퇴소하고 나서 한동안 피노키오처럼 살았다. 거짓말을 한 만큼 코가 길어지는 피노키오라면 아마 내 코는 서울과 부산에 거리를 단숨에 넘지 않을까. 사람들을 처음 만나는 자리이거나 새로운 곳에서 일하게 되면 가장 흔하게 듣는 질문이 있다. 질문에 대한 답 중 어떤 것은 살짝 꾸며내는 거짓말이고, 어떤 답은 아무도 모르는 완벽한 거짓말이다. 거짓말의 수위와 정도는 오롯이 나만 안다.
“본가는 어디세요?”
“부산이요. 그쪽은 어디세요?”
대화의 주제를 상대방에게 넘겨보지만 이내 빠르게 돌아온다.
“그럼 부모님은 부산에 계세요?”
“(음…) 네, 계시죠. 근데 저 혼자 자취한 지 꽤 되어서…”
부모님이 계시신다고 말을 하고 난 뒤 얼굴은 빨개지고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 본가는 부산이 맞는데 부모님이 계신다는 것은 거짓말이기 때문이다. 솔직히 본가도 부산이 맞는지 모른다. 그냥 오랜 시간 부산에 있는 보육원에서 자랐기 때문에 임의로 정했다. 분명 사투리를 잘 쓰지 않는다는 대답이 돌아올 것이 뻔하기 때문에 “사투리는 거의 없어요”라고 다급히 덧붙였다. 그리고 상대방의 표정과 눈빛을 구석구석 살핀다. 혹여나 거짓말을 알아차릴까 전전긍긍하면서.
거짓말과 용기, 그 사이 어딘가
보육원을 나오고 나서 한동안 나는 자주 도망쳤고 숨어버렸다. ‘가족’이라는 주제가 나올 때마다 사람들을 피했고 대화 주제를 돌리느라 애를 먹었다. 어쩐지 행복한 가정에서 자란 사람으로 보이고 싶었다. 그런 마음이 강하게 들면 들수록 거짓말은 더 공고해졌다. 어떤 날은 아버지가 공무원이 되기도 했고 엄마는 잘나가는 회사원이 되었다. 우리 가족은 쉬는 날에 무엇을 하는지, 어디로 여행을 가는지도 늘어놓았다. 완전 거짓말쟁이였다. 그런데 그렇게 이야기해야 마음이 놓였다. 그리고 사람들 안에서 아무렇지 않게 섞일 수 있었다. 한바탕 거짓으로 나를 만들어 놓고 아무도 없는 텅 빈 집으로 들어오면 어쩐지 공허한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내가 보육원에서 자랐다는 것을 말할 수 없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진실을 말하고 싶은 마음과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더 많이 충돌했다.
인터넷 포털 뉴스에서 잘못을 저지른 사람에게 부모의 존재를 물어보는 댓글이 달릴 때, 가정환경이 중요하니 가정교육을 잘 받은 사람을 만나야 한다는 인기 있는 게시글을 볼 때, 드라마에서 잘못을 저지르는 범죄자는 언제나 고아라는 것을 확인할 때마다 나는 아니라고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그럴 때는 혼자 댓글에 ‘싫어요’를 눌렀다. 그리고 가정환경을 극복할 수 있는 심리 관련 영상을 찾아보기도 했다. TV 속 드라마는 꺼버렸다.
사랑하는 사람에게도 보육원에서 자랐다는 것을 말하지 못했다. 그동안 해왔던 거짓말을 어떻게 수습할지 감당도 안 되었을뿐더러 혹여나 나의 환경이 관계의 영향을 미칠까 걱정되었다. 그렇게 혼자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몇 날 며칠을 잠도 제대로 못 잤다. 누가 보면 잠까지 설치나 싶지만, 그때는 그 문제가 세상에서 제일 심각했다. 밤새 내가 하고 싶은 말 정리하고 또 정리했다. 그리고 반응에 따라 어떻게 대처할지도 치밀하게 계획했다. 그리고 용기를 냈다. 사람들이 보는 나는 내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왜 그렇게 많은 거짓말을 해야 했을까
“나 사실 부모님 계신다는 거 거짓말이야. 보육원에서 자랐어…”
이 말을 함과 동시에 왈칵 눈물이 났다. 눈물이 시야를 가리는 상황에서도 옆 눈으로 상대방의 표정을 빠르게 살폈다. 몇 초간의 침묵. 이 몇 초가 나에게는 몇 분 아니, 몇 시간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생각보다 상대방에게서 건네진 날아온 말은 너무 아무렇지 않았다.
“그래서…? 그게 왜…?”
‘이 반응은 시뮬레이션에 없었는데… 뭐지…’ 나는 약간 당황했다. 그동안 환경을 이야기하면 동정의 시선을 받거나 약점이 되는 경우가 많았는데 아무렇지 않은 반응은 처음이었다. 한편으로는 안도했다. 그때의 ‘그럴 수 있지’ 경험 이후로 내가 보육원에서 자랐다는 것이 그렇게 막 창피한 것도 이상한 것도 아닐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모두가 저마다의 사연과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는 것도. 내가 경험한 과거에만 매몰되지 않으니 타인의 삶에도 점차 기울이게 되었다. 나는 그동안 왜 그렇게 많은 거짓말을 했을까?
그건 아마 어릴 적부터 보육원에서 자란 것을 발설하면 안 된다는 생각들. 그리고 사람들이 나를 불쌍하게 보지 않을까에 대한 걱정. 사람들이 내게 던진 차별의 경험들이 쌓여 스스로를 피노키오로 만든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지금의 내가 아닌 과거로 돌아간다면 거짓말을 하지 않을까? 어쩌면 나는 또 수많은 거짓말을 할지도 모른다. 여전히 나는 사람들의 편견과 시선이 두렵기 때문이다.
* 미디어에서 보여지는 고아 캐릭터가 당사자의 삶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손자영 프로젝트를 통해 전달합니다. 손자영 캠페이너가 직접 쓴 ‘연재 시리즈’는 앞으로도 계속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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