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큐베이터, 그 후 _ 이른둥이 재활치료에 대한 단상
“워커라고, 재활치료 받을 때 신는 게 있어요. 그거 신고 이제 좀 걸어요. 완전히 걸어다닐 수 있는 건 아니지만..그래도 많이 좋아졌죠.”
오랜만에 현,빈이 어머니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2012년 가족캠프에 참여했던 많은 이른둥이들 중, 현이와 빈이는 휠체어를 타고 있는 몇 안되는 이른둥이였습니다. 엄마와 아빠의 도움 없이는 홀로 서거나 몸을 가누기 어려운 상태였지요. 우연한 기회에, 다른 이른둥이 어머니를 통해서 현이와빈이가 많이 좋아졌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안부가 궁금했습니다.
수화기 너머, 그녀는 분명 웃고 있었습니다. 아니 그녀의 마음이 웃고 있음이 틀림없었습니다.
현, 빈이의 어머니는 “완전히 걷는 것은 아니고요”라는 전제를 달았지만, 오로지 휠체어에만 의지해야했던 쌍둥이를 기억해보면 그것은 분명 큰 변화입니다. 지난 해 <이른둥이 가족캠프>에서 촛불을 밝히며 다음해 소원을 말하던 현, 빈이 어머니의 모습을 기억합니다. 그녀는 “내년엔 현,빈이가 걸을 수 있도록 열심히 운동할게요”라고 소망과 포부를 다졌습니다. 그리고 2013년, 다솜이작은숨결살리기 사무국에서는 현,빈이가 잠시나마 땅에 두발을 딛고 선다는 반가운 소식을 전해들었습니다.
유현, 유빈의 어머니의 2013년 소망은 “현, 빈이가 두 발로 걸을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소망을 조금씩 만들어나가고 있습니다.ⓒ 아름다운재단
유현, 유빈은 2011년에 다솜이작은숨결살리기를 통해 첫 재활치료비를 지원받았습니다. 지금은 쌍둥이 모두 2차까지 치료비 지원을 받은 상태입니다. 두차례 재활치료비 지원을 통해 현,빈이가 지원받은 금액은 모두 6백여만 입니다. 아주 많은 금액은 아닙니다. 특히 앞으로 치료를 받으며 가야 할 긴 시간과 비용을 생각해보면, 더없이 작기만 한 금액입니다. 그렇지만, 그 작은 치료비 지원은 현이와 빈이가 잠시나마 두 발로 땅을 딛고 설 수 있도록 작은 주춧돌이 되었기를 바랄 뿐입니다.
인큐베이터 그 뒤에 가려진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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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kg미만 또는 37주 미만으로 출생한 아이들을 가리켜 이른둥이(premature baby 미숙아)라고 가리킵니다. 이른둥이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생사의 갈림길에 서야 합니다. 열달 동안 엄마의 배속에서 성장해야 하는 모든 기관들이 채 완성되지 못해서, 각종 합병증을 갖게 됩니다. 다행히도 생명에 큰 지장이 없다면, 인큐베이터 속에서 치료와 보호를 받으며 시간을 보내는 동안 많은 이른둥이들이 건강을 회복해 엄마의 품으로 돌아갑니다. 하지만 모든 이른둥이들에게 그런 행운이 주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인큐베이터에서 건강이 더 악화되는 경우도 있고, 때로는 엄마의 품에 안겨보지도 못한 채 세상을 떠나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른둥이를 건강하게 품에 안은 부모에게는 기쁨과 행복이 함께 합니다. 하지만 많은 이른둥이들이 부모의 품으로 돌아간 뒤에도 예측하지 못했던 질병이나 수술로 인해 문턱이 닳도록 병원을 드나들어야 합니다. 돌이 되기도 전에 수차례의 수술을 받아야 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수차례의 수술로 건강을 회복할 수만 있다면, 그나마 다행입니다. 수차례의 수술과 치료 후에도 많은 이른둥이들에게는 ‘장애’라는 무거운 짐이 남기도 합니다.
이른둥이 부모에게 남는 것은 ‘장애’라는 무거운 짐 뿐만이 아닙니다. 이른둥이가 태어나면서부터 수술과 치료를 위해 지불해야 하는 병원비는 ‘건강한 자식을 만나기 위해’치뤄야 하는 댓가치고는 혹독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인큐베이터를 나온 이른둥이들이 어떻게 생활하게 되는지 잘 알지 못합니다. ‘그저 몇달 일찍 태어났을 뿐인데’라며 생각하기엔 이른둥이와 부모들이 지고 가야 할 짐이 너무나 크고 무거워보입니다. 인큐베이터에서 나오는 순간, 그 지독한 싸움은 시작되었습니다.
외롭고, 쓸쓸하며, 긴 싸움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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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다솜이작은숨결살리기에는 입원치료비 지원을 요청하는 한 추천서가 접수되었습니다. 태어난지 1년여밖에 되지 않은 강소영(가명) 이른둥이는 엄마 배속을 나온 뒤 줄곧 인큐베이터에서 생활을 했습니다. 이 병원에서 다른 병원으로 전원을 해가며, 신생아중환자실을 엄마 품 삼아 생명을 연장해 온 아이. 여러차례의 수술과 치료, 그 힘겨운 싸움을 버텨내는 소영이 못지 않게 부모님의 어깨는 무거워보였습니다. 소영이에게 지금까지 발생한 치료비만 무려 3천여만 원. 소영이는 다솜이작은숨결살리기를 통해 700만 원의 치료비를 지원받았습니다. 하지만, 앞으로 하게 될 소장이식 수술까지 생각한다면, 얼마나 더 많은 비용이 발생하게 될지 예측할 수가 없습니다.
물론 보건복지부에서 ‘미숙아치료비’를 지원하고는 있습니다만, 이에 해당하지 못하는 경우에는 이른둥이 치료비는 고스란히 부모님의 몫으로 남게 됩니다. 때로는 선의의 피해자가 발생되기도 합니다.
입원치료비를 지원받은 김사랑(가명) 이른둥이의 경우에는 이른둥이로 태어났음에도 ‘신생아중환자실’에 입원하지 못한 관계로 보건복지부에서 지원되는 치료비를 지원받지 못했습니다. 1천만원이 훌쩍 넘는 치료비는 모두 부모님이 책임져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그 뒤로도 수차례 재입원과 수술을 반복했고, 부모님은 어느새 3,4천만 원이 넘는 치료비를 감당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아직까지는 어떻게 버티고는 있지만, 조만간 너무 어려워질 것 같다”는 사랑이 부모님의 호소는 단지 ‘경제적인 어려움’만이 아니라 아이와 함께 가야 할 너무 먼 길에 대한 두려움이자 외로움의 표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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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부모님의 호소가 기우는 아닙니다. 만약 몇천만 원의 치료비로 다른 아이들처럼 웃고, 뛰놀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하지만 다솜이작은숨결살리기를 통해 지원 받는 많은 이른둥이들을 보면, 인큐베이터에서 나오는 것은 시작에 불과한 경우가 많습니다. 버둥대던 아기가 뒤집기를 하고, 바닥을 기기 시작하다 벌떡 일어서고, 아장아장 걷는 아이를 보며 기쁨을 얻는 대신, 많은 이른둥이 부모님들이 물리치료사가 주무르는 손길에 아파 우는 아이를 달래고 치료를 받기 싫다며 떼쓰는 아이가 고분고분 치료를 받는 것으로 마음을 달래야 합니다. 장기간 지속되는 재활치료에 드는 비용도 비용이지만, 바로 곁에서 모든 재활치료를 보조해야만 하는 부모님의 짐이 너무 크기만 합니다.
2008년과 2009년 재활치료비를 지원받은 위승윤(가명)이른둥이는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있습니다. 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바짝 재활치료에 집중해야 한다며, 승윤이 어머니는 더없이 바쁜 스케줄 속에서 치료에 매진하고 있었습니다. 재활병원에서 오전에 치료를 받고 오후에는 사설치료센터에서 치료를 받았습니다. 하루에 서너건의 치료 스케줄을 소화하며 주5일이 부족할 만큼 바쁘게 승윤이의 치료에 매진하고 있는 어머니에게 오로지 승윤이의 회복만이 삶에서 가장 중요한 목표인 듯 보였습니다.
백소라(가명) 어머니 역시 내년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소라의 치료에 바빠 보였습니다. 2010년과 2012년에 재활치료비를 지원받았은 백소라 이른둥이 어머니는 얼마 전 보톡스 치료 덕분에 소라의 걸음걸이가 많이 좋아졌노라며 기뻐했습니다. 자신 역시 초등학교 입학 전 치료가 효과적이라는 얘기에 밤낮없이 소라의 다리와 팔을 주물렀더니, 보톡스치료 효과가 배가 된 것 같다며, 웃었습니다. 하지만 소라 어머니는 자신의 양팔이 물리치료를 받아야 할 만큼 엉망이 되었다는 얘기는 그저 스쳐지나는 얘기로 할 뿐이었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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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솜이작은숨결살리기는 2004년 이른둥이 입원치료비 지원을 시작한 이후 2006년부터 재활치료비 지원을 시작했습니다. 1인당 최대 300만 원(1회 150만원 최대 2회)을 지원받을 수 있는 재활치료비 지원사업을 통해 2012년까지 모두 900여 명이 넘는 이른둥이들이 치료비 지원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이른둥이들의 재활치료는 1,2년간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기에, 그 뒤로 남겨진 이른둥이 부모님들기 가져가야 할 짐은 무겁기만 해 보입니다. 또, 단지 치료비 뿐 아니라 재활치료를 위해 쏟아부어야 하는 부모님들의 삶과 희생이 참 크기만 합니다. 한국 사회의 보편적인 복지가 조금씩 확대되면서, 재활치료를 받아야 하는 이른둥이를 위한 지원과 환경은 조금씩 나아질지 모르지만, 단지 경제적인 지원 뿐 아니라 그 부모와 가족들에 대한 관심도 더 많아지길 기대해봅니다.
느보산 다솜이작은숨결살리기│김진아 간사 함께 하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믿는 낙천주의자. 존 레넌의 연인이자, 전위예술가인 오노요코의 “혼자만 꾸는 꿈은 꿈일 뿐이며, 함께 꾸는 꿈은 현실이 된다”란 말을 좋아합니다. 이른둥이를 지원하는 다솜이작은숨결살리기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
백설엄마
신생아중환자실에 입원하지 못했다고 지원금을 받지 못하는 정책들이 참 유연성없게 느껴지네요. 아이를 양육하는 것 자체가 그렇지만, 이른둥이의 경우 개인의 부담이 참으로 큰 현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