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호종료 이후 생업을 유지해야하는 자립준비청년(보호종료아동)들은 스스로를 돌볼 수 있는 여가 활동이 부족합니다. 설문조사 결과 일과 여가의 중요도가 높은 비보호종료 청년들과는 달리 일과 학업의 우선순위가 높았고, 미래를 책임져야 한다는 압박감에 여가 시간조차 진로 관련 활동 위주로 보내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아름다운재단은 청년 커뮤니티활동 지원사업 ‘쉼표’를 통해 교육이나 주거 등의 기본적인 필요를 채우는 것에서 시선을 옮겨 새로운 시도를 해보았습니다. 생계를 유지해나가는 삶에서 나아가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상황에 행복을 느끼는지 자신을 돌아보기도 하고, 함께할 이들과 서로의 삶을 나누는 시간을 가져보았는대요. 1년간 ‘쉼표’에 참여한 청년들의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청년 커뮤니티활동 지원사업은 자립준비청년 간 관계 확장 및 지지망 형성을 통해 심리, 정서적 안전망을 마련하는 사업으로, <카카오톡선물하기 10주년기금>으로 진행됩니다.

10월 23일 가을 한복판에서 청년 커뮤니티활동 지원사업 ‘쉼표’ 참여자 2팀 리더 김다원(가명), 3팀 리더 김혁주(가명), 9팀 리더 박지희(가명), 10팀 예산관리자 강대윤(가명)을 만났다. 같은 관심 주제의 커뮤니티활동을 위해 모인 ‘쿵짝클럽’은 2022년 10개월여 ‘여가’에 방점을 찍고 커뮤니티활동을 계획했다. 쉼표를 통해 만나게 된 새로운 팀원들과 함께 저마다의 욕구를 명확하고 구체적으로 펼쳤다. 개인당 100만 원, 팀당 200만 원의 커뮤니티활동 지원금을 쥔 채, 우선순위가 한참 밀린 여가, 늑골 어딘가에 묻어둔 쉼 보따리를 풀어냈다.

쿵짝클럽 2팀 ‘숨, 쉬다’는 전시회와 뮤지컬을 관람하고 공방을 체험했고, 3팀 ‘E1A4’는 팀원이 살고 있는 지역의 전시회, 볼거리, 맛집을 소개하는 여행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9팀 ‘재밌9즐겁9’는 전국을 무대로 번지점프, 패러글라이딩 등 거침없고 설레는 도전을 경험했으며, 10팀 ‘액티비티C’는 필라테스를 중심으로 헬스 등 살아내느라 등한시한 몸을 돌봤다.

지원사업 참여자 모두와 즐기는 네트워킹파티만 남겨둔 4명의 청년들에게 지난 수개월의 경험과 변화를 들었다.

Q 어떤 기대를 가지고 지원사업에 신청했는지 궁금합니다.

강대윤 : 취미도 취미인데, 나와 같은 환경의 다른 사람들이 궁금했어요. 교류도 해보고 싶었죠. 필라테스도 그렇고 그간 생각만 했던 것을 실천한 느낌이에요.

김다원 : 간호사라서 코로나19 때문에 정신없이 바빴어요. 여유랄 게 없었죠. 그리고 낯선 사람 만나 내 자신을 개방하는 것에 거부감이 있었어요. 그 두 가지를 만족시키는 지원이라고 생각했어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서로 통하는 시간이 필요했거든요.

박지희 : 올해 좀 쉬어가려고 휴학했는데 이 지원사업 공지를 본 거예요. 제 목표랑 부합하는 쉼표! 비슷한 결을 가진 동갑 친구들과 여유가 없어 미뤘던 활동을 하니까 좋았어요.

김혁주 : 프로그램은 하나의 도구였어요, 솔직히. 제주에서 지내니까 관계도 경험도 꽤 한정됐거든요. 자립준비청년들의 안좋은 소식을 들을 때면 ‘나와 같은 환경에서 자란 사람들은 어떻게 지낼까’ 궁금했고요.

 

Q 안전하면서도 설레는 도전이었을 것 같은데, 활동하면서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다면요?

김다원 : 우리 팀원들 중 직업이 간호사, 사회복지사, 교사가 많았는데 모두 ‘받은 사랑만큼 나누고 싶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어요. 사회 환원에 대한 생각들을 한강에 모여서 이야기 나눌 때 계속 드러나니까 정말 멋있는 거예요. 취미를 함께 하려고 모였지만 진짜 멋있는 사람들 만나서 이 좋은 순간을 누리는구나 생각했죠. 가치관 맞는 사람 만나는 건 꽤 힘든 일이거든요.

강대윤 : 또래와 있을 때는 항상 뭔가 방어적이었어요. 내 모든 얘기를 다 할 수가 없단 말이에요. 근데 나는 시설에서 자랐다, 얘기하지 않고 바로 관계할 수 있었어요. 그게 좋았어요.

박지희 : 저는 가정위탁인데 팀원 중에 저와 비슷한 친구가 있었는데 되게 신기했어요. 시설도 그룹홈도 아닌 또래를 만나기 쉽지 않거든요. 뭔가 위로받는 느낌이었어요.



Q 취미생활, 더 나아가 고민을 함께 할 누군가를 만났나요? 그렇지 못하다면 무엇 때문일까요?

김다원 : 활동하면서 사는 지역이 달라서 “지금 만나자”고 말할 수 없고, 또래가 아니라 공통된 일상의 이슈를 덜 나누게 된다는 게 아쉬웠거든요. 자란 환경에 대해 자유로울 순 있지만 그렇다고 여가를 즐기는 중에 무턱대고 이야기하게 되진 않으니까요. 다만 가능성을 확인하긴 했어요.

강대윤 : 저는 뭔가 일상 밖 일탈 같은 활동이 좋았어요. 활동할 때는 순간순간 내가 품었던 내 환경에 대한 자존을 좀 다르게 만들 수 있었고요. 한데 지속가능한 건 아직 미지수예요.

김혁주 : 제가 팀 리더이기도 하고 성향 상 어린친구들에게 고민을 털어놓진 않거든요. 절제하는데 에너지를 많이 써서 선배나 형, 누나들처럼 나보다 먼저 길을 걸어간 사람과 함께하면 어땠을까 생각했어요.

박지희 : 더 친밀해지려면 시간과 공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전화로 고민을 이야기하는 것과 얼굴을 보고 나누는 건 확실히 다르거든요.

김다원 : 음, 어려운 문제나 고민을 같이 해결해 나가는 경험이 한 번은 있어야 돼요. 그래야 연대가 생기고 쌓이지 않을까요. 우리가 나눈 건 좋은 추억이지만 힘들 때 생각나기엔 느슨해요. 마음을 터놓는 건 시간과 경험이 켜켜이 쌓여서 달라지는 거니까요.

 

Q 지원사업 참여 후 여러분에게 변화가 있었다면 공유해 주세요.

김다원 : 인간관계나 활동하는 영역범위나 스스로를 폐쇄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한데 이번 활동하면서 불안정해도 행복을 느낄 수 있다, 그 기회는 내가 만들어가는 거구나, 알게 됐어요. 만약 참여하지 않았다면 그냥 집에 있었을 테고, 지금처럼 내 공간이 확장되는 걸 느끼지 못했겠죠. 인간관계를 너무 어렵게만 생각했던 것 같은데 조금 달라졌어요.

강대윤 : 나와 비슷한 환경의 사람들을 만나면서 자존감이 좀 올라갔어요. 제 주변은 부모님이 계신 가정이라서 뭔가 모를 부대낌이 있었거든요. 그래선지 이 활동을 하면서 소속감이 생겼어요. 나를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이 위로가 되더라고요. 든든하고 단단한 바닥이 생긴 것 같기도 해요. 물론 필라테스를 경험할 수 있었던 것도 좋았죠.

박지희 : 늘 마음으로만 하고 싶다고 생각했던 것에 도전하니 신났어요. 패러글라이딩을 타면서 하늘을 나는 느낌은 생각보다 시원하고 재밌더라고요. 제가 겁먹었던 것보다도 훨씬요.

김혁주 : 저는 사실 반성을 좀 했어요. 솔직히 저는 제 환경을 장애라고 생각했거든요. 근데 팀원들과 만나 이야기하면서 달라졌어요. 자란 환경에 얽매이지 않고 새로운 뭔가를 탐색하며 지내는 팀원들 보면서 스스로를 돌아보게 됐죠. 어쩌면 내가 스스로를 합리화했던 걸까 싶었어요. 용기를 얻었죠. 한마디로 많이 얻었고, 무엇보다 재밌었어요.

김다원 : 무엇보다 달랐던 게 있어요. 가끔 행사에서 자립지원청년을 만나긴 하지만 그다지 교류가 많진 않았어요. 해야 될 과제가 주어지는 경우가 많았으니까요. 한데 이번에는 달랐어요. 목표를 달성해야 하는데 그 목표가 쉬는 거니까(웃음). 대하는 감정이 다르달까. 잘 수행해야 된다는 강박 없이 여유를 가지니까 나를 비롯한 사람들 실수에도 관대해지고 의견도 더 수용하게 되더라고요. 방어적이지 않아도 괜찮았어요. 느슨해져도 안심할 수 있는 시간이었어요.

김다원, 김혁주, 박지희, 강대윤 네 사람이 지원사업 참여로 경험한 것은 ‘가능성’이었다. 다양한 프로그램에서 만난 보호시설청소년이나 자립지원청년과는 다다르지 못한, 과제수행을 넘어선 관계. 유용한 정보를 취하거나 필요한 돌봄을 제공받았음에도 반복될수록 헛헛했던 순간이 떠올랐다. 현실적인 채움으로 달래지지 않는, 누구의 것인지도 모를 빈자리. ‘2022 청년 커뮤니티활동 지원사업-쉼표’는 실망하지 않으려고 부러 냉담했던 스스로를 달래는 프로그램이었다. 비슷한 환경의 청년들과 달성해야 될 목표가 ‘쉬는 것’이라니 그저 좋았다. 잘 해야 한다는 강박 없이 문밖으로 나와 귀를 열어 상대를 응시했다. 자신을 비롯한 사람들에게 안전한 시공이 열렸고, 방어적이지 않아도 덜 불안했다. 느슨해져도 안심할 수 있는 만남. 단 한 번의 경험이었으나 그것은 오래도록 참여자의 뒷심이 될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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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우승연 ㅣ 사진. 이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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