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호종료 이후 생업을 유지해야하는 자립준비청년(보호종료아동)들은 스스로를 돌볼 수 있는 여가 활동이 부족합니다. 설문조사 결과 일과 여가의 중요도가 높은 비보호종료 청년들과는 달리 일과 학업의 우선순위가 높았고, 미래를 책임져야 한다는 압박감에 여가 시간조차 진로 관련 활동 위주로 보내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아름다운재단은 청년 커뮤니티활동 지원사업 ‘쉼표’를 통해 교육이나 주거 등의 기본적인 필요를 채우는 것에서 시선을 옮겨 새로운 시도를 해보았습니다. 생계를 유지해나가는 삶에서 나아가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상황에 행복을 느끼는지 자신을 돌아보기도 하고, 함께할 이들과 서로의 삶을 나누는 시간을 가져보았는대요. 1년간 ‘쉼표’에 참여한 청년들의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청년 커뮤니티활동 지원사업은 자립준비청년 간 관계 확장 및 지지망 형성을 통해 심리, 정서적 안전망을 마련하는 사업으로, <카카오톡선물하기 10주년기금>으로 진행됩니다.

“우리들의 커뮤니티활동을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요? ‘진짜 자유와 재미까지 놓치지 않는 여행’이요. 그게 여덟 명의 팀원이 머리를 맞대고 정한 활동목표였어요. ‘여가’는 내일 또 다시 달리기 위한 재충전의 시간이자, 오로지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어요.” (5팀 출장쉼오야)

패러글라이딩 체험과 단양여행, 롯데월드와 수상레저스포츠 즐기기, 아홉산숲 걷기와 요트투어를 마치고 강원도 여행을 남긴 5팀 출장쉼오야의 네 사람 조은지, 이정민, 장현호, 노현경(가명). 다른 참여자들에게 회자될 만큼 끈끈한 팀워크로 유명한 이들의 첫 만남은 지극히 평범했다. 코로나19 때문에 온라인으로 진행한 오리엔테이션은 썩 재밌지 않았다. 외려 어색했다. 그럼에도 설렜던 건 근 1년 동안 여가를 함께 할 사람들 때문이었다.

2022 청년 커뮤니티활동 지원사업 ‘쉼표’

“위탁가정에서 자라서 다른 자립준비청년을 만날 기회가 별로 없었는데 지원사업 홍보를 보자마자 교류할 기회겠다고 생각했어요. 궁금했어요. 더 많은 이들과 이야기 나누고 싶었어요.” (조은지/24세)

“제가 살던 시설은 경기도 산속에 있어서 다른 시설 사람과 만나기 어려웠어요. 학교에서도 어디에서도 이 주제로 얘기할 기회가 없었죠. 그래서 뭔가 자꾸 숨기게 되니까 어느 순간 나를 잃어버린 느낌, 스스로를 싫어하게 되는 그런 감각이랄까요. 그래서 나와 같은 사람들을 만나 그냥 나를 찾고 싶었어요.” (이정민/23세)

“지역에선 시설끼리 교류할 기회는 있었어요. 예를 들면 체육대회 같은 거요. 한데 저는 그런 게 별로였어요, 의미가 없었죠. 그러다 2021년 자립을 했는데 그때 총학생회장을 맡아서 진짜 너무 힘들었어요. 사람들한테 시달리고 욕먹는 게 일상이고. 그냥 나와 비슷한 배경을 가진 사람과 마음 편하게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그때 지원사업을 보게 된 거예요.” (장현호/22세)

“저도 위탁가정에서 자랐는데 주변에 비슷한 경험을 가지고 성장했던 친구들을 만나본 경험이 없어요. 여기 지원하면 뭔가 이야기할 때 스스럼없겠지, 나를 더 이해해주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했어요. 물론 해보고 싶은 활동을 부담 없이 도전하는 것도 좋았고요.” (노현경/27세)

‘쉼표’로 처음 만난 친구들과 함께하는 첫 생일, 행복했던 첫 추억을 기억하며

당신을 신뢰할 수 있을까

공통된 욕구는 ‘나를 닮은 사람’이었다. 여덟 명의 생면부지 자립준비청년들은 일상을 잠시 뒤로 한 채 부랴부랴 신청서를 작성하고 꿈꾸는 여가를 선택했다. 비슷한 배경에 같은 취미라면 무엇을 하든 상상 이상일 터였다.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의견은 충돌 없이 조율됐다. 누군가 “이거 해볼까요?” 이야기하면 거기에 덧붙여 이러저러한 풍성하고 설레는 계획이 그려졌다. 내가 옳다, 네가 틀리다 판단하지 않고 한 사람이 이야기하면 다른 이들은 귀를 열었다.

회의뿐만이 아니었다. 당일치기일 때는 차안에서, 2박 3일 여행일 때는 숙소에서 누가 정해놓은 것도 아닌데 순서대로 제 마음을 풀어놨다. 둘이 이야기하다보면 넷이 모이고 어느 새 여덟 개의 삶이 일렁였다. 가만 들여다보면 성격이 비슷하지도 않았다. 저마다 자기만의 색으로 반짝거렸다. 뚜렷하고 명확하게 제 경계를 가졌다. 그러나 밀쳐내지 않고 서로 어우러져 빛났다. 각자의 목표를 향해 달려가면서도 주위를 둘러보며 손 내밀 수 있는 사람들. 그들의 시너지가 생생한 긍정 에너지로 서로를 감쌌다.

서로 다른 우리가 만나 삶을 나눈 시간들

“어느 그룹에서든 그룹원과 관계를 동일하게 맺을 순 없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대체로 넓고 얕은 관계를 맺는 편인데, 이곳에서는 이전보다는 좁은 관계를 맺고 있는 듯해요.” (조은지)

“저는 모두와 친하게 지내지 못하거든요. 그룹에서 제일 잘 맞고 좋아하는 사람 한 명하고만 깊게 사귀는 편이죠. 선뜻 솔직하게 얘기하지 못할 때도 많고 그런 제 자신에게 스스로 상처받기도 하고요. 가끔 친구들이 네겐 어떤 선이 있는 것 같다고 하면 씁쓸한데 고치기 어렵고. 한데 여기선 달랐어요, 나를 이해해줄 수 있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했거든요.” (노현경)

“진짜진짜 신뢰할 수 없다면 제 얘길 안해요. 선입견 가질까봐 아직도 말 못한 고등학교 친구도 많고요. 친한데도 뭔가 거리 느껴진다고 말하는 것도 그래서겠죠. 근데 여기선 충분히 공감해줄 사람들이라 생각하니 되게 편했어요. 부산 여행 때 속 얘기 많이 했는데 정말 의미 있었어요.” (장현호)

“저는 제 환경을 듣고 태도가 변하는 걸 경험했거든요. 어릴 땐 싸울 때 약점 잡아 상처를 주는 친구도 있었고. 그래서 마음을 열 수 없었어요. 그래서 이 모임에선 덜 방어적으로 참여해서 좋았어요. 말안해도 아는 거잖아요. 그렇다고 제 속을 솔직히 표현하기는 어려웠는데 사람들이 자기 상처를 스스럼없이 말해서 너무 놀랐어요, 대단하다 생각했죠. 그러면서 상처를 마주하지 못하고 외면하던 내가 보이더라고요. 나도 직면하고 싶더라고요, 용기 있게.” (이정민)

어느 정도까지 보여줄 것인지를 늘 가늠하는 일상. 적당히 드러내고 감추는 걸 자존으로 연결 짓지 않으려고 부단히 애쓰는 동안 불신이 당도했다. “괜찮다”, “미안하다”는 말이 습관이 돼버린 어느 날 날아온 ‘좀 쉬어가면 어떠냐’는 초대장. 신기하게도 ‘출장쉼오야’팀에서는 괜찮다, 미안하다 대신 좋다, 재밌다, 고맙다고 말했다. 그리고 스스로를 챙겼다. 더불어 지내면서도 긴장하지 않은 채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다니 신기했다. 어디를 가고 무엇을 하는 ‘여가’보다 팽팽했던 경계를 어떻게 느슨하게 만드느냐가 소중했다. 그래야 쉴 수 있다는 걸 5팀 사람들과 함께하며 비로소 알아챘다.

불안을 쉬어가게 하는 방법

“쉬는 법을 몰랐어요. 목표 지향적인 사람인데다 완벽을 추구하니까 계속 뭔가 해야 되고 늘 주어진 길을 가느라 쉴 틈이 없었어요. 대학 졸업하고 스트레이트로 달렸죠. 근데 이번 활동을 지나면서 쉼표가 왜 필요한지 알게 됐어요. 온전히 놀 수 있어야 행복하겠다, 그래야 지치지 않는 거구나, 깨달았어요.” (장현호)

“너무 바빠서 고달플 정도인데도 리프레시 방법을 몰랐던 게 사실이에요. 그래서 이번 여행과 여러 레포츠 경험은 약간 그 쳇바퀴 일상에 다른 길을 낸 느낌이에요. 일부러 시간과 돈을 투자해서 자신을 쉬게 하면 일상으로 돌아왔을 때 어떻게 힘이 나는지 확실히 체험했어요.” (노현경)

“많이 가까워졌지만 힘들 때 우리 팀 누구에게 연락하긴 쉽지 않을 것 같아요. 그런데 누군가가 힘들 때 내가 떠올라 연락한다면 위안이 될 것 같아요. 바운더리 안에 들어갔구나, 나도 이 사람한테 연락해도 괜찮겠구나, 안심할 것도 같고요.” (조은지)

‘쉼표’로 함께한 시간은 나에게 [    ]이다.

무서워서 엄두내지 못했던 패러글라이딩에 도전했고, 아름다운 풍경을 내려다보며 바람을 타고 자유로이 떠다녔다. ‘한눈에 조망한다’는 게 무엇인지 제대로 이해했다. 쿵짝클럽에서 경험한 게 바로 그거다. 머릿속 관념으로만 가지고 있던 것의 실체랄까. 가능하지 않을 것 같던 관계, 상처를 마주하는 용기, 스스로를 돌본다는 것의 감각, 내달림을 멈추고 쉬는 방법. 더 이상 이걸까 저걸까 유추하지 않아도 될 만큼 명확해서 안전했고 안정됐다.

그래서 출장쉼오야 팀원들은 앞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이 기회를 놓치지 않기를 바란다. 혼자가 아니라는 걸 오롯이 느끼면 좋겠다. 자신과 같은 환경에서 저마다의 색으로 빛나는 아름다운 연대를 경험하고, 고단하면 쉬어가도 별일 없다고, 언제든 기운 날 때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걸 살갗으로 느껴보기를 권한다. 그리고, 그래서. 그러니까 지금은 삶을 지속해도 괜찮다고 당부한다. 감춤이 익숙한 5팀 출장쉼오야의 네 사람 조은지, 이정민, 장현호, 노현경이 용기 내어 솔직하게 자신을 드러낸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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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우승연 ㅣ 사진. 김권일 & ‘출장쉼오야’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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