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깊고 쓸쓸한 그늘을 찾아서
– 다솜이작은숨결살리기 김애란 전문위원으로부터 듣다
다솜이작은숨결살리기 김애란 전문위원(서울아산병원 신생아과 교수)
세상 모든 일들이 다 그렇듯 빛과 그늘이 있고, 결국은 시간이 해결해주며, 분명 끝은 있다고, 김애란 교수는 천천히 힘주어 말했다. 이른둥이 부모들이 가진 총체적 의문과 막막한 두려움에 대한 답변은 그렇듯 간명했지만, 그 여운은 길었다. 말하지 못하는 아기들과 교감해온 의사는 눈빛으로 소통하는 데 더 익숙한 듯 했다. 언제나 진심은 장황한 설명을 필요로 하지 않는 경우가 더 많다.
“제자들과 가끔 이런 이야기를 하곤 합니다. 우리가 떠나보낸 아이들을 언젠가 하늘나라에서 만나게 됐을 때, 그 앞에서 진짜 떳떳해야 한다고요. 신생아과 선생님 중 한 분이 어느 날 기이한 꿈을 꿨다고 페이스북에 자신의 꿈 이야길 올린 적이 있어요. 아기들이 한 곳에 쫙 모여 있는데, 아무래도 우리가 떠나보낸 아기들 같더랍니다. 살린 아기도 많지만, 떠나보낸 아기도 많습니다. 보람과 기쁨도 크지만 안타까움과 슬픔도 크죠.”
“제자들과 가끔 이런 이야기를 하곤 합니다. 신생아중환자실에서 먼저 떠난보낸 아이들을 그 언젠가 하늘나라에서 만나게 된다면 널 위해 최선을 다했노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하지 않겠냐고요..”
세상 모든 일들이 다 그렇듯 빛과 그늘이 있고, 결국은 시간이 해결해주며, 분명 끝은 있다
물론 눈부신 빛도 있다.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얼굴이 환하게 물드는, 세상에서 가장 밝은 빛이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현준이에요. 선생님 덕분에 저는 건강하게 자랐어요. 유치원도 잘 다니고 있어요. 감사합니다.’ 어엿한 문장이야 엄마가 불러줬겠지만, 삐뚤빼뚤한 글씨는 아이의 것이다. 연구실 책장과 책상 곳곳을 장식한 아이들의 카드를 보여주며, 김애란 교수의 얼굴에 흐뭇한 웃음이 걸린다. 영락없이 자식 자랑하는 엄마 얼굴이다. “680g으로 태어난 아이에요. 이제 여섯 살인데 글씨를 이렇게 잘 써요. 저는 우리 신생아중환자실을 거쳐 간 아이들을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까지 봅니다. 일 년에 한 번씩 꼭 오라고 해요. 제가 보고 싶어서, 궁금해서 그래요. 현준이처럼 단단히 성장하고 있는 모습을 봐야 비로소 졸업을 시켜줍니다. 이제 걱정 없으니 잘 가라고, 나중에 청첩장이나 달라고 하고 보내죠.” 김애란 교수가 졸업을 허락한 아이들은 숱하다. 그 아이들에 대해선 아무 걱정도 없다. 온전히 달을 채워 태어난 아이들과 다름없이 건강하게 자랄 것을 확신하기 때문이다. 김애란 교수는 최근, 320g으로 태어나 신생아중환자실에 들어온 이른둥이 생각이 한 가득이다. 앞으로 그 작은 아기와 아기의 부모와 함께 넘어야 할 크고 작은 풍랑을 가늠하며 마음을 다잡는 중이다. 아기와 아기의 부모, 그리고 의료진은 한 배를 탄 사이다. 부모로선 눈앞에 닥친 큰 파도 때문에 육지에 도달할 날을 가늠하기 힘들겠지만, 숱한 항해의 경험을 가진 의료진은 결국 육지에 도달할 것이라는 믿음으로 항해를 시작한다. 흔들리는 배 안에서 중심을 잡는 것은 힘든 일이지만, 부모 역시 단단한 믿음으로 항해에 동참할 때 더욱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다. “굉장히 작게 태어난 아기였어요. 수술도 여러 번 하고, 좋은 상황은 아니었죠. 한데 그 애 엄마는 면회를 올 때마다 항상 인큐베이터 앞에서 동화책을 읽어주고 가더라고요. 보통 엄마들이 울거나 안타까운 얼굴로 물끄러미 바라보다 가는데 그 앞에서 차분히 책을 읽어 주는 모습이 신기했어요. 해서 제가 ‘엄마, 뭐하는 거예요?’ 물어봤더니, 원래 자신이 하던 태교를 이어서 하는 거래요. 최근에 외래에 온 그 엄마와 아이를 만났어요. 아이가 말도 잘하는데다, 공부도 그렇게 잘한다더군요. 많이 안아주고, 모유 먹이고, 그렇게 엄마만이 할 수 있는 걸 열심히 해주면 아이들은 확실히 좋아져요. 실제로 현장에선 캥거루 케어의 놀라운 효과를 보곤 합니다.” 더 깊은 그늘에 집중해야 할 때 미국에서 수련의 생활을 마치고, 1996년 아산병원 신생아중환자실에 부임했을 때만 해도 이른둥이 의료현장의 여건은 지금과 같지 않았다. 시스템과 노하우의 부족은 물론 사회적 인식도 낮아, 소위 불모지라 불리던 분야였다. 당시만 해도 의료진이 맞닥뜨리는 최대의 난관은 일찌감치 아기를 포기하는 보호자를 설득하는 문제였다고. “30주에 태어난 이른둥이를 보호자가 포기하고 간 사례도 있었어요. 현실적 문제인 치료비 부담도 보호자와 상담할 때마다 부딪히는 문제였죠. 하지만 지난 10년, 많은 게 바뀌었어요. 국가적인 지원을 비롯해 ‘다솜이작은숨결살리기’처럼 치료비에 대한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단체들 덕분에 보호자가 온전히 짊어져야 했던 치료비 부담을 덜 수 있었죠. 아울러 이른둥이도 잘 키울 수 있다는 사회적 인식이 성숙, 확장됐고요. 또한 병원 쪽에선 이른둥이 케어의 성적과 노하우가 향상됐습니다.”
더욱 소외되고 잘 드러나지 않는, 그 깊은 그늘을 찾아 집중해야 할 때이다
하지만 이른둥이 지원의 사각지대는 여전히 존재한다. 만성질환과 장기적인 후유증을 가지고 가는 아이들이 그 대표적인 케이스다. 재입원과 재활치료는 피할 수 없는 현실이건만, 현재 정부지원금은 초기 입원에만 적용되는 까닭. 또한 이른둥이 부모에 대한 관심과 지원도 절실히 필요한 부분이다. “엄마가 건강해야 아이도 건강하게 클 수 있습니다. 엄마들의 스트레스 관리는 우리 의료진이 앞으로 더욱 관심을 가져야 할 문제라고 생각해요. 엄마들에게 건네는 말 한마디도 신중하게 하려고 노력합니다만, 상담과 같은 보다 전문적이고 적극적인 케어가 연결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이른둥이로 태어난 아이들이 꼭 장애를 갖게 되는 것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이른둥이로 태어난 아이들이 다 건강하게 자라는 것도 아니다. 빛과 그늘은 공존하고, 이에 이른둥이 복지에 있어서도 빛과 그늘이 갈린다. 물론 양적으론 빛보다는 그늘의 영역이 적다. 하지만 그래서 더욱 소외되고 잘 드러나지 않는, 그 깊은 그늘을 찾아 집중해야 할 때인 것이다.글. 고우정 ㅣ 사진. 이현경
감동적이에요
신생아중환자실에서 먼저 떠난보낸 아이들을 그 언젠가 하늘나라에서 만나게 된다면
널 위해 최선을 다했노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하지 않겠냐고요..” 라는 대목에서 눈물이 핑 돌았어요. 이른둥이 화이팅. 선생님도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