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선 너머 자립을 지지하는 플랫폼과 로드맵을 만드는 일

“제 인생의 방향성이 바뀌었어요.”

‘청소년복지시설 퇴소 경계선지능청소년 주거지원사업(이하 본 사업)’에 참여한 어느 청소년의 메시지다. 그의 마음 깊숙이 울림을 선사한 본 사업은 주거 지원을 기본으로 일상생활 지원, 교육·취업 지원, 심리정서 지원, 관계자립 지원 등 사례관리를 병행한 통합 지원으로 온전한 자립을 지지했다. 누구보다 사각지대에 놓인 청소년복지시설 퇴소 경계선지능청소년을 주목했다는 점에서 특별한 시도였다.

청소년복지시설은 아동복지법상 본인의 의사나 상황에 따라 만 18세 이상 만 24세 이하 시점에 퇴소해야 한다. 그 현실만으로도 당혹스럽건만 경계선지능청소년의 사정은 더욱 녹록치 않다. 지적장애와 비장애 사이의 지능지수 71~84를 보유한 경계선지능 청소년이기에 문제 대처나 미래 예측이 다소 어려울 수밖에 없다.

청소년복지시설 퇴소청소년 주거지원사업은 그와 같은 실정을 오롯이 헤아린 아름다운재단과 경기북부청소년자립지원관의 협력사업으로 총 3년간 (2020, 2021, 2022년) 진행됐다. 무엇보다 청소년복지시설 퇴소 경계선지능청소년의 자립을 실현하는 가운데 그들을 위한 사회적 지원 논의를 정립하고, 자립 지원 모델도 확산하겠다는 취지였다.

그 맥락에서 본 사업의 효과성과 방향성을 과학적으로 검증하기 위해 성과연구가 진행되었다. 성신여자대학교 사회복지학과 박현용 교수가 책임연구원으로 견인한 본 사업의 성과연구는 2021년 8월 착수, 체계적인 절차 속에 2022년 12월 결론을 맺었다. 아무래도 시사하는 바가 상당한 만큼 성과연구에 대한 결과공유회가 마련됐고, 그 핵심 내용이 세간에 발표됐다.

청소년복지시설 퇴소 경계선지능청소년 주거지원사업 성과연구보고서

느린 학습자의 홀로서기, 자립은 불가능하지 않다.

‘청소년복지시설 퇴소 경계선지능청소년 주거지원사업 성과연구 결과공유회’는 지난 1월 LW컨벤션에서 개최됐다. 30여 사회복지기관이 참석한 이번 결과공유회는 경기북부청소년자립지원관 박현동 관장의 인사말로 막을 열었다. 식순에 따라 사업영상을 시청했고, 사업소개 및 결과보고 이후 박현용 교수가 하이라이트인 성과연구 발표에 나섰다.

‘청소년복지시설 퇴소청소년 주거지원사업’ 성과연구 결과공유회

성과연구 과정을 소개한 박현용 교수는 본 사업 참여자들의 변화를 다각도로 조명했고, 본 사업의 효과성과 방향성을 공유했다. 그는 “경계선지능청소년은 저마다 다양한 특성을 보유한 고유한 존재이기 때문에 현행보다 섬세한 맞춤형 접근이 요구된다.”면서 “경계선지능청소년이 만 24세를 초과해도 충분한 시간을 확보하고 지원을 지속한다면 자립은 불가능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성과연구 발표 직후에는 전문가 토론이 펼쳐졌다. 박현용 교수를 포함해 강단에 자리한 사회복지 전문가 5인은 청소년복지시설 퇴소 경계선지능청소년의 열악한 실태 및 시급한 현안에 대해 발제했다. 특히 박현용 교수는 일선의 실무자를 위해 경계선지능청소년 사례관리 시 ‘한결 친밀한 관계’, ‘더욱 구체적인 평가’, ‘보다 객관적인 시선’이 중요하다는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전문가 토론의 질의와 응답을 마지막으로 결과공유회는 성공적으로 마무리됐다. 성과연구를 통해 본 사업의 개선점과 보완점이 드러났고, 이를 중심으로 본 사업의 영향력과 지향점도 확인할 수 있었다.

다만, 2년에 걸친 성과연구를 결과공유회 속 30분의 발표로 살펴보기에는 박현용 교수에게 시간이 모자랐다. 본 사업의 성과연구는 반드시 면밀하게 짚어볼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첫걸음이기 때문이다. 첫걸음이란 뒤따르는 사람들에게 단 하나의 길이 된다. 그래서 박현용 교수는 추가로 마련한 대담을 통해 성과연구의 면면을 한층 세세하게 풀어냈다.

“경계선지능청소년을 범주화하기 보다는 정확하게 이해하는 지원이 필요합니다.”

아이와 어른의 경계, 지적장애와 비장애의 경계, 생존과 생활의 경계…… 경계에 머무른 청소년복지시설 퇴소 경계선지능청소년. 박현용 교수는 그들을 응원하며 본 사업의 성과연구에 진정성 다해 다가섰다. 최근에도 아동 학대와 청소년 자립 연구를 수행한 그는 사회관계망은 물론 자원 연계를 전문으로 연구하고 있다. 

박현용 교수는 사업 성과연구를 설계한 후 청소년복지시설 퇴소 경계선지능청소년의 자립 지원 정책과 제도의 현주소부터 들여다봤다. 실상 그들의 비중은 14% 이상으로 추정되나 통계는 약 6%의 소수로 나타나고 있다. 그래서인지 그들의 자립에 대한 논의와 지원은 극히 제한적이었다. 

 

성과연구를 진행한 성신여자대학교 박현용 교수

박현용 교수가 사업과 참여자들의 특성을 분석한 결과는 다음과 같다. 경기북부청소년자립지원관의 사업일지와 사례관리보고서를 통해 조사한 사업의 세부 활동은 총 9개 항목으로 구분됐다. 주거비 지원, 생계비 지원, 생필품 지원, 심리상담 지원과 사례관리 지원, 주거지 방문을 통한 일상생활 지원과 커뮤니티하우스를 통한 커뮤니티형성 지원, 의료지원과 취업지원이 그것이다.

2020년 4월부터 2022년 12월까지 본 사업의 누적 참여자는 모두 12명으로 여자 7명, 남자 5명이었다. 나이는 만 20~25세였고 만 22세가 평균이었다. 종합심리검사 결과, 자료가 없는 1명을 제외하고 그들의 지능지수는 71~80으로 비슷한 수준이었다. 하지만 그 하위지표인 언어이해, 지각추론, 작업기억, 처리속도의 차이는 상당했다.

“경계선지능청소년은 지능지수만으로 특성을 규정짓기 어렵습니다. 지능지수는 71~84라는 수치 사이에 단절되어 있지만, 그 안에서 누구는 언어이해가 조금 높고, 누구는 처리속도가 아주 높죠. 성별 간의 차이도 적잖고요. 긍정적, 또는 부정적 경험도 지적능력에 영향을 미치죠. 스펙트럼이 아주 넓어요. 다시 말해, 그들은 하나의 동질적인 집단이 아니라 다수의 이질적인 개인입니다. 따라서 범주화하기보다는 그들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맞춤형 지원이 필요합니다.”

사업에 참여한 청소년들의 자립준비도가 전반적으로 상승했습니다.

지원사업과 참여자의 특성을 파악한 박현용 교수는 본 사업의 성과를 분석했다. 사업 전후로 참여자들의 심리·정서·행동 및 자립준비도의 변화를 비교하는 방식이었다. 측정도구로는 MMPI-2(미네소타 다면적 인성검사-2)와 자립준비도 척도(조규필, 2016)를 활용했다.

표본은 2022년 12월 기준 본 사업의 참여자 4명이었다. 성별은 여자 2명 남자 2명, 나이는 만 20~24세로 만 22세가 평균이었다. 그동안 본 사업에 참여한 12명 중 7명은 지역 이동, 질병, 가정 복귀, 연락 두절, 입대의 이유로 지원이 종결됐고, 1명은 변화를 추적하기에 본 사업에 참여한 기간이 짧았다. 따라서 박현용 교수는 1년 이상 본 사업에 참여한 4명에게 초점을 맞췄다.

“MMPI-2 결과, 심리·정서·행동 측면에서 대단히 긍정적인 모습의 참여자가 발견됐는가 하면, 문제를 드러내는 참여자도 있었습니다. A 케이스는 심리·정서·행동이 처음부터 끝까지 안정적이었습니다. 원래 성실한 성품이라서 집중적인 사례관리를 통한 라이프 코칭이 시너지를 발휘한 듯합니다. 현재 취업 중으로 인턴에서 정규직으로 전환됐어요. B 케이스도 안정적으로 나타났지만, 타인 위주 성향이라 아직은 지속적인 관찰이 요구되고요. C 케이스는 불안정하긴 하지만 처음보단 나아지고 있습니다. D 케이스는 대부분의 지표가 처음보다 나빠진 상태인데요. 본 사업과 상관없이 심리·정서·행동의 문제로 불안과 우울이 심화된 듯합니다. 치료가 필요합니다.”

A, B, C, D 케이스는 각각 다양했다. 하지만 본 사업에 참여한 그들의 심리·정서·행동은 D 케이스를 예외로 두면 무척 안정적이었거나 안정적으로 호전되는 모양새였다. 자립준비도 검사 결과도 유사했다. 박현용 교수는 본 사업 후 참여자들의 자립준비도가 전반적으로 상승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본 사업의 성과가 일부 입증되는 순간이었다.

측정도구를 활용한 양적연구도 중요했지만, 박현용 교수는 면담을 반복한 질적연구에 각별히 집중했다. 무엇보다 그는 본 사업의 자립 지원 경험을 다각적으로 확인하고자 경계선지능청소년 및 경계선지능 추정 청소년 14명, 그리고 청소년자립지원관 및 청소년쉼터 실무자 16명과 심층적인 대화를 이어 갔다.

박현용 교수가 함께한 청소년 14명 중 8명은 본 사업 참여자였고, 6명은 본 사업 아닌 통상적인 자립 지원 사업 참여자였다. 그들의 나이는 만 17~24세로 자립 지원 사업 참여 기간은 3~46개월이었다.

“청소년들과는 라포를 형성하며 한두 시간씩 4회 이상 면담을 진행했습니다. 그 내용을 분석한 결과, 본 사업 참여자들은 본 사업에 대부분 만족했는데요. 특히, 주거 기반 주기적인 통합 지원으로 심리정서의 안정을 회복하는 가운데 자립 의지가 강화됐어요. 또한, 사례관리 지원으로 공감과 격려 속에 인생의 방향성을 생각할 수 있었고, 관계향상 지원을 위한 커뮤니티하우스로 외로운 마음도 다스릴 수가 있었습니다. 본 사업의 비참여자들 역시 자립 지원 사업의 경제적 지원과 심리정서 지원은 도움된다고 반응했는데요. 다만, 그 외 프로그램은 차별성이 없고, 흥미롭지 않다고 답변하기도 했습니다.”

청소년들과의 면담을 토대로 박현용 교수는 경제적 기반 구축과 심리정서적 안정 유지가 자립의 관건이라고 강조했다. 본 사업을 향한 청소년들의 시선을 확인한 그는 더불어 실무자들의 입장도 귀 기울여 경청했다. 그가 대면한 실무자 16명의 경력은 14년 7개월~2년 8개월, 평균 7년 4개월로 자립 지원 경험도 적절한 편이었다.

박현용 교수는 초점집단면접(Focus Group Interview)으로 경계선지능청소년의 자립 지원에 대한 실무자들의 인식과 방향을 확인했다. 그 내용을 분석한 결과, 경계선지능청소년의 일반화나 범주화는 여의치가 않았고, 자립 준비 기간의 장기화도 요구되는 실정이었다. 그 때문에 청소년자립지원체계의 전문적인 구조화가 중요하고, 지역사회의 적극적인 지원도 필요하다는 제안이 상당수였다.

‘자립이란 혼자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더불어 살아가는 법을 터득하는 것’

청소년복지시설 퇴소 경계선지능청소년의 현황 조사부터 본 사업의 구조와 참여자들의 특성 파악, MMPI-2와 자립준비도 척도를 활용한 본 사업의 성과분석, 본 사업 관련 참여자와 실무자 면담을 통한 본 사업의 영향력과 지향점 도출까지, 이상으로 박현용 교수를 비롯한 연구진이 2년에 걸쳐 수행한 성과연구는 매듭을 지었다. 단, 실험적이고 희소적인 시도가 적잖아 여느 연구처럼 제한점도 드러났다.

“이번 성과연구를 수행하며 가장 어려웠던 부분은 표본의 모집이었습니다. 표본의 수가 적거나 대조군이 없으면 일반화가 어렵거든요. 또한, 특정 기관의 경험에 국한했다는 측면도 한계점이 있습니다. 지역과 기관에 따라 경험은 달라질 수 있으니까요. 자립준비도도 주관적 인식 바탕의 척도가 활용됐는데요. 경계선지능청소년에 적합한, 보다 객관적 척도를 고려할 필요가 있습니다.”

연구자로서 솔직한 심정을 밝히는 박현용 교수. 신뢰도와 타당도를 더욱 확보하지 못해 그는 못내 아쉬웠다. 하지만 본 사업의 효과성이 증명됐고, 방향성도 제시됐다는 관점에서 이번 성과연구는 희망적이었다. 더구나 그가 성과연구를 마무리하며 공유한 제언은 경계선지능청소년의 자립을 위한 나침반처럼 다가왔다.

“경계선지능청소년의 자립에는 무엇보다 조기 선별이 중요합니다. 아울러 그들의 특성을 반영한 표준형과 맞춤형 프로그램이 통합적으로 지원돼야 하고요. 정신건강 관련 검사도 병행돼야 합니다. 그 지점에서 실무자에게 슈퍼비전이나 교육이 요구되는데요. 아무래도 전문적인 지식을 보유하고 실무 경력도 풍부하면 좋겠죠. 그렇다고 실무자가 모두 책임질 수는 없습니다. 궁극적으로 지역사회의 자원을 연계해서 활용해야 되는데요. 그 체계를 구축하는 방안을 꼭 마련해야 합니다.”

경계선지능청소년의 자립을 위한 청사진이 펼쳐지면서 본 사업의 성과연구는 마무리되었다. 박현용 교수는 경계선지능청소년을 내내 응원하고 싶었다. 그래서 그는 제언의 끝자락에 선물 같은 한마디를 덧붙였다. ‘자립이란 혼자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더불어 살아가는 법을 터득하는 것’이라고. 그 정의에는 ‘그러니까 자립은 결코 불가능하지 않다’는 진심이 녹아 있었다.

경계에 머무른다는 의미는 의지나 환경에 따라 경계의 동과 서, 남과 북 어디든지 걸어갈 수 있다는 뜻도 포함하고 있다. 이는 경계선지능청소년의 지능지수에 대한 언급이 아니다. 오롯한 지지를 통한 자립으로 경계 너머 그들이 나아갈 인생의 방향성에 관한 이야기다. 눈부신 동쪽 언덕이든, 드넓은 서쪽 바다든, 따뜻한 남쪽 나라든, 새하얀 북쪽 마을이든… 충분한 시간을 딛고 홀로선 그들은 경계 저편 저마다의 행복한 세상에 끝내 다다를 수 있다. ‘청소년복지시설 퇴소 경계선지능청소년 주거지원사업’은 그 여정을 시작하는 ‘플랫폼’이고, 성과연구는 그 여정을 준비하는 ‘로드맵’이 될 것이란 점에서 보다 특별했다.

 

 

글 노현덕 ㅣ사진 임다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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