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로자전거나라 장백관 대표

유로자전거나라 장백관 대표

 돌아갈 집이 없는 사람의 여행

여행(旅行)은 자기가 사는 곳을 떠나 유람을 목적으로 객지(客地)를 나다니는 일이다. 누군가는 반복된 일상의 쉼표로, 어떤 이는 의미를 찾기 위해 ‘이곳’을 떠나 ‘저곳’으로 향한다. 국가와 고향, 가족을 떠나 경험하는 일시적 자유. 이는 한 가지 전제를 가진다. 홈그라운드, 돌아갈 곳이다. 사는 수준, 공동체 구성원 심지어 행•불행도 상관없는 터전, 집을 기반으로 꿈꾸는 일탈이다. 정처 없이 떠도는 방랑 혹은 유랑과 여행이 다른 이유다.  
 
그 맥락에서 유로자전거나라 장백관 대표에게 여행은 어떤 의지였다. 돌아갈 곳, 이라는 뒷심을 향한 첫 발짝이었다. 사실 그에게는 돌아갈 집이 없었다. 어머니는 어릴 적 가출했고, 아버지는 자신의 일에 몰두하느라 곁을 주지 않았으며, 새어머니는 그를 싫어했다. 아무도 돌보지 않던 그는 일곱 살이 되던 해 집에서 쫓겨났다. 이후부터 부모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동양육시설(보육원)에서 자랐다. 그곳은 ‘집’이 아닌, 언젠가는 떠나야 할 ‘숙소’였다. 지붕 아래서 규칙적으로 지냈건만 일상은 늘 유랑이거나 방랑에 가까웠다. 그런 장백관 대표가 여행에 가슴이 뛰는 것은 당연했다. 다녀올게, 라고 말할 수 있는 떠남이라니. 여행의 목적지가 어디든 상관없었다. 그곳에서라면 어릴 때 헤어진 엄마를 찾을 지도 몰랐다. 

 “어릴 적 교실 벽에 걸린 세계지도만 봐도 가슴이 두근두근했어요. 그렇게 엄마를 찾고 싶었던 것 같아요. 떠나버린 엄마를 찾아 지구 곳곳을 누비는 꿈을 꿨지요. 초등학교 5학년 사회 시간엔 각국 수도 이름을 모두 외워 선생님께 사탕을 받기도 했어요. 좁은 방에서 30여명이 틈도 없이 자고 늘 배고팠지만 여행만 떠올리면 참을 만했어요. 남들 보기엔 역마살처럼 보였을 거예요. 불쑥불쑥 가출을 시도했거든요, 여행하겠다고! 서울역에서 기차를 몰래 타고 지방을 두루 돌아다녔어요. 식당이나 노점 아주머니들께 배고프다고 하소연해서 끼니를 때웠죠.”

서른다섯에 벗어던진 편견 

그에게 여행은 다른 사람의 시선으로 재단된 '장백관'이 아닌 진짜 장백관을 만나는 시간

그에게 여행은 다른 사람의 시선으로 재단된 ‘장백관’이 아닌 진짜 장백관을 만나는 시간

 

떠나면 모든 게 새롭게 보였다. 여행자가 되면 ‘고아’라는 낙인이 마법처럼 사라졌다. 자유롭고 가벼웠다. 자신을 제대로 바라보게 됐다. 다른 사람의 시선으로 재단된 ‘장백관’이 아닌 진짜 장백관을 만나는 시간이 여행이었다. 

 “대기업에 입사해서 2년 동안 엄청난 성과를 올렸어요. 과장 승진 타이틀이 걸린 전 사원 대상 프로젝트를 8개월 만에 목표 달성할 만큼 신나게 일했는데 학연과 지연에 걸려 좌절됐죠. 낙하산 인사를 받아들이기 어려웠어요. 화가 나서 회사를 나와 오랫동안 꿈꾸던 세계 여행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필리핀 마닐라에서 중요한 깨달음을 얻었어요.”

 ‘역시 잘 사는구나’ 감탄했던 일본을 거쳐 도착한 필리핀 마닐라는 정말 볼품없었다. 매연으로 뒤덮인 지저분한 거리의 즐비한 노점상은 실망 그 자체였다. 마닐라 주택가 근처를 슬쩍 둘러보고 숙소로 돌아가려는데 그때 얼기설기 지은 어느 판잣집이 눈에 띄었다. 창문 너머로 허름한 식탁 위 밥상에서 오순도순 식사하는 한 가족이 보였다. 단란한 그들에겐 가난의 그늘이 없었다. 순간 뭔가에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했다. 남 탓하기 바빴던 제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부모도 없고 사회인맥 없다는 조건에 매몰됐던 스스로를 돌아보게 된 것. 그는 비로소 열심히 일한 만큼 배불리 식사할 수 있고 저축할 만큼 누리고 있는 자신을 직시했다. 그리고 자신이 갈망했던 ‘집’이 무엇인지 알아챘다. 물론 그 집을 얻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그의 나이 서른다섯, 귀가(歸家)를 위한 제2의 인생이 시작된 것이다. 

지식가이드, 삶의 온기를 나누다 

기금 조성에 이어 아름다운재단의 후원행사에도 함께한 나눔인연

기금 조성에 이어 아름다운재단의 후원행사에도 함께한 나눔인연

 

좋아하는 일을 해야겠다고 마음먹고 미주와 중남미를 여행했다. 어디를 가건 재미있었다. 하지만 그 나라의 문화유적지나 박물관에 대한 제대로 된 지식을 습득할 수 없어 답답했다. 다른 여행자도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 색다른 여행사를 구상했다. 그리고 이탈리아 로마로 날아가 1년 동안 꼼짝 않고 공부만 했다. 그것이 유로자전거나라의 근간이었다.  

“연습 삼아 배낭여행자들에게 가이드를 해줬죠. 지식을 무료로 들려주고 피드백을 받았는데 반응이 좋았어요. 첫 해는 직원도 수신기도 없이 전화기 하나로 로마 가이드를 혼자 꾸렸는데 이제는 유럽여행 전문 회사로 성장했습니다. ‘지식가이드’가 유럽 8개국의 박물관·미술관 등을 돌며 역사·문화·예술을 설명하는 차별화된 서비스가 고객의 갈증을 풀어준 셈이죠.”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넉넉한 일상을 거머쥔 장백관 대표는 돌아갈 집도 마련했다. 물리적으로 또 정신적으로 온전한 집을 뒷심으로 두자 냉랭했던 생에 온기가 돌았다. 홀로 품을 수 없는 따뜻함이었다. 그래서 자신과 비슷한 시절을 사는, 가난해서 배우기 어렵고 배우지 못해 또 가난해지는 ‘빈곤의 순환’을 앓는 청소년을 돕기로 결심했다. 그것이 지난 2015년 1월, 아름다운재단에 3천만 원을 기부한 동기였다. ‘고등학생 교육비 지원사업’과 ‘아동양육시설퇴소거주대학생 교육비 지원사업’에 쓰일 <유로자전거나라장학기금>이 탄생한 것이다. 연이어 11월 취약계층 주거지원사업을 위한 아름다운재단 후원의 밤 행사에도 흔쾌히 함께 했다. 

☞ 주거지원캠페인 <집에 가고싶다> 참여하기 

 

“제가 퇴소할 때 6만 원을 받고 나왔어요. 이불 한 채와 쌀 한 포대도요. 그때 참 막막했죠. 하지만 지금 같진 않았어요. 방값이 쌌거든요, 일자리 구하기도 마음먹으면 가능했고요. 요즘은 참 어렵습니다. 현재 제가 지원하는 후배들이 있는데 그네들은 종일 일해도 여전한 주거불안에 미래에 대한 어떤 희망도 꿈꿀 수 없어요. 그런 친구들이 복지 사각지대에서 희망의 불을 꺼뜨리지 않도록 힘이 됐으면 합니다.”

자신이 어려운 순간에 절망하지 않고 건너와 이렇게 누군가에게 손 내밀 수 있게 됐듯, 힘든 시절을 지나는 청소년들이 기운을 낼 수 있기를 바라는 장백관 대표. 그는 진정한 여행자가 되어 삶의 온기를 되찾았다. 돌아갈 집을 꿈꾸고 실천하는 청춘과 앞으로 그 온기를 나눌 계획이다. <유로자전거나라장학기금>은 지속가능한 나눔의 성공적인 출발점이다.

글 우승연사진 임다윤

<함께보면 좋은 글> 

 > 유로자전거나라_빈곤의 반복을 반대합니다. 

 

댓글 정책보기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