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사회단체 및 시민모임의 다양한 공익활동을 지원하는 변화의시나리오 프로젝트, 2021년 사업 뒷이야기를 담습니다. 오늘 소개할 단체는 부산비정규노동센터입니다. 부산비정규노동센터는 2021년 아름다운재단 변화의시나리오 프로젝트를 통해 ‘우리 집 택배기사님 생명을 지키는 #토요일은_택배 없는 날’ 사업을 진행했습니다. 택배노동자의 생명과 안전을 위해 주 5일 근무 캠페인을 하였습니다. 택배노동자 200여명 설문조사를 통해 80%가 넘는 노동자들이 주 5일제 찬성한다는 것을 확인하였으며, 시민 2천여명에게 홍보물을 배포, 택배노동자들의 삶을 알렸습니다. 택배노동자 및 시민들의 인식 및 태도변화를 위해 발로 뛴 프로젝트였습니다.   

한동안 언론을 통해 자주 기사화되었던 택배노동자의 과로사. 이 문제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고자 부산에 있는 여러 노동·시민단체가 뭉쳤다. 택배노동자 한 명, 한 명을 만나 살태를 파악하고, 여러 대안을 정부 부처에 제시하는 한편 택배노동에 대한 인식을 바꿔줄 캠페인을 펼쳤다. 막중한 책임감을 가지고 일을 추진해온 윤제형 간사는 택배노동의 가치가 제대로 인정되어야 한다며 강조했다.

10년 전보다 수수료가 줄어든 택배노동의 실태

주 5일제로 대부분의 노동자가 쉬는 토요일에도 여지없이 집앞에 도착하는 택배.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주말 배송에는 노동자들의 고단한 삶이 가려져 있다. 아침 7시에 출근해 수많은 짐을 실어나르고 운전하고 고객의 문의·항의 전화를 받으며 평균 12~14시간을, 그것도 주 6일간 반복한다. 고강도 노동을 이렇게 장시간 이어나가는 배경에는 낮은 수수료가 있다.

현재 택배 1건당 택배기사에게 돌아오는 수익은 640원. 수수료 30원 인상에 대한 합의가 지켜지지 않아 CJ대한통운 택배노동자가 2009년에 목숨을 끊었던 당시 수수료는 920원이었다. 13년이란 세월이 지나는 동안 물가는 치솟았고, 비대면 시대로 택배 물량이 폭발적으로 늘어났지만, 택배노동자에게 돌아오는 수수료는 오히려 30%가량 떨어진 것이다. 이런 아이러니한 현실에 윤제형 간사는 서둘러 대책 마련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고 힘주어 말했다.

부산비정규노동센터 윤제형 간사

“택배 과로사의 원인은 ‘저단가’에 있어요. 단가가 낮으니 많은 물량을 배송해야 하죠. 아침 7시부터 오후 2시까지 분류노동을 하고, 이후에 배송을 시작하는데, 학생들 하원시간이나 직장인 퇴근시간에는 길도 막히고 엘리베이터도 오래 붙잡을 수 없으니 그 시간 피해서 집중노동을 해요. 기사들이 보통 하루에 300건씩 배송하는데, 1분에 1개꼴로 5시간을 배송해야 가능한 물량이에요. 그러니 기사들이 화장실 안 가려고 물도 안 마시고 일하다 쓰러지는 거예요.”

택배노동의 현실을 마주한 윤제형 간사는 장시간노동으로부터 택배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해 사회적 합의기구와 끊임없이 논의하며 법과 제도 마련을 촉구했다. 그 결과 시범적으로 주 5일제가 시행됐다. 국토교통부의 제안으로 기사 2명이 1조를 이뤄 토요일에는 교대로 쉬도록 한 것이다. 하지만 직접고용이 아닌 계약관계의 택배기사들은 수익이 줄어든다는 이유로 이를 반기지 않았다. 또 긴급우편이나 익일배송에 비싼요금을 지불하듯 주말 배송에 한해 요금을 높여 토요일 배송 물량 자체를 줄이는 방안도 제시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처음으로 시도해본 #토요일은_택배없는날

법과 제도부터 바꾸는 것은 쉽지 않다. 역으로 시민들의 인식이 바뀌고, 시대적 공감대가 형성되면 그것이 법과 제도를 바꾸는 계기가 될 수 있다. 과로사대책위원회는 변화의시나리오 프로젝트로 ‘우리 집 택배기사님 생명을 지키는 “#토요일은_택배 없는 날”’을 추진했다. 2021년 8월 14일(광복절 공휴일 전날)을 시범적으로 ‘택배 없는 날’로 지정하고, 고객들에게 ‘#토요일은_택배없는날’ 캠페인을 펼친 것이다. 고객들의 반대가 심하지는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있었지만 결과는 뜻밖이었다. 많은 시민들이 택배기사의 토요일 휴무를 응원했다. 관할 지역별로 택배기사가 고정되어 있다 보니, 고객들 마음속에 자리잡은 택배기사에 대한 고마움과 친밀감이 응원으로 표현된 것이다.

과로사대책위원회에서 택배노동 실태 조사를 위해 고객들을 만났을 때도 택배요금이 500원 오르더라도 그것이 회사나 대리점이 아닌, ‘우리 집 우리 집 택배기사’의 처우 개선에 쓰인다면 인상해도 좋다는 것이 대다수 고객들의 반응이었다. 윤제형 간사는 고객들이 ‘우리 집 택배기사’에 대해서 만큼은 높은 유대감을 가지고 있다며 말을 이어나갔다.

“부산의 주요 거점지역에 #토요일은_택배없는날 자석스티커를 나눠드리며 현관문이나 차량에 붙이는 캠페인을 했는데, 시민들께서 적극 참여해주셔서 저희도 놀랐어요. 고객분들께서 응원주신 덕분에 택배노동자들에게 주말을 어떻게 보낼지 사용계획서도 공모했고요. 그중 많은 수를 차지한 가족과의 토요일 저녁 영화 관람을 위해 영화관을 대관했어요. 그런데 안타깝게도 10가족 중 7가족은 당일 저녁까지도 배송이 끝나지 않아 결국 영화를 관람하지 못했지만요.”

부산에서 선도적으로 시행한 ‘토요일은 택배 없는 날’은 과연 제도로 장착이 되었을까? 택배 서비스 출범 28년 만에 시행된 택배 없는 날은 안타깝게도 그날이 마지막이었다. 정부가 택배회사와 협의해 매년 정례화하겠다는 선언을 발표했지만, 결국 여러 현실에 부딪혀 ‘토요일은 택배 없는 날’은 시범적인 운영으로서의 의미만 남긴 채 실현되지 못했다.

새롭게 인식되어야 할 필수노동의 가치

윤제형 간사는 택배서비스를 이용하는 시민들의 인식을 바꾸는 것만큼 중요한 것이 택배노동자 스스로의 인식 변화라며 거듭 강조했다. 택배기사 중에는 사업실패로 인한 신용불량자, 권고사직이나 희망퇴직을 당한 가장, 취업이 어려운 청년을 종종 만날 수 있는데, 그러다 보니 노동자 스스로 노동의 가치를 낮추는 경향이 있다. 윤제형 간사는 택배노동자들 스스로 자신의 노동이 얼마나 가치 있는지 깨달아야 택배노동자의 권위가 올라갈 수 있다고 말했다.

“택배기사님들이 자신의 노동 가치를 낮게 평가하다 보니 정당한 권리를 찾지 못해요. 하지만 택배는 우리 삶과 굉장히 밀접하게 연결된 필수노동이거든요. 우리 사회가 원활하게 돌아가게 하는 귀중하고, 가치 있는 노동이라는 것을 택배기사님들이 스스로 깨닫고 자신들을 보호했으면 좋겠어요.”

윤제형 간사의 말처럼 택배노동은 비대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사회에 없어서는 안 되는 필수노동이다. 하지만 계약 관계로 묶여 있는 택배기사 한 사람, 한 사람이 스스로의 가치를 높이기는 쉽지 않다. 또 개별 노동조합이나 택배회사 하나만으로 택배노동의 가치를 높이기도 쉽지 않다. 택배업계 그리고 우리 시민들이 다 같이 필수노동에 대한 가치를 인정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노동의 가치를 정부가 외면하지 않아야 저단가에서 비롯되는 택배노동자의 과로사, 장시간노동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 믿는다. 택배 없는 사회?!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밀접하게 우리 삶에 들어와 있는 것이 바로 그 노동의 가치를 증명한다.

부산비정규노동센터 윤제형 간사의 한마디
“가끔 아이들에게 이런 얘기를 하는 부모들이 있어요. 공부 열심히 안 하면 저 아저씨처럼 택배나 나르게 된다고요. 택배노동은 현 사회에 없어서는 안 되는 필수노동이잖아요. 귀중한 필수노동자가 없으면 이 사회가 어떻게 될까요? 택배노동자의 가치를 인정해주는 사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글|사진 더디앤씨

댓글 정책보기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