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저거 가지고 놀아도 돼요?”

아이들이 책상에 놓인 놀이 도구를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바라보며 물었다. 지난 8월 27일, 어린이 누구나 마음 놓고 즐겁게 놀 수 있는 ‘무장애 놀이 키트’를 만드는 어린이 기획단 워크숍이 열렸다. 워크숍이 열리는 이룸센터 누리홀로 들어서자 가장 먼저 디폼블럭, 미니 젠가, 발목 줄넘기, 색판 뒤집기 등 다양한 놀이도구들이 눈에 띄었다. 이날 모인 아이들이 가지고 놀며 연구할 놀이도구들이었다.

재미난 놀이감이 풍성했던 무장애 놀이키트 어린이 기획단 워크숍

어린이 기획단이 모인 이유는 두 가지였다. 첫째, 마음 놓고 신나게 놀기. 둘째, 함께 논 경험을 바탕으로 어린이들 누구나 재밌게 놀 수 있는 놀이 키트 구상하기. 이른바 ‘무장애 놀이 키트 어린이 기획단’이다. 다양성을 고려하기 위해 어린이 기획단에는 발달장애와 지체장애, 자폐 스펙트럼 장애 등 장애가 있는 아동과 비장애 아동이 함께했다.

김남진 국장(무장애연대 사무국장)이 시작에 앞서 함께 할 프로젝트를 소개했다.

“어린이 여러분 반갑습니다. 오늘 우리는 함께 무장애 놀이 키트를 만들 텐데요. 우선 재밌는 장난감을 같이 상상해 봐요. 우리가 상상한 장난감은 전국에 있는 친구들한테 나눠줄 거예요. 다양한 친구들이 재밌게 놀려면 친구들의 다양한 특성을 떠올려야겠죠? 키가 큰 친구도 있고, 작은 친구도 있고, 무거운 걸 잘 드는 친구도 있고, 들기 힘든 친구도 있기 때문에 그런 점들을 고려하면서 함께 놀아 봐요. 오늘은 적극적으로 뛰어다니면서 놀아도 돼요.”

김남진 국장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한 아이가 강단으로 뛰어 올라가 방방 뛰며 놀았다. 선생님이 들고 있던 마이크를 받아 들고 이야기하는 아이도 있었다. 워크숍은 자유로운 분위기로 진행되었다. 함께 한 퍼실리테이터들은 아이들의 행동을 제재하기보다는 있는 그대로 놀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다. 그래야 자연스럽게 노는 모습을 관찰할 수 있고, 무장애 실내 놀이터를 구성할 때 고려할 참조할 점을 풍부하게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무장애 놀이키트 어린이 기획단


“놀이 생각” 나누고, 놀이 도구 연구하기

어린이 기획단은 먼저 놀이에 대한 각자의 생각을 나눴다. 여섯 가지 질문이 적힌 보드에 다양한 답이 적힌 포스트잇이 달렸다. 주로 노는 장소, 좋아하는 놀이도구, 함께 놀았던 친구, 갖고 싶은 놀이도구, 실내 놀이터에서 마음에 들었던 점, 놀이도구에 대한 아쉬움 각각의 질문에 아이들은 평소 가진 놀이에 대한 생각들을 풀어냈다.

놀이에 대한 생각 풀어내기

다음으로는 놀이도구를 선택해 놀며 여러 관점으로 관찰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냥 노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놀이 키트의 개발을 위해 놀이도구의 어떤 점이 좋고, 불편한지 살펴보았다. 처음에는 각 모둠이 2개의 놀이도구를 뽑아서 가지고 놀았다. 색 블록을 받은 조는 블록을 분해해 재조합하기 시작했다. 색 블록을 최대한 높이 쌓기도 했고, 좋아하는 게임 캐릭터의 모습을 형상화하기도 했다. 기차 모양을 만들어 “칙칙폭폭” 소리 내며 기차놀이를 하기도 했다. 하나의 놀이도구가 주어져도 아이들은 자기만의 놀이 방식을 창조해냈다.

다음으로는 원하는 놀이도구를 마음대로 선택해 놀았다. 시작을 알리는 선생님의 구호가 들리자마자 아이들이 놀이도구를 향해 달려 나갔다.

“우리 이거 하자.”
“나랑 이거 할까?”

놀이도구를 고른 아이들이 같이 놀 친구를 찾기 시작했다. 한 조는 핸드폰과 이름표에 스티커를 붙이며 함께 꾸몄고, 한 조는 손바닥만 한 매직 컬러링(스프링 모양의 링) 길게 늘어뜨려 함께 줄넘기 놀이를 했다. 어떤 조는 처음에는 보드게임을 각자 하나씩 골랐는데, 시간이 흐르자 하나의 게임을 같이 하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같이 놀기 시작했고, 주어진 방식이 아니라 자신들만의 놀이 방식을 즉흥적으로 창조했다. 어떤 아이들은 주어진 놀이도구가 대신 홀 안에 있던 바퀴 달린 의자를 타고 놀았다.

아이들의 모습을 지켜본 한 퍼실리테이터는 “놀이도구를 변형해서 놀거나 의자 같은 도구를 새롭게 발견해서 노는 모습이 인상 깊고, 생각보다 훨씬 더 활동적이고 넓은 공간을 사용하며 논다는 것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놀이감을 활용해 함께 놀기

무장애 놀이도구 기획하기

신나게 뛰어 논 아이들이 다시 책상에 앉아 무장애 놀이도구를 기획하는 시간이 왔다. 무장애 놀이도구를 만들기 위해서는 다음 조건을 만족시켜야 했다.

1. 누구나 쉽게 사용할 수 있게
2. 실내에서 갖고 놀 수 있게
3. 놀이도구의 이름은 다른 친구를 놀리거나 무시하거나 차별하지 않게

아이들은 지금까지 함께 놀았던 경험을 바탕으로 놀이키트를 기획했다. 하지윤 어린이는 오뚝이를 만들었는데, 무엇이든 던지며 놀기 좋아하는 다른 친구의 모습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했다.

“저는 오뚝이를 만들었어요. 아까 형준이가 공을 마음껏 던지면서 놀고 싶다고 했는데 오뚝이 모양의 공을 만들면 탱탱볼처럼 다시 돌아오고 말랑말랑해서 다치지 않을 거 같아요.” (하지윤)

무장애 놀이키트 아이디어를 정리하고 있다

이외에도 도넛 모양으로 생겨 손으로 잡기 편한 공, 집기 쉽게 휘어져 있는 카드, 마음대로 조립해서 가지고 놀 수 있는 롤러코스터, 다양한 블록을 알맞게 채우는 테트리스 박스. 모래로 무엇이든 만드는 장난감 등 다양한 아이디어가 나왔다. 아이들은 ‘무장애 놀이 키트’의 가이드를 생각하며 다른 친구들의 다양성을 고려한 놀이 키트를 기획했다. 장수연 퍼실리테이터는 서로의 다름을 존중하는 태도에서 좋은 아이디어가 많이 나온 것 같다고 말했다.

“한 친구는 발달장애가 있는 친구가 종이로 된 카드를 손으로 집기 어려워하는 걸 보고 잡기 편하게 구부려진 카드를 아이디어로 냈어요. 또 발달장애가 있는 친구가 던지기를 좋아하니까 안전하게 놀 수 있도록 오뚝이 공을 구상한 친구도 있고요.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한 아이는 글은 읽지 못하지만, 시각적인 강점이 있었거든요. 이런 친구들을 고려해서 놀이 키트 설명서를 글이 아니라 그림으로 만들자는 의견도 있었어요. 서로의 다름을 존중하고 그걸 통해 배우는 모습이 드러나는 워크숍이었어요.” (장수연 퍼실리테이터)

“내 몸의 어디가 즐거웠나” 스티커를 붙이는 장수연 퍼실리테이터와 무장애 놀이키트 어린이 기획단

다름의 가치가 빛을 발했던 어린이 기획단

놀이 키트 기획을 마친 아이들에게 마지막으로 신나게 노는 “PLAY TIME” 시간이 주어졌다. 인형 놀이, 블록 놀이, DYI 키트 놀이, 촉감 놀이 네 가지 파트의 놀이를 돌아가며 경험하며, 놀이를 통해 “내 몸의 어디가 즐거웠는지” 스티커를 붙이는 시간이었다. 클레이를 가지고 촉감 놀이를 했던 아이들은 클레이 안에 공을 넣기도 하고, 말린 강아지풀과 나뭇조각을 꽂아 공원을 만들고, 클레이를 길게 늘이는 게임을 하며 자기만의 방식으로 놀기 시작했다. 다양한 인형이 놓인 파트에서는 아이들이 인형을 만지거나 인형으로 상황극을 하기도 했다. 놀이를 마친 아이들이 각자 즐거웠던 몸의 부위에 스티커를 붙이며 이날 워크숍은 마무리됐다.

다양한 인형으로 놀아보는 플레이 타임

“블록 쌓기가 집중력을 길러주는 거 같아서 머리에 붙였어요.”
“전 심장에 붙였어요. 클레이 만지는 게 재밌었거든요!”
“저는 인형 보는 게 재밌어서 눈에 붙였어요.”
“저는 인형 만드느라 생각을 많이 해서 머리에 붙였어요.”

어린이 기획단의 이런 피드백들은 이후 무장애 놀이 키트와 실내 놀이터를 기획할 때 중요한 참조가 될 예정이다. 이날 워크숍에서 나온 아이디어와 관찰 결과를 바탕으로 무장애연대와 플레이31에서 “무장애 실내 놀이터 매뉴얼”과 “무장애 놀이 키트”를 개발할 것이기 때문이다. 제작된 키트는 어린이기획단을 비롯한 전국에 있는 어린이들에게 배포될 것이다. 엄효정 대표(플레이31)은 이날 워크숍에서 보인 아이들의 다양한 특성과 아이들이 어떤 놀이에 몰입하고 반응했는지 등을 반영해 무장애 놀이 키트의 프로토타입(prototype)을 만들고 테스트해 볼 계획이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무장애 놀이 키트 어린이 기획단’ 수료증을 받은 아이들이 아쉬움을 토해냈다.

무장애 놀이키트 어린이 기획단 이윤재(좌), 김이안(우)

“다음에 또 언제 해요? 다음에는 집에 가지 말고 여기서 자고 가고 싶어요. 1박 2일 하면 좋겠어요. 맨날 가족들이랑만 놀았는데 모르던 친구들하고 놀아서 좋았어요.” (이윤재)

“처음에는 재미없을 줄 알았는데, 재미있었어요. 친구들하고 게임을 한 것도 재밌었고요. 학교에서도 장애인 친구하고 활동을 여러 번 했는데 그때는 제가 일방적으로 돕기만 해서 재미가 없었는데 이번에는 같이 놀아서 재밌고 좋았어요. 친구가 더 많으면 좋겠어요. 친구가 많아지면 할 수 있는 것도 많아지니까요.” (김이안)

두 번의 짧은 만남이었지만, 그 과정에서 새롭고 다양한 친구들과 놀았던 경험을 아이들은 즐겁게 기억하고 있었다. 아이들이 말하고 간 이날의 감상은 신기하게도 ‘무장애 놀이 키트’가 지향하는 다름에 대한 존중의 가치와도 맞닿아 있었다.

글. 우민정 작가ㅣ사진. 임다윤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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