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호종료 이후 생업을 유지해야하는 자립준비청년(보호종료아동)들은 스스로를 돌볼 수 있는 여가 활동이 부족합니다. 설문조사 결과 일과 여가의 중요도가 높은 비보호종료 청년들과는 달리 일과 학업의 우선순위가 높았고, 미래를 책임져야 한다는 압박감에 여가 시간조차 진로 관련 활동 위주로 보내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아름다운재단은 청년 커뮤니티활동 지원사업 ‘쉼표’를 통해 교육이나 주거 등의 기본적인 필요를 채우는 것에서 시선을 옮겨 새로운 시도를 해보았습니다. 생계를 유지해나가는 삶에서 나아가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상황에 행복을 느끼는지 자신을 돌아보기도 하고, 함께할 이들과 서로의 삶을 나누는 시간을 가져보았는대요. 1년간 ‘쉼표’에 참여한 청년들의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청년 커뮤니티활동 지원사업은 자립준비청년 간 관계 확장 및 지지망 형성을 통해 심리, 정서적 안전망을 마련하는 사업으로, <카카오톡선물하기 10주년기금>으로 진행됩니다. |
청춘, 인생의 봄을 상징하는 푸르른 시절… 청춘의 행간에는 일생에 선물처럼 간직할 행복한 추억들을 마음껏 조각할 수 있다. 생경한 문화에 설레고, 미지의 예술에 반하며, 즉흥적 여행이 신나는 나날, 바로 청춘의 특권이다. 자유롭게 삶을 노래하는 그 특권 속에서 내면의 가치관은 재정립되고, 외연의 관계망은 확장된다.
다만, 아동복지시설과 가정위탁 보호가 종료된 자립준비청년들은 마냥 청춘을 누리기가 어렵다. 10대 후반과 20대 전반의 오롯한 청춘이건만, 느닷없이 맞닥뜨린 세파에 그들은 생계와 진로가 우선일 수밖에 없어 자신을 들여다볼 여유도, 주위를 둘러볼 여력도 충분하지 않다.
그 상황을 헤아려 아름다운재단과 (사)점프는 쉼과 여가, 그리고 관계가 핵심 키워드인 청년 커뮤니티활동 지원사업 쉼표(이하 쉼표)’를 협력사업으로 진행하고 있다. <카카오톡 선물하기 10주년 기금>으로 진행하는 쉼표는 자립준비청년들이 문화, 예술, 여행 등 문화향유권 보장으로 행복할 권리를 실현하는 한편, 사회적 관계망과 지지망 형성으로 심리적 안전망을 구축하길 희망하는 취지에서 비롯됐다.
「쉼표」의 커뮤니티는 팀을 결성하고 주제도 기획해서 함께하는 ‘짝꿍’, 개인마다 관심 분야를 중심으로 뭉친 ‘쿵짝클럽’으로 활동이 구분된다. 그 가운데 짝꿍의 열두 번째 조인 ‘걸어서 한국 속으로 팀’은 여러모로 시선을 사로잡았다. ‘쓰레기 환전소’라는 독특한 활동도 인상 깊었지만, 팀 리더 재영 청년(23, 가명)과 팀 활동기록자 상우 청년(25, 가명)이 풍기는 자유로운 ‘오라aura’는 의미하는 바가 특별했다.
「쉼표」의 커뮤니티는 팀을 결성하고 주제도 기획해서 함께하는 ‘짝꿍’, 개인마다 관심 분야를 중심으로 뭉친 ‘쿵짝클럽’으로 활동이 구분된다. 그 가운데 짝꿍의 열두 번째 조인 ‘걸어서 한국 속으로 팀’은 여러모로 시선을 사로잡았다. ‘쓰레기 환전소’라는 독특한 활동도 인상 깊었지만, 팀 리더 재영(23, 가명)과 팀 활동기록자 상우(25, 가명)이 풍기는 자유로운 ‘오라aura’는 의미하는 바가 특별했다.
너와 나의 쉼표로 빚은 삶의 오아시스
해운대 해변을 휘돌아 나가면 아슴아슴 드러나는 바닷가 미포. 한 폭의 천 위에 쓰레기 환전소라 글자 새긴 저편 부스에는 과일을 머금은 듯 청량한 커피 향기가 피어오르고, 지난날의 향수를 부르는 기타 선율이 바람에 울려 퍼진다. 그 사이로 길 위의 쓰레기를 봉투에 담고 있는 청년들의 손짓이 햇살에 반짝인다. 바로 쉼표 활동을 즐기는 걸어서 한국 속으로 팀의 풍경이다.
“저희 팀은 한국의 아름다운 경관을 누비는 동시에 환경을 보호하고자 그 인근을 ‘플로깅plogging’ 하고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플로깅은 산책하고 조깅하며 쓰레기를 줍는 활동인데요. 환경 문제가 심각해 주변을 오가는 분들이 적극적으로 동참하길 기대했어요. 다행히 관심 갖는 분들이 적진 않더라고요. 그분들이 소중한 시간을 소비하는 만큼 근처의 쓰레기를 주워오면 저희가 제조한 커피나 음료로 환전해 드리고 있습니다.” (재영 청년)
“처음에 저랑 재영이, 그리고 팀 예산관리자인 재혁이(25, 가명)까지 셋이 시작했는데요. 활동 지원금이 상당해서 저희만 활용하기보단 마음 맞는 분들이 함께하면 좋겠더라고요. 그래서 SNS로 쉼과 여가, 그리고 환경을 생각하는 다양한 분들을 모집했어요. 지금은 열 명의 동료가 추가로 모여 활동이 한층 풍성해졌죠.” (상우)
해운대 바닷가의 시작과 끝, 수변공원과 대천공원, 기장과 울산의 자연을 넘나들며, 청년들은 쉼과 여가를 즐겼고 환경도 살폈다. 노래를 부르고 원반도 던지며 그야말로 신나게 놀면서 쓰레기도 주웠다. 사실 현재 카페를 운영 중인 재영 청년과 상우 청년은 그간 치열하게 살아왔다. 쉼과 여가는 목표를 성취한 후에나 누려야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쉼표를 통해 그들은 삶의 여백이 선사하는 특별한 순간들을 마주할 수 있었다.
“저는 쉼표 활동 첫 방문객들이 자주 기억나요. 남고생 셋이었어요. 저희에게 이것저것 질문하더니 설명을 듣고는 열심히 쓰레기를 줍더라고요. 이후에 그 친구들이랑 커피 마시며 얘기를 나누고, 기타 치고 노래도 부르며 어울렸는데요. 그 나이 때의 제 모습에 비춰보니 환경을 염려하는 그 마음이 너무 멋있더라고요. 아무래도 제 삶의 방향과 태도를 다시 짚어볼 수밖에 없었죠.” (상우)
“저는 미포에서 활동하던 중에 찾아왔던 중년 남성분이 참 고맙더라고요. 쓰레기 환전소에 대해 물어보고 쓰레기도 주워왔는데요. 그분이 젊음은 너희처럼 그렇게 보내야 한다며 감동을 받았다고 하더라고요. 그때 여느 20대 이상으로 진로에 대한 고민이 많았는데, 그분의 말씀 덕분에 ‘아, 이대로만 살아가면 괜찮겠구나’ 하고 안심이 되더라고요.” (재영)
여행, 음악, 자연, 그리고 사람이 어우러진 정경. 그 속에서 여유와 여력을 회복하던 재영 청년과 상우 청년의 가슴에는 행복한 추억들이 각인됐다. 청춘의 명장면들로 구성된 행복한 추억들은 마치 오아시스와 닮아 있다. 그래서 더러는 사막 같은 현실이 밀려오면 그 장면들이 청년들의 막막한 심정을 적셔줄 수 있다.
우리의 음표로 들려주는 행복의 앙상블
여유로운 휴식은 풍요로운 마음을 불러오는 법이다. 쉼표 활동을 거듭하며 청년들은 알게 모르게 삶에 대한 관점과 가치를 다듬어 나갔고, 이는 일상의 변화로 표출되고 있었다. 무엇보다 그들은 쉼과 여가를 삶의 필수적인 요소로 받아들였고, 이를 다채롭게 즐기기 위해 기꺼이 비용도 지출하게 됐다. 아울러 맛집 탐방, 웨이트 트레이닝, 영화 관람 등의 소소한 생활이 행복으로 향하는 중요한 나침반이라는 사실도 확고하게 깨달았다. 그뿐이 아니다. 그들의 대인관계 역시 깊어지고 넓어지는 가운데 마음 한편에는 어느새 평온함과 안정감이 감돌기 시작했다.
“재혁이 형은 제 친형이고, 상우 형이랑 저랑 셋은 초등학생 시절부터 지금까지 절친한 사이였어요. 그래서 모르는 부분이 없다고 생각했는데요. 쉼과 여가의 의미에 대해 토론하고 쉼표 활동의 방향에 대해 논의하며, 그동안 인지하지 못했던 측면을 새롭게 이해하게 됐어요. 서로가 좋아하고 싫어하는 부분을 중점적으로 헤아리면서 보다 견고한 관계로 발전했죠.” (재영)
“저희도 한결 단단해졌지만, SNS로 동참한 열 명의 동료들과도 엄청 친근해졌어요. 평상시에도 특별한 일 없이 자주 얼굴 봐요. 가령, 해운대달맞이길에서 노을을 구경하려는데 함께하겠냐고 물어보면 그때그때 여건이 허락되는 분들이 꼭 나오더라고요. 가끔 제가 힘겨운 표정이면 먼저 물어봐주고, 같이 걱정해주고, 애써 위로도 해주니 너무 고맙더라고요.” (상우)
“저도 그분들의 격려와 지지가 진짜 좋더라고요. 저는 쓰레기 환전소 활동 중 수거한 재활용품을 활용해 수첩이나 공책을 만들곤 하는데요. 완성도나 제품성이 낮은데도 제가 좋아하니까 더욱 기뻐해주고…… 그냥 좋더라고요.” (재영 청년)
쉼표의 인연들과 함께한 소통과 공감은 울림이 짙었다. 그래서인지 쉼표는 재영 청년에게 ‘든든한 서포터’로, 상우 청년에게 ‘오롯한 동행’으로 자리했다. 친밀한 유대 속에서 그들의 성장은 한껏 두드러졌다. 비단 자신감과 자존감이 향상됐을 뿐만 아니라 진정성 다해 사람들을 존중하고 배려하게 됐다. 나아가 지금은 저마다의 차이를 수긍하고 포용할 줄도 알았다.
“쉼표 활동 중 각자의 생각이 고유하다는 사실을 새삼 느꼈어요. 공동체 내에서는 당연히 다양한 의견이 제시되고, 그것을 서로서로 맞춰주며 결론에 도달해야 하잖아요. 저는 그 부분이 서툴렀는데요. 이제는 논리적으로, 때로는 심리적으로 이견을 조율해 나가는 방법을 배우게 됐어요.” (상우)
“돌이켜보면 누군가의 다름을 인정할 수 있었던 부분이 쉼표를 통한 최고의 성장이었던 것 같아요. 제가 고집이 센 편이라 처음에는 누군가의 다름을 받아들이기 어려웠지만, 그 다름을 인정하고 나면 마음이 편안해진다는 이치를 발견했어요.” (재영)
쉼표 속에서 움튼 청년들의 변화와 성장이 확연하다. 그동안 그들의 내면적 사고는 성숙했고, 외연의 관계는 확장됐다. 무엇보다 그들은 지금 소소하지만 행복한 일상을 누리며, 그것을 주위에 공유하고 있다. 이를테면 바닷가에서 기타 치기, 밤새 스케이트보드 타기, 친구랑 노을 바라보기, 지인에게 맛집 소개하기 등을 하며, 그들은 오늘도 멋있는 어른으로 변모해 나가고 있다.
그들이 표현하길 해운대달맞이길에서 마주하는 노을은 그 빛깔이 바라볼 때마다 달라서 더 아름답다고 한다. 하지만 그보다는 쉼표로 청춘의 음표를 함께 그려가며 자유롭게 행복을 노래하는 그들의 오라가 훨씬 눈부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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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노현덕 ㅣ 사진. 김권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