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영국인가? 누군가 물었다. 물가는 비싸고(때는 바야흐로 브렉시트 전이다), 음식은 맛이 없고, 날씨가 안 좋기로(속된말로 거지 같은) 유명한 나라. 그렇다. 나는 이런 영국이란 나라에 안식월을 보내러 갔다.

사회 초년생 때 출장으로 처음 밟은 영국의 인상은 런던 히드로 공항 셔틀버스의 다소 칙칙한 형이상학적 패턴과 어두운 조명, 특유의 유럽 냄새로 기억한다. 연중 비 오는 날보다 햇볕 나는 날이 더 많은 나라에서 온 나에게는 어두운 곳이라는 첫인상이 남았던 것 같다. 하지만 마냥 어두운 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초록 공원, 가드닝 문화, 셰익스피어, 낭만파시인, 빈티지 마켓, 뮤지컬 등 팔색조 같은 매력으로 영국은 나를 늘 유혹해왔다. 언제부턴가 마음 한구석에 영국을 제대로 여행하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다. 짧은 여행이 아닌 조금 긴 여행으로. 시간은 흘러 나에게 드디어 기회가 왔다. 두 달의 6년 차 안식월 중 한 달은 런던에서, 나머지 2주는 다른 지방을 여행하기로 한 것이다.

안식월을 마치고 돌아와 찍었던 사진을 정리하다 보니 거리를 걷다가 혹은 여행을 가서 마주치는 사물들, 혹은 사람들 속에 영국의 기부/나눔문화와 관련된 요소들을 엿볼 수 있었다. 부끄럽지만 그 소소하고 꼬질꼬질한 사진을 꺼내 글로 적어보기로 했다. 처음 이야기는 Yarn Bomb(뜨개실 폭탄?)에 관한 이야기이다.

영국 국기와 엘리자베스여왕 사진

엘리자베스여왕 90세 생일 즈음에 어느 교회에 걸려있던 장식

아름다운 휴양도시 Bath에서 길을 걷다가 기둥을 털실로 감싸놓은 것이 보였다. 핑크핑크하고 꽃까지 달려있어 너무 예쁘다. 개인적으로 코바늘뜨기를 좋아하는지라 가까이 가서 들여다봤다. 어? 뭔가가 적혀있네?

털실로된 편물에 글이 적힌 테그가 달려있다.

Yarn Bomb의 출처에 대한 테그가 달려있다

  
 “이 Yarn Bomb 설치물은 지역 자선단체를 위한 모금을 위해 헌신하는 자원봉사자들의 모임을 통해 만들어진 작품입니다. 지역 예술가 Emma Leith를 통해 디자인하고 수집한 작품을 암환자들, 암으로 영향 받은 사람들을 위해 바칩니다. 이 프로젝트나 패턴 그리고 여러분들 자신의 작품을 만드는 방법에 대해서는 웹사이트를 참고해주세요. www.emmaleith.co.uk”

Yarn Bomb? 뜨개털실 폭탄이라는 건가? Yarn Bombing은 ‘동상, 기둥 등 공공시설물에 털실로 뜬 덮개를 남모르게 아니면 허가 없이 씌우는 일’로 게릴라 뜨게(Guerrilla knitting), 그래피티 니팅(Graffiri knitting)등 다양한 용어로 불린다. 2004년부터 6월 11일에는 세계 곳곳에서 Yarn Bombing Day를 기념하는 행사가 열린다고 한다. 삭막하고 차가운 도시에 따뜻한 일렁임을 선사하는 Yarn Bomb, 그래서 폭탄(Bomb)이라는 다소 과격한 이름이 붙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거리에 세워진 알록달록 기둥들

하나가 아니라 여럿이다!

아티스트 Emma Leith의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니 이런 설명이 나온다.

“어떤 대의명분에 대해 주의를 환기하거나 입소문을 내고 싶을 때, 혹은 단순히 도시 공간에 에너지를 불어넣기 위해 Yarn Bombing은 주의를 끄는 확실한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세심하게 디자인된 Yarn Bomb은 사람들에게 미소를 띠게 하고, 자동으로 셀카를 불러일으키는 효과가 있습니다. 전통적인 그래피티로써 이 털실 예술은 누구에게나, 다양하고 폭넓은 청중들에게 접근 할 수 있습니다.”

여러 자원봉사자가 힘을 합쳐 만든 따뜻하고 알록달록한 거리예술 Yarn Bombing은 단순한 시각적 효과뿐 아니라 자신이 지지하는 대의명분에 대해 확실히 시선을 끄는 효과가 있었다. 거리에 “암 환자들을 도와주세요! 기부해주세요!” 라는 단순한 메시지가 적힌 폼보드가 있었다면 아마 곁을 지나가도 기억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찾아봤더니 한국에서도 이런 시도가 있었다. 

☞ 언메이크랩 : 양털폭탄연구실 ‘뜨개 환담’을 가다
(‘언메이크랩’은 2014년부터 2015년까지 아름다운재단 변화의시나리오A 지원단체였다. )

yarn bombing in Seoul, 대한문

사회적 메세지를 전달하는 방법이 늘 과격하거나, 남성적일 필요는 없다. ‘뜨게질’이라는 다소 나이브해보이는 방법으로 어떤 그래피티, 대자보 못지 않은 ‘크래프트 액티비즘(Craft Activism)’  효과를 노릴 수 있기 때문이다.      

슈퍼맨이 달린 귀여운 Yarm bomb

슈퍼맨이 달린 귀여운 Yarm bomb (출처 : Knit the City 플리커)

 

>>관련 글 더보기
[영국기행①] 거리를 물들이는 Yarn Bombing(뜨개실 폭탄)
[영국기행②] 길 걷다 마주친 나눔의 풍경
[영국기행③] Rowntree 가문의 저택에서 머물다
[영국기행④] 실속있고 알찬 런던의 무료 박물관
[영국기행⑤] 기억하라 기록하라 기념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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