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재단 ‘변화의시나리오 프로젝트 지원사업’은  시민모임, 풀뿌리단체, 시민사회단체의 공익활동을 지원합니다. 성패를 넘어 시범적이고 도전적인 프로젝트를 지원함으로써 공익활동의 다양성 확대를 꾀합니다. ‘2022 변화의시나리오 프로젝트 지원사업’에 참여한 성공회 용산나눔의집의 성소수자 주거지원 활동을 전해드립니다.

성소수자 주거 불안 공론화를 시작하자!

성소수자 주거권 네트워크(이하 성주넷)는 아름다운재단과 함께 성소수자 주거 불안을 공론화하기 위한 세 가지 사업을 전개했습니다. 하나는 성소수자 인권운동 단체와 주거권 운동 단체를 중심으로 성소수자 주거 불안에 관한 집담회를 진행하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성소수자 주거지원 매뉴얼을 제작하는 것이죠. 그리고 마지막 하나는 트랜스젠더의 주거 불안을 조사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이 사업들을 기획한 것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습니다. 성소수자가 겪는 주거 불안의 사안이 꽤 심각한데 비해 이것이 크게 공론화되지 않았기 때문이죠.

2020년에 우리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성소수자들은 원가족 집에서는 부모와 형제로부터, 독립해서는 이웃으로부터 자신의 성소수자 정체성을 보호하고 아웃팅을 방지하기 위해 소지품, 장식품, 그리고 파트너 관계 등을 숨기고, 자신의 행동을 끊임없이 단속하는 등 불안하고 위험한 주거 환경을 경험해야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성소수자들은 기숙사, 고시원, 쉼터 등 성별 이분법으로 운영되는 다중이용시설에 거주할 기회가 제한되며 주거 위기에 직면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성소수자 커플의 경우 신혼부부와 자녀수에 따라 가산점을 부여하는 주거정책에서 배제되며 주거의 이동 기회를 박탈당하고 주거 불평등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이런 사실을 살펴보면 성소수자의 주거 불안은 이들의 개인적 문제가 아닌 사회의 구조적 차별과 배제의 결과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성애 규범과 성별 이분법이 강하게 작동하는 사회에서 이들은 지속적으로 주거 불안을 경험할 수밖에 없는 것이죠. 그래서 우리는 성소수자의 주거 불안을 사회 권리의 문제, 사회 운동의 문제로 이해할 필요를 느꼈고, 성소수자 주거 불안의 공론화를 위한 위의 세 가지 사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여지 것, 집 문제는 내 문제로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어!

먼저 우리는 우리가 조사한 성소수자 주거 불안의 내용을 가지고 성소수자 인권 단체, 주거권 운동 단체와 총 7회 집담회를 가졌습니다. 여러 단체의 활동가와 집담회를 진행하며 우리가 알게 된 사실은 성소수자 주거 문제가 매우 사적인 차원의 것으로 인식되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 사회에서 집이라고 한다면 매우 사적인 문제로 인식되지 사회의 기본적 권리로 인식되지 못합니다. 그래서 성소수자가 겪는 주거 불안이 성소수자 인권 단체 내에서도 부차적인 문제로 축소되는 경향이 많았습니다.

따라서 여러 성소수자 인권단체와 진행한 집담회의 성과 중 하나는 성소수자 주거 불안이 이 사회에서 발생하는 구조적 문제임을 공유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소수자 인권 운동 내에서 주거 문제도 주요한 이슈로 논의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했다는 점입니다. 예컨대 ‘행동하는 성소수자 인권연대’와 ‘성소수자 가족 구성권 네트워크’는 성소수자 주거 불안 문제가 중요한 성소수자 인권 문제 중 하나라는 것을 인식했으며, ‘가족구성권연구소’의 경우 성소수자 커플이 가족으로 인정되지 않는 현실과 이것이 주거 불안으로 이어지는 경향을 함께 공감하며 성소수자 주거 불안 문제에 지속적인 관심을 갖기로 했습니다.

▲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성소수자가족구성권네트워크와 함께한 집담회

▲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성소수자가족구성권네트워크와 함께한 집담회

향후 성주넷이 어떤 형식으로 이어질지 예상하기 힘들지만 집담회를 통해 다양한 단체들과 만들어진 성소수자 주거 불안에 관한 공감대는 앞으로 행보에 든든한 동력이 될 것이라 생각이 듭니다.

성소수자가 소외되지 않는 주거지원 매뉴얼을 만들자

간담회와 더불어 성주넷이 진행한 사업은 성소수자 주거지원 매뉴얼 제작입니다. 우리가 2020년도에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성소수자는 공공이나 민간으로부터 제대로 지원을 받지 못하고 주거 위기를 경험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자신의 성적지향이나 성별정체성 문제로 이른 나이에 탈가정을 할 수밖에 없는 성소수자의 경우 적정한 주거 공간을 구하지 못하고 열악한 주거 환경에 처하곤 합니다. 하지만 이들이 공공으로부터 적절한 지원을 받기가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주거 취약계층을 지원하는 주거복지센터의 경우 그 대상이 지정성별 이성애자만으로 한정되어 있어 성소수자가 겪는 주거 불안에 적절하게 대응하고 대처하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성소수자들은 자신들이 겪는 주거 불안을 상담하고 적절한 주거 지원을 찾고 싶어도 주거복지센터의 문턱을 쉽게 넘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거복지센터 상담사들을 대상으로 한 성소수자 주거지원 매뉴얼을 제작했습니다. 성소수자들이 처하고 있는 다양한 주거 불안의 내용을 유형화하고, 이에 따른 대응 방안을 마련했습니다. 그래서 성소수자가 처한 주거 불안의 양상을 이해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또한 성소수자가 느끼는 주거복지센터의 문턱을 낮추기 위해서 성소수자 내담자와의 상담 요령도 제시했습니다. 첫 시도이기 때문에 아직은 매뉴얼의 내용이 어설프지만 그래도 주거복지 현장에서 유용하게 쓰일 수 있기를 바라봅니다. 또한 그동안 주거복지 현장에서 표상되지 못했던 성소수자들이 이 매뉴얼을 계기로 적절한 주거상담과 지원을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 성소수자 주거지원 매뉴얼

▲ 성소수자 주거지원 매뉴얼

성소수자가 경험하는 주거 불안은 다 달라: 트랜스젠더의 주거 불안

2020년 우리가 성소수자 주거 불안을 조사하며 발견한 사실 중 하나는 성소수자 내에서도 트랜스젠더 집단이 가장 취약한 주거 환경에 처해 있었다는 것입니다. 트랜스젠더는 다른 시스젠더* 여성, 남성의 성소수자보다 평균적으로 학력도 낮았고, 일자리도 안정적이지 못합니다. 또 다른 시스젠더 여성, 남성 성소수자보다 이른 나이에 원가족으로부터 독립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트랜스젠더는 고시원이나 학교 기숙사와 같은 상대적으로 저렴한 주거 공간에서 배제되며 주거 위기를 겪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이 공간들은 모두 성별 이분법의 장소이기 때문에 법적성별을 정정하지 않은 트랜스젠더가 들어갈 자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시스젠더라는 태어날 때 신체 외양에 따라 결정된 지정성별과 같은 성별로 정체화한 사람을 말한다.

그래서 우리는 성소수자가 경험하는 주거 불안의 실태와 양상을 더욱 구체적이고 입체적으로 조사하기 위해 트랜스젠더만 대상으로 한 주거 불안을 조사했습니다. 우리가 향후 성소수자 주거 불안에 대한 대안을 얘기할 때 성별정체성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는 주거 불안 양상을 파악하지 못한다면 제대로 된 대안을 얘기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트랜스젠더는 지정성별(법적성별)과 현재 표현하는 성별의 불일치로 인해 많은 주거 불안을 경험합니다. 원가족 부모의 집에서는 일상적으로 이뤄지는 지정성별에 따른 호명(아들, 딸 등)과 성역할의 요구는 트랜스젠더 자녀에게 성별 불일치감을 심화하며 매우 불편하고 숨막히는 곳으로 경험하게 합니다. 독립을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트랜스젠더에게 저렴하게 원가족으로부터 독립할 수 있는 고시원이나 학교 도서관은 매우 문턱이 높습니다. 이러한 다중이용시설은 성별 이분법으로 운영되어 트랜스젠더를 배제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다른 곳에서 자리를 잡기도 힘듭니다. 우리가 집을 구할 때 쓰는 임대차계약서 자체가 아웃팅의 위험을 낳으니까요. 계약서에서 요구하는 법적성별이 문제입니다. 법적성별을 쓰고 주민등록증을 확인하는 과정 자체가 트랜스젠더에게 아웃팅의 위험으로 경험됩니다. 그래서 계약이 파기되기도 합니다.

주거 문제뿐만이 아닙니다. 트랜스젠더는 다른 시스젠더 성소수자와 달리 이 성별 불일치로 인해 노동 시장에서 매우 불안정한 환경에 처하기도 합니다. 자신의 성별 불일치를 감추기 위해 법적성별을 엄격하게 요구하지 않는 비공식적이고 비정규적인 노동에 종사하는 경향이 많기 때문입니다. 노동 시장뿐만이 아닙니다. 법적성별을 요구하는 병원이나 관공서, 그리고 신분을 증명해야 하는 모든 서비스(카드 수령, 인터넷 설치 등)에서 곤란을 마주합니다.



결국 트랜스젠더는 집을 둘러싼 모든 사회적 관계에서 불안정한 위치에 놓임으로써 중층적인 주거 불안을 경험합니다. 정말 이 사회의 성별 이분법이 트랜스젠더의 목을 빽빽하게 조여 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만큼 힘든 조사였고, 어려운 기록이기도 했습니다. 향후 더 많고 다양한 트랜스젠더의 주거 불안을 조사를 해야 하기는 하지만, 이번 조사가 트랜스젠더의 주거 불안을 공론화하는 계기로 활용될 수 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글을 닫으며

사업을 끝맺으며 돌이켜 보니 아쉬운 점도 많습니다. 그래도 한술에 배부를 순 없겠죠. 우리가 이번에 시도한 세 가지 사업이 잘 했다고 평가하기에는 조금 부족하지만 그래도 이 사업들을 통해서 2023년의 새로운 사업을 시작할 동력을 얻었다고 생각합니다.
올해는 조금 더 여유롭고 넓은 시선으로 성소수자 주거권을 옹호하는 다양한 활동들을 펼쳐가겠습니다!

글, 사진 : 성공회 용산나눔의집

댓글 정책보기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