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재단 ‘변화의시나리오 프로젝트 지원사업’은 공익활동을 하고자 하는 시민모임, 풀뿌리단체, 시민사회단체를 지원합니다. 특히 성패를 넘어 시범적이고 도전적인 프로젝트를 지원함으로써 공익활동의 다양성 확대를 꾀합니다. ‘2022 변화의시나리오 프로젝트 지원사업’에도 다양한 프로젝트들이 진행되고 있는데요. ‘노동환경건강연구소’는 동아시아에서 불법으로 유통되는 화장품의 유해 화학물질을 검사하고, 공동대응 하고자 합니다. 

노동은 자신의 몸과 마음을 사용해 일한다. 그러니 노동자는 일을 하는 과정에서 몸과 마음이 피곤할 수 있고, 때로는 다치거나 병들기도 한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노동이 신성하다는 이야기는 흔히 하는 반면 노동이 위험하다는 이야기는 거의 하지 않는다. 노동의 신성함이 너무도 강렬하기 때문일까? 아니면 일하는 사람들이 노동의 주인이 되지 못했기 때문일까. 오늘도 누군가는 일을 하면서 마음이 아프고 누군가는 어깨를 못 쓰게 되고 누군가는 암에 걸리고 누군가는 목숨을 잃는 것이 현실임에도 노동의 위험과 고통은 잘 이야기 되지 않는다. – 도서 : 고통에 이름을 붙이는 사람들 서문 중 

노동환경건강연구소가 변화의시나리오 프로젝트 사업을 통해 진행하는 사업은, 아시아 시민단체들과의 연대사업이다. 유해물질추방을 위한 국제네트워크 IPEN의 동남아시아 지부와 남아시아 지부가 함께, 수은의 위험을 알리는 캠페인을 기획하고 추진하는 내용으로 진행 중이다. 

Q. 어떻게 국제연대 차원에서의 기획을 생각하게 되셨나요? 그 안에서 노동환경건강연구소는 어떤 역할을 하시는 지도 궁금합니다.

1980년도 말에 한 공장에서 천여명의 이황화탄소 중독 산재사고가 발생했었어요. 그런데도 기업에서도 정부에서도 직업병으로 인정하지 않으려고 해서, 과학적인 증거를 찾아 증명해야 했는데 당시 시민단체들은 그런 식의 전문적 역량을 흔하게 갖고 있진 않았거든요. 전문 역량의 필요를 바탕으로 노동환경건강연구소가 설립되었고, 그러한 설립 배경 때문에 여러 피해 현장에서 저희가 함께 할 수 있었어요. 경험도 축적되고, 상당 부분은 성과도 있었고.. 그 성과에 힘입어서 이제껏 왔다고 생각합니다.

2018년 IPEN 동남아시아 지역미팅에 참여했다가, 다른 국가 지역 시민단체들이 나누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어요. 공업 지역 인근에서 자란 쌀에서 중금속이 검출되는 문제라던가, 광산 지역의 수질 오염문제, 맹독성 농약, 폐기물에 관한 문제, 최근의 플라스틱 문제에 관한 것이었는데, 지난 20년동안 우리가 지역사회와 함께 고민했던 문제들에 대한 이야기였어요. 어쩌다보니 저희는 이미 겪었고, 관련한 자체 실험실도 갖고 있는 상황이잖아요. 경험을 통해 쌓은 기술적인 역량도 있고요. 우리가 미리 경험한 것을 공유할 때라고 생각했습니다.

지역사회에서 캠페인을 진행하거나 필요한 목소리를 낼 때, 과학적인 데이터가 뒷받침이 되면 신뢰를 얻는 데 큰 도움이 돼요. 지지를 받기도 쉽고요. 좀 더 빠른 속도로 개선할 수 있는 동력을 얻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Q. 연구기반의 시민단체는 흔하지 않아서 시민들 입장에서는 조금 더 낯설게 느껴지기도 하는 것 같아요. 노동환경건강연구소의 활동과 이슈의 확산을 위해, 시민 개개인들은 일상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요?

가장 기대하고 중요하다고 여기는 건 사실 인식이죠. 일례로, 최근의 환경호르몬 이슈로, 바이오모니터링이라는 것을 진행하고 싶거든요. 생활화학제품이나 개인위생용품, 음식이 화학물질 노출의 요인이 된다는 것을 상정하고 연구하는데, 사람에게서 혈액이나 소변을 받아서 그 안에 있는 화학물질을 분석하고, 노출 정도를 파악해서 시민들과 공유하는 방식이에요.

이런 방식을 차용하는 것도 시민들의 인식을 높이려고 하는 거에요. 결과물을 공유하면서 인식을 높이고 확산된 인식이 힘이 되어 시장에 경고를 주는 메시지로 작용할 수도 있거든요. 궁극적로는 위험한 물질을 사용하지 않는 사회로의 전환을 바라는거죠.

그런데 사실 이런 방식의 연구는 시작이 굉장히 힘들어요. 사람에게서 무언가를 얻는 것을 ‘인체유래물’이라고 하는데 확보하는 게 굉장히 어렵거든요. 소변이나 혈액을 제공하는 것이 민감하고 신경 쓰이는 부분이기도 하니까요. 목적이 무엇이고 어떻게 활용될 것인지를 잘 설명드릴 의무는 당연히 저희의 역할이지만, 그럼에도 익숙하지 않은 방식이다보니 참여를 이끌어내는 게 쉽지 않다고 느껴져요. 이런 기회가 있을 때 동의 해 주시고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도 하나의 운동으로 생각해 주시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저희는 연구를 하고 시민들은 대상이 되는 관계가 아니라, 함께 협업하는 동료 관계로 생각 해 주시면 좋겠어요.

 

Q. 듣고보니 늘 현장에 머물면서 직접적으로 감정을 교류하는 것이 지속되어도 지치지만, 현장과 밀접하지 않은 활동이어서 느껴지는 힘겨운 부분도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사실 조사를 하려면 현장을 방문하는 것이 기본이어서 현장과 아주 떨어져있다고 할 수는 없어요. 그렇지만 우리의 활동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소개하고 홍보하는가는 늘 어려운 부분이에요. 노력해야겠지만 갈피를 잡는 것조차 어렵더라고요. 그래도 저희 연구소가 20주년 기념으로 <고통에 이름을 붙이는 사람들>이라는 제목의 책을 하나 발간했습니다. 책이 있으니 단체를 설명하기에 조금 용이하게 느껴져요.

Q. 그럼에도 스스로 동력을 얻고 활동을 지속하게 하는 힘은 어디에서 얻으시나요.

좋게 포장할 일은 아닌 것 같고요. 아무리 애써도 10년 전과 같은 일들이 또 벌어져요. 그러면 왜 우리는 여전히 여기 남아있느냐, 남아서 이런 이야기를 계속하느냐… 아직 그건 잘 모르겠어요. 일면 습관화 된 것도 있고요. 음… 남아있을 만하다? 고루한 이야기이지만 누군가에게는 큰 도움이 되었다는 메시지가 오기도 하거든요. 피해를 받은 분들과 함께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이 책에 쓰여진 것처럼 늘 쉽게만 진행되지는 않아요. 이미 현장은 피해를 극복하기 위해서 너무 오랫동안 싸워왔고 지쳐있는 경우가 너무 많거든요. 그럼에도 드문드문 어떤 보고서를 썼는데, 그게 해결에 도움이 되었다, 역학조사를 함께 진행했던 지역에서 저희가 주장했던 것이 사살이라는 게 확인되었다, 지역민들에게 보탬이 되었다는 사례들이 쌓이게 되면 그게 꽤 큰 힘이 되죠.

괜찮은 기억이에요. 남아있을만 하다..

변화란 거저 오는 것이 아니라 애써서 만드는 것이다. 그런데 노동자의 고통은 잘 드러나지 않기에 변화는 더욱 더디게 찾아 온다. 위헌함 일일수록 누가 볼까봐 가린다. 공장의 담벼락으로 가리고, 어두운 조명으로 가리고, 때로는 오해와 편견으로 가린다. 그래서 노동자의 고통을 애써서 드러내려는 노력이 정말 소중하다. 아픔이 드러나야만 사회가 더 많이 아픔을 나누게 되고 노동의 고통을 키우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근골격계 질환이라는 말이 없던 시절ㅁ 있었다. 감정노동이라는 말이 없던 시절도 있었다. 감춰져 있던 고통에 이름이 생기면 사회가 아픔을 나누고 일의 위험을 줄일 방법을 의논하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아픔에 붙은 이름을 부를 때, 노동자의 고통은 더 빨리 줄어들고, 일의 위험도 줄 수 있다. 그래서 누군가는 고통을 찾아내고 분류하고 측정해서 이름을 붙여야 한다. 고통의 이름이 여러 사람의 입에 오르내리고 언론을 통해 보도가 되고 법과 정책에 등장하면 사회는 더 이상 이 고통을 모를 수 없게 된다.- 고통에 이름을 붙이는 사람들 서문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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