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가 서로를 몰라도, 세상이 바뀌는 이유
단번에 다 읽은 책이 있어요. 아름다운재단 김성식 1%나눔팀장이 쓴 책 <안녕, 열여덟 어른>인데요. 마지막 장을 덮고서 ‘안다는 것’에 대해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자립준비청년 지원 캠페인 ‘열여덟 어른’을 그간 가까이에서 보았던 만큼 다 아는 얘기가 담겼을거라 생각했는데 아니었어요. 청년들의 삶 속으로 들어간 ‘어른’의 시선을 따라가다보니 새로운 것들이 보였습니다.
자립준비청년 그리고 활동가… 서로를 모른 채 살아온 이들이 연결되어 세상을 바꿀 수 있던 것은 함께 하겠다는 마음과 의지 덕분이었습니다. 그리고 세상을 바꾸는 활동가들에게서 그 의지와 마음을 목격할 때가 참 많고요. 우리가 어떤 현실에 발을 디디고 살아가고 있는지, 그래서 무엇을 바꿔야 할지 직접 듣고, 말하고, 행동하는 이들이기 때문입니다.
새해 계획에는 작년 회고가 필수적이듯, ‘변화’라는 계획을 세울 때도 활동가들의 이야기가 필요할 것 같아요. 무엇을 바꿔왔고 앞으로 무엇을 바꿀 수 있을지 알 수 있거든요. 2023년 첫번째 후후레터는 활동가들의 기록을 담아왔습니다. 함께 볼까요?
“낡은 것은 쉽게 누추하다 여기고 구조 조정의 대상으로 보는 마음은 공간뿐만 아니라 사람도 겨눈다. 쫓겨난 이들에 대한 편견이 내면화되면서 도시에 가난한 이들이 머무는 것을 부적절한 일로 여기게 된 것이다.” – 책 <가난한 도시생활자의 서울 산책> 中
빈곤사회연대 김윤영 활동가는 깨끗하고 말끔해진 서울에서 쫓겨난 사람들을 기억하기 위해 지난 12년간의 기록을 책으로 담아냈습니다. 가난한 이들의 시선을 쫓아, 기록되지 않은 이야기를 따라가며 ‘타인의 실패에 가혹해지는 세상에서 가난을 드러내고 싸우는 이들을, 한번쯤은 편견없이 봐줄 것’을 당부합니다.
한 소년이 시름시름 앓기 시작합니다. 병의 원인을 몰라 한의원을 전전하고 아픈 자식을 보다 못한 부모는 굿까지 하지만 상태는 더욱 악화되었죠. 다행히 의사가 그가 일하는 곳을 듣고 원인을 알아냅니다. 일터는 온도계 공장, 소년은 수은에 중독된 상태였습니다.
문송면 군이 사망한 이후 35년이 지났지만 수은 중독과 같은 어처구니없는 일은 도처에서 일어납니다. 메탄올로 시력을 잃기도 하고, 안전의무 위반으로 목숨을 잃는 일도 빈번합니다. 환자이자 노동자인 이들의 아픔과 고통을 지켜봐온 의사들은 질병의 원인을 살피고, 대안을 찾고 촉구하기 시작했습니다. 의사이자 활동가인 이들이 써내려간 기록 속에서 침묵하지 않은 노동자들과 의사들이 만들어온 변화를 볼 수 있습니다.
“골목 골목마다 박힌 식당 문턱에서 허기를 참고 돌아서야 합니까. 왜 저희는 목을 축여줄 한 모금의 물을 마시려고 그놈의 문턱과 싸워야 합니까.” 서울거리의 턱을 없애달라는 유서를 남긴 채 생을 등진 지체장애인 김순석 씨. 유언은 산 자들이 읽을 때만 의미가 있는 문서라고 하죠. 산 자들은 김순석 씨가 남긴 유언을 이어받아 투쟁을 이어왔습니다.
그러나 사후의 삶에도 등급이 있다는 서두글의 문장처럼 어떤 죽음은 불쌍한 장애인의 사연, 안타까운 일 정도로 여겨지곤 합니다. 비마이너와 기록 활동가들은 장애열사들의 삶을 책에 복원해두었습니다. 흔한 엘리베이터, 활동지원서비스 등이 없던 시절, 장애열사들이 느꼈을 절망과 공포, 울분이 유서 속에 고스란히 담겨있죠. 산 자들이 이 유언을 현실에서 어떻게 이어받을 수 있을지 치열하게 고민해보게 만드는 기록입니다.
저는 ‘열여덟 어른’ 캠페인을 함께 하게 되면서 아이를 기르는 존재를 ‘양육자’ 혹은 ‘보호자’로 인식하게 됐어요. 부모 외에도 아이들을 돌보는 여러 사람이 있다는 것을 인지했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의 보호 기한이 18년이었다는 것, 준비 없이 사회에 나온다는 것도 알게 됐죠.
‘열여덟 어른’ 캠페인을 접하지 못했던 이들을 몰랐던 세상으로 안내할 책이 있어요. 바로 <안녕, 열여덟 어른>인데요. 캠페인 기획, 진행해온 김성식 1%나눔팀장의 목소리를 따라가다보면 자립준비청년들을 세상에 소환하며 어떤 고민을 했는지, ‘감사하다’는 말을 달고 살아야하는 청년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무엇인지 알게 됩니다. 무엇보다 청년들과 함께 해온 어른의 진솔하고 담백한 이야기에서 오는 울림이 큽니다. 자립이 두렵고 낯선 모든 이들에게 보편적인 위로가 될 이야기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요.
한국에서 자랐지만, 주민등록번호가 없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부모에게 체류 자격이 없다는 이유로 국가가 돌보지 않은 ‘미등록 장기체류 이주아동’의 이야기인데요. 아동들은 언어도 통하지 않는 나라로 언제든 쫓겨날 수 있다는 불안감, 준비된 미래를 설계할 수 없다는 막연함 속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본인인증을 할 수 없어서 콘서트 예매가 어렵다는 이야기, 고등학교 진학 여부가 불투명해서 친구들과 선생님들이 백방으로 뛰었던 이야기… 은유 작가는 어려움 속에서도 살아내는 용기를 발굴합니다. 무엇보다 아이들의 곁을 지키는 변호사, 이주인권활동가들의 단단한 마음을 읽다보면 저는 과연 어떤 어른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되돌아보게 됩니다.
우리 사회 곳곳에서 변화를 만들고 있는 활동가들에게 5권의 책을 추천받았어요! 한 해를 계획하며 잠시 숨을 고를 수 있는 책을 찾고 있다면 여깁니다. 여기!
“한 사람의 이야기가 소중한 이유는 성공하거나 모범적으로 자랐기 때문이 아니다. 마침표를 찍지 못했더라도 그 시간을 견뎌내고 고통에 아파했던 모든 것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시간이었기에 그 자체로 소중한 것이다.” – 책 <안녕, 열여덟 어른> 中
쉽지 않았던 한 해를 걸어온 구독자 여러분께 꼭 전하고 싶은 문장이었어요. 고통에 아파할 수 있고, 또 견뎌내며 공감할 수 있는 삶이라면 인간답게 살아가고 있다는 증거일 듯 싶습니다. 후후레터는 2월에도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발로 뛰어보겠습니다. 구독자 여러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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